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63화 (163/287)

〈 163화 〉 18. 전사의 자존심 (4)

* * *

"아마 이게 대장에게 맞을 거예요."

루이스가 분필로 칠판을 두어번 두드렸다.

칠판에는 루이스가 흰 글씨로 재구축한 마그누스의 신체 강화 술식이 쓰여 있었다.

술식에 존재하던 여유 용량을 모조리 출력 강화에 투자한 개조판으로, 신체 강화 술식을 저걸로 교체하면 마그누스는 기존의 신체 강화 마법과 비교해서 7% 정도의 힘과 속도를 추가로 획득할 수 있다.

하지만 마력의 소모의 효율은 조금 나빠져서 예전과 비교해서 전투 지속 가능 시간이 좀 줄어든다.

무조건 기존의 신체 강화 술식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때와 경우에 따라서 구분해서 사용하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이론이고, 대장의 몸에 최적화시키는 건 스스로 하셔야 할 거예요."

"음, 알았다. 그 정도는 내가 해야지."

마그누스가 종이에 루이스가 새로 구축한 술식을 메모한다.

그 다음에는 곧바로 실전 테스트였다. 마그누스는 우선 처음 써보는 술식을 빠르게 사용할 수 있게 어깨와 팔꿈치, 손바닥 등에 문양을 하나씩 새겼다. 술식을 빠르고 간단하게 발동할 수 있게 해주는 보조 기구 같은 것이다.

"후우우우우……"

마그누스가 호흡한다. 그의 신체에는 새롭게 재구성된 술식에 의해 강화되어, 초인의 힘이 스며들었다.

"……음, 술식은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 하지만 여유가 없는 탓인지 움직이기가 조금 힘들군. 마치 폐를 압박 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야. 제대로 쓸 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필요할 듯하다."

마그누스는 천천히 신체 강화 술식의 효과를 확인했다.

루이스가 새로 구축한 신체 강화 술식은 단 하나의 여유도 없이 빠듯하게 구축되어 있다. 그 결과 신체 강화의 배율은 높아졌지만, 사소한 변수에 대처하는 능력이나 외부의 역산에 약해지는 단점이 생겼다.

마그누스의 기존 술식이 어린 버드나무처럼 어느 정도 유연함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의 술식은 뻣뻣해서 부러지기 쉽다.

결국 완벽한 술식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의 장단점이 다른 만큼 때와 상황에 따라 구분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체 강화 배율은 확실히 높아졌군. 전신에서 힘이 흘러넘치는 듯한 느낌이야……."

"거기다가 근육도 더 불렸으니까 아마 단기전에는 확실히 강해졌을 거예요."

내가 그의 옆에서 덧붙였다.

원래 나와 마그누스는 근육을 추가로 증량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고 지금의 체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근육이 많아지면 소모되는 체력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장기전에 불리하게 되니까.

원래 나와 마그누스는 신체 능력과 체력을 황금비율로 양립한 체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그 균형을 무너트렸다.

지금의 마그누스는 한 달 전과 비교해서 조금 더 근육의 양을 늘린 상태로, 마력을 쓰지 않은 상황에서는 티가 나지 않지만 신체 강화 술식을 두르면 큰 폭으로 신체 능력이 높아질 수 있게 조정해두었다.

물론 그만큼 장기전에는 취약해진다. 체력이 빠지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겠지.

비슷한 경우로는 파비아가 있다. 빠르고 강하지만, 지속 전투 시간이 짧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장기전으로는 승산이 없다. 첫 라운드에 모든 체력을 다 쓰는 한이 있더라도 차라리 그 편이 가능성이 있다.

새로운 신체 강화 술식을 획득한 마그누스와 합을 나누면서 그의 전투 감각을 날카롭게 벼려내는 작업에 들어간다. 날짜가 정해져 있는 비무는 이래서 좋다. 당일에 맞춰서 최대한 컨디션을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

이때쯤 되어서 마그누스는 백신아와의 모의전에서 5분을 아슬아슬하게 버틸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게 되었다.

물론 그 대가는 크다. 예전의 비무에서는 그대로 의식은 제대로 붙잡고 있었는데, 지금은 5분이 끝난 직후 그대로 뻗어버린다.

하지만 마그누스에게는 고무적인 성과이다. 백신아는 높은 분석력을 가지고 있어서 한 번 붙어본 상대에게 특히 강한 성질이 있는데, 마그누스는 그런 백신아를 상대로 5분을 버텨낸 거니까.

