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24화 (124/287)

〈 124화 〉 15. 마검?? (7)

* * *

아래에서 위로 쏘아 올린 일격은 검은 검사의 움직임을 완전히 봉쇄했다.

하지만 마력으로 이뤄진 생명체인 놈은 이 정도로 죽지 않는다. 지금의 일격은 검은 검사의 전투 능력을 완전히 봉인하는데 그쳤을 뿐이다.

인간이 아닌 존재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방법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그 점을 이용해서 검은 검사의 생명만을 간신히 붙여 놓은 상태였다.

"……윽, 후우……"

피도 제법 흘린 데다가 전체적으로 성한 곳이 없다보니 머리가 조금 아프다. 현기증도 살짝 온다.

하지만 버텨야지. 검은 검사를 죽이지 않고 살려두긴 했지만, 이것도 오래 가지 못한다.

검은 검사는 천천히 소멸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 전에 들을 수 있는 정보가 있다면, 들어둬야 했다.

나는 손에 쥔 검을 미처 놓아버리지도 못한 채 검은 검사를 향해 다가갔다. 놈은 하늘을 보며 쓰러져 있었다.

내가 휘두른 검은 정확히 검은 검사의 가슴팍 중심부터 그의 왼쪽 견갑골까지 이어지는 상처를 만들어냈다.

쩍 갈라진 부위가 덜렁거리며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처럼 꼴사납게 흔들린다.

나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을 포함한 주변의 공간은 현재, 루이스의 마력에 의해 장악되어 있는 상태다. 하지만 아직 이 공간을 해방해서는 안 된다.

공간이 해방되는 순간 검은 검사는 다시 한 번 대기 중의 마력을 통해 육체를 재구성할 수 있게 된다.

그의 최후가 확인될 때까지 술식을 해제해서는 안 된다.

나는 저 멀리에 선 루이스가 알 수 있도록 사인을 보낸 후 다시 한 번 몸을 돌렸다.

절단된 단면으로부터 검은 마력이 입자처럼 분분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사락, 사락, 마치 재가 날리듯이.

"나의 승리다. 승자의 권리로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은데."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 내가 목적을 이루지 못한 이상……, 다음부터는 네 차례가 될 테니까."

"다음은 내 차례라고?"

"그래……, 그렇게 되겠지……."

검은 검사의 말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는 상당히 큰 허탈감에 시달리고 있는지 전체적으로 힘이 빠진 인상이었다.

쓸데없이 저항할 우려는 없어 보인다.

나는 피곤한 눈을 두어번 깜박인 후 한숨과 함께 검은 검사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어째서 나를 습격한 거지? 아니, 정확히 말해서 네가 노리는 건…… 천변무궁류를 쓰는 검사였지. 도대체 기를 쓰고 그런 짓을 벌인 이유가 뭐냐."

"말했다시피, 그 악마의 검술을 이 세상에서 없애기 위해서였다."

쓰러진 검은 검사가 내장을 토해내듯 입을 열었다.

나는 눈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천변무궁류를 악마의 검술이라고 수식하는 이유는?"

"너도 알고 있을 텐데……?"

다소 찝찝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보이드와의 첫 전투에서 백신아는 제멋대로 나의 육체의 주도권을 빼앗아서 전투에 나섰다.

검사의 의지를 무시하고 휘둘러지는 검.

마법의 세계에서는 그것을 마검이라고 부른다.

내가 백신아의 인격을 신뢰하는 것과는 별개로 검왕검과 천변무궁류에 수상쩍은 점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백신아에게 육체의 주도권을 넘겨줄 때마다 시한폭탄을 넘겨 받는 느낌이었다.

"네가 손에 쥔 그 검. 그리고 그 검술은 결코 너를 위해서 준비된 것이 아니다. 너는 그저 싹을 틔우기 위해서 준비된 토양에 지나지 않아."

"……."

검은 검사의 목소리에는 깊은 회한과 후회가 담긴 절절한 느낌이 있었다.

놈의 말을 믿어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한 순간 흔들렸다. 진솔한 호소력이 있다.

"아마 너 자신도 의문을 품은 적이 있었겠지. 천변무궁류를 다루는데 필요한 그 초월적인 지각력."

엄밀히 말해서 천변무궁류에 요구되는 조건은 모두 두 가지다.

첫 번째, 대기 중에 흐르는 마력을 감지할 수 있는 예민한 지각력.

두 번째, 명확한 규칙도 없이 불확정적으로 움직이는 마력의 흐름을 계산하고 원하는대로 흐름을 이끌어낼 수 있는 계산력.

일전에 연금술사와 루이스는 천변무궁류에 요구되는 이러한 조건을 두고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조건'이라고 평가한 과거가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천변무궁류는 그 불가능한 경지를 일부나마 체현하고 있다.

