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54화 (154/287)

〈 154화 〉 17. 가면 검사 (11)

* * *

가면과 함께 얼굴을 크게 얻어맞은 '조'는 그대로 바닥을 몇 바퀴나 구르며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가면 검사'는 바닥에 쓰러진 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함부로 다가가지 않았다.

'조'가 다운된 이 순간이 마치 기회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게도 느껴졌다.

제이검의 기세를 실어서 휘두른 일검이 꽂히기 직전, '조'는 상반신을 뒤로 젓히면서 전신을 탈력시켰다.

그 결과 위력이 절반 정도로 크게 줄어드는 상황이 벌어졌다.

애초에 몸이 뒤로 날아갔다는 건 그 정도로 분산시킨 위력이 많다는 의미이다.

그다지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었다.

일검을 성공시킨 직후 전신에 퍼져 있던 붉은 마력이 색채를 잃고 흩어졌다.

애초에 지금의 마력의 흐름으로 제이검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시적으로나마 제이검에 돌입할 수 있었던 건 기술을 통해서 억지로 비틀어 열어젓힌 결과다.

억지로 기술을 시동한 탓에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지속했음에도 심상찮은 고통과 반동이 느껴졌다. 자주 쓸 수 있는 기술은 아니다.

검을 중단세로 들어올린 채 상황을 살핀다. '조'는 천천히 그 자리에서 일어나던 참이었다.

일검이 꽂힌 그의 가면은 이미 산산조각으로 부서져서 바닥에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조금 균열이 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부서진 상태다. 조각과 조각 사이가 아예 벌어져서 고정할 수도 없다.

그런데 가면은 떨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 버티고 있다. '조'가 마력을 써서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균열 사이로 그의 피부가 보인다.

"후우……. 그런 거였나?"

'조'는 왼손으로 가면을 쥐고 서로 떨어져 있던 조각을 하나씩 연결하기 시작했다. 서로 쪼개진 조각이 달라붙어서 결합되고, 마력에 의해서 꽉 맞물렸다.

하지만 제대로 접착한 건 아니라서 가면에 마력을 할애할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오면 다시 결합이 무너지고 조각이 쏟아지기 시작할 것이다.

'조'에게는 이 점이 상당한 스트레스로 작용할 것이다.

"처음부터 내 가면을 부수기 위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군. 그대는 내가 양지의 사람이라는 걸 처음부터 짐작하고 있었나 보오."

"……."

"확실히, 가면이 타격을 입으면 나는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 가면에 마력을 어느 정도 주의를 할애할 수밖에 없지. 그리고 가면에 주의가 쏠린 만큼 내 검술의 완성도가 무뎌질테고."

'조'가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내가 가면에 주의를 할애함으로서 무뎌지는 완성도는 아주 근소한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대의 쾌검 앞에서는 아주 치명적인 빈틈이 될 것이오. 그 점을 잘 짚어냈구려."

그 정도로 깊이 생각한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 또한 '가면 검사'라는 이름으로 가면을 쓰고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불편한 점이나 불안 요소가 있었다.

가면이라는 건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뒤집어 쓰는 물건이다.

가면을 쪼갠 그 아래에는 숨기고 싶은 얼굴이 있다.

그러니까 기회가 될 때 가면을 후려쳐서 가면의 보호에 신경을 소모시킬 생각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다.

내가 경고했듯 참으로 치졸하고, 유치하고, 단락적인 발상의 꼼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최고 수준의 영역에서는 이렇게 사소한 차이가 승패를 가르는 법이다.

왜, '똥 마려운 상대를 상대하는 것보다 쉬운 일은 없다' 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건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의 검술의 완성도에 조그만 흠집을 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거 하나만 믿고 '조'와의 싸움을 받아들인 건 아니다.

'조'가 조금 더 이 싸움에 진지하게 임했더라면 가면 아래에 복면을 뒤집어 쓰는 등의 방법을 통해서 나의 사소한 꼼수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었다.

