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64화 (164/287)

〈 164화 〉 18. 전사의 자존심 (5)

* * *

"샤를로트는요?"

나는 고개를 들어서 연금술사의 뒤편을 돌아봤다. 연금술사의 곁에는 파비아 뿐이다. 샤를로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연금술사는 붉은 머리카락을 귓바퀴 뒤로 넘기면서 대답했다.

"란즈 가주하고 올리비아도 오늘 타이틀 매치를 보러 올라오거든. 그쪽으로 올 거야."

"그렇구나."

"일단 타이틀 매치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먼저 이동하자. 신현이 너도 세컨드로 나간다며. 준비는 해 둬야지."

"그럴까요."

연금술사가 손바닥으로 내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오늘은 여기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바로 돌아갈 예정인데 짐이 왜 그렇게 많아요? 여행 가방을 두 개씩이나……"

사이즈도 크다. 파비아가 가볍게 들고 있으니까 그렇게 안 보이는거지, 여행가방 사이즈가 거의 연금술사의 몸통만 하다. 내용물을 가득 채웠는지 상당히 빵빵하게 보인다.

"신현이 너한테 줄 물건도 하나 있고,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까 양이 좀 늘었어."

"저한테요?"

연금술사가 시선을 맞췄다.

"응. 가면서 설명할까."

* * *

나와 루이스가 쓰는 호텔방으로 돌아와서 연금술사의 여행 가방을 한쪽 구석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연금술사는 여행 가방에서 인간의 팔뚝 같은 물건을 하나 꺼냈다.

흰 붕대로 칭칭 감아서 흠집이 나지 않게 가져온 의수였다.

기계와 실린더, 가죽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네가 쓰던 의수를 좀 더 가볍게 바꿔봤어. 싸움에서 쓸 수 있을 정도로 내구도가 높지는 않지만, 일상 생활에는 크게 지장이 없을 거야."

"음, 하지만 제 왼팔도 슬슬 회복되어 가는 상황인데. 괜히 이런 거 만드신다고 고생하신 거 아니에요?"

"원래 있던 물건을 개조한 거 뿐이라 시간이 걸리진 않았어. 완성도도 조악해서 싸울 때는 빼고 싸우는 편이 좋을 거야."

"그래요?"

연금술사의 의수를 왼쪽 어깨에 결합한다. 나의 왼쪽 어깨는 잘려나간 단면의 신경이 죽지 않도록 부적에 특수한 술식을 새겨서 붙여놓고, 그 위에 가죽 보호대 같은 걸 뒤집어 써서 보호하고 있다.

의수는 이 가죽 보호대에 새겨진 술식과 연동해서 움직이는 구조였다. 마력으로 이은 유사신경이다. 광섬유와 비슷한 느낌.

하지만 이 상태에서는 '이어진' 느낌은 들어도 의수를 도저히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느껴지는 의수의 무게에 비해 의수로 전달되는 힘이 약하다.

그리고 연금술사는 내 상의를 벗겨서 상반신만 알몸이 되게 한 뒤, 내 척추에 부적을 두어 개 접착시켰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부적은 뇌와 척수가 이어지는 라인에 접착.

한 순간 두뇌를 관통하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의수와 어깨가 제대로 연결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만 진짜 팔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반응이 느리고 움직임도 뻣뻣하다.

일상을 보조하는 역할 이상을 기대하긴 어려울 거 같다.

"그 의수를 쓸 때는 이 토시를 덮어 씌운 다음에 겉옷을 입도록 해. 잘못하면 움직이다가 틈새에 옷이 찝힐 수도 있으니까."

"명심할게요."

"너도 짐작하고 있겠지만, 이건 혹시라도 너와 1위가 마주치게 되었을 때 네 정체를 짐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가져온 물건이야. 아직 네 실력이 궤도에 오르지 못한 지금, 함부로 너의 정체가 '가면 검사'라는 게 드러나면 곤란하니까."

"네, 고마워요."

연금술사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나의 고충이나 고민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무심하고, 눈치 없는 거 같으면서도 가끔씩 의외의 모습을 보여준단 말이지.

"선생님, 저는요?"

