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70화 (170/287)

〈 170화 〉 19. 이세계 전이자 (3)

* * *

"지옥이라. 맞는 말이군."

요하네스는 내 말을 이해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강한 공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 그대는 꽤 이 세계에 애착이 있어 보이는군. 그렇지 않소?"

"그건 이 세계에 와서 괜찮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 세계에서 난 정말로 지독한 일을 많이 겪었다. 좋지 못한 결과로 끝난 인연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람들을 얻게 되었고, 지금에 와서는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 있었다.

이 세계는 지옥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개의치 않는다.

지옥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소중한 것을 얻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이 세상에 대한 평가를 높일 이유는 되지 않는다. 이 세계는 인프라가 처참하고, 치안도 최악인데다, 음식 맛도 더럽게 없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여기가 지옥인 건 맞지만 저희가 살던 그 세계에서도 지옥 같은 곳은 있더라고요. 소말리아나, 시리아 같은."

내가 '그 세계'와 '이 세계'의 갭을 크게 느낀 이유는 내가 치안이 괜찮은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나이를 먹고, 점점 머리가 굵어지는 과정에서 '그 세계'에서도 좋지 못한 환경을 가진 지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이 세계에 떨어진 것을 크게 개의치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지옥 같은 나라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가잖아요. 꾸역꾸역, 최선을 다해서."

"……그렇지, 그 말이 맞소."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까, 고개 숙이고 울고 있을 시간에 이 세계에서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세계는 지옥이나 다름없다. 고생도 많이 했지, 사실 지금도 어마어마하게 고생하는 중이다.

하지만 아무리 지옥 같은 세상이라도 사람은 살아 가야만 한다.

그래도 살아간다.

"이 정도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었을까요?"

"아, 만족했소."

"그럼 이번에는 제게 있어서 이세계 생활의 선배라고 할 수 있는 그쪽의 이야기를 좀 듣고 싶네요."

요하네스 또한 나와 비슷하게 상당히 젊은 나이로 이 세계에 전이되었다.

내가 이 세계에 전이한 나이가 열넷. 요하네스는 아마 열여덟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는 자수성가한 이세계인의 대표격인 인물로, 특급 모험가 자리에 올라선 그때부터 미디어의 주목을 받아 왔었다.

자수성가한 요하네스의 활약은 나 같은 이세계인들에게 큰 희망이 될 수 있었으니까.

나이를 먹은 지금 와서는 그를 향한 동경심도 많이 옅어졌지만, 그래도 조금 두근거린다.

아직 마음만은 소년인가보다.

"……음. 그렇군. 그대에게 있어서 나는 선배뻘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

요하네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나는 내 나이가 열여덟이었을 무렵에 이 세계로 전이되었소. 그때 나는 독일에서 펜싱 선수로 활동하고 있었지."

"펜싱이요?"

"음. 국가대표 상비군이었소."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일개 육상부 에이스에 불과했던 나와는 차이가 크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아무리 검을 수련하더라도 그것을 휘두를 수 있는 무대가 없다는 사실에 조금 좌절하고 있었지. 아무리 수련하더라도 결국 그건 스포츠일 뿐. 검의 시대는 오래 전에 끝나 있었으니까."

"그거…… 꽤 위험한 생각 같은데요."

요하네스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살아가던 시대는 딱 내 부모님 뻘 세대다. 두 차례의 커다란 전쟁이 끝나고, 검술은 스포츠의 형태로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시대.

그런 시대에서 검이 활약하는 무대를 갖고 싶었다고?

엄청 위험한 생각 같은데.

내가 지적하자 요하네스는 소리 없이 웃었다. 한쪽 다리를 올려서 다리를 꼬고 그 위에 손깍지를 해서 얹는다.

"하하, 그 말이 맞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상당히 부끄러운 추억이지. 열여덟 살 짜리의 철 없는 생각이었소."

"……."

"그러던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 세계에 와 있더군. 처음에는 고생도 많이 했지. 끊임 없이 밀려 들어오는 괴물들, 질이 낮은 음식,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인프라, 그 모든 것이 치기 어린 열여덟 살 짜리를 괴롭혔소."

공감이 된다.

그가 겪었던 일은 모두 내가 경험한 일이었으니까.

나 같은 경우, 거기에 더해서 노예 검투사 생활을 해 봤지만.

"그 하루 하루를 이 악물고 버텨온 끝에, 문득 돌아보니 특급 모험가가 되어 있더군."

"대단한 재능이네요."

"재능……. 그렇소, 아마도 내겐 재능이 있었던 거겠지."

요하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재?? 뿐만 아니라, 마력을 다루는 재능도……"

표현이 조금 이상했다. 나는 의구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돌아봤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건지?"

"그렇소."

요하네스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대도 공감해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내가 이 세계에 전이된 이래 쭉 그 이유를 고민해왔소. 어째서 나는 여기에 있는가? 원인이 있다면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다면 원인이 있을 터. 우리가 이 세계에 전이된 것이 결과라면…… 그 원인은?"

"아."

알 거 같다.

나도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 쭉 고민해오던 것이었으니까.

"나는 우리가 이 세계에 전이해온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오. 그저 이 세계에 전이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세계의 사람들과 대화가 통하는 것 자체가 명백히 이질적인 일이지."

요하네스는 작게 한숨을 쉬고.

