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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40화 (140/287)

〈 140화 〉 16.5. 짐승의 발정기 (7)

* * *

"뭐야, 이거. 선생님이 너 가지고 다니라고 준 거 아니었어?"

애초에 내가 써도 효과가 없을 걸.

나하고 파비아는 종족도 미묘하게 다른 데다가, 남성에게는 전혀 효과를 볼 수 없는 물건이다.

파비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응. 이거 있잖아. 사제하고 같이 쓰고 싶어."

"……."

나는 가만히 있는데, 루이스 쪽에서 덜커덕 하고 소리가 났다. 순간적으로 발이 꼬인 거 같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 있지이……."

파비아는 어울리지 않게 붉은색으로 상기된 얼굴이었다. 다른 사람이 저럴 때는 별 생각이 안 드는데, 쟤가 저러니까 살짝 소름이 돋는 느낌이다.

물론 귀엽긴 하다.

귀엽긴 한데 음.

뭔가 있어서는 안 되는 현상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라서.

"어제 선생님하고 언니가 하는 거 보니까…… 무지 기분 좋아 보였거든……. 그러니까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어서!"

주먹을 앙다물고, 광이 나는 시선으로 날 올려본다.

나는 그 시선이 너무나도 눈부신 탓에 순간적으로 손을 들어 눈을 가려야 했을 정도였다.

"선생님은 사제한테 허락을 받으라고 했거든. 사제의 자유라고, 그렇게 말했어!"

"……."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린다. 마침 연금술사도 자기 이야기를 들은 탓인지 이쪽으로 시선을 향한 상태였다. 연금술사와 나의 시선이 절묘하게 마주쳤다.

나는 연금술사에게 입만 움직여서 질문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한 거냐고.

연금술사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얼굴로 대답했다.

"맞는 얘기잖아. 신현이 네가 내 소유물은 아니니까."

"아니, 그래도 그렇죠. 선생님은 찝찝하지도 않아요?"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내가 연금술사 입장이면 많이 짜증날 거 같은데.

내가 안은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안긴다고 생각하면.

하지만 연금술사의 표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다지?"

"선생님은 진짜, 늘 새롭게 사람을 기겁하게 하는 재주가 있네요."

이제 어느 정도 성격을 파악했다고 생각하면 또 전혀 다른 괴상한 일면을 보여준다.

애초에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 사람을 이해하려고 든 내가 잘못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가 그 아이랑 뭘 한다고 해서, 네게 그 아이가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되는 건 아니잖아. 그럼 전혀 신경 쓰지 않아."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어차피 네게 있어서 제일 소중한 사람은 나니까. 사소하게 일탈하는 정도는 봐줄 수 있다는 소리."

연금술사는 침대에 엎드린 채 두 다리를 접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마치 바다에 빠진 사람처럼.

"그 아이가 내게 위협적인 상대라면 나도 거기에 맞게 대응하겠지만, 난 저 아이에게 요만큼의 위협도 느끼지 않거든. 그래서 허락해주는 거야. 네가 저 아이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신경 쓸 생각 없어."

"……."

절대적인 자신감이 느껴진다.

내 안에서 파비아의 존재가 연금술사보다 커지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하고 있는 시선.

사실이기도 하고.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이지만 저 사람이 저럴 때마다 평생 당해낼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참, 진짜 삐뚤어져 있는 성격이다.

그리고 루이스는 연금술사의 그 말을 들은 순간,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고개를 옆으로 획 돌려버렸다.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루이스에게도 그녀의 말이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사제사제, 선생님은 저러시는데…… 사제 생각은 어때애……?"

"선생님이 저러신대도 난 솔직히 좀 싫은데."

"사제는 내가 싫어?"

"그런 식으로 물어보면 안 되지."

나는 파비아에게 가볍게 핀잔을 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좋냐 싫냐를 물어보면 당연히 좋아하는 쪽이지만, 그런 거하고는 별개의 문제잖아 이건."

파비아는 뒤에 이어지는 말은 전혀 듣지 않았는지, 내가 '좋아하는 쪽'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 눈을 반짝이며 꼬리를 살랑였다.

사람 말은 끝까지 듣자 좀.

연금술사는 신경 쓰지 않는다지만, 그건 그냥 연금술사가 괴짜라서 그런 거고.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꺼림찍하게 느껴지는 게 당연한 거다.

