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 〉 17. 가면 검사 (10)
* * *
'가면 검사'를 부르는 목소리를 쫓아 통로로 나아갔다.
들려오는 환호성이 크다. '가면 검사'의 데뷔전으로부터 어림 잡아 40일. 수많은 강적을 넘어선 끝에 '가면 검사'는 지하 투기장의 최정상에 군림하는 최강의 투사가 되어 있었다.
그저 앞으로 걸어 나간다. 그리고 출구를 앞에 둔 그 자리에서 내가 아는 사람의 얼굴을 발견했다.
올리비아가 벽에 등을 기댄 채 서 있다.
그녀는 '가면 검사'를 지하 투기장으로 안내한 장본인이었지만, 정작 본인에게 쏟아지는 일에 바빠 '가면 검사'의 경기를 한 번도 지켜보지 못했다.
그런 올리비아가 지금부터 '가면 검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싸움을 앞에 두고 나타났다는 점이 참 신기하다.
재미있는 우연이랄까.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췄군."
"그래, 정말로 잘 찾아왔어. 오늘의 경기를 놓쳤다면, 너도 많이 아쉬웠을 거야."
"대충 이야기는 들었다. 네가 지하 투기장의 최강자가 되었고, 이후로도 남부의 최정상급 지하 격투가들을 쓰러트려왔다고."
"엄밀히 따지면 내가 아니지."
"……아, 그랬었지."
올리비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훨씬 예전부터 백신아와 이름도 트고 말문도 튼 샤를로트와 다르게, 올리비아는 백신아에 대해서 아는 게 얼마 없다.
샤를로트에 비하면 많이 어색한 관계다.
올리비아가 어색하게 화제를 바꿨다.
"이 정도로 규모를 크게 벌리는 걸 보면 상대도 보통내기는 아닌 거 같군. 네 의견을 듣고 싶다."
"강해. 어쩌면 스페트로보다도 더."
"그 정도라고……?"
"그래, 그러니까 너도 잘 지켜봐. 보는 것만으로도 피가 되고 살이 될 수 있는 시합이 될 테니까."
"으음."
올리비아의 옆을 지나쳐, 앞으로 나아간다.
조금 전에 올리비아에게 한 말은 사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 역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아마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천하제일이라는 표현에 가까운 이들의 대결이 될 테니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될까?"
"아, 말해봐."
"지금 위에서 너와 '조'의 승패를 논하는 도박이 진행 중이다. 나는 어느 쪽에 돈을 걸면 될까?"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가면 검사'의 승리에 걸어야지."
"그렇군. 잘 해봐라. 나는 관객석에서 너의 승리를 기도하지."
올리비아가 내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지나쳐간다.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한 번.
그리고 빛이 보이는 통로의 바깥으로 힘 있게 걸어 나갔다.
진짜 이름도, 얼굴조차 모르는 '가면 검사'를 향해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성과 시선이 쏟아진다.
아직 '조'는 등장하지 않았는지 연무대 위에는 나와 심판밖에 없다.
천천히 걸어서 연무대의 중심에서 대기한다.
바로 그때, 그림자가 진 통로의 저편에서 커다란 인영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거의 그것과 동시에 콜로세움을 가득 채우던 '가면 검사'를 향한 환호성이 일제히 끊어졌다.
마치 마법이 풀린 것처럼.
하지만 아니다.
현장에 서 있는 나는 환호성이 갑작스레 끊어진 이유를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나의 전신을 짓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정확히 말해서 그것은 '조'의 몸뚱이를 중심으로 반구체 형태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의 기세 같은 것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마력을 다룰 줄 아는 인간은 전신의 땀샘에서 마력을 균등하게 분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마력이 다른 사물에 부딪쳐서 돌아오는 것을 감지해서 오감으로 알 수 없는 사각死?의 공격마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지금 '조'의 전신에서 뿜어져 있는 마력은 지나치게 규모가 크고 밀도가 높은 탓에 그의 범위 안에 들어간 모든 인간에게 보이지 않는 압박감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마력의 크기로 미루어 보아, 현재 '조'의 감지 범위가 이 콜로세움을 가득 채우는 수준에 이르러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이 콜로세움 안에 있는 모든 인간이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것과 같은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갑작스레 환호성이 잦아든 이유도 그 때문이다.
