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 16.5. 짐승의 발정기 (2)
* * *
킁킁, 킁킁, 파비아는 정체를 모르는 물건을 봤을 때 일단 냄새부터 맡고 보는 버릇이 있었다.
위치는 백신현의 오른쪽 허벅지. 헐렁한 바지의 천 아래로, 유독 눈에 띄게 돌출되어 있는 두꺼운 살덩어리가 하나 있다.
그 존재는 조금 전부터 신경 쓰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함께 빈집촌의 옥상을 넘나들던 그 순간부터.
가만히 서 있을 때는 눈치채기 어렵지만 불현듯 바람이 불어와서 바지가 피부에 밀착되기라도 하면 그때마다 바지 아래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때는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 크고 두꺼워서 존재감이 강하다.
잘못 본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크기가 두꺼워진 듯한 느낌이 든다.
크고, 두껍고, 그리고 열기가 느껴진다.
심장 박동처럼 강렬한 고동 소리도.
킁킁, 킁킁, 파비아는 그 돌출된 부분에 호기심을 가지고, 조용히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바지 속에 숨겨진 상태임에도 그 냄새는 몹시도 강렬해서 파비아는 한 순간 눈앞이 아찔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매우 지독한 냄새였다. 찝찝하고 고약하고, 그럼에도 쉽게 코를 떼지 못하게 하는.
파비아에게 그 모순적인 감각을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은 없었지만, 그 본질은 이해하고 있다.
지독하다고 느끼면서도 코를, 눈길을 떼지 못한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
두꺼운 천의 너머, 그 안에 숨겨진 냄새와 열기의 정체를 알고 싶다.
"……파비아?"
연금술사는 파비아의 모습을 조금 늦게 봤다. 잠시 돌아서서, 백신현의 몸을 살펴보기 전에 준비해야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준비를 끝마치고 돌아선 연금술사의 시선에 파비아의 모습이 비쳤다. 그리고 곧바로 파비아가 백신현의 하반신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누워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하반신에 돌출된 그것은 너무나도 눈에 띄었다.
연금술사는 대처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한 후, 파비아의 어깨를 손끝으로 가볍게 건드렸다.
"파비아. 자고 있는 아이를 함부로 건드리면 안 돼. 다시 깰 수 있거든."
"가우우……."
파비아는 이제야 눈이 뜨인 듯한 얼굴로 흠칫했다. 연금술사의 말을 이해했는지, 네 다리로 슬금슬금 물러나면서 백신현으로부터 거리를 둔다.
"왜 그랬어? 무슨 신경 쓰이는 거라도?"
"저, 저거어……."
아직 파비아는 존댓말의 개념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까마득한 연하인데다, 실제로 사제이기까지 한 백신현에게 예의를 차리던 또 한 사람의 파비아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파비아는 오른손을 들어서 부자연스럽게 부풀어 있는 백신현의 오른쪽 허벅지를 가리킨다.
연금술사는 파비아의 시선으로 이미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던 탓에 크게 놀라지 않았지만, 본인의 입으로 들으니까 상당히 묘한 기분이 든다.
"하긴, 본 적이 없을 테니까……."
연금술사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듯한 파비아의 턱을 간질어주면서 중얼거렸다.
줄곧 연금술사에게 맡겨져 있었던 파비아에게는 아무래도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일 수밖에 없다.
그녀는 파비아를 어떤 식으로 이해시켜야 할지 잠시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파비아가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은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나, 나…… 몸이 좀 이상해……. 가슴이 콩닥콩닥 거리고, 얼굴도 뜨거워……."
"가벼운 흥분 증세……? 아냐, 이거 혹시."
연금술사의 머릿속에 발정기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간다.
인간에게도 드물게 존재하는 현상이지만 짐승의 유전자를 보유한 파비아의 경우, 그 변화가 좀 더 강렬하고 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는 파비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나갔거나, 계기가 없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제대로 된 수컷이 눈앞에 있다 보니 조금씩 흥분하기 시작한 것 같다.
어쩌면 좋을까. 연금술사는 고민에 빠졌다.
연금술사도 개과 수인의 육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발정을 억제하는 약을 제작하려고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은 필요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개의 선택지를 하나씩 천천히 통찰한 후, 우선 연금술사는 파비아에게 지금의 상황을 인식시키기로 마음 먹었다.