이 한 달 동안 마그누스의 무위 상승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나와 루이스가 온힘을 다해서 도와주고 있는 데다가, 절대적인 초강자인 백신아가 하루에 한 번씩 그에게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다.

무위가 높아지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솔직히 나와 루이스가 도와주는 것보다 백신아가 한 수를 보여주는 것이 더 크게 도움이 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고수에게 있어, 절대적인 실력을 가진 절대자가 보여주는 한 수보다 큰 자극은 존재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백신아의 경우 마그누스에게 몇 번이나 절대적인 영역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전혀 밑천이 떨어진 기색이 없다.

애초부터 녀석은 현존하는 모든 고수들과 전혀 다른 차원에 있는 존재니까.

5분간의 모의전이 끝났다. 마그누스는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버텨냈지만, 그것이 한계였다. 힘이 다했는지 곧바로 무릎을 꿇는다.

잠시 휴식한 뒤에는 내가 해석한 제1위의 각 기술들의 해석식을 하나씩 학습시킨다.

이것은 내가 지금까지 마그누스와 제1위의 모의전에서 보았던 기술과 음지 격투계에서 실제로 제1위와 부딪친 경험, 그리고 마그누스의 증언을 토대로 최대한 재현해낸 기술이다.

마그누스는 이 세상에서 제1위와 가장 많이 싸워본 인간이다. 그의 조언에 따라 조금씩 수정해가며 최대한 원본에 가까운 형태로 기술을 완성시켰다.

원본과 거의 차이가 없어질 때까지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고, 그 기술이 마그누스의 기준을 만족한 그 순간부터 제1위의 기술에 맞서는 해석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잠시만, 이 부분 말이야. 내가 예전에 제1위의 기술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응."

루이스가 나의 해석식에 검지를 가져가며 지적했다. 루이스도 특급 모험가의 일원으로서 제1위의 검술을 가까운 위치에서 견식할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내심 속으로는 루이스도 제1위에 대항하는 해석식을 설계해왔던 것 같다.

언젠가 루이스는 모든 특급 모험가를 쓰러트리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으니까. 아마 그 일환일 거다.

"대단하다."

"네?"

"너희들 말이야. 대단하다고."

바닥에 앉아서 휴식 중이던 마그누스가 우리 두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물론 지금 싸우면 내가 너희보다 세겠지만…… 분석하고 머리 굴리는 건 확실히 나보다 낫다."

"……고마워요."

나는 고개만 한 번 떨떠름하게 끄덕이고 말았다. 루이스도 비슷하다.

마그누스는 일에 집중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자꾸 말을 걸었다.

"그런데, 너희들 나한테 이렇게 퍼줘도 괜찮은 거냐? 나중에 나도 뛰어 넘을 생각이라면서 나를 너무 강하게 만들어주면……"

"보수를 받았으니까요. 최선을 다해야죠."

모험가에게 중요시해야 하는 가치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의뢰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 이외의 가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마음에 안 들었으면 애초에 계약서에 사인을 안 했겠지.

물론 계약서에 쓰여 있지 않은 내용을 요구하거나, 확대해석해서 등을 쳐먹으려 든다면 바로 모험가 조합에 달려 들어가서 때려치면 그만이고.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마땅히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건 그냥 당연한 거다.

"그리고, 대장이 강해져서 저희가 손해볼 것도 딱히 없죠. 저희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가진 강자가 있다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큰 이득인 데다가……, 벽은 높을수록 넘어서는 재미가 있는 법이니까."

루이스도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요. 오히려 대장이 강해진다면 저희야 좋죠. 더더욱 도전할 가치가 생기는 거잖아요."

"신현이 너도 저런 생각이니?"

"뭐, 그렇죠."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대장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루이스도 언젠가는 최상위권의 특급 모험가에 도전할 생각인데…… 이왕 맞붙게 되는 거 좀 더 강한 대장하고 싸우는 게 저도 좋아요. 배울 점이 있을 테니까."

따지고 보면 마그누스는 선의의 경쟁자 같은 위치이다.

진짜 목숨 걸고 이겨야만 하는 적이라면 모를까, 그런 부류도 아니라서 개의치 않는 점도 있다.

"하."

이렇게 대답하자 마그누스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어떠한 이유로 나온 웃음인지 알 수 없었다.

* * *

마지막 일주일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신체 강화 술식을 개량하고, 수련하고, 시합 당일에 120%의 퍼포먼스를 선보일 수 있게 컨디션을 조정했다.

그리고 나와 루이스는 관객석이 아니라 마그누스의 뒤편에서 그의 시합을 보조하는 세컨드 역할을 맡게 되었다.

