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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61화 (161/287)

〈 161화 〉 18. 전사의 자존심 (2)

* * *

"하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게 하나 있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마그누스가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어째서 이 정도로 실력 차이가 벌어진 거지……?"

마그누스와 백신아는 얼마 전에도 한 번 실력을 겨룬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 정도로 차이가 심하지 않았다.

마그누스도 거의 무력화되었지만 백신아에게 주어진 시간도 바닥이 나서 무승부에 가까운 형태로 결착이 났다.

그 후로 2주도 지나지 않았다. 고작해야 열흘. 수련으로 성과를 얻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이 정도로 실력 차이가 벌어졌다는 것을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겉옷과 스웨터를 벗고 얇은 티셔츠 한 장 차림이었던 나는 검을 비스듬히 어깨에 걸쳤다.

검의 손잡이에서 소리가 들렸다.

「실력 차이가 벌어진 게 아니에요.」

"즉…… 이미 예전에 있었던 모의전으로 내 기술을 보았기 때문에, 좀 더 수월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는 소리인가?"

「그런 의미죠. 애초에……, 한 번 붙어본 전술은 제게 두 번 다시 통하지 않아요. 그래서 예전하고 비교해서 더 실력 차이가 커진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마그누스가 입을 벌렸다. 그의 얼굴에 허탈한 표정이 떠올랐다.

"도저히…… 끝을 가늠할 수가 없군."

「하지만 그 점을 고려하더라도 마그누스 씨와 제1위의 차이는 명백하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싸워봤던 '검 한 자루만을 쓰는' 제1위가 상대라면 어느 정도 승산이 있다고 보는데…… 제1위의 강점은 그런 게 아니라면서요?」

백신아의 말은 정확했다.

애초에 제1위는 검사도 아니다. 검술은 그에게 있어서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검술, 창법, 공수, 심지어는 궁술과 마법까지.

그는 거의 모든 종류의 전투술을 골고루 최정상의 경지까지 단련한 만능형의 전사이다.

수많은 전투술을 혼합해서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상승작용을 보여준다.

힘과 속도에 있어서는 마그누스만 못하고, 마법의 완성도로는 스텔라만 못하지만 종합적인 기량에 있어 그는 특급 모험가 중 제일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마그누스조차 쉽게 돌파하지 못했던 백신아의 화경을 첫 전투에서 찢어낸 것으로 그의 실력을 알 수 있다.

검술뿐만 아니라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제1위의 실력은 나로서도 쉽게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지금의 1위는 마그누스가 넘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

고수의 싸움일수록 변수가 적다. 실력대로 승패가 갈릴 뿐이다.

백신아의 평가는 정확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장단을 맞췄다.

"꼭 지금 도전해야 하겠습니까? 물론, 여기에서 시간을 더 쓴다고 실력 차이가 좁혀진다고는 보장할 수 없지만 아예 승산이 없는 상황에서 도전하는 건 시간 낭비에 불과해요. 지금이라도 의뢰를 취소하는 게 어때요?"

조금 차갑게 보이지만 이것도 다 그를 배려해서 하는 소리다.

가능성이 있다면 나도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그의 승산은 희박하다.

제1위가 참가하지 않았던 몇 개월 전의 그 회동.

그 이후로 실력 차이가 크게 벌어진 건 틀림 없었다.

마그누스가 우리에게 제시한 의뢰비는 매력적인 제안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승산 없는 싸움에 도전하는 그의 처지가 안쓰럽다.

아예 모르는 사이였다면 모르되, 그하고 나는 이것저것 인연이 있어서 마음을 쓰게 된다.

정 아니면 이번 기회는 포기하고 다음에 도전을 준비할 때 우리를 불러서 의뢰를 해도 되는 거 아닌가.

어차피 그런다고 그가 의뢰비로 제시한 조건들의 가치가 퇴색되는 게 아니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다. 앞으로 한 달 간, 의뢰를 계속 수행해줬으면 해."

"어째서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매달리고 있는 건 확실하다.

그런데 그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

"그 녀석은 곧 특급 모험가를 그만둘 예정이다."

"그만둔다고요? 그 1위가?"

루이스의 예로 알 수 있듯, 특급 모험가 자격은 생각보다 큰 구속력이 없다. 가끔씩 나라에서 진행하는 몇 가지 중요한 행사에 참가하기만 하면 그 이외의 시간은 모두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기량이 쇠퇴해서 은퇴를 하거나 정년이 다 되어서 그만두는 경우는 있어도 스스로 그만두는 경우는 드물다.

