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화 〉 17. 가면 검사 (9)
* * *
'조'와의 싸움까지 일주일.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꼼꼼하게 소모했다.
일주일 뒤, '조'와 싸우는 것은 내가 아니라 '가면 검사'이다. 따라서 '가면 검사'와 '조'의 싸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위기나 폐해. 변수 등을 고려해서 시뮬레이션하는 식으로 훈련에 들어갔다.
싸울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백신아는 여러모로 불리한 조건에 놓여 있다.
그 점을 상쇄하기 위해서 플랜을 여러 가지 세워뒀고, 그것을 현실에서 연습하면서 부족하거나 위험한 점을 하나씩 고쳐 나가는 작업이다.
결국 꼼수는 꼼수일 뿐이다. 통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서브 플랜을 준비해둘 필요가 있다.
"후."
나는 빈집촌의 공터에 서서 조용히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사방에는 검으로 베고 할킨 자국이 가득하다.
허벅지에 손을 얹은 채 호흡을 고른다.
"신아는 날이 갈수록 강해지는 거 같다?"
호흡을 고르고 있던 그때, 골목길 뒤에서 루이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팔짱을 껴서 가슴을 받친 자세로 그 자리에 서 있다.
벽에 기댄 채, 우리의 수행을 지켜보고 있다.
"지하 격투계에 몸을 던진 덕을 제대로 보고 있어. 그다지 강한 상대는 없었지만, 다양한 형태의 전투를 경험한 게 큰 도움이 된 거지."
아무리 신아가 우수한 가상 인격이라고 해도 검왕검 내부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것과 현실의 실전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제껏 알지 못했던 수많은 변화를 스스로의 검을 직접 경험하면서, 신아는 검술에 수많은 다양성을 더할 수 있었다.
백신아 본인은 재미를 크게 느끼지 못한 것 같았지만, 지하 격투계에서 획득한 경험은 모두 이 검술에 스며들어 있다.
그것이 실력의 증가로 이어졌다.
스페트로를 비롯한 다양한 고수들과의 충돌이 백신아를 강하게 만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거의 다른 사람 수준이다.
"흐음."
벽에 어깨를 기대고 있던 루이스가 상반신을 천천히 똑바로 세웠다.
뒷짐을 진 채 한 걸음씩 천천히 다가와서 가볍게 어깨를 부딪친다.
"일주일 뒤라고 했지? 그 사람과의 싸움이."
"지금 막 열두 시가 지나서 이제 6일 뒤야."
앞으로 6일.
* * *
하지만 만약의 사태는 대비해야 한다.
내가 생각했던 모든 수단이 틀어막히고, 백신아가 5분 안에 승부를 보지 못할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하니까.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준비한 플랜B가 스페트로와의 전투에서 사용했던 전략이었다.
백신아가 먼저 합을 맞춰보고, 안될 거 같으면 곧바로 내게 바톤을 넘길 준비를 한다.
그리고 백신아가 준비한 환경에서 내가 육체의 주도권을 돌려 받은 뒤 승부에 나선다.
부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아예 가능성을 배제하고 내버려둘 수는 없다.
"하지만 초신성은 안 쓸 거야. 위력 조절이 안 되는 기술이라 너무 위험해."
『그럼 검주께서 만들어낸 그 난무기로 승부를 봐야겠네요.』
"실전에서 쓰는 건 좀 두고 봐야겠어. 결국 그건 마그누스 대장을 쓰러트리지 못한 기술이니까. 1위에게도 당연히 통하지 않겠지."
'베기'를 거듭할수록 위력이 증가하는 특성상 계속 휘두르다보면 뚫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오망성의 궤적을 근간으로 삼아서 펼치는 만큼 루트를 읽혀서 반격 당할 가능성이 있다.
검은 존재에게 그 검술을 시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스페트로나 마그누스조차 넘어서는 또 한 사람의 초인. 다른 한 사람의 파비아가 그 자리에서 대부분의 리스크를 감당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대일의 실전에서 생각 없이 쓸 수 있는 기술은 아니다.
가볍게 스탭을 밟으면서 기술을 준비한다.
원리는 간단하다. 검을 휘두르면서 마력의 기류를 조종하는 천변무궁류의 특성을 살려서, 공격과 기류의 제어를 동시에 진행한다.
검술의 형태를 '베기' 하나에만 집중해서 변수를 줄이고, 하늘에서 보았을 때 오망성 형태가 되도록 궤적을 그려서 검술의 흐름을 안정.
천변무궁류의 난무기를 완성시킨다.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무게 중심을 정면 방향에 싣는다.
기술을 시작한다.