지금쯤 관객들은 마치 심장을 콱 틀어잡힌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내게는 통하지 않는다.
가지고 있는 마력의 크기는 부족할지언정, 나는 '조'와 같은 수준의 강자들을 이미 여러 번 마주친 경험이 있다.
스페트로, 그리고 마그누스.
내가 거쳐온 두 강자의 모습이 눈앞의 '조'에 겹쳐진다.
마치 대지 속에 가라앉은 마그마처럼 뜨겁고 무겁다. 뭉근한 압박감을 느낀다.
"……."
'조'가 내 앞에 섰다.
그리고 심판은 나와 '조'를 번갈아서 바라보며 새삼 규칙을 설명했다.
심판은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는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럼, 시작해 주십시오!"
쥐어짠 듯한 한 마디와 함께 심판이 멀리 물러선다.
그리고 나와 '조'는 서로를 마주본 채 잠시 동안 가만히 있었다.
양쪽 모두 운동 능력과 심폐 능력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선에서 한계까지 단련한 몸이다. 키도, 어깨 너비도 거의 대등하다.
나는 흰 가면에 박쥐 무늬. '조'는 검은 가면에 무면無?.
눈구멍 사이로 벽안이 엿보인다.
"솔직히 말해서……"
'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처음 봤을 때는 조금 실망했었소. 지하 격투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수들을 연파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미약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실망했었다.
과거형이다.
"하지만 '가면 검사'가 음지 격투계의 최강자라는 사실은 틀림없는 사실이오. 이 경우, 두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지."
'조'가 한 걸음 물러서서 거리를 둔다.
전투에 최적화된 거리를 가늠하는 얼굴이다.
"첫 번째는 나의 감각에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교묘하게 마력을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고."
그가 천천히 허리춤의 검에 손을 가져간다.
특징 없는 장검이지만 아마 보통 검은 아닐 것이다. 저 정도의 마력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무기 또한 그에 걸맞는 수준에 도달해 있어야 하니까.
"두 번째는 그 정도 마력으로도 수많은 지하 세계의 고수를 연파할 수 있을 정도로 검술의 조예가 깊을 가능성이오."
'조'의 몸을 중심으로 마력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그의 마력은 창백하게 반짝이는 푸른 빛이다. 투기와 마력이 5:5의 비율로 혼합되어 날카로운 칼날처럼 흩뿌려졌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나의 팔뚝과 허벅지에 찢어진 상처가 몇 개씩 새겨졌다.
"어느 쪽이든 나로서는 상당히 기대되는 가능성이오."
'조'는 마치 웃는 듯했다.
"내 감각에 잡히지 않게 마력을 숨기고 있다면 마력 조예에 있어서 나보다 우위에 있다는 뜻이 되고, 정말 그 정도의 마력으로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다면 검술 조예에 있어 나보다 우위에 있다는 뜻이 되지."
그가 기수식을 잡는다.
몸을 오른쪽으로 살짝 틀어서 상대에게 보이는 면적을 최소화한 뒤, 오른손으로 검을 쥔 채 수평으로 든다.
피격 면적을 줄이고 베기와 찌르기를 취사선택해서 휘두를 수 있는 자세다.
"여기까지 찾아와서 직접 대결을 신청한 보람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소"
'조'가 조용히 말했다.
"리히테나워식? 전투검술 제13형. 회천일섬回?一?으로 시작하겠소."
그의 선공과 함께 시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나의 육체의 주도권이 나 아닌 존재에게 이전되었다.
최강무적, 궁극무비의 검사가 나의 육체를 지배하기까지는 불과 찰나의 시간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한짝밖에 없는 팔이 움직인다. 검을 뽑아서 받아친다.
쿵!!
공기를 통해 충격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아마 관객들의 감각에는 한 순간 콜로세움이 뿌리째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전달되었을 것이다.
충격에는 정해진 방향이 없다.
그저 균등하게 주위의 모든 것을 때려 눕힐 뿐.
"……과연. 나의 가설이 틀리지 않았군."
서로의 검이 가각 가각 소리를 일으키며 불꽃을 튀긴다.
'조'는 확신을 가진 듯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의 검술 조예가 부족한 마력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위대한 수준에 이르러 있는 것이었어. 검술에 대한 조예 하나만큼은 나조차 쫓아갈 수 없겠군. 그대와 같은 강자를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소."