루이스가 검지로 얼굴을 가리키며 질문했다.

"루이스 네 검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거 같아. 공정을 어느 정도 진행하긴 했지만, 네 출력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어서."

"그렇구나……."

"네가 있으면 금방 해결할 수 있는 문제야."

살짝 실망한 루이스를 뒤로 하고 연금술사가 다시 나를 돌아본다.

"이야기는 이쯤 하고, 이제 움직일까. 타이틀 매치가 코앞이야."

"그럴까요."

연금술사가 경고한 대로 의수 위에 토시를 끼고, 그 위에 겉옷을 다시 겹쳐서 입는다. 손을 소매에 집어넣을 적에 살짝 저항감이 있었다. 이것도 익숙해지는데 조금 시간이 걸릴 거 같다.

"사제사제, 나중에 봐!"

"그래."

"루이스 언니도!"

"응."

제1위의 타이틀 매치는 수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지어진 콜로세움에서 치뤄질 예정이다. 입구에서 연금술사, 파비아 두 사람과 갈라져서 우리는 스태프 전용 통로로 진입.

마그누스의 대기실로 향하던 도중, 그다지 달갑지 않은 얼굴과 마주쳤다.

"하아아아아……'

스텔라가 마그누스의 대기실 문 앞에서 뺨에 손바닥을 얹은 채 뜨거운 숨을 몰아쥐고 있었다.

사랑에 빠진 소녀라고 표현하는 건 좀 너무 완곡한 표현이고, 내가 보기에는 저거 그냥 변태다.

아, 변태 맞지. 유부남에게 눈이 돌아간.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내며 다가간다. 스텔라는 간신히 정신이 들었는지 고개를 들어서 이쪽을 돌아봤다.

급하게 표정을 정돈하고 똑바로 섰지만 붉어진 얼굴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 옆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면서 마그누스의 대기실로 들어갔다.

"저희 왔어요."

"음, 왔냐."

마그누스는 흰 탱크톱 차림으로 손목과 관절에 테이핑을 감고 있었다. 거의 다 끝났는지 손목까지 꼼곰하게 감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는 끝나셨습니까?"

"스텔라가 좀 도와줬거든. 내 손이 안 닿는 위치의 테이핑을 감는 데 도움을 줬어."

아, 그래서 스텔라의 상태가 그 모양이었구나.

연모하는 남자에게 가까이 붙어 있었을 테니, 그 꼴이 되는 것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거, 취향 참.

중후한 멋이 있는 건 인정하지만 그 취향을 고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특급 모험가에는 왜 정상인이 없는 걸까.

"그런데 스텔라 그 사람은 왜 그렇게 대장에게 잘 대해주는 걸까요? 짐작가는 점이라도 있으신가요?"

루이스가 마그누스에게 질문했다.

보아하니 마그누스의 슬쩍 떠보려는 생각인 거 같다. 하여튼 남의 연애사정에 관심이 많은 성격이라니까.

"글쎄? 꽤 친해지긴 했지만 날 왜 이렇게 챙겨주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지."

아, 보아하니 이 인간 전혀 모르는구만.

나와 루이스가 서로를 돌아보며 시선을 맞췄다. 생각했던 것보다 마그누스의 눈치가 심하게 나쁘다.

하지만 그에게는 차라리 이게 낫다. 알아서 뭐 어쩔건데. 모르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다.

한숨을 한 번 쉬고 이상한 방향으로 빠졌던 화제를 다시 원래 궤도로 되돌렸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체크하죠. 제1위는 보통 여섯 개의 병장을 동시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이때 쓰는 무기는 검, 창, 채찍, 망치, 월도, 그리고 활. 그 여섯 개의 구조를 분석해서 해석식을 제작했어요."

"나는 제1위의 기술에 맞춰 해석식을 하나씩 제시한다. 녀석이 무기를 바꾸면, 나도 그에 따라서 검식을 교체. 모든 체력과 마력을 한꺼번에 써서 힘과 속도로 끊임없이 누른다."

"네, 그리고 무기의 교환하다가 틈이 보이면."

"일섬."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1라운드는 속공으로 가죠. 대장의 체력을 고려하면 아마 3라운드 안에는 끝을 봐야 할 거라고 생각해요."