'베기'의 횟수가 거듭될수록 위력은 강해지고 속도는 빨라진다. 하지만 그때마다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져서 점점 나조차 감당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속도의 제어, 검을 휘두르는 타이밍, 관성과 중력의 계산.
이 정도의 속도를 반사 신경으로 제어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모든 행동과 휘두르기가 '선 입력 후 움직임'의 형태를 띄게 된다.
그 중 하나라도 실수하면 이렇게 된다.
"억?!"
삐끗, 하고 앞으로 내딛은 디딤발이 바닥을 잘못 짚었다. 그 순간 나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처럼 성대하게 바닥에 나자빠졌다.
하지만 관성과 속도는 그대로 살아 있었기 때문에, 나는 바닥에 나자빠진 상태에서 그대로 한참을 쭉 미끄러졌다.
그러다 벽에 부딪쳤지만, 이미 한계 이상의 속도로 가속했던 내 몸뚱이는 멈추지 않았다.
눈앞의 벽을 몇 개나 부수면서 그대로 질주한다.
"……윽, 아야야야……"
몸이 간신히 정지했을 때, 나는 천지가 뒤집어진 자세로 벽에 처박혀 있었다. 옷은 당연히 바닥에 쓸리면서 걸레짝이 됐다.
다행히도 크게 다친 곳은 없다. 부러지거나 금이 간 부위도 없는 거 같다.
걸레짝이 된 옷을 손바닥으로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과 같은 실수가 벌어진 이유는 내가 외팔이 상태이기 때문이다.
양팔이 다 있을 때와 비교하면 외팔이는 아무래도 차이점이 많다. 어느 한쪽이 우월하다는 말이 아니라, 무게 중심을 잡거나 관성을 받을 때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계산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살아온 가닥이 있어서 외팔이 상태가 아주 불편하진 않지만, 보다 고급스런 단계에 올라올 때마다 양팔일 때의 감각이 튀어 나와서 오차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건 수행하기도 영 마뜩찮다.
내 왼팔이 영구적으로 소실된 것도 아니고, 얼마 뒤면 다시 접합하게 될 예정이니까.
괜히 수련해서 외팔이의 감각을 잡아뒀다가 양팔로 돌아가면 또 다시 부조화에 시달리게 되겠지.
영 껄끄러운 부분이다.
어느 정도 감각만 다져두자.
고개를 위로 들었다.
또 하루가 지났다.
앞으로 5일.
* * *
"확실히…… 예전하고 비교해서 간결해진 느낌이야. 하지만 진짜 세진 거 맞아? 왜 별 차이를 못 느낄 거 같지?"
루이스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검을 바닥에 꽂아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현실에서 백신아와 겨뤄보고 싶다던 루이스의 의향을 들어준 결과다.
두 사람의 실력 차이는 너무나도 크다. 실력으로만 따졌을 때, 루이스는 백신아가 지금까지 겨뤄보았던 무술가 중에서 5위 권 안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하지만 백신아는 오히려 지금의 싸움에서 상당히 큰 만족감을 느낀 기색이다.
숨을 몰아쉬는데, 안면 근육이 상당히 느슨해져 있다.
「"역시 루이스 아씨와 겨루는 건 재미가 있다니까요."」
"그래……? 난 한 칼도 먹이지 못해서 좀 분한데."
내 몸을 차지한 백신아가 루이스의 손을 잡고 그녀를 일으켰다.
「"그래도요. 센스가 남달라서 검을 부딪칠 때마다 놀라는 게 일이라구요."」
"진짜로? 넌 은근히 칭찬에 헤픈 편이라 곧이 곧대로 믿기 어려운데."
이때, 백신아에게 주어진 5분의 시간이 끝이 났다.
내게 육체의 주도권이 돌아오면서, 백신아는 다시 검을 통해서 의견을 드러냈다.
「에이, 진짜래두요. 지금의 전 지하 격투계에 몸을 던지기 전과 비교해서 놀라울 정도로 실력이 늘었는데, 루이스 아씨는 예전의 저와 큰 차이를 못 느끼고 계시잖아요.」
"즉, 네가 강해진 만큼 나도 강해졌기 때문이라고?"
「네, 그런 식으로밖엔 설명할 수 없죠. 물론 제가 좀 봐드린 건 사실이지만.」
"못 믿겠는데……"
「최근 들어 자주 패배를 경험하다보니 사고방식이 좀 어두워지셨네요. 전 예전의 자신감 넘치는 루이스 아씨가 좀 더 좋았어요.」
백신아가 혀를 끌끌 차며 내 허리춤에서 몸을 흔들었다.
녀석의 진단이 정확했다.
자존심 높은 천재였던 루이스는 짧은 시간 동안 지나치게 많은 패배를 겪은 탓에 자신감이 한풀 꺾여 있는 상태였다.