"같은 세계, 같은 나라의 사람이라도 지역에 따라 대화를 알아듣기 어려운 법인데, 우리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소? 나는 이 자체가 정체모를 누군가의 소행, 혹은 안배라고 생각하오."

이 세계에는 영어가 없다. 물론 한자도 없다. 그런데 별 문제 없이 영어와 한자로 회화가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나는 꽤 오래 전부터 나와 이 세계 사람들 사이에 '번역 필터' 같은 게 있어서, 그걸 통해 대화가 나눠지는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이 추측이 사실이라면 그 주체는 도대체 누구인가.

내 추측은 언제나 여기에서 멈추고 만다.

"그렇다면…… 우리를 이 세계로 불러들인 '주체'는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나는 그 목적이 '선별'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선별……"

"나는 특급 모험가의 자리에 올라선 후,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나와 같은 세계의 사람들을 찾아다녔소. 그리고 그때마다 그들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지. ……그건 바로, 그 전원에게 마력을 축기할 수 있는 코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었소."

요하네스의 시선이 날카로워진다.

"코어라는 건 그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마력을 축적하는 신체 기관이오. 하지만 물리적인 장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서 엑스레이 기술로도 촬영할 수 없지. 이 코어라는 기관은 우리가 이 세상에 오지 않았더라면 평생 그 존재조차 몰랐을 기관이오."

"즉…… 이 세계에 전이해온 사람들은 코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인가요?"

"아마도."

그의 말에서 강한 확신이 느껴진다. 수많은 케이스를 접하면서 분석한 결과일테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볍게 내저으며 대답했다.

"아마 그건 틀렸을 거예요. 아니, 틀렸다기보다는 아직 파악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죠."

요하네스의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 또한 긴 시간을 들여서 이론을 검증해왔을 테니까.

그러니까 그의 추측이 아예 틀렸다기보다는 뭔가 빠져 있는 조각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들을 수 있겠소?"

"그 이유는…… 바로 저 자신이에요."

나는 내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 처음부터 코어가 없었거든요."

* * *

"오랜만에 유익한 대화를 나눈 듯한 기분이구려. 오늘 내가 저지른 추태에 대해서는 반드시 보상하도록 하겠소."

"살펴 들어가세요."

요하네스가 별장의 정문 앞에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내 광증이 무사히 회복된 뒤에는 부디 재전을 요청하고 싶소."

"그건……"

나는 잠시 고민한 뒤, 입이 보이지 않게 손을 들어서 숨겼다.

그 순간 검집에 들어간 검에서 소리가 들렸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호의에 감사하오."

요하네스가 밤의 어둠 속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나와의 면담 후 그의 혈액과 마력 샘플을 채취해서 요하네스의 광증을 의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확인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요하네스는 피를 뽑기 전에 자신의 혈액과 마력 샘플을 유출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요구해서, 그 각서에는 나와 연금술사가 사인을 했다.

상황이 일시적으로 정리되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거, 오늘은 집으로 못 돌아가겠다.

시간이 너무 늦었다. 하루 더 호텔에 묵어야 할 거 같다.

란즈 가주는 하룻밤 자고 가고 가라고 호의를 보였지만 어차피 호텔 체크인 기간도 남아있고, 그럴 필요가 없다.

올리비아와 샤를로트에게 인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갔다. 마그누스가 잡아준 이 호실은 가족용 객실이라 원래부터 4인용이다. 연금술사가 파비아가 합류해도 잘 자리가 부족하진 않다.

파비아는 샤워를 한 뒤 바로 침대 위에 플라잉 보디프레스를 꽂았다. 퉁, 하고 파비아의 몸이 가볍게 튕겨 오른다.

"와─! 사제, 이거 진짜 폭신해!"

여기는 고급 호텔이라 침대의 질도 전혀 다르다. 나는 그런 걸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라 파비아처럼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지만.

루이스도 파비아와 함께 욕실에 들어갔기 때문에 몸이 살짝 젖어있다. 파비아는 아직 혼자서 씻을 줄을 모르기 때문에 반드시 한 사람이 붙어서 씻는 걸 도와줘야 한다.

머리 위에 수건을 얹은 루이스가 내 팔을 살짝 치며 말을 걸었다.

"백신현 너도 어서 씻어. 피곤하지?"

"좀 회복되긴 했어. 선생님부터 먼저 씻으시는 게 좋을 거 같아. 난 좀 더 살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애초에 오늘의 싸움 자체가 그렇게 위험한 싸움이 아니었다.

본래의 제1위라면 모를까, 광증에 휘둘리던 상태의 제1위는 대단치 않은 상대였다.

육체의 피로 자체는 그렇게 크지 않다.

루이스와 파비아가 먼저 샤워하게 둔 이유도 마찬가지다. 나와 연금술사는 씻기 전에 잠시 체크할 게 있어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파비아와 루이스가 나오고 나서 연금술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녀는 바로 욕실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내 쪽으로 다가와서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지 말고, 같이 들어가자. 너 혼자서 끙끙 거리는 것보다는 둘이 같이 고민하는 게 좋잖아."

"……같이요?"

"응. 욕실이면 뒷처리 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 같고."

"네?"

지금 보니까 연금술사의 동공이 조금 이상하다.

흐리멍텅한 눈동자 속, 아주 깊은 곳에서 음란한 분홍색 빛이 어른거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오늘 밤, 편히 잠들기는 글렀구나 싶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