'조'의 반 바퀴 회전하면서 연달아 세 번의 횡 베기를 선보였다. 회천일섬. 그 이름 그대로 그의 검술은 회전에 의한 연속 가속을 특성을 가지고 있다.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것만으로도 세 번의 횡 베기를 모조리 걷어낸다.
'가면 검사'는 세계제일의 검술을 가진 존재였다.
그리고 그 사실은 '조'를 앞에 둔 상황에서도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그 사실을 이해했는지, '조'는 오른발을 살짝 비틀면서 본격적으로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조'의 모습이 한 순간 사라지는가 싶더니 이내 시각 정보에 비치는 그의 모습이 수도 없이 분열하였다. 이 중에 진짜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는 것은 그가 지나간 자리에 남긴 잔상에 불과함으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휘두르고, 휘두른다.
그리고 그때마다 둔탁한 쇠의 소리가 들리면서 공방이 제대로 성립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모습은 눈에 비치지 않고, 소리조차 쫓아갈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어서 청각으로도 잡을 수 없다.
하지만 가면 검사는 그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것처럼 언제나 정확하게 급소를 노린다.
오감을 속이는 정도로는 천변무궁류의 검사를 따돌릴 수 없다.
천변무궁류의 검사는 스타트가 느리다. 그 기본명제에서는 '가면 검사'라고 해도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가면 검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검술 조예를 통해 그 약점을 최대한 보호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정도로 돌파할 수 있는 방어가 아니다.
나로서는 불가능한 기예다. 그야말로 절대방어. '가면 검사'의 방어는 굳건하여 쉬이 부서지지 않는다.
철벽.
두꺼운 벽이 '조'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듯 하였다.
모든 특급 모험가 중 최고의 파괴력을 가진 마그누스조차 '가면 검사'의 방어를 돌파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철벽을 넘어서지 못한 이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패배를 맛보게 되었다.
천변무궁류가 가장 힘을 못 쓰는 초반 준비 단계에서 쓰러트리지 못하면 그 이후의 승리는 더더욱 요원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조'가 알고 있을 리 만무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거쳐왔던 수많은 호적수 또한 그래왔다.
쉬지 않고 몰아치는 것 이외에 천변무궁류를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었던 호적수는 거의 없었고, 그들은 판단을 잘못한 대가를 패배로 치르게 되었다.
'조' 또한 이제까지의 호적수들이 거쳐갔던 말로를 반복할 것인가.
그런데 바로 그때 '조'의 몸이 그 자리에서 회전 톱날처럼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날카로운 일격을 휘둘렀다.
쾅!!
"……!!"
'가면 검사'는 그 공격을 제대로 받아냈지만, 미처 모두 흘려 보내지 못했다. 흘려보내지 못한 충격은 팔과 다리에 날카로운 상처의 형태가 되어 남았다.
옷 안쪽에서 새어나온 핏물에 의해 옷이 붉게 젖어간다.
마그누스조차 돌파하지 못했던 '가면 검사'의 절대방어가 찢어진 순간이었다.
"틀림없군. 자세한 건 아직 알아내지 못했지만, 아마 그대의 검술은 공방이 거듭될수록 힘과 속도가 강맹해지는 부류의 검술일 것이오."
'조'는 그 자리에 멈춰선 채 오른손으로 계속 검을 회전시키고 있었다. 회전수를 높임으로써 위력과 속도를 상승시킬 의도로 보였다.
"공방의 흐름을 제어하는……? 아니, 그 이상의 고차원적인 영역을 제어하는 것이 특징인 듯 하군. 아무래도 우리 같은 일반적인 인간과 비교해서 상당히 '특수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구려."
천변무궁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마력의 흐름을 감지하고, 그것을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 능력이 없다면 천변무궁류의 해석에는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조'에게도 천변무궁류의 해석은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원리는 알 수 없지만 공방의 흐름을 장악하면서, 전투가 길어질수록 위력이 강맹해진다면 방법은 하나 뿐이겠군. 흐름이 더 거칠어지기 전에 힘과 속도로 뚫고 들어갈 뿐!!"
다시 한 번 '조'가 회전을 더해서 강하게 내려찍는다. 회피는 불가능. 받아낼 수밖에 없지만, 이번에도 '가면 검사'는 충격을 모조리 흘려 보내는 데 실패했다.