'조'가 그렇게까지 하지 않은 건 지나치게 안일했거나, 그게 아니면 명색이 음지의 고수라는 상대가 이 정도로 치졸하게 나올 줄은 몰았기 때문이겠지.

만약 '조'가 가면 아래에 복면 따위를 추가로 뒤집어 쓰고 있었거나, 혹은 얼굴이 드러나도 개의치 않는 인간이라면 우리도 이런 식으로 싸우지 않았다.

스페트로와의 일전이 그러했듯, 백신아가 5분 동안 나를 위한 환경을 세팅하고 내가 바톤을 넘겨 받아서 싸우는 전술을 다시 한 번 시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의 얼굴은 저렇게 얄팍한 가면 하나에 지켜지고 있었을 뿐더러, 부서진 가면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을 만큼 함부로 드러낼 수 없는 존재인 것 같았다.

나의 치졸한 한 수가 제대로 먹혀 들어간 셈이다.

난 지체 높은 고수들의 싸움 같은 건 모른다. 애초에 난 음지 출신이니까.

그리고 내가 음지에서 배운 건 죄다 이런 기술 뿐이었다.

치사하고, 유치하고, 고수들은 체면 상 시도하지 못하는 비열한 짓거리조차 뻔뻔하게 사용한다.

'조'는 양지의 인간이 음지에 들어선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군. 그대의 검술은 '흐름'을 장악하는 검술. 굳이 이런 수를 쓰지 않더라도 합을 나눌수록 승기를 끌어오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인데…… 시합을 빠르게 끝마쳐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

그러나 그는 익숙치 않은 환경에서도 여전히 일류의 품격을 유지하고 있다.

모든 결과에는 그에 해당하는 원인이 있다.

그리고 사실, 그와 같은 고수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가면 검사'가 이런 수법을 쓰는 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가면 검사'가 승부를 빠르게 끝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가면 검사'는 음지의 그 누가 상대라도 5분 안에 끝을 내왔다고 전해지지. 혹시…… 어쩌면 그대는……"

마침 그때, 이쪽도 움직일 준비가 다 되었다.

움직이려거든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었지만, 천변무궁류의 '흐름'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잠시 그 자리에 대기하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이 몇 초 동안은 가만히 서 있는 게 가장 효율적으로 흐름을 끌어낼 수 있다.

인위적으로 자아내는 흐름이 있는가 하면, 그 흐름과 흐름이 서로 만나서 충돌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흐름 또한 존재하는 법이다.

무조건 열심히 움직인다고 해서 천변무궁류의 흐름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조'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가면 검사'가 그를 향해 질주했다.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이 다시 한 번 불을 뿜는다.

그 모습이 마치 그의 입을 틀어막으려 드는 것처럼 보인 것은 그야말로 공교로운 우연이었다.

'조'는 아슬아슬하게 회피했다.

그는 이제 추측을 입에 담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다.

들숨과 날숨, 그리고 짧은 기합 소리만이 그의 입에서 들렸다.

그의 검술의 이름은 리히테나워식이라는 이름이다.

검술의 근본 원리는 회전.

검을 쥐고 한 바퀴 회전할 때까지 팔의 방향과 각도를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해서 깨끗한 원을 그리는 것이 요체다.

원에는 시작도 끝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그 구조는 지극히 안정적이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속도와 위력을 높일 수 있고, 또한 회전 방어는 모든 종류의 무기술에 존재하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방어술이다.

공방의 틈이 거의 없고 단기전과 장기전 모두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매우 수준 높은 검술이라고 볼 수 있겠다.

『모범생 같은 검술이군요. 변수 창출 능력은 대단치 않지만, 꼼꼼하고 건실해서 파고들기 어려워요.』

백신아의 독백은 조용했다.

전투 상황에 한해서 녀석의 사고는 무서울 정도로 차갑고 침착하다. 초조함이 느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녀석의 목소리는 한결 같다.

『거기다 천변무궁류를 감각으로 붙잡지는 못해도, 저의 검술을 통해 제 의도를 파악하고 최대한 그걸 거스르는 방식으로 싸우고 있어서, 평소보다 천변무궁류의 완성이 늦군요.』

'조'는 무시무시한 검사였다.