파비아에게 성교육 명목으로 보여준 것도 환장할 노릇인데.

"하지만…… 한 번 물어보자. 파비아 너, 나에게 부탁해야 할 정도로 발정기가 심각해?"

"응."

파비아의 대답은 그렇다. 하지만 솔직히, 파비아의 말은 신뢰는 하더라도 신용은 할 수 없다. 고개를 돌려서 연금술사에게 확인을 구한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꽤 심해. 어제 우리가 하는 걸 보고 쇼크를 받았는지 오늘은 좀 잠잠하지만, 어제까지는 손수건을 물어뜯거나 테이블에 다리 사이를 비벼댈 정도였으니까."

"그건 좀 심하네요."

진짜로.

"그렇게 해도 전혀 해소가 안 되는 거 같아. 일상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으음."

연금술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파비아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거의 다 시도해본 셈이 된다.

그런 방식으로도 해소가 되지 않는다면 이젠 정말로 수컷의 손을 빌리는 방법밖에 없을지 모른다.

현재 파비아가 알고 지내는 남자…… 수컷은 나 하나 뿐.

그리고 파비아 자신도 나를 요구하고 있다.

이거 큰일인데.

거부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냥 해주지 그래……?"

그때 루이스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시선은 아래를 향한 채, 꾹 다문 입술은 파도처럼 물결치고 있다.

"그 지하에서 파비아를 끌어낸 건 너잖아. 그렇다면 파비아가 지하에서 끌어올려진 탓에 발생한 온갖 불상사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셈, 그렇잖아……?"

"그건 맞는 소린데."

"맞는데……, 왜?"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게 좀 충격이라."

연금술사야 그렇다 치더라도 루이스가 저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비교적 정상적인 감성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틀린 걸까.

내가 실망한 티를 내자 루이스는 눈을 부릅뜨고 톡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나라고 뭐, 찝찝하지 않은 줄 알아……? 그런 거 아니거든……!?"

최근 들어서는 자주 보지 못한, 진지하게 화를 내는 얼굴이다.

아, 이건 내가 좀 잘못한 거 같다.

루이스 성격으로 이걸 허용했다는 게 어떠한 의미인지 좀 더 곰곰히 생각하고 입을 열었어야 했는데.

"그래, 내가 잘못했어. 루이스."

"……오늘만 특별히 넘어가주는 거야."

나는 루이스를 달래줄 생각으로 어깨에 손을 살짝 얹었다. 루이스는 그 손을 거부하지 않고 입술만 삐죽거렸다. 루이스 자신도 허락하기까지 심각한 내적갈등을 겪었던 것 같다.

그럼 음, 제일 걱정하던 문제도 해결됐으니까.

이제 시작하면 되나……?

"하는 건 좋은데."

그때, 지금까지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던 연금술사가 다시 한 번 이쪽을 봤다.

"할 거면 네 집에서 해 줘. 난 피곤해서…… 좀 자고 싶어."

연금술사는 자기 할 말만 끝마치고 그대로 돌아 누워버렸다. 이불을 돌돌 말아서 몸에 감은 꼴이, 꼭 나비가 되기 전의 번데기 같다.

그녀의 체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겨우 깨끗하게 치워놓은 공방을 다시 어지럽히는 것도 좀 그렇고.

그럼 이 다음부터는, 내 집에서 할까.

* * *

"자, 이쪽으로."

"으……."

나는 루이스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 파비아와 함께 공방을 나오면서 루이스도 같이 끌고 나왔다.

루이스는 보기보다 화가 오래 가는 성격이라 좀 더 달래줄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그냥 감인데, 루이스는 나하고 파비아가 몸을 섞는 걸 지켜보고 싶어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루이스를 한쪽 의자에 앉혀두고 이번에는 파비아의 손을 쥐었다. 파비아는 부끄러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얼굴로 나의 다음 행동을 기대하고 있었다. 눈동자가 너무 순수해서 그런가, 오히려 내가 부끄럽다.

파비아를 침대 시트 위에 앉힌 후, 나는 본격적으로 행위에 들어가기에 앞서 어깨에 손을 얹고 말을 걸었다.

"파비아, 지금 기분은 어때?"

"으음……. 기대되고, 콩닥콩닥대고, 부끄럽고. 복잡한 기분이야."

한 마디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는 중인가.

수치심을 모르는 것뿐,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 당연한 일이다.

