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 16. 각성 (6)
* * *
루이스가 몸을 빠르게 일으킨다.
침대 아래에서 웅크리고 있던 파비아와 눈이 마주쳤다. 당황한 루이스는 마치 발에 밟힌 개구리 같은 소리를 냈다.
파비아가 갈색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루이스."
"나, 나를 알아?"
"절 돌봐준 분이잖아요. 비록 이성을 표출할 수는 없었어도, 제게 벌어진 일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어요. 연금술사 선생님도, 샤를로트 씨도 말이예요."
파비아가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는 몹시 온화해서, 내가 알고 있는 파비아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얼마 전에 싸울 때는 조금 상황이 급해서 정신을 완전히 되찾지도 못한 상태로 무작정 싸움에 나섰거든요. 그래서 그때는 인사도 못 했었는데……, 이렇게 다시 인사를 드리게 되네요. 사제."
그 말을 듣고 검은 존재와 맞서 싸울 당시의 파비아를 떠올리게 됐다.
확실히 그때의 파비아는 좀 이상했다. 전투에 필요한 기능 이외에는 모두 떼어내고 온 것처럼 말도 더듬었고, 마치 간질 환자처럼 몸을 벌벌 떨어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코어의 봉인을 해제한 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일까.
내가 쓰러진 이후 파비아의 코어를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동안 파비아가 도망치지 않은 걸 보면 연금술사에게 상당히 정을 쌓은 것 같다.
루이스는 침대의 등받이에 몸을 붙이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분명…… 보름 전에는 한동안 나오지 못할 거라고 말하지 않았어? 난 그렇게 들었는데, 어째서?"
"이게 진짜 마지막 힘이에요. 보름 전 그때, 사제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일말의 힘을 남겨두고 있었죠."
파비아가 온몸을 쭉 펴면서 말했다.
꼭 기지개를 켜는 거 같다.
"이번에 다시 잠들면 그때는 정말로 언제 다시 눈을 뜨게 될지 알 수 없어요. 몇 개월 후가 될지, 몇 년 후가 될지…… 저 자신도 말이에요.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제 의식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거니까요."
가우우아 소리만 내던 파비아가 갑자기 이러니까 나 자신도 갈피를 좀 잡기가 어렵다.
얘가 이렇게 논리정연하게 해야 할 말만 딱 제대로 하는 게 왠지 위화감이 든다.
마치 예의바른 루이스, 겸손한 연금술사, 우울한 백신아 같은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우리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서인지 파비아는 네 발로 걸으며 몇 걸음을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 나서야 편하게 시선을 맞출 수 있었다.
"……."
열린 문 바깥에서 이 꼴을 어이 없게 바라보는 연금술사가 있다. 하긴 우리도 기겁하면서 놀랄 정도였는데 연금술사는 오죽했을까 싶다.
테이블 앞에 앉은 연금술사가 소리 없이 입술로 질문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난들 알겠나. 나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인데.
하지만 이제 슬슬 정신줄을 잡아야지. 파비아의 말대로라면 녀석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 전에 해결할 수 있는 건 해결해둬야 한다.
"잠깐만, 잠깐만. 네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지금부터 질문을 좀 해도 될까?"
"네, 사제."
"사제…… 거, 들을 때마다 두드러기가 나는 느낌인데."
아니 물론 따지고 보면 내가 그녀의 사제 뻘인 존재는 맞지만, 뭐라고 해야 하나. 영 어색하고 부끄럽다고 해야 하나.
에이,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 보름 전에 검왕검 안에서 나타난 그 괴물 같은 존재의 정체는 뭐지? 녀석이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있을까?"
하고 싶은 질문은 많은데 주어진 시간은 짧다. 그러니까 일단 제일 중요한 것부터.
내가 계속 백신아와 함께 싸우기 위해서는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하다.
폭주의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는 건 내게도 백신아에게도 좋지 못한 일이다.
내가 녀석의 인격을 신뢰하고, 함께 싸울 때 안정감을 느끼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넌 그 녀석이 눈을 뜨자마자 선생님에게 부탁해서 코어의 봉인을 풀어달라고 요청했지. 난 이게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넌, 그 검은 존재의 정체와 목적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아냐?"