그에게 천변무궁류를 보는 감각은 없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가면 검사'의 검술에서 의도를 추측하고, 그 의도를 최대한 거스르는 형태로 움직이며 천변무궁류를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견제하고 있었다.

물론 그 추측은 완벽하지 않아서 천변무궁류 그 자체를 틀어막을 수는 없었지만, 이 정도라도 성공한 상대는 지금껏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못했다.

스페트로조차도 해내지 못했던 일이다.

'조'처럼 직접 입을 열어서 경의를 표하지는 않았지만, '조'가 보여주는 한 수, 한 수는 '가면 검사'로 하여금 깊은 경의를 느끼게 하고 있었다.

서로에게 경의를 표하며 휘두른 한 수가 공중에서 부딪친다.

어느 새 공방은 3분째를 넘어 4분째를 향하고 있었다.

둘 중 어느 쪽도 명확하게 승기를 잡지 못한 채 마지막 60초가 하나씩 흘러간다.

하지만 '조'라면 모를까, '가면 검사'에게 있어 교착 상태는 좋지 못한 현상이다.

교착 정도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확실하게 끝장을 보지 않으면 이쪽이 끝장나고 만다.

그러나 '가면 검사'는 대지를 가르고, 바다를 찢고, 하늘마저 부술 수 있는 검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출력의 부족으로 인해 그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

'가면 검사'의 본래 실력이 100이라면, 지금의 출력으로 발휘할 수 있는 실력은 3이 채 되지 않는다.

그 정도 기량으로는 '조'를 무너트릴 수 없다.

최후의 60초에 도달한 이후, 나는 마치 초읽기를 하듯 줄어드는 시간을 하나씩 헤아리고 있었다.

쏟아지는 빗물에 눈사람이 녹듯, '가면 검사'에게 주어진 시간이 빠르게 줄어들어간다.

순식간에 60초의 시간은 절반이 되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절반으로 쪼개졌다.

줄어드는 시간은 한결 같았다.

1초, 1초가 목을 옥죄어오듯 사라져간다.

하지만 '가면 검사'는 초조해하지 않는다. 다가오는 활동 한계에도 개의치 않고 한결 같은 마음으로 늘 같은 검을 휘둘렀다.

힘과 속도를 실은 한 수, 한 수를.

그리고 정확히 활동 한계 시간을 5초 남겨둔 상황에서 '가면 검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꽤 재미있었습니다. 도전자."』

"……!!"

'가면 검사'로서 전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한 마디였다.

『"그 보답이예요. 지금부터, 당신에게 피할 수 없는 패배를 선사하겠습니다."』

붉은 마력 입자가 분분히 흩어진다.

붉은 마력 입자는 '가면 검사'의 전신을 휘어감아 그의 오체에 초인의 힘과 속도를 깃들게 만들었다.

간신히 때를 맞췄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조'의 검술이 너무나도 수준이 높은 검술이었기에 천변무궁류의 흐름이 매우 느리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상당히 아슬아슬하게 준비를 끝마쳤다.

붉게 타오르는 천변무궁류의 제이검이, 마지막 5초를 남겨두고 최종국면의 막을 울렸다.

* * *

'가면 검사'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출력이다.

백신현의 느려터진 팔과 다리는 그가 휘두르고자 하는 기술의 1할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최대한 결함이 마지막 5초를 남기고 해금되었다.

붉은 마력이 갑옷과 외골격의 역할을 동시에 겸해 초인의 힘과 속도를 그 사지에 스며들게 한다.

이 상태에 한해, '가면 검사'는 특급 모험가의 말석에 버금가는 신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사실 지금의 상태조차 '가면 검사'에게는 만족스럽지 않다. 그가 휘두를 수 있는 깨달음의 크기는 이 정도의 신체 능력으로 구현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

'붉게 타오르는 가면 검사'가 한 걸음 내딛은 바로 그때, '조'와 '가면 검사'가 서 있던 공간이 흑백으로 칠해졌다.