콰직!!
팔과 다리에 찢어진 상처가 하나씩 나타났다.
"……."
나는 이 싸움이 당사자가 아니라서 양자의 생각을 완벽하게 읽어낼 수 없다. 애초에 두 사람 모두가 나 이상의 실력을 가진 대단한 고수들이다.
'조'는 마력을 제외하더라도 나보다 더 대단한 실력의 검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힘이 있고 속도가 있다고 해서 뚫을 수 있는 방어가 아니다.
위력으로만 따지면 마그누스의 공격이 '조'의 것보다 훨씬 더 무겁고 빠르다. 하지만 '가면 검사'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마그누스의 공격에도 어렵지 않게 대응했다.
마그누스가 뚫지 못한 방어를 '조'는 뚫고 있다.
힘과 속도, 회전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방어의 틈새를 파고들 수 있을 정도의 감각과 기술적 조예가 없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의 감각으로는 천변무궁류를 볼 수 없다. 하지만 천변무궁류가 본격적으로 시동하지 않은 지금, '조'의 공격을 버텨내고 있는 것은 천변무궁류가 아니라 '가면 검사'의 순수한 검술 실력이다.
'가면 검사'의 검술 실력은 물론 '조'와 비교해서 아득히 높은 영역에 있었지만, 이 정도로 출력의 차이가 심한 상태에서는 아무래도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조'의 검술은 마그누스보다 더 위에 있다. 그 차이가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
마그누스의 검극까지는 출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흘려보낼 수 있었지만, '조'의 검극은 마그누스의 것보다 더 예리하고 섬세하다.
마그누스의 검술로는 도저히 파고들 수 없었던 빈틈을 파고들고 있다.
쿵! 쿵! 쿵! 쿵!
'조'는 마치 돌개바람처럼 회전하면서 빠르게 연속 공격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때마다 '가면 검사'의 팔과 다리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새져겼다.
출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마그누스는 결코 뚫지 못했던 절대방어를, '조'는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그 무결성에 흠집을 새기고 있었다.
한 걸음씩 '가면 검사'가 물러나기 시작한다.
전적으로 출력의 한계였다. 동등한 출력이었다면 삼초지적이었을 상대를 앞에 두고, '가면 검사'는 절대적인 출력 부족에 허덕이고 있었다.
순수한 기술 조예로 따졌을 때 '조'는 '가면 검사'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출력 문제를 끌어들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간단하게 말해서, '가면 검사'의 출력과 기술을 더한 수치보다 '조'의 출력과 기술을 더한 수치가 더 높다는 의미이다.
종합적인 능력치의 문제다.
이제까지는 부족한 출력에도 불구하고 기술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상대과 맞붙어왔지만 '조'는 전혀 다르다.
버티는 것조차 버겁다.
쾅!!
"……큭!!"
'가면 검사'가 뒤로 밀려 나가다 못해 아예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조'의 추적은 계속된다. 성큼성큼 다가와서 검을 위에서 아래로 찍는다.
회피. 회피. 회피. 연달아 쏟아지는 공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회피했지만, 그때마다 조금씩 코너에 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의 페이스가 계속되고 있다. 흐름을 끊지 않으면 안 된다.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조'의 가슴팍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조'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회피하기 위해서 거리를 가늠했지만, 바로 그때 칼날의 크기가 몇 배로 증폭되었다.
천변무궁류?????
제삼검?三?
청
거성巨?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회피해서 피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다. 말 그대로 순식간에 칼날의 길이와 너비가 증폭된 것이니까.
'조'는 결국 검을 들어서 제삼검을 방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몸이 뒤로 쭉 밀려나갔다.
제삼검에 의해서 강화된 일격은 마그누스에게도 크게 뒤쳐지지 않는다. '조' 또한 제대로 방어하지 않으면 밀려나갈 수밖에 없다.
간신히 페이스를 끊고 호흡을 고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가면 검사'는 휴식을 생각하지 않고 곧바로 달려 나갔다.
5분의 시간을 한 순간이라도 무의미하게 쓸 수는 없다. 조금 무리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은 최대한 움직여야 한다.
제삼검을 해제한다. 푸르게 맺힌 빛이 사라진 그 자리에 은색 칼날만이 남았다.