"……맞아요. 사제의 말처럼, 전 그 존재의 정체와 목적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그래서 거기에 맞서기 위해서 부랴부랴, 아직 미처 짜맞춰지지 않은 인격을 긁어 모아서 싸움에 나선 거예요."
파비아는 크게 놀라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숨길 생각도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전에…… 백신현 사제에게 질문 하나."
"뭔데?"
"사제의 생각은 어때요? 그 검은 존재의 정체와 목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죠?"
파비아의 시선이 조용히 나를 꿰뚫는 것 같았다.
그 말을 듣고 문득 생각했다.
내가 파비아를 재어보고 있는 것처럼 파비아도 나를 재어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나를 사제로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안목을 시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잠시 생각한 뒤 쭉 가설의 형태로 남아있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니 오래 전부터 검왕검의 목적은 나의 몸을 빼앗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어. 내 쪽에서 신아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것도 가능하지만, 신아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내 몸의 제어권을 가져갈 수 있으니까."
주인의 의지를 무시하고 스스로 움직이는 검.
우리는 그것을 마검이라고 부른다.
사악하고 요사스러운, 저주 받은 무기.
나와 연금술사는 상당히 이른 단계에서 검왕검의 존재를 의심했다.
그 위력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위력에 눈독을 들이고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그것이 파멸로 이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몇 번이나 했던 말이지만, 이것은 내가 백신아의 인격을 신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파비아는 나의 말을 찬찬히 곱씹는가 싶더니, 조용히 말을 걸었다.
"생각했었다는 건, 지금은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는 소리죠?"
"아, 뭐. 그렇지."
나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렸다.
"검왕검의 목적이 나를 키워서 육체를 빼앗는 거라고 치면, 어째서 그런 짓을 하는지 이유가 있을 거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부분에서 답을 낼 수 없었거든."
원인 없는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그런 짓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쭉 생각하고 있었다.
굳이, 나를 키운 다음에 제어권을 빼앗을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떠오른 것이다.
최악의 가능성을 떠올리는 건 좋다. 하지만 그 절망적인 가능성에 스스로 매몰된다면 틀림없이 중요한 부분에서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올바른 대답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끝없이 궁구할 수밖에 없다.
검왕검의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서.
"검왕검의 목적이 내 육체를 빼앗는 것이라면 굳이 나를 강하게 만들 필요가 없어. 그저 코어을 침식시켜서 순식간에 육체를 빼앗은 후, 이 육체의 주인이 된 이후 스스로의 힘으로 강해지면 될 일이거든."
나하고 다르게 검왕검의 관제 인격에는 천변무궁류의 수행법이나 온갖 사소한 요령 따위가 모조리 들어 있다.
내게 힘을 더해줄 필요 없이, 일단 육체부터 빼앗아 버리면 대부분의 변수를 봉인할 수 있다.
보름 전의 내가 침식에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백신아와 검왕검이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력의 양이 많지 않아서 침식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거야. 하지만 검왕검은 그러지 않았지. 내가 강해지기를 한참 동안 기다린 끝에 침식을 시도했고, 나는 검왕검을 통해 길러낸 힘으로 그 침식에 맞설 수 있었어."
검은 존재 이전에 나의 선배라고 자칭하던 그 검사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검사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타고난 마력이 적은 인간이었다고 말했다.
나와 그의 공통점은 그것 하나 뿐이다.
즉, 아마도 검왕검이 주인을 선택하는 기준은 '자질이 있으면서도 보유한 마력이 적은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루이스나 연금술사를 대상으로 침식을 시도했다면 오히려 마력의 크기로 짓눌려서 역으로 제압되었을 것이다.
마력이 많지 않은 내가 대상이었기 때문에 침식을 시도할 수 있었다.
침식을 염두하고 주인을 선택하는 건 틀림없다.
하지만 오직 나를 침식만을 목적으로 한다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너무 많다.
침식만이 목적은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파비아의 큼직한 눈망울이 내게 고정됐다.
