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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47화 (147/287)

〈 147화 〉 17. 가면 검사 (4)

* * *

연말이 코앞이다.

옷 사이를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에 나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내가 백신아와 만난 게 여름 즈음이니까, 이제 반 년 정도 된 건가.

참 다사다난한 6개월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참 기가 막힌 일을 많이 겪었다.

촤악!!

지하 투기장에 내 발로 걸어들어간 이후, 한 달이 지났다.

가면 검사는 데뷔전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패배를 기록하지 않은 투기장의 유일한 선수였다.

시합과 시합 사이의 텀을 거의 두지 않고 매일 같이 투기장에 찾아가서 새로운 선수들과 검을 부딪쳤다.

그리고 가면 검사의 연승이 정확히 25승을 기록했을 때 즈음, 나는 남부 지방의 지하 격투계를 총망라하는 최강자가 되어 있었다.

대전 상대 중에는 양지의 사람들에게도 이름이 알려져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고수들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가면 검사 앞에서 5분을 버텨내지 못했다.

가면 검사는 따라올 자가 없는 절대적인 무적자였다.

문제는 싸우는 족족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다 보니, 이제 나와 시합을 잡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제피로스 지부의 고수들 뿐만 아니라 남부 지방의 타 투기장 소속 최강자들도 죄다 깨져서 돌아갔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되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달갑지 않은 휴일을 얻게 되었다.

한동안은 나오지 말고 쉬고 있으란다.

"너무 세니까 오히려 이런 불상사도 생기는 법이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루이스는 웃음을 터트렸다.

배를 잡고 웃다가 뒤로 넘어갈 뻔 했다.

하지만 사실 당연한 일이다.

백신아는 너무 지나치게 강하다. 음지에도 그 나름대로의 규칙이 존재하는데, 가면 검사는 그런 규칙을 송두리째 무너트리고도 남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음지가 품기에는 너무 거대한 존재였다.

「저도 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어요. 재미있긴 했는데, 너무 압도적으로 이기기만 하니까 슬슬 질려가던 참이라.」

"성가시기는……"

나는 질색하며 백신아의 검자루 부분에 꿀밤을 먹였다.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니까, 이젠 이러고 있다.

진짜 답이 안 나오는 놈이다.

제멋대로 구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기분이랄까.

「전 역시 검주하고 루이스 아씨랑 붙는 게 최고예요.」

"실력으로만 치면 우리보다 더 강한 음지 고수도 있었잖아?"

특히 그저께 맞붙었던 남부 지하 격투계 최강의 고수라던 남자는 상당히 뛰어난 실력자라서, 백신아도 조금 시간을 끌 수밖에 없었다.

5분의 제한 시간을 위협할 정도의 상대는 아니었지만, 지금의 나보다는 확실히 강한 상대였다. 아마 루이스보다도 셀 거다.

하지만 지금의 백신아의 상대는 아니었다.

백신아는 원래 가지고 있던 검술에 더해 음지의 다종다양한 무술과 맞붙을 때마다 그들의 장점을 흡수해나가면서 실력을 높인 상태였다.

천변무궁류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최강의 검술이지만, 현대의 검술과 천변무궁류 사이에는 200년 이상의 차이가 있다.

천변무궁류의 위상에는 흔들림이 없더라도, 꾸준히 발전해온 현대 검술에도 장점은 있었다.

음지에서 마주친 모든 검술을 흡수한 지금의 백신아는 스페트로와의 일전을 겪었을 때와 비교해도 놀라울 만큼 실력이 높아져 있었다.

「에이, 그건 그렇지만요. 그다지 재미는 없었어요.」

이건 반대로 말해서 그런 실력자와의 전투보다 우리와 맞붙는 게 더 재미있다는 의미인가?

도대체 왜지?

「검주도 알겠지만, 무술가는 실력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변수를 통제하는 능력이 늘어요. 애초에 고수라는 말 자체가 그렇잖아요. 수手가 높다고高 해서 고수高手니까요.」

"그런데?"

「고수들의 싸움일수록 변수가 적죠. 실력대로 정정당당하게 붙어서, 실력대로 승부가 나는 거니까요.」

그야,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실전이라는 것은 온갖 변수를 품고 있는 것이고, 그 변수 중 하나라도 놓치면 문자 그대로 목이 날아갈 수 있다.