극소수의 초인들만이 들어설 수 있는 초고속의 영역에 돌입했다는 신호였다.

이 흑백의 세계에서 소리는 조금 늦다. 여기는 소리조차 쫓아올 수 없는 속도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돌입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시작되는 모든 공방에 소리는 언제나 조금 늦게 따라오게 된다.

'가면 검사'의 선공이 시작된다.

"……?"

'조'는 '가면 검사'의 기색이 달라졌음을 눈치챘으나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파직.

번갯불이 튀는 듯한 속도가 들렸을 때, 이미 '가면 검사'는 '조'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어마어마한 속도.

제이검에 제일검을 겹쳐서 탄생시킨 가속이다. 붉은 마력 틈새에 녹색으로 빛나는 마력 입자가 조금씩 스며들어있다.

그 속도를 실어 그대로 일격.

'조'는 검을 들어 그 일격을 받아냈지만, 지금의 일격은 이제까지의 그 어떤 공격과도 달랐다.

"그극……!?"

그의 몸이 탄환처럼 날아갔다. 그가 서 있는 위치에서 경기장의 벽까지는 수십 미터의 거리가 있었지만 전혀 의미가 없다.

한 순간에 날아서 벽에 처박힌 후, 그 벽을 버터처럼 찢으면서 그대로 경기장의 바깥까지 튕겨 나간다.

카가가가가각!! '조'는 바닥에 칼을 세게 꽂아서 어디까지 날아갈지 모를 관성을 억지로 제어했다. 그의 몸이 경기장 바깥으로 튕겨 나간 후에도 또 한참의 시간을 거쳐 간신히 멈춰섰다.

하지만 그때 '가면 검사'는 이미 '조'의 위치를 추적해서 가까이 접근한 상태였다. 그의 속도는 다가온 궤적이 짚히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마치 시공간을 넘어서 다가온 것 같았다.

흑백으로 비치는 세계에서 '조'의 공격이 시작된다.

한 순간에 그의 팔이 수백, 수천 개로 분열하는 듯 하더니 그 모든 공격 하나 하나가 회전의 이치를 따라 곡선의 궤적을 그리며 쏘아졌다.

피할 수 없었다. 피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검격 하나 하나는 서로 다른 곡선을 그리며 저마다 다른 방향에서 올가미를 죄어오듯 '가면 검사'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 모든 공격이 '가면 검사'의 육체를 뚫고 관통한 것처럼 보였지만, 마치 안개에 대고 손을 휘두른 것처럼 감촉이 느껴지지 않는다.

모든 공격을 지나칠 정도로 부드럽고 간결하게 회피했기 때문에 흡사 통과한 것 같은 인상을 느끼게 했다.

"흐읍!!"

하지만 수천 개의 공격이 모두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조'가 일일이 휘두른 수천 개의 검격은 그저 '가면 검사'의 몸을 꿰뚫기 위해서 펼쳐진 게 아니다.

올가미처럼 그의 회피 경로를 한정시켜서 본체를 제대로 포착하기 위한 '조' 나름의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조'의 발차기가 '가면 검사'의 몸뚱이에 적중한다. 그리고 '가면 검사'는 정확히 스스로가 날아온 거리만큼 밀려 나갔다. 콜로세움을 일직선으로 관통한 통로를 역주행해서 다시 경기장에 복귀했다.

'조'도 한 순간에 경기장에 복귀했다. 지금의 공방은 지독할 정도로 빠른 나머지, 이 경기장에서도 수순을 제대로 파악한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관객석의 스텔라조차 한 순간 흐름을 놓쳤다. 끝까지 쫓아가고 있는 것은 마그누스 뿐이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신음했다.

"……부럽군."

"마그누스, 그건 또 무슨……"

"무술가에게는 더 없이 행복한 순간이다. 두 사람 모두, 최고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구만."

경기장의 중앙에 서 있던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두 명의 가면 검사는 경기장의 높은 상공까지 상승해 있었다.