"시작하기 전에 앞서, 파비아 네게 확실하게 못 박아두고 싶은 내용이 있어."

"나한테에?"

파비아가 고개를 갸웃한다.

"응. 지금부터 내 몸을 써서 네 발정기를 억제할 생각인데, 그 전에 네가 알아줬으면 하는 게 있어서."

"……."

파비아가 조용히 입을 다물고 내 말을 기다린다.

들을 준비가 된 거 같다.

"파비아, 지금부터 내가 너를 안는 건 어쩔 수 없어서 안는 게 아니야."

"……으응, 사제, 난 머리가 나빠서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

"아, 괜찮아. 언젠가는 이해하게 될 테니까."

난 파비아가 난처해하지 않도록 살살 달래가면서 말을 계속했다.

"계속 말해도 될까?"

"응응. 말해줘."

"지금부터 내가 너를 아는 건, 널 꼭 안아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 안는 게 아니야. 물론 너를 그 지하에서 꺼내온 내게 널 관리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는 소리야."

파비아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다.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이어 나간다.

"그 점을 제외하더라도, 넌 상당히 내 취향의 몸과 얼굴을 가지고 있어. 나도 네게 흑심이 아주 없었다고는 말 못해."

말하고 나서, 파비아의 몸을 다시 한 번 훑어본다.

개과 수인인 파비아의 몸은 인간 수컷을 흥분시키는데 최적화된 형태를 하고 있었다.

루이스보다 살짝 작은 키. 하지만 가슴과 엉덩이의 발전 정도는 거의 루이스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가슴 한짝의 크기가 거의 얼굴만하다.

피부는 밝은색. 뺨은 늘 홍조로 살짝 붉게 상기되어 있고, 뾰족한 송곳니가 난 이빨은 상당히 야성미가 넘친다.

삐죽삐죽 뻗친 상태로 등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은 꼭 동물의 갈기 같다. 전체적으로 갈색이지만, 그 끄트머리만이 검은색에 가까울 정도로 짙다. 개과 수인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전체적으로 제대로 된 남자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해도 모자랄 만큼의 미인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파비아의 가장 큰 매력은 이 커다란 눈동자다.

연금술사는 늘 눈을 반쯤 감고 다니고, 루이스의 눈매는 사납기 그지없는데 반해 파비아의 눈은 크고 둥글둥글해서 마치 순한 아기 강아지 같다.

나도 제대로 된 인간 남성인지라 솔직히 파비아가 스스럼없이 다가올 때마다 몸을 긴장으로 경직시키곤 했다.

파비아의 몸뚱이와 성격은 그야말로 상성이 최악이라고 볼 수 있다. 남자로 하여금 참기 어려운 유혹에 시험 받게 하니까.

"사제의 말이 너무 어려워서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제도 내가 좋다는 소리?"

파비아는 끙끙거리면서도 내 말을 해석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봐, 이런 식이니까 내가 최악이라고 한 거다.

이 미소를 지키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더럽히고 싶다는 욕망을 품게 만드는 위험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

나는 살짝 웃으며 파비아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래."

"선생님하고 루이스 언니보다는 아니구?"

"……그래."

"그럼 됐어."

파비아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

"므히히."

파비아는 내가 꽤 단언해서 대답했음에도 오히려 그 대답에 만족한듯 싱그럽게 웃고 있었다.

솔직하게 대답한 게 오히려 파비아를 기쁘게 한 건가? 그래도 보통은 상당히 기분 나빠해야 정상 아닌가?

이 녀석의 마음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사람과에 속하면서도 살짝 다른 영역에 걸쳐 있는 탓에 나와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내가 살짝 혼란에 빠져 있던 바로 그때, 파비아가 기습적으로 움직였다. 상반신을 앞으로 기울여서 단숨에 거리를 좁힌다.

"……."

순식간에 입술을 빼앗긴 나는 살짝 놀란 얼굴로 상반신을 뒤로 물리고 말았다.

"이히히. 사제사제, 깜짝 놀랐지?"

아무래도 나를 놀라게 하기 위해서 먼저 장난을 건 것 같다.

"그래, 깜짝 놀랐어."

"진짜로? 기분 좋다."

나는 파비아의 공격 성과를 제대로 인정한 뒤, 코와 입술을 그녀의 목덜미로 가져갔다.

입술로 살짝 깨물고, 빨아들인 순간 강하고 진한 체취가 훅 풍겨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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