시합의 규칙은 회동 때와 거의 동일하다.

1라운드에 3분씩, 총 10번의 라운드를 거쳐서 이뤄지고 둘 중 하나가 의식을 잃거나 기권하면 패배로 간주. 모든 라운드가 끝날 때까지 승부가 나지 않으면 그때는 판정으로 넘어간다.

나와 루이스는 라운드 사이에 있는 휴식 시간에 마그누스에게 조언을 하거나 경기를 분석하는 일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경기 당일.

나는 기차역에서 연금술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신현아, 루이스."

"선생님."

우리가 있는 남부지방과 비교해서 수도의 공기는 훨씬 차갑다. 연금술사도 그때문인지 복장의 방어력이 남부에 있을때보다 많이 두터운 편이다.

흰 코트에 털모자를 머리에 쓰고 있다. 끝에 털이 달린 치마 아래로 두꺼운 스타킹을 신어서 다리도 철벽방어.

"아, 사제! 루이스 언니!"

연금술사의 뒤에서 파비아가 커다란 캐리어 가방을 주렁주렁 매단 채 내렸다. 파비아는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연금술사보다도 더 꽁꽁 싸맨 차림이다. 갈색 코트에 털모자는 기본이고, 손에는 벙어리 장갑까지 꼈다.

붉게 상기된 얼굴이 반가움으로 생글생글 반짝인다. 파비아는 양손의 짐을 쥔 상태로 가까이 다가와서 마구 얼굴을 부벼댔다.

연금술사가 살짝 고개를 들어서 나와 루이스의 얼굴을 번갈아서 바라본다.

"너희들, 오늘이 결투 당일인데 이렇게 나와 있어도 괜찮아? 계약 기간은 오늘까지잖아."

"아, 스텔라가 대신 맡아주고 있어요."

"스텔라가……?"

"네, 묘하게 마그누스 대장을 신경 쓰는 듯한 눈치더라구요."

연금술사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진다.

그녀는 스텔라를 상당히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이유는 짐작이 간다. 스텔라가 내 등을 쳐먹으려고 했던 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서 그런 거겠지.

어영부영 넘어가게 되긴 했지만 나도 스텔라에게 그다지 좋은 감정은 없다. 나는 꽤 원한이 오래 가는 편이라.

"……근데 말이야. 이건 그냥 내가 잘못 짚은 걸 수도 있는데…… 대장을 대하는 스텔라의 태도가 좀 이상하지 않아? 스텔라를 볼 때마다 뭔가 이상한 촉이 오는데."

그때, 루이스가 지극히 타당한 의문을 표현했다.

루이스가 느낀 것과 비슷한 분위기를 나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아주 연애에 밝은 건 아니지만, 뭔가 마그누스를 바라보는 스텔라의 시선이 수상쩍게 보인다고 해야 할까.

모르는 게 거의 병신 같은 수준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대장은 유부남이잖아……."

나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설령 스텔라가 마그누스에게 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게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얌전히 포기하는 편이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좀 기분나쁘지. 그 녀석은 전혀 개의치 않는 거 같지만."

연금술사는 가벼운 얼굴로 단언했다.

그녀의 입에서 옳은 말이 나오는 건 상당히 드문 일이다.

"하지만 음, 사랑하는 상대가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빼앗겠다는 그 마음가짐은 조금 공감할 수 있을지도."

"네?"

그 생각이 10초도 못 갔다.

연금술사의 입에서 제대로 된 말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잘못한 걸지도 모르겠다.

"뭐…… 기분 나쁘긴 하지만, 사랑은 쟁취하는 거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공감은 해요, 이해는 못하겠지만."

잠깐만, 지금 뭐라고?

연금술사야 그렇다 치더라도 루이스의 입에서까지 그런 말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아니 그거 그냥 불륜이잖아.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이렇게 질문하자, 루이스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도덕적으로도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어도,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이라는 게 있는 거잖아. 나라면 그냥 확 빼앗아버릴 거야. 그리고 내 곁을 떠나지 못하게 붙잡아두겠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순간적으로 루이스의 시선에서 섬짓한 느낌이 들었다.

등골을 타고 차가운 물방울이 흐르는 듯한 감각이라고 할까.

연금술사의 태도도 비슷했다.

"스텔라는 마음에 안 들지만, 그 생각은 나도 동감. 상대방이 결혼했다고 포기할 수 있는 감정이었다면 애초에 품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때, 갑자기 두 여자의 시선이 나를 동시에 스치고 지나갔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인데도 난데없이 폭우에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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