유능한 과학자이기도 한 연금술사가 부정적인 의견을 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검은 검사가 간절하게 호소한다.

"그 능력은 정말로 처음부터 네 안에 잠재되어 있었던 것일까? 정말로 그 능력이 네 안에 잠재되어 있던 능력이라면…… 보통은 검왕검과 만나기 이전부터 그 편린을 다루고 있지 않았을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그 능력 자체가…… 검왕검에 의해서 부여된 능력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나?"

모르겠다.

녀석의 말을 마냥 믿을 수는 없지만 가장 먼저 놈의 말에 반박하고, 반례를 내세워야 할 백신아는 이 순간까지도 아무 말 없이 입을 닫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시끄럽게 입을 나불거리고 있어야 하는데 수상할 정도로 대답이 없다.

어쩌면 이 싸움 속에서 녀석에게도 무슨 문제가 벌어진 걸지도 모른다.

백신아, 넌 지금 뭘 생각하고 있는 거지?

"천변무궁류를 알고, 거기에 맞서 싸우는 검술을 창안한 점에서 알 수 있듯…… 나는 어떻게 보면 너의 선배에 가까운 존재이다. 현역 시절에는 천검??이라고 불리었지."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찾아다니다 보면 뭔가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아직 제대로 된 열매를 맺지 못한 풋내기 검사였다. 재능은 있었지만 그에 비해서 교육이 미천한 탓에 가진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던 애송이였지."

검은 검사가 살짝 눈을 감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스스로를 검왕검이라 자칭하는 존재와 마주치게 되었다. 검왕검에 의해 천변무궁류를 습득하고, 그 후로 빠르게 실력이 늘기 시작했지."

그의 말에서 묘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것은 나의 착각일까.

뜻은 있으나 그것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던 젊은 검사.

그 앞에 나타난 검왕검.

그리고 천변무궁류.

그의 이야기는……, 마치……

"처음에는 매우 행복했다.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내가 모르는 재능이 드디어 빛을 보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지. 천변무궁류는 매우 강했고, 내게 수많은 승리를 안겨 주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미운 오리 새끼라는 이름의 동화였다.

오리 무리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던 미운 오리는 최후의 순간 자신이 백조였다는 사실을 알고, 오리들의 무리를 떠나 백조의 무리에 섞여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미운 오리의 삶이 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노력이 아니다.

그저 어느 순간 스스로의 태생적인 특징을 알고, 거기에 맞춰 살아갔을 뿐.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하는 '내가 모르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현실은 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미운 오리 새끼 뿐만 아니라 수많은 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흔해 빠진 양식이다.

용사는 처음부터 성검을 뽑을 수 있게 예언 되어진 존재이고 그의 출생에는 언제나 범상찮은 출생 신화가 따라붙는다.

'내가 모르는 특별한 재능'.

너무나도 달콤한 단어이다.

그리고 그 달콤함은 너무나도 쉽게 사람의 마음을 파고든다.

솔직히, 솔직히 말해서.

내가 검왕검의 주인이 되고 천변무궁류를 휘두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전율을 느끼지 않았다고 묻는다면 거짓말이다.

나도, 그리고 누구나 마찬가지다.

힘든 현실 앞에서 몇 번이나 좌절한 끝에 그런 허황된 존재에 매달리게 되는 것은.

내가 이 세상에 있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검왕검은……, 천변무궁류는 그런 게 아니었어……."

그의 목소리에 좌절이 섞인다.

"검왕검이 숙주를 선택하는 조건은 간단하다. 일단……, 가지고 있는 마력의 총량이 많지 않을 것."

"……."

"그러면서 동시에 검왕검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일정 수준 이상의 기량을 갖추고 있을 것. 바로 그때, 검왕검은 스스로의 잠금쇠를 해방하고 그 자를 숙주로 인정하고 천변무궁류의 자질을 부여한다."

내 심장 위로 돌덩이가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유였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내 머릿속에서 곱씹어온 추측이었기 때문에.

"그런가. 그래서……, 그래서 그때, 루이스와 선생님이 검왕검을 뽑아내지 못한 건가……."

추측을 확신으로 바꿔, 처음으로 입밖에 토해낸다.

조각이 빠져 있던 퍼즐이 비로소 제대로 맞춰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검왕검의 목적은……"

검은 검사에게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려던 바로 그때 벌어진 일이다.

검날을 쥔 상태로 축 늘어져 있던 왼손이 부지불식간에 갑작스럽게 움직였다.

피는 튀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검은 검사의 머리가 몸통에서 떨어져 나간 채 하늘에 두둥실 떠오르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간신히 숨만 붙어있던 검은 검사의 생명은 지금 이 순간 끝을 맞이한 것이다.

"무슨."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순식간에 급격하게 변해버린 상황에 생각이 끊어진다.