"그럼, 사제는 어떻게 생각해요?"
"시험."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검왕검은 날 시험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일단 침식을 시도하고, 사용자가 그 침식에서 벗어나면 곧바로 검은 마력과 함께 실체화해서 실력을 시험한다.
그 시험을 이겨낸다면 살아남을 수 있지만, 이겨내지 못하면 그대로 검왕검에게 코어를 장악 당해서 육체의 주도권을 빼앗기게 된다.
그러한 내용의 시험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검왕검의 목적이 온전한 나의 침식이었다면 백신아가 필사적으로 저항하면서 시간을 벌지도 않았을 거다.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요소가 부딪치고 모순된다.
마치, 내가 어떻게 되어도 개의치 않겠다는 듯한 의도가 느껴졌다.
내가 시험을 이겨내고 한 사람의 검사로서 우뚝 서도 개의치 않고, 내가 시험을 이겨내지 못하고 검왕검에게 몸을 빼앗겨도 개의치 않는.
그러한, 의도가.
"내 생각은 이런데. 그래서 진실은 어떻지? 사저."
"놀랐어요……."
파비아가 작게 감탄했다.
"거의 정답이예요. 사제."
"그런가?"
"네. 사제가 말한 것처럼…… 검왕검의 목적은 '자질이 있는 자'에게 온갖 시련과 시험을 부여해서 검왕을 초월하는 검사를 탄생시키는 거예요."
"검왕을 초월하는 검사?"
"네."
파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검왕은 현 시점에도 고금제일인으로 꼽히는 전설적인 존재이지만, 이 세상에는 그런 검왕의 힘으로도 넘어설 수 없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그 힘에 맞서기 위해서 검왕은 두 가지 방법을 모색했어요."
앞발…… 오른손을 들어올린 파비아가 검지와 중지만 펴서 날 향해 들어올렸다.
"첫 번째는, 검왕조차 넘어서는 검사를 탄생시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검왕의 분신격인 존재를 양산하는 것이었죠."
"내가 그 '검은 존재'를 이겨내면 첫 번째로 가는 거고, 내가 이겨내지 못하면 '검은 존재'에게 그대로 침식돼서 두 번째로 빠지는 건가?"
파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답니다. 사제. 사제의 코어가 침식되고 육체를 빼앗기면, 검은 존재는 마력을 실처럼 짜서 사제의 몸을 고치처럼 봉인했을 거예요. 그 상태로 때가 올 때까지 동면에 들었겠죠."
"때가 올 때까지……"
"그 '검은 존재'는 검왕의 기술을 일부 나눠서 받은 존재예요. 그리고 어느 정도 천변무궁류의 검사가 검왕검과 천변무궁류에 능숙해지면 모습을 드러내서, 검사의 자질을 시험하죠."
"……예전에 선생님이 '신현이가 더 이상 강해지게 해서는 안 돼'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거의 옳은 추측이었네."
루이스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파비아는 루이스의 눈동자를 한 번 바라본 후, 천천히 깜박이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사실, 이번에 사제에게 시련이 주어진 건 일종의 오류에 가까워요. 원래라면 최소 3년은 지난 후에야 검은 존재가 출현하고 사제에게 시련이 주어졌을 테니까요."
"그 녀석이 굳이 이 타이밍에 출현한 건…… 나의 선배라고 주장하던 그 검사 때문이라는 건가?"
"네. 사제가 검왕검을 포기해버리면, 검은 존재는 천변무궁류의 검사를 시험한다는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조금 무리한 형태로 시험을 시작한 거예요."
그 덕에 이쪽은 진짜 제대로 힘도 못 쓰고 작살날 뻔 했다만.
어이가 없어서 웃었더니, 루이스가 옆에서 내 옆구리를 가볍게 꼬집었다. 분위기를 좀 파악하라는 의도인 것 같다.
"제가 힘을 다 회복하기도 전에 깨어나서 끼어든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사제가 아직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험이 시작된다면, 틀림없이 사제가 위험해질 테니까요. 제가 검왕……, 스승님의 방식에 반발을 품어서 그런 것도 있구요."
