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 16.5. 짐승의 발정기 (6)
* * *
어느 새 날이 밝아 있었다.
나는 루이스의 안에 삽입되어 있었던 음경을 천천히 뽑아냈다. 이때, 루이스는 골반을 비틀며 또 다시 신음 소리를 냈다.
지금의 루이스는 온몸이 성감대로 이뤄져 있는 것 같았다. 어디를 만져도 쾌락섞인 목소리와 함께 몸을 비틀어댄다.
음경을 뽑아낼 때의 반응 또한,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후─, 후─. 아……, 피임약…… 안 먹으면…… 윽, 진짜……, 어쩌면……"
루이스는 좌우로 벌어진 허벅지를 느릿하게 오무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루이스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연금술사의 경우, 침대 시트 위에 쓰러져서 시체처럼 꼼짝도 못하고 있다. 간신히 숨만 쉬면서 겨우 의식의 끝자락만 붙잡고 있는 것 같다.
헥헥 거리며 숨을 몰아쉬던 루이스가 내 목에 팔을 감았다. 상반신을 힘겹게 들어올려서 내 눈동자에 시선을 맞춘 뒤, 입술과 혀를 마구 문지르고 섞어댄다.
입술이 서로 떨어졌을 때, 루이스는 혀를 베 내민 상태로 음란하기 짝이 없는 숨소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오늘은…… 후, 여기까지……, 할까……."
"그럴까. 이제 아침이고."
좀 쉬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팔뚝으로 머리를 받쳐줬는데, 루이스는 환자에게 도움 받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다.
성질머리라고 해야 하나, 뚝심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이런 면도 루이스의 장점이다. 나는 무심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살짝 미소를 짓고 말았다.
입술이 엄청 튀어나온 루이스가 불만스러운 듯 볼멘소리를 냈다.
"무, 뭐야……."
"아니, 아무것도."
결국 나도 포기하고 루이스의 옆에 누웠다. 크게 지치지는 않았지만, 나 혼자 일어나서 씻으러 들어가는 것도 좀 매정해보이지 않을까 싶다. 루이스는 안 그런 거 같으면서도 은근히 이런 쪽에 신경을 쓰는 섬세한 성격이라.
침대의 왼쪽에 루이스가 누워 있는 데다가, 그 반대편은 연금술사가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라 결국 내가 누울 자리는 이 두 사람의 사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싫은 건 아닌데 조금 기분이 이상하다.
최근 몇 년 간 거의 변화 없이 멈춰있던 관계가, 어느 시점을 기해서 확 달라진 듯한 느낌이랄까.
이런 식으로 마구 박아대고, 싸지르는 관계가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게 참 신기하다 싶다.
"백신현."
"어, 왜?"
"일어나서, 씻자. 찝찝해."
"그럴까. 선생님, 저희 먼저 씻을까요?"
고개를 돌려서 연금술사에게 말을 걸었다. 침대 시트 위에 비스듬한 자세로 누워 있던 그녀는 힘겹게 고개만 움직였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체력이 부족한 그녀에겐 조금 힘든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연금술사의 뺨을 살짝 손끝으로 문지른 후 자리에서 일어난다. 흥분이 잦아든 탓에 음경도 힘을 잃고 축 늘어져 있다. 끝에서는 정액이 거품을 내며 뚝뚝 떨어진다.
그러던 중 파비아와 시선이 마주쳤다. 파비아는 내 하반신에 달려 있는 것을 보고 잠시 헛숨을 삼키더니, 이내 몸을 부들부들 떨며 시선을 돌렸다.
나도 성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납득하긴 했지만 역시 파비아에게는 자극이 강했던 것 같다.
좀 더 부드럽게 교육시킬 만한 방법이 없었을까.
난 성교육을 어떤 식으로 받았었지? 이제 와서 떠올리려고 하니까, 기억이 잘 안 난다.
"잠시만, 백신현."
욕실 앞에 멈춰선 루이스가 몸에 걸치고 있던 상하의의 타이즈를 뜯어냈다. 지금은 밤새 하던 와중에 뜯어지고 늘어나서 누더기나 다름 없는 상태다. 고쳐 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것들도 이제 슬슬 새로 사둬야 겠다. 너무 물쓰듯 써대서, 슬슬 바닥이 보이고 있어."
"그래?"
"남 일처럼 말하지 마. 너하고 하느라 뜯어서 버린 것도 많으니까."
루이스가 얼굴을 가까이 가져오면서 툴툴거렸다.
그건 따지고 보면 내 잘못은 아니지 않나? 물론 내 손으로 찢은 적도 많지만 태반은 루이스가 알아서 찢은 거였는데.
그런 심정을 담아서 빤히 쳐다본다. 루이스도 뜨끔한 부분이 있는지, 괜히 발끝으로 내 종아리를 살짝 살짝 건드리며 시선을 회피했다.
