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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25화 (125/287)

〈 125화 〉 16. 각성

* * *

"큭……?!"

누군가가 내 목에 올가미를 걸고 쭉 잡아당기는 기분이다.

시작 지점은 내가 왼손으로 감아쥐고 있는 검왕검의 날 부분이다. 그 자리에서 시작된 마력이 천천히 팔을 타고 올라오면서 나의 육체와 코어를 침식하고 있다.

그 흐름에 저항하려 해 보았지만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쭉 끌려간다.

삐걱, 삐걱, 목을 움직여서 검날 쪽을 바라보는 그 간단한 행위조차 쉽게 되지 않았다. 마치 움직여서는 안 되는 것을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저항감이 심하다. 조금만 잘못 힘을 줘도, 내 목뼈가 부서져버릴 것 같다.

바로 그때 필사적으로 검을 바라보던 내 시야에 이상한 것이 잡혔다.

검을 타고 올라오는 시꺼먼 무형의 에너지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는, 요정처럼 조그만 인간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딱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의 크기라서 제대로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내가 가상 공간 속에서 마주해온 백신아의 모습 그대로였다.

백신아를 닮은 조그만 인간 여성이 나를 돌아보더니 무어라 소리친다. 그 소리까지는 들을 수 없었지만, 그 순간 나도 정신이 들었다.

힘을 주고, 닥쳐오는 침식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면서 소리친다.

"루이스!!"

고개를 돌린다. 뜻밖에도, 루이스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조용히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루이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녀석의 눈빛은 아직 살아있다. 충분히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내 팔을…… 아니, 왼쪽 어깨를 칼로 잘라버려!!"

보통 이런 때, 루이스의 행동은 아주 재빠르다.

쓸데없이 말에 토를 달거나, 의문을 품으면서 나를 위기에 빠트리는 경우가 일체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바라본 루이스는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순간 루이스는 모든 고통을 잊어버린 표정으로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저 입술을 한 번 깨문 후, 곧바로 행동을 시작했다.

고통조차 없었다.

내가 미처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루이스가 휘두른 검이 나의 왼쪽 어깨를 베어 끊어버렸다.

"윽……!!"

고통은 정확히 그 직후 3초 후에 찾아왔다.

나는 허용량을 초과해서 닥쳐오는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그 이상으로 강렬한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 검을 타고 올라온 마력은 코어와 심장까지 집어 삼킬 것처럼 단단하게 휘어 감겨 있었지만, 물리적으로 몸뚱이와 검을 떼어놓은 순간 힘을 잃고 흩어지고 말았다.

고통조차 한 순간 잊을 수 있을 정도로 진득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베어 찢긴 왼팔이 데굴데굴 굴러가다가 잔디밭 위에 떨어진다. 조금 늦게 어깨와 팔의 단면부에서 피가 울컥거리며 터져 나온다.

그 순간 나를 괴롭게 만든 것은 절단에 의한 고통이 아니라 혈액을 대거 상실한 탓에 찾아온 현기증이었다.

쓰러질 것 같은 몸을 비스듬하게 유지시키면서 조용히 어깨의 절단 부위를 마력으로 감싸안았다.

제대로 된 지혈은 할 수 없겠지만 당장의 혈액 유출은 멈출 수 있을 것이다.

"손 치워. 내가 해줄게."

그때, 어느 세 뽑은 칼을 다시 허리춤에 되돌린 루이스가 가까이 다가와서 절단 부위 주변을 검지로 찌르기 시작했다.

감각적으로는 점혈을 연상시킨다. 효과도 실제로 비슷한 것 같았다. 루이스가 한 번 손을 댈 때마다 유출되던 혈액의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으니까.

혈액의 상당수를 잃어버린 탓에 절단부 이외의 피부가 파랗게 질린 상태였지만 조금씩 호흡은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심호흡을 쉴 세 없이 반복한 끝에 나도 조금씩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 후 새삼 루이스의 얼굴을 다시 돌아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녀석의 낯빛도 좋지 않다. 피를 흘린 건 내 쪽인데, 빈혈은 오히려 루이스가 있는 것 같다.

창백한 얼굴에 맺힌 땀방울이 심상치 않게 느껴진다.

"넌…… 표정이 왜 그래?"

"모르겠어."

루이스는 내 몸을 부축하면서 대답했다.

"네가 난데없이 저 검사의 목을 날린 그 때, 갑자기 내 코어에 이상 반응이 발생했어."

고개를 휘휘 젓는 움직임에도 힘이 없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순간적으로 심장을 칼로 푹 찔린 느낌이라, 숨이 잘 안 쉬어지더라고."

