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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31화 (131/287)

〈 131화 〉 16. 각성 (7)

* * *

잠을 못 자고 있다.

또, 삼일 째.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털어내고 물을 꺼내서 마신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

아직 해가 보이지 않는 이른 새벽.

나는 왼팔의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 * *

"요즘 잠을 잘 못자? 안색이 말이 아닌데."

"아, 뭐."

늘어져라 하품을 했더니 루이스가 관심을 보였다.

요 근래 들어 자주 이런다. 아무래도 수면 부족이 심각한 탓이다.

피곤해서 눈을 붙이면 한두 시간도 잠들지 못하고 눈이 뜨이고, 다시 눈을 붙여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거의 아침까지 뜬눈으로 지새는 일이 잦아져서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안 좋다.

"혈색도 안 좋고 창백한 거 보니까. 꼭 흡혈귀 백작 같은데."

"선생님도 그 소리 하더라."

지금까지 잘 몰랐는데, 혹시 내가 그런 쪽 이미진가?

테이블에 앉은 채 거울을 향해 돌아본다. 얼마 전과 비교해서 조금 마른 얼굴에 창백한 피부.

하지만 역시 나는 잘 모르겠다.

흡혈귀 백작 같다는 건 도대체 무슨 소리야.

나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거울 속의 나도 갸웃했다.

"그 꼴로는 피 뽑고 싶어도 못 뽑겠다. 갑자기 픽 쓰러질까봐."

"난 빨리 뽑고 싶어서 철분 위주로 먹고 있는데."

미간을 찌푸리면서 대답한다.

연금술사의 공방은 이제 우리의 아지트나 다름 없었다. 이젠 특별한 일이 없어도 그녀의 공방에 모여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집 주인은 지금 이 자리에 없다. 연금술사도 지금의 내게 심부름을 맡길 정도로 막무가내는 아니라서 필요한 재료를 구입하러 직접 시내에 나가 있었다.

그 필요한 재료는 당연히 내 상태를 검사하고, 호전시키는데 필요한 재료들이다.

그녀답지 않은 지극정성에 눈물이 나올 거 같다.

현재, 그녀의 공방에 있는 건 나와 루이스, 그리고 테이블 옆에 늘어져라 잠들어 있는 파비아 뿐이다.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는 지금의 모습을 보면, 그녀가 진짜 그 검은 존재와 호각으로 맞붙었던 괴물이 맞나 싶다.

천사와 악마가 한 자리에 같이 들어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가우우우?"

그러다 갑자기 파비아가 눈을 떴다. 그리고 내 얼굴을 확인한 직후 낑낑 소리를 내면서 루이스의 뒤로 슬금슬금 기어가서 숨어버린다.

나를 사제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굴었던 파비아의 본래 인격과는 다르게, 지금의 파비아는 상당히 내게 겁을 집어먹은데다, 또 적의까지 품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래도 내가 파비아를 쓰러트리고, 거기다가 마력까지 봉인시킨 거 때문에 그런 거 같은데.

따지고 보면 내가 파비아의 마력을 묶어둘 수밖에 없었던 것도 쟤가 먼저 나한테 달려들어서 그런 건데, 참 어이가 없다.

하지만 나도 저렇게 나를 꺼려하는 사람하고 굳이 친해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크게 신경은 안 쓴다.

아, 그래도 최근 들어서 파비아가 좀 달라진 점은 있다.

"루이, 루이스. 루이스 언니."

한참을 떠듬어 가며, 파비아의 입에서 간신히 루이스의 이름 석 자가 튀어나왔다.

얼마 전에 본래 인격이 눈을 뜬 탓일까. 현재의 파비아의 인격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입만 열면 가우우아 하고 갸르릉 거리는 것밖에 모르던 파비아의 입에서 조금씩 제대로된 언어가 튀어 나오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평범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루이스는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조금 놀란 듯한 얼굴을 보인 뒤, 가까이 다가온 파비아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특히 말랑말랑해보이는 머리의 강아지 귀가 루이스에게 큰 만족감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같이 한바탕 주먹질한 건 너나 나나 똑같은데, 왜 나한테는 이러고 너한테는 그러는지 모르겠네. 역시 직접 마력을 봉인시킨 게 치명적이었을까?"

"아마도."

나하고 루이스의 차이점은 그거 뿐이니까.

"신현이 너는 친해지고 싶은 생각은 없어?"

"쟤가 나를 피해 다니는데 내가 그럴 필요가 있나? 신경 안 써."

어차피 중요한 건 지금의 인격 아래에 잠들어 있는 파비아의 진짜 인격이다.

광기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둘러친 가짜 인격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다.

하물며 저 정도로 나를 꺼려 하는데, 굳이 노력해서 가까이 다가갈 필요가 있을까.

루이스는 가볍게 한숨을 들이쉰 뒤, 가까이 다가온 파비아의 귀를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파비아 너는 왜 신현이가 그렇게 싫어? 싫어하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가우우."

아, 저게 파비아에게는 신음 소리 같은 거다.