서로 알몸으로 욕실에 들어간 뒤 어느 정도 자리를 확보해서 씻기 시작했다. 하지만 욕실 자체가 조금 좁은 편인 데다가 두 사람 모두 평균에 비해 덩치가 커서 아무래도 조금 분위기가 답답하다.
좁은 욕실에서 낑낑거리며 조심스럽게 몸을 씻고 있는데, 문득 쪼그리고 앉아서 질 안에 유입된 정액을 배출하는 루이스의 모습이 보였다.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스스로 배를 누르면서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정액을 빼낸다.
그다지 특이할 것도 없는 광경인데, 신기하게 그걸 본 순간 묘하게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간신히 가라앉혀 두었던 음경에 다시 한 번 피가 몰리는 기분이 든다.
"……으, 뭐야. 왜 또 커지고 그래……"
완전히 커지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단단해진 음경을 루이스가 눈치채지 못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루이스는 제대로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너 진짜……, 지금까지는 어떻게 그렇게 금욕적으로 살았대……?"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사느라 상당히 고생해왔지."
루이스와 연금술사는 어마어마한 수준의 미인인데다, 나하고도 특히 친근한 사이였으니까.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성욕을 눌러왔는지 아마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다 지나간 얘기다.
루이스는 내 말을 듣고 할 말이 없어졌는지 무슨 사람을 벌레 보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럴 바에야 좀, 나한테 일찍 말했으면……"
"일찍 말했으면?"
루이스의 말이 나오다가 어중간한 지점에서 끊어졌다.
"'나한테 일찍 말했으면'…… 내가 일찍 말했으면, 뭘 어떻게 하려고?"
"……몰라. 뭐, 아무튼…… 그거 다시 커졌으니까…… 내가 작게 해줘야겠네……."
어떻게든 화제를 돌리고 싶어하는 게 여실히 느껴진다. 하지만 사실 루이스의 입에서 저만큼이나 말이 나왔는데 그 뒷내용을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다.
솔직하지 않은 것치곤 참 속마음을 알기 쉽다고 해야 할까.
이 점은 어릴 적부터 그랬지.
근본까지 삐뚤어진 성격은 아닌 탓이다.
엄지를 뻗어서 루이스의 입가에 가져갔다.
따로 손댈 필요도 없이, 루이스의 하복부는 이미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 * *
"───♥♥♥♥♥♥"
욕실 안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
연금술사의 공방은 방음이 전혀 안 되는 구조였다.
파비아는 그 소리를 들은 순간 다시 한 번 전신을 오싹오싹 떨어댔다. 끝난 줄 알았는데, 끝이 아니었다.
반투명한 유리 너머로 실루엣이 보인다.
루이스는 한쪽 다리를 들린 채, 박히고 있는 것 같았다.
"얘, 파비아."
"……읏!!"
갑자기 이름을 불려서 파비아는 다시 한 번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두려워할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연금술사가 침대에 누운 채, 고개만 돌려서 파비아를 보고 있었다.
"너도…… 밤새 보느라 고생했어……. 하지만…… 으음……, 이걸로…… 네가 알아야 할 건 다 알려줬다고 생각해……."
연금술사는 상당히 체력을 소모했는지 말 한 마디, 한 마디 토해내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눈은 이미 반쯤 감겨있고 목소리는 탁하다. 밤새 소리를 내지른 탓일까. 목이 쉬어버린 것 같다.
"……으, 으응……."
파비아가 거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콱 움켜쥔 오른손에는 아직도 연금술사가 쥐어준 피임약이 들어 있다.
"오늘 우리가 한 것처럼 하면…… 여자는, 암컷은 아기를 가질 수 있게 돼. 네 손에 쥐어준 피임약이 없다면…… 그렇게 될 거야……."
"꾸, 꿀꺽……."
파비아가 요란하게 침을 삼켰다.
"수인의 발정기는 꽤 짧다고 들었어. 하지만 지금의 너는 그 짧은 기간도 버티기 어려울 거야……."
"그, 그러면……"
그때, 파비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선생님이랑 루이스 언니처럼…… 사제에게 부탁해도 괜찮아……?"
"왜 그런 질문을……?"
연금술사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박였다.
"자, 잘은 모르겠지만…… 사제에게 부탁하면…… 서, 선생님하고…… 루이스 언니가 화낼 거 같아서……"
꼼지락 꼼지락, 검지를 서로 맞댄 채 문지르면서 질문한다.
파비아는 아직 일부일처제라는 단어와 의미를 모른다. 하지만, 사실 개과 수인은 수인 중에서도 상당히 드문, 일부일처제가 잘 이뤄지는 종족이다.
이 개과 수인 여자의 눈에 비친 백신현은 이미 연금술사와 루이스를 반려로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파비아가 신경 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연금술사는 파비아의 심리를 얼추 짐작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개과 수인을 보는 건 연금술사도 처음이라 조금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관심사는 딱 거기까지였다.
그녀는 깊이 생각하지 않은 얼굴과 목소리로 솔직하게 본심을 고백했다.