나 자신의 의지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검이 멋대로 움직이면서, 조금씩 내 육체의 주도권을 가져가고 있다.

『……안 돼.』

검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쭉 기다리고 있던 목소리가 마치 아지랑이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검주…… 안 돼, 위험……』

침식이, 시작된다.

* * *

"지금쯤이면 끝났을까."

연금술사는 침대 위에 권태로이 누워 있었다.

그런 그녀의 머리를 아래에서 받치고 있는 건 그녀보다 훨씬 큰 체구를 가진 수인 여성의 풍만한 가슴이다.

파비아는 대형견에 준하는 크기이기 때문에 연금술사를 품안에 안아도 상당히 여유가 남을 정도였다.

어쩌다보니 이 수인 여자를 떠안게 된 연금술사는 그녀 나름대로 파비아를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가 파비아를 맡게 된 경위는 스스로도 이해하고 있다. 남자인 백신현에게 파비아를 맡기는 건 언어도단이고, 루이스는 바쁘다.

집에서 나가는 일이 없는 그녀가 파비아를 돌보는데 최적화된 인선인 건 사실이다.

귀찮은 일을 맡아버렸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 된 만큼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 이 상황을 최대한 즐겁게 헤쳐나갈 방법을 찾아다니는 중이다.

그 중 하나가 이것이다.

백신현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파비아는 안는 용도로서는 매우 수준급의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파비아의 가슴에 머리를 기댄 채, 연금술사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녀와 친밀한 사이의 남녀는 지금 이 자리에 없다. 아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정체불명의 적과 맞서 싸우고 있을 것이다.

연금술사가 그 싸움에 제외된 이유는 간단하다.

전투에 특화된 두 남녀와는 다르게 그녀는 본격적인 전투 상황이 벌어졌을 때 상당히 무능해진다.

전사라기보다는 학자에 가까운 성향인 탓이다.

강력한 공격 마법을 쓰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전투 감각이 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음…… 나보다 한참 어린 애들한테 짐짝 취급을 받는 느낌이라 조금 기분은 나쁘네.'

현실은 인식하고 있지만, 불만이 없는 건 아니다.

연금술사는 한참을 툴툴거리며 입술을 삐죽이고 있었다.

"가우우아."

"뭐야?"

그녀의 심상찮은 기분을 감지했는지 파비아가 칭얼거리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물론, 그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의미를 공들여 해석할 필요가 없었다.

그 직후 파비아의 배에서 굶주린 소리가 들려왔다.

"밥 시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구나."

연금술사는 낮게 신음하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사실, 그녀의 고민은 깊이 생각할 것도 없는 문제이다.

연금술사가 전투에서 빠지게 된 건 그럴 만한 능력이 없었던 탓이다. 그녀가 활약할 수 있는 무대는 전투가 아니라 그 이후부터다.

과학자가 완성된 전사와 동등한 입장에서 전투에 나서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 씁쓸해. 다음에는 조금 억지를 써서라도 데려가라고 말해볼까.'

그리고 바로 그때, 갑작스럽게 연금술사의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아……?"

덜컥, 하고 그녀의 무릎에서 힘이 빠지고, 쓰러지기까지는 1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바닥을 손바닥으로 짚어서 간신히 쓰러지던 몸을 멈춰세운다.

하지만 이상하다.

몸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마치 한겨울에 알몸으로 노출된 사람처럼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한다.

그녀 자신으로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 이런 경험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다.

특히, 그녀가 이해하기 어려운 건 몸속 깊은 곳에 잠든 코어의 상태이다.

코어의 마력이 이상분비되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몸에도 문제가 발생했다.

"하아……, 하아……!?"

호흡이 불편한 상황도 아닌데 멋대로 숨이 가빠진다.

전체적으로 신체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째서……? 그녀는 새파란 안색으로 지금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최대한 머리를 회전시켰다.

하지만 코어의 이상작동이 그녀의 사고를 계속해서 끊어버린다.

심장을 틀어잡힌 기분이다.

숨을 몰아쉬고, 생각을 반복한다. 쉽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끊어지려는 사고를 몇 번씩이나 억지로 다시 이은 끝에 그녀의 사고가 비로소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수용할 수 있는 마력의 용량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어느 순간부터 백신현과 연금술사의 마력은 완전히 동일한 성질을 가지게 되었다.

서로 닮은 것끼리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은 마법에 있어서는 기본이나 마찬가지인 이론이다.

'즉……'

즉, 연금술사의 코어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은 그녀의 마력과 완전히 동일한 마력의 성질을 가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의미이다.

바닥을 기어다니다시피 한 상태로, 연금술사가 간신히 고개를 든다.

"크르르르……"

그때 그녀의 시야에 잡힌 파비아는 어느 세 흉폭한 얼굴로 문 바깥의 저편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찾고 있던 숙적을 발견한 것처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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