파비아를 백신현에게서 잠시 떼어낸 후 그녀의 의문점을 하나씩 풀어주기 시작한다.
"일단, 첫번째 질문에 대한 해답부터."
"우."
"저건 음경이라고 해서. 남자…… 수컷에게 달려 있는, 오줌이 나오는 구멍이야. 너하고 나에겐 달려 있지 않은 거지."
"남자는 다들 저만큼 큰 거야?"
"그런 건 아냐. 신현이가 특별하게 큰 거."
의미를 이해했는지 파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번째. 지금 네 몸이 이상한 건, 아마도 수인 특유의 발정기가 왔기 때문이야."
"발……, 정……?"
"아마 지금 너는 몸이 뜨거워지면서 여기가 쿵쿵 울리고 있을 거야."
파비아의 하복부를 손끝으로 척 가리킨다. 연금술사는 완곡하게 돌려서 말하는 법을 모르는 여자였다.
현재 자신의 상황을 연금술사가 상당히 정확하게 짚어냈기 때문인지, 파비아는 격하게 공감하는 듯 고개를 더 빠르게 위아래로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네가 수인이라서 겪게 되는 건데, 아마 며칠 동안 얌전히 있으면 곧 몸이 가라앉게 될 거야. 계속 지속되는 상태는 아니니까."
"그, 그럼 그때까지…… 여기가 근질근질한 걸 참고만 있어야 하는 거야……?"
"응."
연금술사의 차가운 한 마디에 파비아의 안색이 상당히 안 좋아졌다.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얼굴이다.
"그, 그렇지만 나, 나 도저히 못 참을 거 같은데……. 도대체 왜 나만 이런 걸 겪는 거야……? 어, 어째서……?"
"그건 아기를 만들기 위해서야."
"아기이……?"
"응. 발정기가 오면 아기를 만들기 쉬워지거든. 애초에 그러라고 있는 신체 기능이니까."
이 시점에서, 파비아의 눈은 이미 과도할 정도로 유입된 정보에 의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연금술사는 한 번 입을 연 김에 아예 끝을 볼 생각이었는지, 파비아가 의문점을 제시할 때마다 꼼꼼하게 설명했고, 두 번 세 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가며 파비아에게 주입시켰다.
그러나 지식을 주입하는 게 곧바로 이해로 이어지진 않는다.
실제로 파비아는 지식을 배우는데 있어 필수적인 과정을 여러 개 건너뛴 탓에 지식만 머릿속에서 안개처럼 뭉게뭉게 떠도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고추, 발정기, 임신, 아기, 성기…….
한 번에 기억하게 된 단어는 많지만 그 상관 관계를 올바르게 파악하기가 어렵다.
현기증 걸린 사람처럼 머리를 그 자리에서 휘청휘청 거리고 있던 파비아가 간신히 균형을 잡은 후, 말을 떠듬거리며 다시금 연금술사에게 질문했다.
"나,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왜 갑자기 이런 일을 겪고 있는 거야……?"
"아마도 저거 때문일거야."
연금술사가 검지로 부자연스럽게 부풀어 있는 백신현의 허벅지를 가리켰다.
파비아의 눈이 연금술사의 검지를 따라 슥 움직이고, 허벅지 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길고 두꺼운 것을 본 순간 얼굴이 확 붉어졌다.
"신현이는 우수한 수컷이니까. 너도 지금까지 잠잠하던 게 갑자기 스위치가 들어간 거겠지. 그렇지만 신현이에게 손대면 안 돼. 자고 있는 사람을 건드리면 예의가 없는 거야."
연금술사는 파비아에게 주의사항을 단단히 일러둔 후 백신현의 뺨과 이마에 전극과 부적을 붙이기 시작했다.
파비아에게 때아닌 강의를 들려주느라 조금 시간이 지체되긴 했지만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다.
백신현은 정확히 한 시간 뒤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
* * *
진짜 제대로 숙면을 취한 느낌이다.
머리는 맑고, 눈은 또렷하고, 세상은 아름답고 귓가에서는 새소리가 감돌고…… 아무튼 그 정도로 잘 잤다는 소리다.
연금술사의 약은 효과가 매우 죽여줬다.
모처럼 크게 개운함을 느끼고 침대에서 일어나려다가 멈칫했다.
몸 상태도 예전에 비해서 많이 안 좋고, 아직도 쑤시는 곳이 있을 정도이지만 희한하게도 하반신은 여전히 건강함을 과시하고 있다.