"난 그다지 신경 안 써. 네가 신현이에게 뭘 부탁하더라도."
"나라면 신경 쓰일 거 같은데에……"
"그건 네가 아직 어린애니까 그런 거야."
연금술사는 가볍게 일축했다.
실제 나이는 파비아가 아득히 연상임에도, 파비아는 연금술사의 말에 거역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신현이는 내 소유물이 아닌 걸. 내가 신현이의 행동을 강제할 수는 없어. 신현이가 하고 싶다면, 해도 상관 없지."
"그치만……"
연금술사는 더 할 말이 없는 듯 입을 닫아 버렸지만, 파비아는 아직도 연금술사의 말을 완전히 납득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귀찮은 듯, 연금술사는 졸음이 섞인 한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그리고 애초에 네가 신현이와 뭘 어떻게 하더라도 나보다 소중하게 여겨질 가능성은 없어. 그래서 신경을 안 쓰는 거야."
"……전혀어어?"
"응, 전혀."
터럭만큼도 의심하지 않는 시선이다.
그리고 연금술사는 이제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 없다는 듯 몸을 아예 돌려버렸다. 파비아에게도 최소한의 눈치라는 건 있어서 더 이상 연금술사에게 말을 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 하지만."
그때, 고개를 돌렸던 연금술사가 다시 파비아를 돌아보며 덧붙였다.
"루이스에게도 한 번 물어보는 게 좋을지도. 나하고 다르게 루이스는 아직 물러터진 면이 있으니까."
그게 끝이었다.
연금술사는 권태로운 목소리로 무거운 숨을 한 번 토해낸 후, 조용히 눈을 붙였다.
욕실에서는 아직도 신음 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었다.
* * *
침대에서 일어난 건 새벽이었는데, 씻고 뒷정리를 끝냈을 즈음에는 벌써 해가 중천이었다.
물론 욕실에서 참지 못하고 또 그 짓을 해댄 내게도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
나도 이젠 내가 예전에 뭘 어떤 식으로 해서 금욕적으로 살았는지를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뭘 어떻게 해서 참아올 수 있었던 걸까.
과거의 나는 어쩌면 내 생각보다도 대단한 놈이었을지도 모른다.
깨끗하게 정액을 씻어낸 연금술사는 새로 간 침대 시트 위에서 머리를 움켜쥔 채 끙끙대는 중이다. 루이스와 다르게 연금술사는 한 번 이 짓을 하고 나면 언제나 저런 꼴이다. 체력부족이 심각한 탓이다.
루이스도 안색은 안 좋은 편이지만 연금술사와 비교하면 제 다리로 걸어다닐 수는 있는 만큼, 확실히 낫다.
아직도 하복부가 아픈지 허리를 주먹으로 두드리고 있긴 해도.
아, 근데 그냥 아파서 그런 건 아닌가. 가만 보면 표정도 좀 어둡다. 가끔씩 얼굴을 손바닥으로 감싸쥐는 꼴이 매우 안쓰럽다.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루이스는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쥔 채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진짜 미쳤었나봐. 선생님도 아니고 쟤 앞에서 그런 짓을 하다니…….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파비아 얼굴을 못 보겠어."
아, 이제 와서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한 건가.
그런데 늦어도 너무 늦은 거 아닌가? 할 짓은 실컷 다 해놓고, 뭘 이제와서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
쟤도 참 희한한 성격이다.
한편, 파비아는 도대체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네 다리로 웅크리고 앉은 채, 고개만 길게 뻗어서 거리를 바라본다.
눈에 들어오는 뒷모습이 꼭 주인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좀 깊이 생각할 게 있는 것 같다. 귀를 접었다 펴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이따금씩 침만 꿀꺽 삼킨다.
아마 어젯밤 일을 두고 고민에 빠져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파비아였다면 아마 평생 잊지 못할 만큼 충격적인 광경이었을 테니까.
그런 방식의 성교육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솔직히 좀 궁금하기도 하다.
내가 먼저 말을 걸어볼까? 고민에 빠져 있던 바로 그때.
"사제, 사제. 사제. 사제."
"어."
파비아가 먼저 나를 부르며 가까이 다가왔다.
'사제'라는 표현이 매우 부르기 쉬운 탓인지, 파비아를 나를 호출할 때 한 번으로 끝나는 법이 없다.
최소한 세 번은 부르지 않으면 정이 없다고 여기는 것 같다.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렸는데, 갑자기 파비아가 왼손…… 앞발을 들어서 내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오른손을 내 손바닥에 포개듯이 겹친다.
잠깐만. 지금 뭔가를 쥐고 있는 거 같은데?
파비아가 내 손바닥에 뭔가를 쥐어주고 오른손을 떼어낸다.
뭔가 싶어 봤더니, 종이로 감싼 환약이었다.
"뭐야, 피임약?"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연금술사가 늘 쓰던 피임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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