두 사람이 상승한 자리에 붉은색과 푸른색의 궤적이 남았다. 그 궤적은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 있지 않고 수도 없이 교차하고 충돌한 탓에 복잡하게 얽혀서 기하학적인 형태로 남아 있었다.

붉은색 궤적은 '가면 검사'의 잔재이고 푸른색 궤적은 '조'의 잔재이다.

두 궤적은 복잡하게 움직이면서도 몇 번의 충돌을 거쳤는데, 그 지점마다 붉고 푸른 마력 입자가 서로 교차한 상태로 부유하고 있다.

그 짧은 사이 두 초인은 얼마나 많은 횟수의 공방을 겨뤘던 것일까.

적어도 이 자리에 그 흐름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마그누스 이외에 존재하지 않았다.

팔짱을 낀 마그누스의 시선이 높이 상승한 두 초인의 궤적을 쫓는다.

발 딛을 곳 없는 상공에서 수많은 공방이 한 순간에 이뤄진다. 그때마다 충돌의 여파가 대기를 자극해서 마그누스의 피부를 떨리게 하였다.

수백, 수천 개의 팔과 검을 동시에 휘두르면서 몰아넣는 '조'와 비교해서 '가면 검사'의 팔과 검은 하나 뿐.

마그누스는 그 '가면 검사'의 모습에서 어느 신화의 한 장면을 겹쳐 보고 있었다.

이 세계가 처음 시작했을 때, 우주의 중심에는 수십억 개의 머리를 가진 거대한 황금색 용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창조신은 검 한 자루를 손에 쥐고 그 황금색 용의 모든 머리를 베어 떨어트리고 우주에 생명을 피어냈다고 한다.

마그누스의 눈앞에 신화의 한 장면을 재현한 듯한 공방이 펼쳐진다.

"……!?"

그때, 불현듯 '가면 검사'가 부드럽게 휘두른 검격이 '조'의 모든 방어를 걷어내고 그를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로 만들었다.

'가면 검사'의 검술이 '조'의 검술에 우위를 점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가면 검사'는 그대로 몸을 공중에서 한 바퀴 돌려서 위에서 아래로 '조'의 측두부를 강하게 후려쳤다.

완벽한 회전에서 탄생한 유려하기 그지없는 오른 발등 돌려차기가 '조'의 몸을 비스듬하게 아래로 내려 꽂았다.

그의 몸뚱이가 순식간에 경기장 바닥에 처박히고, 하지만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힘을 줘서 멈추지 않으면 어디까지 처박히게 될지 알 수 없을 만큼 그의 육체는 지하 깊은 곳으로 매몰되어 가고 있었다.

추락하는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던 탓일까. 그의 몸이 경기장 바닥에 처박힌 순간 그 일대의 지반이 한꺼번에 출렁이면서 경기장의 바닥이 통째로 부서지고, 벽과 기둥에도 수많은 균열을 새겨넣었다.

'가면 검사'는 또 다시 그를 추적했다. 하늘에서 지하까지 순식간에 주파했다.

쿵!!

지반 깊은 곳에 처박힌 '조'의 복부에 강력한 발차기를 내려 찍는다.

콰직콰직콰직콰직!! 다시 한 번 지반 전체에 균열이 거미줄처럼 퍼져 나갔다.

"하아아아아……"

하지만 '조'의 의식을 확실하게 끊어내기에는 아무래도 위력이 부족했다. '가면 검사'의 공격이 끝난 직후 그의 안광이 번뜩인다. 그는 이미 오른손으로 틀어쥔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참격이 자아낸 참상을 가장 먼저 확인한 건 관객석의 마그누스였다.

"……으음!!"

아래에서 위로 날아간 참격에 의해서 경기장이 순식간에 양단되었다.

그런 참격이 연달아 세 번이었다. 이미 부서지고 깨져서 원형을 찾아보기도 어려운 경기장의 표면 위에 세 개의 거대한 칼자국이 추가로 새겨졌다.

하지만 저 위력도 여기가 관객이 있는 공간이라는 걸 감안해서 범위를 좁힌 쪽에 가깝다.

관객을 개의치 않았더라면 이 콜로세움이 통째로 양단되고도 남았다.