흐름을 바꿔야 한다.
"흐읍!!"
하지만 '조'는 흐름을 바꾸는 것을 허용할 정도로 어설픈 적이 아니었다.
그의 검술의 요체는 '회전'인지 사소한 공방 속에서도 온몸의 관절에서 발생하는 회전을 유동적으로 조합해서 빠르면서도 무거운 일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공격하고 있는 건 이쪽인데 오히려 이쪽이 밀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손아귀가 찢어져서 손바닥에서 피가 줄줄 흐른다.
"하아아앗!!"
천변무궁류?????
제일검?一?
하얀 유성白?
하지만 '조'에게 통하지 않았다고 해서 '가면 검사'의 모든 공격이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었다.
실패한 공격은 실패한 공격대로 그 자리에 남아서 천변무궁류의 기술로 이어지는 조각이 되었다.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은 초가속의 참격. 하지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는 검을 제대로 휘두르기 어렵다.
따라서 지금의 제일검은 초고속의 참격이 아닌, 초고속의 어깨 치기가 되어 있었다.
어깨로 부딪쳐서 '조'의 몸을 뒤로 크게 밀어보낸다.
그리고 다시 자세를 앞으로 숙이고, 거의 시간차를 두지 않고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에 돌입한다.
어깨치기에 의해서 밀려나간 '조'를 향해 다시 한 번 돌진한다.
하지만 그때, 나는 타이밍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깨로 부딪쳐서 거리를 벌린 건 좋았지만 '조'는 몸이 밀려나는 흐름에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받아들임으로써 '가면 검사'가 원하던 거리 이상으로 멀리 날아가 있었다.
아무리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이 빠르더라도 거리가 지나치게 멀어지면 좋지 않다. 언제나 최고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조'는 그 사실을 어깨가 부딪친 그 순간에 파악한 뒤, 최대한 거리를 벌리는 것으로 제일검의 연속 사용에 대응했다.
어마무시한 판단력이다.
나는 지금까지 나 이외의 사람의 감각과 판단 능력에 이 정도로 놀란 적이 거의 없었다.
루이스, 파비아, 샤를로트 등과 같은 매우 극소수의 일류, 혹은 천재들에게서만 느꼈던 감각을 나는 지금 '조'에게서 느끼고 있다.
하지만 재차 시작된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은, 이제 멈출 수 없다.
파직.
'가면 검사'의 육체가 마치 번갯불처럼 빠르게 도약한 그때, '조'는 뒷걸음질을 치며 최대한 제일검이 도달하는 시간을 늦췄다.
제일검에 도달한 상태에 한하여 '가면 검사'의 속도는 '조'조차 대응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그 속도는 영원하지 않다. 가속에는 끝이 있고, '조'는 속도가 느려지는 타이밍을 잡기 위해서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초고속으로 쏘아지던 제일검의 속도가 마침내 감속하기 시작했을 때.
'조'와 '가면 검사'의 거리는 불과 3M도 되지 않을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처음부터 여기까지 가늠한 뒤 행동에 나섰다.
그에게 천변무궁류의 감각은 없다. 하지만 전투 감각과 판단력은 천변무궁류의 검사에 버금가는 수준일지도 모른다.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의 속도가 조금 떨어진 그때, '조'는 타이밍을 맞춰서 카운터에 들어갔다.
이대로라면 베기 전에 먼저 베이게 된다.
……하지만, '가면 검사'는 역시 '조' 이상의 실력을 가진 막강한 검사였다.
'가면 검사'라고 '조'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의도를 눈치채고, 그것을 역이용할 심산을 품고 있었다.
파직,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던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이 다시 한 번 추가적인 가속에 들어간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그것은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이 아니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가면 검사'의 전신을 휘어감은 마력의 색깔은 적색.
신체 능력을 한계까지 증폭시키는 천변무궁류의 제이검이 여기에서 시동한다.
천변무궁류?????
제이검?二?
적赤
혜성?
"……!!"
'조'에게 있어서도 전혀 예상에 없었던 일이었다.
제이검으로 가속된 신체 능력이 '가면 검사'의 몸을 한 발짝 빠르게 '조'의 지척으로 끌어들였다.
예상 밖의 공격이 치명타가 된다.
쿵!!
급격하게 초가속된 일격이 '조'가덮어쓴 가면을 후려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