특급 모험가 자격을 유지하고 있을 때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어마어마한 데다가 정년을 다 마치고 그만두면 연금까지 다달이 나오니까.

"사실이다. 녀석은 앞으로 반 년만 더 자격을 유지한 뒤 특급 모험가 자리에서 은퇴하겠다고 내게 얘기해왔어. 그러니까…… 앞으로 내가 놈에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번에서 두 번 정도가 한계라는 소리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마그누스는 지금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한다.

마그누스가 결연한 시선으로 고개를 들었다.

"어쩌면 반년보다 더 짧을 수도 있고. 그 경우, 이번의 도전이 마지막 도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

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그누스의 다음 말이 나도 모르게 상상이 된다.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전혀 있을 수 없는 행동이지만, 사람은 항상 효율이나 합리만 따져가며 살 수 없으니까.

마그누스는 특급 모험가 이전에 무인이었고, 스스로의 검에 긍지를 가진 진짜배기 전사였다.

"이대로 가면 나는 녀석에게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채 최고의 특급 모험가가 되고 말 거야…… 그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

마그누스의 시선에는 힘이 있었다.

실력의 차이가 있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포기할 수 없다. 실력이 부족하다면 좀 더 실력을 늘려서 싸운다. 부족하면 전략과 전술을 동원해서 도전한다.

승리의 영광을 손에 쥐기 위해서.

"녀석이 떠나기 전에…… 한 번이라도 이기고 싶다. 그러니까 부탁하마. 너희가 날 좀 도와줬음 좋겠다."

"으음. 저도 한 사람의 사나이로서, 그리고 무인으로서 그 생각에 공감을 못 하는 건 아닌데요."

공감하다 뿐인가, 나도 뼈저리게 이해한다.

나 또한 지금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많은 역경을 거쳐 왔으니까.

무인에게는 승산이 보이지 않아도 맞서 싸워야 할 때가 있다.

그 마음은 이해한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한 번 해보죠. 저희에게는 1위와 맞붙어본 경험이 있으니까. 전략을 짤 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에요."

내가 볼 때 지금의 마그누스에게 승산은 없다.

그러나 제1위도 인간이다. 틀림없이 강한 부분과 취약한 부분이 있을 것이고, 취약한 부분을 찾아서 파고들 수만 있다면 마그누스에게도 승산이 있을지 모른다.

물론 이것은 지나치게 희망적인 관측이다. 지금의 나는 제1위와 2위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 솔직히 마그누스가 제1위를 넘어서는 광경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그건 이제까지 우리가 거쳐왔던 수많은 싸움 또한 마찬가지였다.

적은 언제나 상상을 초월하는 괴물이었고, 승산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든 싸움을 이겨내고 나와 백신아는 지금 여기에 있다.

나는 검집에 검왕검을 수납하며 말했다.

"그럼 일단 플랜부터 짜 볼게요. 고작 한 달로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완전무결할 것 같았던 제1위의 약점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네요."

"그래. 부탁하마."

"오늘은 많이 지치셨을 테니까 푹 쉬세요. 내일 아침에도 찾아올게요."

마그누스에게 인사하고 돌아선다.

"……너, 조금 전까지는 죽을 상이더니 갑자기 기분 좋아 보인다?"

루이스는 갑작스레 의욕을 보이기 시작한 내 모습에 조금 당황한 얼굴이었다.

마그누스를 향해 오른손을 흔들면서도 시선은 나와 마주친 상태다.

나는 살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재미있어 보이잖아."

"재미…… 라니, 너……"

루이스는 어이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마그누스 대장의 목적에 왠지 공감이 갔거든."

결국 그게 전부다.

나 역시 한 사람의 무술가로서 그의 자존심과 고집에 공감했다고 볼 수 있다.

루이스가 이마를 살짝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튼……, 남자들이란……"

* * *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서 칠판과 종이를 샀다.

방에 돌아와서 거실에 바퀴가 달린 칠판을 고정시키고 종이를 마구 붙였다. 큰 종이를 찾지 못해서 A4 용지만한 크기의 종이를 왕창 붙여서 크기를 넓혔다.