'조'의 일격에는 그 정도의 위력이 숨어 있었다.

하지만 '가면 검사'는 무사히 회피에 성공했는지 바닥에 뚫린 구덩이에서 곧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바닥에 신발 밑창을 끌면서 정지한다.

회피하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상당한 힘을 소모했는지 숨을 몰아쉬는 기색이 심상치 않다.

조금 늦게 '조'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도 상당히 소모된 기색이다. 어떻게 버텨내기는 했지만 머리와 복부에 연달아서 꽂힌 '가면 검사'의 발차기는 그의 전투력을 크게 저하시키는데 성공했다.

'조'는 호흡을 제대로 고르지도 않은 채 '가면 검사'에게 검을 휘둘렀다. 첫타는 흘려냈다. 하지만 거의 시간차를 두지 않고 쏘아진 추가타가 '가면 검사'의 몸을 높이 상승시켰다.

아래에서 위로 휘두르는 초승달 베기였다.

위력 자체는 크지 않았다. '가면 검사'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흘려보낼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애초부터 '가면 검사'를 공중에 띄우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이라도 상관 없다. 공격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조'가 검을 양손으로 고쳐쥔다.

이 시합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공격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한 건 '가면 검사'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백신아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1초가 채 되지 않는다.

최후의 공격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초음속의 세계에서 펼쳐지던 복잡한 수읽기는 끝이 났다. '조'와 '가면 검사'. 그 최후의 공방을 결정짓는 것은 서로가 가진 가장 신뢰하는 기술이다.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으로 승부를 본다.

그 이외에는 존재할 수 없다.

'가면 검사'의 몸뚱이가 새하얀 유성처럼 빛나며 지상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조'가 선택한 것은 리히테나워식 전투검술의 제 1형, 나선파동살검?????이었다.

회천일섬이 검을 수평으로 들어서 회전하는 가로 회전이라면 이 기술은 세로 회전.

드릴이나 공사용 굴착기처럼 초고속으로 회전하며 내지르는 찌르기라고 볼 수 있다.

하얀 유성이 베어 찢을 것인가, 나선파동살검이 비틀어 관통할 것인가.

붉은 궤적과 푸른 궤적이 교차했다.

충돌은, 그 직후에 있었다.

* * *

탈력감이 밀려온다.

주어진 5분이 끝난 그 순간, 내 몸을 지배하고 있던 최강 검사의 기척이 흩어졌다.

마법은 끝난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다.

현재, 나와 '조'는 서로 교차한 상태로 조용히 호흡하는 중이었다.

최후의 공방의 끝을 맺었다.

'조'가 몸을 돌렸다.

"모든 마력을 다 써 버렸소. 이젠 가면을 붙잡고 있을 수도 없구려."

그는 왼손으로 부서진 가면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스스로가 말했듯이, 가면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소모된 탓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시합은 '가면 검사'의 승리인가?

조금 애매하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쩍……,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조'를 향해 돌아선 바로 그때 '가면 검사'의 얼굴을 숨기고 있던 가면이 반으로 쪼개져서 지면에 떨어졌다.

오른손으로 검을 쥐고, 왼손으로 가면을 지킬 수 있는 그와 다르게 지금의 나는 외팔이다.

검을 쥐고 있는 이상 가면을 지킬 수는 없다.

반으로 갈라진 가면은 허무하게 지면 위로 추락했다.

하지만 가면이 사라진 그 자리에 내 얼굴은 없었다. 가면 아래에는 피부에 직접 밀착시키는 형태의 살색 가면이 붙어 있어서, 제대로 내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

가면 아래에 숨겨진 또 하나의 가면이었다.

"……하!"

그 점이 '조'에게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그는 조금 놀란 것 같으면서도 허탈한 얼굴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거…… 완전히 한 방 먹었군. 그대 만한 초고수가 그런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쓰고 있었을 줄은 몰랐는데."

확실히, 그가 말한 것처럼 고수의 소행이라기엔 지나치게 치졸하고 유치한 방식이다.