"그거……, 나 때문일지도 몰라."

"나도 그런 느낌이 들었어."

루이스는 크게 놀라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완전하지 않지만 내게도 네 마력이 조금 남아있으니까……. 그걸 매개체로 네 코어에 발생한 문제가 나한테도 피드백된 거겠지?"

"아마도."

숨을 몰아쉬며 대답한다.

루이스의 경우, 본인의 성격 탓에 나와 마력을 그다지 섞지 않으려고 들어서 코어에 나의 마력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아예 인사불성이 된 나와 다르게 비교적 정신이 멀쩡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우 걱정되는 건 연금술사다.

루이스가 이 모양이고, 내가 이 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연금술사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가능성도 있다.

그녀가 걱정된다.

나는 루이스에게 부축 받은 채 저 멀리에 널브러진 나의 왼팔과, 검왕검을 돌아보았다.

저건 이제 어떻게 하면 좋지.

백신아가 만들어준 한 순간의 빈틈 덕에 완전히 침식되는 건 막을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내 팔과 검을 놓아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듯 끊임없이 나타나는 문제거리에 내가 살짝 피로감을 느끼고 있던 바로 그때, 바닥에 떨어졌던 왼팔이 멋대로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건 또 뭐야……?"

떨리는 루이스의 목소리가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만 볼 수 있었던 검은색 마력이 지금은 마치 진흙처럼 질퍽거리며 검왕검의 틈새에서 꿀럭꿀럭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검과 손잡이를 고정시키기 위해서 쓰이는 접착제도 검은색에 가깝지만 저 색채는 그런 정도가 아니다.

주변의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듯한 빛 한 점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이다.

그 어둠은 불규칙하게 끓어오르는가 싶더니 어느 한 점으로 모여들면서 조금씩 형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나는 루이스를 돌아보며 강하게 재촉했다.

"루이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루이스는 나를 부축하던 손을 떼어내고 미처 형태를 구축하지 못한 검은 덩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저 멀리에 서 있던 란즈 가주도 더 이상 관망할 수 없게 되었는지 거의 비슷한 타이밍에 검은 덩어리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자루의 검과 한 자루의 창.

강맹한 마력을 휘어감고 휘둘러진 두 냉병기가 검은 덩어리에 접촉하려던 바로 그때,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장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검과 창은 그 장벽에 부딪쳐서 도로 밀려나고 말았다.

루이스는 정확히 나아간 거리만큼 물러나 있었다.

검을 쥔 손바닥에서 한 줄기 피가 흐르고 있다. 지나친 경도가 오히려 검을 물러나게 하고 루이스의 손아귀마저 찢어지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루이스가 다시 한 번 자세를 고쳐 잡았을 때, 이미 검은 덩어리는 형태를 완전히 구축하는데 성공한 상태였다.

그것은 어느 세 제대로 된 인간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표면의 색은 검다. 너무나도 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지 않은 곳이 없었다. 빛조차 보이지 않는, 짙고 짙은 그림자다.

인간의 살색을 가지고 있는 것은 검은 덩어리가 뭉치는 과정에서 그 일부로 통합된 나의 왼팔 뿐.

굵고, 비틀리고, 단단한, 검을 쥐는 데 특화된 왼손의 다섯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움직임은 몹시 자연스럽다.

당연한 일이다.

그 검은 덩어리가 뭉쳐 모인 모습은 나의 모습을 본뜬 것처럼 똑 닮아 있었으니까.

검고 말랑말랑한 표면에서 들어간 부위와 들어간 부위가 있어서 그 모습을 쉼게 알아볼 수 있었다.

검은 덩어리가 취한 모습은 그야말로 나의 육체 그 자체였다.

"……."

그 광경을 본 직후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검은 검사가 그런 구조가 된 이유는…….

"루이스."

아니, 그런 건 나중에라도 생각하면 된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건 당장의 위협을 제거하는 일이다.

고개를 휘휘 내저은 후 나는 내 앞에 선 루이스를 향해 말을 걸었다.

"아마 저 녀석의 공략법은 검은 검사와 거의 동일할거야. 그러니까 지금은 내가 후방에서 백업을 맡을게."

"할 수 있겠어?"

"검은 없지만 검집은 여기에 있지. 이걸 쓸 거야."

손에 쥔 검왕검의 검집을 살짝 들어보인다.

그 다음은 란즈 가주에게 말을 걸었다.