때문에 고수의 전투는 그러한 변수를 줄여 나가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고수의 전투일수록 변수가 없다.

보다 확실하고, 변수 없는 수를 하나씩 짚어 나가면서 천천히 몰이사냥을 하듯 승기를 붙잡아 나간다.

「검주도 아시다시피 전 천변무궁류를 다루기 위해서 수를 읽는 능력이 특히 발달되어 있어요. 검을 좀 부딪치다보면 상대의 수법이 모두 보이는 수준이죠.」

"그래서 재미가 없다고? 훤히 보이니까."

「네. 공략법이 보이고 그 점을 찌르기만 하면 이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뭔가 좀 흥미가 안 느껴지더라구요.」

결국 스스로가 너무 똑똑하기 때문에 전투가 재미 없게 느껴진다는 소리다.

이유는 얼추 이해했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어이가 없다.

그 실력의 1/10이라도 나한테 좀 떼어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검주하고 루이스 아씨는 달라요. 같은 전술을 쓰는 경우는 한 번도 없고, 매번 새로운 전술과 변수를 가져와서 저조차 깜짝 놀랄 공격을 시도하죠.」

백신아는 힘 있게 단언했다.

「전 그런 게 진정한 강함이라고 생각해요. 그저께의 상대가 검주나 루이스 아씨보다 고수일 수는 있어도, 두 분은 그에게 없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나는 백신아의 말에서 루이스의 평소 지론이 떠올랐다.

삼류는 이길 수 있는 싸움을 지고, 이류는 이길 수 있는 싸움을 이긴다.

그리고 일류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이다.

백신아는 루이스와 비슷한 기준으로 재미를 구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검주. 어서 제 안으로 들어와서 한 판 붙어주세요. 역시 전 검주가 최고예요.」

검집에 담긴 백신아가 몸을 가볍게 흔들었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검왕검의 내부 공간에 돌입했다.

* * *

한 달.

나는 한 달에 걸쳐 빠져나간 체중을 다시 불리고, 줄어든 근육을 회복하느라 골몰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몸의 상태가 어느 정도 건강해졌을 무렵부터 연금술사는 나의 피를 뽑아서 잘려 나간 왼팔에 공급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내게 위험이 되지 않을 정도의 피를 뽑아서 잘려 나간 왼팔에 주사. 그리고 그때마다 검은색 액체에 잠식되어 있던 피부가 원래의 혈색을 되찾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다만 그때마다 검은색 용액도 끈질기게 저항하면서 버티려고 든다.

최종적으로 내 혈액이 검은색 용액을 누르기는 했지만, 가만히 놔두면 조금씩 영역을 회복하려 드는 게 보인다.

현재, 나의 왼팔은 절반 정도 혈색을 회복한 상태였다.

추세로 보았을 때 한 달 정도만 계속 피를 뽑아도 왼팔을 완전히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젠 대결 상대가 없는 거야?"

연금술사가 내 팔뚝에 꽂혀 있던 주삿바늘을 뽑아내며 질문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에 한 번 꼴로 가면 검사 차림으로 찾아가봤지만, 여전히 가면 검사에게 도전하려는 간 큰 인간은 없는 것 같았다.

가면 검사 이전에 지하 투기장의 최강자를 차지하고 있던 사람은 아예 은퇴를 해버렸을 정도라고 하니, 내가 생각해도 좀 지나치게 일을 벌인 감은 있다.

백신아도 이제 슬슬 질린다고 말할 지경이니까, 조금만 더 뛰다가 아예 은퇴를 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난 원래부터 음지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짧은 기간 동안 신명나게 놀고, 부수입으로 파이트 머니를 좀 챙긴 걸로 충분하다.

연금술사도 내게 돈을 걸어서 쏠쏠하게 돈을 벌었다.

묘하게 기구들의 퀄리티가 높아진 걸 보면 그 돈을 죄다 기구 사는 데 갖다바친 모양이다.

"사제사제. 요즘 들어 자주 외출하던데, 나 빼고 놀러 다니는 거야?"

파비아가 뒷세계에 대해서 알아봐야 좋을 게 없어서, 나는 투기장의 스케줄이 있을 때마다 파비아에게 적당히 핑계를 둘러댔었다.