지리멸렬하게까지 보일 정도다.

하지만 자존심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결과적으로 이게 효과를 보지 않았는가.

양측의 마력은 모두 바닥이 났고, 검을 자유롭게 휘두를 수 있는 나와 비교해서 '조'는 가면이 떨어지지 않게 잡고 있어야 한다는 패널티가 있다.

조각이 크다면 모를까. 그의 가면은 이미 가루가 된 것을 마력으로 붙잡고 있었던 쪽에 가깝다.

한손으로는 모든 조각을 지킬 수 없어서 그의 얼굴이 부분적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제 아무리 나라도 가면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는 제대로 싸울 수 없지……. 오늘은 나의 패배로 해두겠소. 그대의 유치한 한 수가 내 마음을 깜짝 놀라게 했어."

사실상의 기권 선언이다.

'조'는 담백하게 몸을 돌렸다.

"하지만 다음에는 이런 형태의 어설픈 결착이 아닌, 서로의 모든 것을 걸고 제대로 된 진검 승부를 치뤄보고 싶구려. 그대가 왜 그렇게 유치한 수단을 동원했는지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가지만…… 역시 이런 형태의 결착은 아쉬워."

우리도 거의 밑천을 털린 거나 마찬가지다.

천변무궁류부터 시작해서 활동 시간의 한계까지.

그럼에도 '조'가 승부를 포기한 것은 정말로 활동 시간이 한계에 달했는지 가늠할 수단이 없는 데다가, 그 자신이 이러한 형태의 결착을 불만스럽게 여기고 있어서이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더해진 기권이었다.

"……."

나는 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검을 들어서 내 입술 앞에 가져갔다.

지금부터 흘러나올 백신아의 목소리를 내가 낸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서.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조금 위화감은 느껴지겠지만, 아무리 '조'라고 해도 검이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검자루를 입술에 가져간 상태로 가만히 있는다.

백신아는 오랜만에 마주한 강적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전 당신의 정체를 알아요. 그리고 당신의 진짜 전투 방식에 대해서도 알고 있죠.」

"……그렇군. 이렇게까지 요란하게 일을 벌였으니 내 정체를 짐작할 법도 한 건가."

'조'는 담담한 얼굴이었다.

'가면 검사'가 비밀을 함부로 노출할 인격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일까.

「특급 모험가 최강의 남자는 검술 뿐만 아니라 창법??, 궁술??, 공수?手, 마법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전투 기술에 능통하고, 그 모든 기술을 함께 휘두르는 것으로 상승효과를 얻는다고 들었습니다.」

힘과 속도에 있어서는 마그누스보다 떨어진다.

마법의 성취에 있어서는 스텔라보다 부족하다.

하지만 그 모든 기술을 조화롭게 사용해서 사각이 없는 무상성의 만능형이 바로 제1위의 특급 모험가의 진짜 정체다.

「검술만 해도 초일류 영역에 도달해 있지만 그게 '전력'이라고 보기는 어렵죠. 다음에는 검술 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 당신과 싸워보고 싶네요.」

잠시 침묵하던 '조'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혹시 그대의 이름을 들을 수 있겠소? 가명이라도 개의치 않겠소."

「…….」

그 질문에 백신아는 처음으로 대답을 망설였다.

잘못 대답하면 내게 폐를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의 이름을 허락했다.

「천변무궁류……, 백신아白??.」

"멋진 이름이오. 이름을 지어 준 사람의 사려 깊은 성격이 느껴지는 것 같구려."

그때, 나는 갑자기 사레가 들려서 기침 소리를 낼 뻔 했다.

물론 공 들여서 지은 이름은 맞는데 이런 소리를 들으니까 조금 낯간지러운 느낌이 든달까.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주인께서 내려주신 이름입니다.」

"다시 겨루게 될 날을 기대하겠소. 음지에서 마주치게 된, 지하제일?下?一의 검사여."

'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후 그 자리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밀려오는 현기증에도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지상최강의 고수 중 하나, '요하네스 리히테나워'와의 첫 조우가 비로소 막을 내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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