이 상태로는 못 일어난다. 일어날 수도 없고.
황급히, 부풀어오른 모습이 티가 나지 않게 자세를 고쳐잡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너무 커서 여기저기 걸리는 부분이 많은 탓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금술사와 파비아는 그 꼴을 바로 가까이에서 보고 있었다.
이제 와서 속이려고 해도 전혀 효과가 없을 거 같다.
아, 일단 인사부터 해야지.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연금술사와 파비아를 한 번씩 돌아본 후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어, 안녕하세요, 선생님. 파비아."
"응, 기분은 어떻지?"
"많이 개운해요. 제대로 푹 잤네요."
"몸 상태는?"
"몸은 괜찮아요. 사실 요 며칠 동안은 잠을 잘 자고 있거든요. 신아하고 회포도 풀었고."
사실 수면유도제를 처방받을 필요까지도 없었다.
신아와 균열난 관계를 어느 정도 수복하면서 검왕검 내부에서의 수련도 다시 시작했으니까.
잠들기 이전에도 컨디션은 무척 좋은 편이었다.
"하긴, 내가 보기에도 꽤 컨디션이 좋아진 거 같아."
"하반신을 보지 말아주실래요? 부끄럽거든요."
아무리 우리 사이라지만, 그래도 너무 대놓고 보는 건 그렇다.
아니, 연금술사야 그렇다 치더라도 파비아는 좀 말려야 하는 거 아닌가. 교육에 안 좋을 거 같은데.
연금술사 뿐만 아니라 파비아까지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까, 영 시선이 간질간질해서 견디기가 어렵다.
읏, 젠장. 시선 때문에 그런가. 더 안 가라앉잖아.
"신현아. 백신현."
"네, 선생님."
"최근 들어 일이 너무 바빠서, 너도 전혀 성욕을 처리하지 못했지?"
순간적으로 파비아를 앞에 두고 해도 되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귀를 접은 파비아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얼굴로 침을 삼키고 있었다.
나는 표정을 찡그리면서 대답했다.
"네, 뭐…… 선생님은요?"
"나도 그럴 여유가 없었어. 네 상태가 심각해서 돌보느라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도 않았거든. 하지만 이제 여유가 좀 생기니까, 몸이 좀 쑤시는 기분이 드네."
"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연금술사가 허벅지를 살짝 가리는 짧은 원피스의 끝자락을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
"오늘 스케줄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지 말고 여기로 와 줘. 나도 널 치료하느라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서…… 오랜만에 좀 해소하고 싶어."
그 직후, 한쪽 눈을 감으며 덧붙인다.
"루이스도 꼭 같이 데리고 오고."
* * *
하루 일정을 마치고 돌아보니, 이미 해가 떨어져 있었다.
해가 짧은 계절이었다. 추위도 조금 심해져서 옷을 두껍게 껴입을 필요성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 뒤에 선 루이스는 지금부터 벌어질 일을 상상하고 있는지, 오른손으로 팔뚝을 잡은 채 시선을 피하고 있다. 호흡이 조금 거칠다.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한 것 뿐인데도 루이스는 이미 상황을 짐작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대놓고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않고 얼굴만 붉히고 마는 게 이전과의 차이점이다.
루이스도 조금씩 변하고 있는 걸까.
이게 좋은 변화인지는 알 수 없지만, 루이스는 늘 그렇듯 자신의 코어에 나의 마력을 흡수시킨다는 변명 아래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미 루이스의 코어에 남아있던 나의 마력은 오래 전에 바닥을 드러낸 상태인 만큼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루이스가 검왕검 내부의 공간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나의 마력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으니까.
하지만 긴장되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연금술사의 의도는 알겠지만, 이 문 너머에 도대체 무슨 광경이 펼쳐져 있을지 전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루이스의 손목을 잡고, 심호흡을 한 번 반복한 후 열쇠를 집어넣어서 잠금을 풀었다.
문이 열린다.
"아, 두 사람 모두 어서 와."
흰 가운을 벗고 검은 원피스 차림의 연금술사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평소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머리에…… 머리카락 색깔과 같은 붉은색 귀가 달려 있었다. 파비아의 것과 완전히 같은 모양의, 강아지의 귀가.
뭐지?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천국에 떨어지기라도 한 건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