"란즈 가주님. 제 예상이 맞다면 아마 지금의 저 녀석에겐 검은 검사와 같은 공간 이동 능력이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쉬지 않고 공격해 들어가시면 충분해요."

"으음."

란즈 가주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자세한 이유는 묻지 않았지만 내 말을 신뢰할 생각인 것 같았다.

두 사람의 특급 모험가를 앞에 두고, 나는 다리에 힘을 주며 간신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앉은뱅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조금 힘들더라도 일어서서 싸워야 한다.

그럼……

"시작한다."

* * *

"선생님, 계십니까?"

쉬지 않고 달린 끝에 올리비아는 비교적 빠르게 연금술사의 공방에 도달했다.

예전에 잠시 신세를 진 적도 있고, 무엇보다 백신현의 자취방이 바로 옆에 있다. 비슷비슷한 건물들 사이에서 올리비아는 순식간에 연금술사의 공방을 찾아냈다.

올리비아는 연금술사가 빠르게 문을 열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비록 전투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연금술사도 백신현과 루이스가 검은 검사와 끝을 보기 위해서 싸우러 나간 사실은 알고 있다.

그녀도 상당히 긴장한 상태로 두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 사이의 유대 관계가 보통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올리비아는 잘 알고 있다.

"……뭐지? 왜, 대답이 없으신 거지?"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려본다. 하지만 대답이 없다.

올리비아는 연금술사에게 실례를 범할 것을 각오하고 문고리를 손으로 쥐고 힘으로 비틀어 부쉈다. 고도의 마력 방벽이 둘러쳐진 탓일까. 문고리를 손으로 쥐고 돌릴 적에 상당한 저항이 느껴졌다.

손바닥에 가벼운 화상 자국이 남을 정도였다. 고통을 참은 채 힘을 줘서 돌린다.

"크아아우!!"

"읏……!?"

문고리를 억지로 비틀고 연 순간 안에서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들렸다. 올리비아의 귀에는 그 소리가 마치 집을 지키는 용맹한 파수견의 외침처럼 들렸다.

한 순간이지만 올리비아도 짓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이겨내고 공방의 내부를 다시 돌아보았을 때, 올리비아는 바닥에 쓰러져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연금술사의 모습을 발견했다.

"선생님! 어떻게 된 겁니까!?"

쓰러진 연금술사의 머리를 받쳐서 살짝 들어올린다. 그녀는 호흡이 매우 거칠었고, 의식이 제대로 남아있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인사불성이었다.

연금술사의 옆에는 네 다리로 쪼그리고 앉아서 그녀의 뺨을 햝고 있는 파비아가 있다. 다행히도 파비아와 올리비아는 서로 얼굴을 익혀두었기 때문에 파비아가 무작정 올리비아를 향해 달려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땀으로 젖어서 붉게 상기된 연금술사의 입술이 조용히 움직였다.

"……마침, 잘 됐어……"

"잘 됐다니. 선생님, 그게 무슨……"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네가 손을 좀 빌려줘야겠어."

연금술사가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탓인지 연거푸 자세가 무너진다. 그때마다 올리비아가 부축해서 그나마 얼굴이 바닥에 처박히는 사태는 방지할 수 있었다.

"선생님, 무슨 일을 하시려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몸으로는 뭘 해도 안될 겁니다."

"아냐…….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돼……"

올리비아가 연금술사의 등을 벽에 기대게 해서 간신히 그녀의 상반신을 지탱시켰다.

연금술사는 그 상태에서 연이어 심호흡을 반복한 뒤 천천히 눈을 떴다.

"잘 들어……. 내 예상이 맞다면, 아마 지금쯤 신현이의 코어에 무슨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아……. 뭔가에 침식 당하고 있어……."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조막만한 오른손을 움직여서 스스로의 가슴팍을 가볍게 움켜쥔다.

"코어를 통해서…… 알 수 있어……. 나하고 신현이의 마력은…… 완전히 동일해……. 그 정도로 깊게…… 연결되어 있으니까……."

서로 닮은 것끼리 영향을 끼치는 것은 마법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이다.

이미 백신현과 연금술사의 관계를 알고 있는 올리비아는 그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납득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뭘 도우면 되겠습니까?"

"일단…… 진과 오브제의 배치를……. 그 다음부터는, 신현이와 동일한 마력을 가지고 있는 나밖에 하지 못하는 일이니까……."

연금술사가 조용히 눈을 감는다.

심호흡을 몇 번씩 반복하고 나서, 고개를 돌려 파비아를 바라본다.

"지금부터…… 신현이가 이 아이의 코어에 걸어둔 봉인을 해제할거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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