신음을 내면서 한창 고민 중이라는 증거였다.

"내, 내 코어를 봉인했을 때…… 마, 많이 아팠어……."

"그렇다는데?"

"그때는 어쩔 수 없었지. 엄연히 쟤가 먼저 나한테 손을 댔고, 그런 시한 폭탄 같은 녀석을 아무런 조치도 없이 바깥에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잖아."

지금이야 많이 안정도 되었고, 인격도 어느 정도 확립된 상태이지만 그때의 파비아는 말 그대로 제어가 안 되는 야생동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런 존재를 아무런 조치도 없이 사회에 풀어놓거나, 내 주위 사람에게 다가가도록 할 수는 없었다.

그때 그 자리에는 파비아보다 약한 연금술사와 샤를로트도 있었다.

마땅히 해야만 하는 조치였다.

하지만 그 말을 납득하기에는 아직 파비아의 정신이 완전히 성숙한 상태가 아닌 것 같았다.

그 말에 거부감을 느끼고, 다시 한 번 루이스의 뒤로 숨어버린다.

실제 나이로 치면 나보다 아득하게 연상이지만, 행동거지만 보면 무슨 진짜 어린애 상대하는 느낌이다. 논리적인 설명이 안 통하고, 무조건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게 특히.

샤를로트도 저러지는 않을 거다.

에이 뭐, 마음대로 하라고 그래라. 나도 저렇게까지 하는 상대에게 굳이 친해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피차 감정 소모만 할 게 뻔하다.

"생각해보니까 신현이 너는 옛날부터 동물한테 인기가 없었지."

"그건 그랬지. 근데 수인 여자도 동물로 쳐야 하는 거야?"

고양이에게 손을 대면 바로 앞발로 할퀴어지고, 강아지는 자꾸 날 물어 뜯으려고 그러고.

천성이 그런 건지, 아니면 동물들 눈에만 특별하게 보이는 게 있는지, 나는 예전부터 묘하게 동물들에게 미움 받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내가 동물을 그렇게 싫어하는 편은 아니라서 그때마다 묘하게 상처 받게 된다.

하지만 파비아는 내가 좋아하는 진짜 동물도 아니고, 어중간한 수인 여자일 뿐이라 그다지 흥미는 안 생긴다.

귀는 말랑말랑해 보이지만.

"아, 나도 이제 슬슬 나가볼 시간이다."

"일이야?"

"응, 선생님이 부탁한 일. 멀리까지 나가서 가져와야 하는 물건이 있어서."

루이스가 스스로의 왼팔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네 왼팔. 못 붙이게 될 가능성도 염두해야 하잖아. 그때를 대비해서 아예 새로 돋아나게 하거나, 아니면 의수를 달 수 있도록 재료를 준비해두려는 거야."

"아, 하긴."

내가 지금 왼팔을 붙이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왼팔 자체가 잔뜩 유입된 검은 마력에 의해 오염된 탓이다.

그 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내 혈액을 지속적으로 뽑아서 주입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지만, 잘 풀리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때를 대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고려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루이스가 살짝 웃으며 말했잖아.

"네 왼팔을 잘라버린 건 나잖아? 나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

"그럴 필요 없는데."

거기서 루이스가 내 팔을 자르지 않았더라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루이스는 하나도 잘못하지 않았다.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했을 뿐.

하지만 루이스는 그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파비아가 끙끙 거리며 루이스를 불렀지만, 녀석은 손만 살짝 흔들고 사라졌다.

공방에는 순식간에 나와 파비아만이 남아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

하지만 그 직후, 닫혀 있던 문이 다시 열렸다. 뭐야, 두고 간 게 있었나? 내가 고개를 돌리자 루이스는 문틈으로 고개만 빼꼼 내민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맞다, 참. 신현이 너 돌봐줄 사람 불러놨으니까. 아마 곧 올 거야. 그러니까 나 없다고 너무 편한 옷차림으로 있으면 안 된다?"

"사람까지? 그럴 필요는 없는데……"

"네가 아는 사람이니까 너무 신경 안 써도 괜찮아."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눈을 깜박거리며 대답한다.

아니, 그래도 필요 없는 건 마찬가진데. 그러면 진짜 꼭, 내가 무슨 환자 같잖아.

아, 환자는 맞지 참.

한쪽 팔이 아예 떨어져 나간.

루이스가 다시 한 번 문을 닫고 나간 뒤,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꼭 따돌림 당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하다.

그 상황에서 팔 하나 자르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천운에 가까운 일이지만.

이거, 억울해서라도 빨리 회복해야지 안 되겠다.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이리 저리 고개를 움직이다가 파비아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파비아는 나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곧바로 고개를 획 돌려 버리고 말았다.

몸이 흠칫 흠칫 떨리는 거 보면 내가 진짜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것 같다.

어색하다.

책이나 읽을까.

연금술사의 공방에 있는 서적은 한 번씩 다 읽어 봤지만, 다시 읽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지식으로 가득 차 있다.