1라운드 돌아가는 꼴을 보고 전략을 수정할지 말지, 그걸 고민해볼 생각이다.

곧 타이틀 매치가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 모험가 조합에서 보내준 진행요원이 마그누스를 호출했다.

마그누스를 사이에 두고 셋이서 통로를 나아간다.

싸우는 건 마그누스인데도 왠지 내 가슴이 두근거린다. 현존하는 최강의 모험가에 도전한다는 건 그 정도로 긴장되고, 기대되는 일이다.

『기대되네요.』

백신아의 목소리에 희미한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경기장으로 나온다. 제피로스의 콜로세움과 다르게, 수도의 경기장은 세컨드가 지켜볼 수 있는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세컨드는 여기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라운드가 끝나면 선수를 돕는 일을 맡게 된다.

반대편 통로에서 제1위가 나온다. 그는 세컨드가 없다. 혼자만 나왔다.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부드러운 인상의 남자.

무천왕??王 요하네스 리히테나워.

『……저게 맨 얼굴이구나. 기억했어요.』

백신아가 흥분에 찬 목소리로 웃었다.

군침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목소리였다. 백신아와 요하네스는 지하 격투장에서 한 번 부딪친 이후 재전을 약속한 사이였다.

우리는 요하네스의 정체를 알고 있지만, 요하네스는 '가면 검사'의 정체를 모른다.

나와 루이스는 세컨드 석에 멈춰서고 마그누스가 경기장에 올라선다.

요하네스도 올라섰다.

"거의 반 년만인가? 넌 얼마 전까지 탑에 틀어박혀 있었으니까."

"그랬지. 오랜만이오, 마그누스."

"기운이 상당히 안정되어 있군. 그 짧은 사이에 더더욱 실력을 늘린 건가?"

"탑에서 얻은 성과와 얼마 전에 우연히 마주치게 된 절세고수와의 격돌이 내게 강한 영감을 주었소."

"절세고수라."

"가면을 쓴, 외팔의 검사였지."

요하네스가 살짝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다.

"하지만 그대의 실력도 상당히 늘어난 듯하군. 나의 못지 않은 큰 기연을 얻은 것 같소."

"젊은이들의 도움을 좀 받았다. 요즘 젊은 애들은 대단하거든.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들의 자리를 위협해올 거야."

"젊은이……. 둘 중 하나는 내가 익히 아는 천재 검사 루이스 소저로구려. 그런데 그 옆에 서 있는 건……"

요하네스의 시선이 문득 나를 향해 쏟아졌다. 루이스는 특급 모험가의 신분으로서 제1위와 마주친 적이 있었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와 마주친 건 '가면 검사'였다. 내가 아니다.

이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의수를 끼고 나왔지만, 요하네스는 나의 모습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의수를 써서 외팔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는 데다가 검의 모양도 다르다. 지하에서 활동할 적에는 일부러 다른 금속을 붙여서 검자루의 모양을 위장하고 있었으니까.

'가면 검사'의 정체를 철저하게 숨기기 위해서이다.

"……느껴지는 마력의 양은 대단치 않지만, 그대가 그렇게까지 자신하는 걸 보면 아마 상당한 능력을 가진 인재이겠지. 그대의 기량이 눈에 띄게 상승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모두 네게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 오늘까지 준비해온 결과물이다."

"그대와의 싸움은 언제나 내게 있어 크게 긴장되는 싸움이었소. 호적수와의 재전에 가슴이 뛰는구려."

1위와 2위.

처음 1위에 등극한 이래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고 정점의 위치에 서 있었던 남자, 요하네스 리히테나워.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정점에 올랐을 남자'라고 평가되지만, 지금껏 요하네스에게 가로막혀서 단 한 번도 정점에 오르지 못했던 남자, 마그누스 아르페지오.

두 남자가 잠시 악수를 나눈 후 서로 등을 돌리고 멀어진다.

20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마주선다.

『시작한다……!!』

백신아가 흥분에 찬 목소리를 토해낸 그 직후, 마그누스의 대검이 붉은 광원을 휘어감은 채 직도황룡????의 태세로 때려박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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