파비아는 보기보다 호감 표시가 명확해서, 나한테 말을 걸 적에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가까이 다가와서 안기고 본다.

영 되먹지 못한 인간밖에 없는 내 지인 중에서 샤를로트와 함께 몇 안 되는 순수한 천사표다.

"한동안은 그랬었는데. 이젠 슬슬 그만하려고. 그래서 요 며칠 동안은 어디 안 가고 놀아주잖아."

"그랬지. 고마워, 사제!"

파비아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영혼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난 오른손으로 파비아의 머리를 문지르면서 고개를 돌렸다.

"근데 결국 그 진 노인하고는 한 번도 못 마주쳐봤어요. 지하 투기장의 스폰서 중 한 사람이라더니 생각보다 친밀한 관계는 아닌가봐요?"

"할아버지가 후원하고 있는 뒷세계 조직이 지하 투기장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런 규모의 부자라면 해야 할 일도 많고, 얼굴을 비쳐야 하는 거래처도 많겠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되도록이면 서로 얼굴은 안 마주쳤으면 좋겠다.

첫 만남부터 그다지 좋은 시작은 아니었으니까.

"그럼 투기장은 이제 그만두는 거야?"

"한 2주 정도 지켜보다가, 그래도 도전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때 그만두려고요."

"2주 기다린다고 해도 뭐가 달라질 거 같진 않지만."

"그거야 그렇지만요."

뛰고 싶어도 상대가 없으면 그만둘 수밖에 없다.

이제 남쪽 지방에는 가면 검사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실력자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니까.

더 기다린다고 해서 또 다른 대단한 실력자가 찾아올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고수는 드물기 때문에 고수인 법이다.

근시일 내에 대단한 고수와 마주치게 될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추억이 생겼다고 생각하자.

* * *

블랙 마켓으로 이어지는 건물 옆 골목길에서 나는 어깨에 붙인 의수를 떼어냈다.

제대로 된 기능이 붙어있는 의수는 아니다. 아무리 연금술사라도 단기간에 그런 걸 제작하기는 어렵다.

이건 그냥, 가면 검사의 정체가 특정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붙이고 다니는 물건이다.

가면 검사는 외팔이이고, 그리고 외팔은 생각보다 찾기 어려운 존재다.

블랙 마켓 측에서 외팔이 검사를 추적하다 보면 백신현에게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기 때문에 바깥을 돌아다닐 때는 어깨에 의수를 붙이고 다닌다.

나는 음지에 내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을 생각이었다.

의수를 떼어낸 후, 가면 검사의 얼굴로 건물에 들어선다. 이젠 블랙 마켓의 모든 사람들이 내 얼굴을 알아본다. 혜성처럼 등장해서 수많은 고수를 연파하고 지하 투기장의 정점에 선 남자. 그것이 바로 가면 검사다.

내 실력으로 얻어낸 명성은 아니라서 조금 껄끄럽다.

그래서, 오늘은 백신아와 실력을 겨뤄줄 수 있는 도전자가 있을까. 있었으면 좋겠는데.

직접 부딪치며 무술을 흡수하는 백신아 정도는 아니어도, 나 또한 음지의 검술을 경험하면서 검술의 저변을 넓혀 나가는 중이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된다.

음지의 무술의 상당히 다종다양한데다, 살상에 특화되어 있어서 모의 비무에서는 획득할 수 있는 경험치가 많다.

잘 다듬으면 내 실력 향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늘 그렇듯 관리실을 찾아간다. 그런데 어째 나보다 먼저 관리실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것은 나와 마찬가지로 가면을 쓴 남자와, 나와 다양하게 인연이 있던 초로의 노인이다.

가면을 쓴 쪽은 모르겠지만, 노인은 내가 아는 얼굴이다.

진 노인.

그가 관리실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노인의 시선이 나와 마주쳤다.

"박쥐 무늬가 새겨진 흰 가면. 아무래도 저 친구인 거 같군. 소문의 가면 검사가."

"……."

가면을 쓴 남자가 나를 향해 돌아선다.

그는 아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모습을 본 순간 나는 보이지 않는 압박감에 몸이 강하게 짓눌리는 느낌을 받았다.

강하다.

어쩌면, 백신아에 버금갈 정도로.

「……군침이 도네요.」

그리고 백신아는 이미 흉악한 미소로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군침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미소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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