거의 연금술사의 제자나 마찬가지인 나는 그녀의 전문분야 대부분에 죄다 발을 걸치고 있었다.

오늘은 뭐가 괜찮을까. 마음 속에서 흥미를 저울질하고 있던 바로 그때, 문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루이스가 노크를 할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루이스가 불러온 날 돌봐준 사람이 아닐까 싶다.

도대체 누구지? 나와 루이스가 동시에 알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그런 사람 중에서 나를 돌봐줄만한 생활력을 가진 사람을 추려내면 답은 쉽게 나온다.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까 조그만 체구의 소녀가 보인다.

머리에 후드를 쓴, 수녀 차림의 샤를로트였다.

"어, 오랜만이야. 신현 씨."

샤를로트가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수녀처럼 후드를 쓴 샤를로트는 긴 금발을 아래로 내려서 끝 부분을 양갈래로 묶고 있었다.

이 모습도 꽤 사랑스럽다.

샤를로트가 들어올 수 있게 자리를 비켜주면서 말을 걸었다.

"이야기는 들었어. 내가 쓰러진 동안에 병문안 왔었다며?"

"아, 응……. 올리비아가 나를 데리러 왔었어."

나는 원래 올리비아와 계약해서 주기적으로 샤를로트를 찾아가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근래 보름 동안 완전히 의식을 잃고 기절해 상태였고, 올리비아는 그 기간 동안 샤를로트를 데리고 병문안을 한 번 찾아온 것 같았다.

샤를로트는 보폭이 좁은 발걸음으로 공방에 들어선 후,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의식을 찾았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직접 보니까 더 안심이 된다. 다행이야 신현 씨. 무사히 회복한 거 같아서 기뻐."

"아, 고마워."

샤를로트의 시선이 한 순간 왼팔이 없어진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녀석은 그것도 실례라고 느꼈는지 아예 옆으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나이에 비하면 확실히 조숙한 느낌이다.

올리비아의 업적일까, 가정 교육 하나는 제대로 시킨 거 같다.

샤를로트는 나를 보며 살짝 웃은 뒤, 곧장 테이블 아래에 앉아 있는 파비아 곁으로 다가갔다.

쪼그리고 앉아서 파비아와 시선을 맞춘다. 오른팔에 걸려 있는 나무 바구니에서 납작한 육포 같은 것을 꺼내서 슥 내민다.

"파비아도 안녕. 이건 네게 주려고 사온 선물."

"샤를로트!"

파비아가 껑충 뛰어서 그대로 샤를로트에게 달려들었다.

덩치가 덩치인 탓에 샤를로트는 그대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파비아는 그 와중에 힘 조절을 했는지 샤를로트도 그다지 힘을 들이지 않고 파비아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반사적인 행동으로 파비아를 품에 안긴 했지만 샤를로트는 깜짝 놀란 얼굴이다.

"어? 파, 파비아. 지금 내 이름을 부른 거야?"

"샤, 샤를, 샤를로트. 안녕."

파비아가 헥헥 거리며 꼬리를 흔들었다. 샤를로트는 파비아에게 안긴 상태로 고개만 돌려서 나를 돌아봤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갑자기 언어 기능을 회복한 거 같더라고. 조금 더듬거리기는 해도 멀쩡히 말할 수 있게 됐어."

"그렇구나. 신기하다……."

샤를로트가 파비아의 뒷머리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어준 뒤 살짝 떼어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육포를 파비아의 입에 가져간다.

피바아는 샤를로트의 손가락을 물지 않도록 조심조심해서 육포를 입에 물었다.

샤를로트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것 같았다.

"근데 샤를로트 너는 그렇게 막 수녀원에서 자주 나와도 괜찮아? 눈치 안 줘?"

"아…… 괜찮아. 나 지금 정식으로 요청을 받고, 절차를 밟아서 나온 거니까."

"요청?"

"응. 수녀원도 모험가 길드처럼 봉사활동 개념으로 의뢰를 접수 받는데…… 오늘 나는 환자를 돌보는 봉사활동을 위해서 바깥으로 나온 걸로 되어 있거든. 루이스 씨가 수녀원에 의뢰를 넣은 걸 내가 받아온 거야."

샤를로트가 외출증과 봉사활동 확인증서를 살짝 들어서 보였다.

내가 마음 쓰지 않기를 바라는 씀씀이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신현 씨."

샤를로트가 부드러운 미소로 웃었다.

"그런데 신현 씨……. 살 진짜 많이 빠졌다."

"그렇지? 한 10kg은 족히 빠졌을 거야."

지금도 좀 휘청휘청한다.

보통 이런 때 빠지는 건 지방이 아니라 근육이라 근손실도 심각하고.

"그렇지만…… 난 지금도 상당히 괜찮아 보여. 꼭 흡혈귀 백작 같은 느낌이라서 고급스러운 느낌도 들고."

"어째 다들 볼 때마다 그 소리만 하네. 그 정도야?"

샤를로트의 입가에서 웃음소리가 번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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