펜을 손에 쥐고 현 시점에서 내가 파악한 마그누스와 제1위의 전력을 하나씩 써내려간다.

"아래에 그린 육각형은 뭐야?"

파자마 차림의 루이스가 젖은 금발 위에 수건을 얹은 상태로 나의 뒤에 다가와 있었다.

내가 거실에서 작업에 골몰하는 동안, 루이스는 욕실에 들어가서 샤워 중이었다.

나도 조금 있다가 들어갈 생각이다. 최소한의 작업만 미리 해 두고.

"두 사람의 능력치를 육각형으로 그려보려고."

"……마그누스 대장이 앞서는 건 힘과 속도, 그리고 마력의 출력인가?"

"하지만 기교와 운영. 그리고 변수 창출 능력은 제1위가 높아."

전체적으로 보면 제1위와 마그누스의 능력치는 거의 대등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검을 쓰는 제1위'의 능력치라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나도 1위의 전투 방식은 몇 번 본 적이 있다. 마그누스와 제1위가 순위 교체를 두고 비무를 벌인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까.

"그 점을 고려하면 그래프를 여러 개 준비해야 해."

지금까지 비무에서 공개해온 제1위의 전투 스타일을 하나씩 구분해서 그래프로 그렸다.

제1위는 각각의 특성과 장단점을 제대로 활용해서 싸우는 법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제1위가 창을 들었을 때 기교는 조금 줄어들지만 힘과 속도가 오른다. 창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 전투 스타일이나 투로 또한 달라지는 게 그 이유였다.

활을 쓰거나 주먹으로 싸울 때도 마찬가지다.

저마다 서로 다른 전투 방식이 겹치지 않고 서로의 장단점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

"그리고 제1위가 마그누스 대장을 상대할 때 주로 쓰는 건 검술과 창법이지. 유 계열의 검술로 대장의 공격을 흘려 보내는 카운터나, 강? 계열의 창으로 빠르고 무거운 공격을 연달아서 내지르는 거야."

"……보통 이런 타입은 그 기술 하나 하나에 카운터가 될 수 있는 기술을 준비하면 되는데 말야."

"그게 제1위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건 너도 알고 있겠지."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어중간한 만능형에나 통하는 수법이다.

흔히들 여러 가지 기술을 균형 잡히게 습득한 만능형은 한 가지 길을 끝까지 파고들어서 극?을 본 사람에게 약하다고 하는데, 제1위는 조금 다르다.

그의 기술은 서로 다른 무기술을 그때 그때 교체해서 사용하는 게 아니다.

한창 공방이 이뤄지는 와중에도 실시간으로 무기를 교체하면서 온갖 종류의 변수를 창출하고 상승효과를 노리는 지극히 복잡하면서도 고도로 수준 높은 투법이다.

그 자체로 하나의 무술이라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제1위는 '만능형의 길을 극한까지 파고든' 부류의 무인.

어중간한 만능형에게 통하는 온갖 수법이 그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루이스가 신음 소리를 냈다.

"파고들 방법이…… 안 보이는데……?"

"모든 수를 읽어서 무기 교체를 미리 틀어막는 전법이 그나마 효과가 있겠지만, 이건 마그누스 대장에게 무리야. 신아 이외에는 누구도 시도할 수 없는 방법이니까."

마그누스에게는 불가능한 방법이다.

나도 조금 더 경험이 늘고 성장하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수준으로는 불가능.

그나마 '제 실력을 발휘한 파비아'라면 가능성은 있겠다.

이쪽은 모든 걸 계산하는 게 아니라 수인으로서의 반사신경과 본능을 최대한 살려서 천방지축처럼 날뛰는 쪽에 가깝지만.

마그누스가, 마그누스의 방식으로 제1위를 쓰러트릴 수 있는 방법.

그런 게 있을까.

제대로 된 만능형이 무서운 건 명확한 약점을 찾아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모든 전술을 균등하게 높은 수준으로 단련해서 취약한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무시무시한 인물이다.

최정상의 무인으로 꼽히는 이유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손끝으로 제1위의 능력치를 기록한 종이를 건드렸다.

"그렇다면 방법은 둘 중 하나야. 저 연계를 깨트릴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위력의 공격을 휘두르거나, 아니면 연계의 틈을 파고들어서 베어내거나."

다행히도 이건 내가 마그누스에게 조력해줄 수 있는 부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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