어떻게 극복하긴 했지만 상처는 아직 남아있다.
백신아가 내 손으로 루이스를 일으키던 중이었기 때문에 나의 오른손은 여전히 루이스를 쥐고 있는 상황이다.
난 루이스의 손을 살짝 끌어당기며 말했다.
"됐어. 본인이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오히려 더 의욕이 날 테니까. 안 그래?"
"……당연하지. 난 끝까지 패배자로 남을 생각 없으니까."
루이스가 목에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4일.
* * *
"신현아."
"네."
"나, 오늘 좀 욕구불만인 거 같은데. 오늘치 수행은 다 끝났지?"
"네?"
수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연금술사에게 잡아먹혔다.
수행에 집중하느라 잠시 그녀에게 소홀했던 대가를 치르는 느낌이다.
평범한 여자라면 내 사정을 좀 봐줄 수도 있었겠지만, 연금술사는 태생부터가 배려와 거리가 있는 여자였다.
내 사정 따윈 전혀 생각하지 않고 내 허리 위에 올라타서, 제멋대로 엉덩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내나 극기 따위와는 요만큼도 인연이 없는 여자였다.
으, 아, 잠깐만, 기다려.
후우우…….
아, 앞으로 3일.
* * *
시합 하루 전에는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사실상 오늘이 마지막 연습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이 되는 만큼 평소보다 조금 더 힘을 실어서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오늘은 묘하게 피부가 반들반들한 연금술사도 내 수행을 도와줬다. 연금술사의 마법은 물리적인 파괴력은 천변무궁류보다 떨어지더라도 다양하게 유용하고 응용폭이 넓다.
불, 바람, 물, 바위 순으로 그녀가 던져주는 것을 검으로 걷어내면서 감각을 예리하게 만들었다.
또한, 그것만으로는 조금 모자라서 늘 하던 수행도 추가로 진행했다.
늘 하던 모든 수행을 끝마쳤을 때 즈음 되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미 충분한 수행을 거듭했음에도 나는 아직 체력이 남아 있었고 정체 모를 불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은 딱히 내가 수행을 어설프게 해서 나타난 감정이 아니다.
중요한 결전을 앞두고 있을 때는 언제나 이런 감정이 든다. 이걸로 충분한 걸까. 조금 더 빡세게 수행을 할 수는 없었을까. 지금의 실력으로 만족할 수 있는가.
준비는 아무리 해도 부족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감정을 부드럽게 털어낼 수 있어야 진짜 어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몸이 망가질 정도로 수행하는 것은 그저 고문일 뿐. 수행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그리고 애초에 이틀 후의 싸움의 주역은 내가 아니다.
주역은 '가면 검사'이고, 나는 '가면 검사'의 패배가 불가피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서 훈련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니까 조금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조'와의 싸움에서만큼은, 부디 내 수행의 성과를 보여줄 일이 없었으면 싶다.
온전히 '가면 검사'와 '조'만의 싸움으로 막이 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적과 실력을 겨루는 건 무술가에게 있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고 소중한 시간인데, 그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고 싶지 않았다.
그 날 밤, 정해진 수행을 넘어선 명백한 오버 워크를 끝마치고, 이미 충분히 육체를 소모한 상황임에도 나는 쉽게 눈을 붙일 수 없었다.
지금 막 시곗바늘이 밤 열두 시를 가리켰다.
앞으로, 하루.
* * *
'조'와 '가면 검사'의 대결은 회동이나 중요한 비무가 있을 때마다 쓰이는 콜로세움에서 이뤄질 예정이었다.
내게도 인연이 깊은 장소이다. 나는 이 장소에서 란즈 가주의 몸을 빼앗은 스페트로와 첫 전투를 치뤘으니까.
물론 뒷세계의 수법을 쓴 건 아니다.
이 콜로세움의 경우, 평시에는 그다지 쓰이는 일이 없음에도 관리비가 많이 나가는 편이라 충분한 대관료를 지불하면 얼마든지 대여할 수 있게 되어있다.
지하 투기장의 오너는 양지의 사업가 신분으로 콜로세움을 대여한 후, '가면 검사'와 '조'가 맞서 싸울 수 있는 무대를 마련했다.
관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모두 지하 투기장의 관계자들이다.
외부인이 출입하지 못하게 콜로세움의 입구에도 대관이라는 글자가 떡하니 붙어 있고, 검은 양복의 경호원들이 철저하게 감시 중이다.
이곳의 비밀이 세어 나갈 걱정은 없다.
"'가면 검사' 님. 출전할 준비를 해주십시오."
"……."
바로 오늘, 가면 검사는.
이제껏 쌓아 올린 무수한 승리의 기록 위에 또 한 번의 승리를 새겨 넣을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