검은 존재를 향해 포효하던 파비아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때의 파비아는 검은 존재에게 개인적인 증오를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스승의 방식에 반감을 품었던, 파비아의 감정이 표출된 부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가 끼어들면 시험의 의도가 망가지는 건 아닌가? 나 자신의 실력만 시험하기가 어려워질 텐데."
"그건 전혀 상관 없어요. 검왕검의 시험이 평가하는 건 사용자의 실력, 운, 그리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 위대한 검사에게는 그 세 가지 요소가 모두 필요해요. 그리고 사제의 경우…… 그 세 가지 요소를 골고루 증명했다고 볼 수 있어요."
파비아가 눈을 가늘였다.
"사제도 알 수 있다시피, 그 검은 존재는 운만으로 쓰러트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예요. 실제로 저 혼자서 이긴 것도 아니잖아요. 오히려 제가 있어도 꽤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사제는 그 상황을 감각과 실력으로 뒤집은 거에요."
"그건 그렇다고 치자."
나는 목을 오른손으로 주무르며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래서 그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 갑자기 부정 행위로 시험을 통과했답시고 다시 나타나는 건 아니겠지? 다시 한 번 그 난리를 피우는 건 싫은데."
내게 제일 중요한 부분은 그것이다.
그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나도 도저히 안심할 수가 없다.
이 질문에 파비아는 힘 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거예요. 사제가 쓰러트림으로써 그 존재는 완전히 소멸한 거랍니다."
"그래?"
그건 희소식이다.
앞으로도 백신아와 계속 함께 싸울 수 있다는 소리니까.
"하지만 사제. 검왕검이 사제에게 부여한 시련은 이제 전부이지만, 아마 사제는 앞으로도 수많은 시련에 부딪치게 될 거예요."
그때, 갑자기 파비아가 그런 말을 했다.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보름 전의 시험은, 앞으로 사제가 겪게 될 일의 맛보기 정도에 불과해요. 어쩌면 사제는 검왕검에 선택 받게 되었다는 걸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죠."
"그, 나의 선배라던 놈도 비슷한 말을 했는데. 차라리 여기에서 패배하고 죽는 게, 더 나은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그 남자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거예요."
파비아가 씁쓸하게 입맛을 다신다.
그에게 벌어진 일에 부채 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한 번 호흡한 뒤 진지한 시선으로 나를 돌아본다.
"그럼 사제. 전 이제 다시 잠들어야 할 거 같아요. 그래도 사제가 쭉 궁금해하던 질문에 해답을 줄 수 있었던 것 같아서 기쁘네요."
"다음에는 언제 만날 수 있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몇 개월 후가 될지, 몇 년 후가 될지. ……그때까지, 또 다른 저를 잘 부탁드려요. 조금 멍청한 게 흠이긴 해도, 착한 아이랍니다."
그렇게 말하며, 파비아는 다시 한 번 조용히 자세를 낮췄다.
서로 포갠 양 손등에 머리를 기대고, 웅크린 채 눈을 감는다.
그것만으로도 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지적이고 예의바른 파비아는 이제 없다.
우리가 아는 파비아로 돌아와 있었다.
"……괜히 들은 느낌이 드는데."
루이스가 혀를 쯔쯔 차며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까지 가슴 속에 가시처럼 박혀 있던 의문이 뽑혀 나왔지만, 그만큼 새로운 걱정거리가 늘었다.
검은 존재조차 능가하는 시련이라.
도대체 얼마나 무시무시한 시련일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맞서 싸울 방법이라도 있는 시점에서 난 나은 편일지도 몰라. 그 검왕조차 위협적으로 여겼던 존재가 있고, 언젠가 그런 존재와 싸워야 하는 날이 온다면…… 그건 틀림없이 나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혼란으로 뒤덮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건이 될 테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마주치는 것보다는 미리 알고, 그것에 맞서 싸울 각오라도 할 수 있는 게 낫다.
최소한 목표는 확실하게 잡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검왕보다 더 강해지는 것.
투기장의 쓰레기통을 뒤지며 주린 배를 채우던 얼간이가, 이제 그런 꿈을 꾸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