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 15. 마검?? (6)
* * *
천변무궁류는 아홉 개의 공격검과 세 개의 필살검으로 분류된다.
이 열두 개의 기술은 전투 상황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변수에 대응하기 위해서 제작된 것으로, 단 하나의 빈틈도 없이 완벽한 구조로 순환하고 있다.
백신현이 지금의 상황을 막막하게 느끼는 것은 그 때문이다.
천변무궁류는 이미 완성된 검술이다.
여기에서 또 하나,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요소를 기존의 천변무궁류에 뒤쳐지지 않는 형태로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할까.
말 그대로 뱀에 다리를 그리는 거나 마찬가지인 행위인데.
하지만 할 수밖에 없다.
이 자리에서 싸우고 있는 게 백신아였다면 이럴 필요가 없다. 천변무궁류의 완성도만으로도 파천계도성의 온갖 파훼식을 정면에서 무너트릴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백신현은 백신아가 아니다.
백신현은 백신현의 방식으로 파천계도성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이것은 천변무궁류의 계승자로서 백신현에게 주어진 시험일지도 모른다.
여태껏 백신현은 이미 누군가가 지나갔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마주하게 된 적은 그저 배우는 것을 정직하게 펼치는 것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상대다.
이미 누군가가 지나갔던 길이 아니라 그보다 한 발짝 앞에 있는 미지의 영역.
백신현만의 영역을 구축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흐읍!!"
이때, 검은 검사에게도 여러 가지 길이 있었다.
반드시 이 자리에서 백신현과 끝장을 볼 필요는 없다. 지금의 그를 둘러싼 환경은 모두 검은 검사에게 불리한 상황이니까.
일단 이 자리를 이탈해서 전력을 재정비한 뒤 다시 대결하는 선택지도 존재했다.
긍지가 후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트릭이 들킨 상황에서 재정비를 한들 크게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걸지도 모른다.
잘못된 선택이라고 보긴 어렵다. 검은 검사의 트릭은 모두 만천하에 드러났지만 백신현 또한 정상적인 몸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 양쪽 발목은 모두 염좌, 상반신의 상처에서는 계속해서 혈액이 유출되고 있다.
그 이외에도 크고 작은 상처와 붓기가 모두 열아홉 부위에 꼼꼼하게 새겨져 있다.
트릭이 들킨 것 이상으로 백신현이 회복할 틈을 줘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검은 검사의 칼끝에 속도가 붙었다. 조금 전과 비교해서 눈에 띄게 빠른 속도.
이 공방에서 끝장을 볼 생각이다.
어설프게 피하거나 버티려고 들었다가는 오히려 잡아 먹히고 만다.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느꼈다.
공격에는 공격.
이 공방에서 끝장을 볼 수밖에 없다.
바득!! 백신현의 이가 서로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이 시작되었다. 오체에서 충만하게 흐르는 마력이 한 방향으로 집중되면서 가공할 만한 초가속을 뿜어댄다.
'……속임수인가.'
검은 검사가 생각에 잠긴다.
백신현과 부딪치는 건 오늘이 처음이지만, 이미 서로를 교차해서 뿜어진 칼날의 숫자는 수백 개에 달한다.
놈의 검술이 온갖 속임수와 기만에 특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검술의 아래로 수백 개의 교활한 속임수가 숨어 있다.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이 빠르게 접근한다. 그 순간까지도 검은 검사는 그 일격의 이면에 숨은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서 골몰하고 있었다.
제일검에 맞춰 파천계도성이 움직인다.
파천계도성의 시작검은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에 대응한다. 그 효과는 제일검 이상의 속도와 파괴력.
오직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에 부딪치는 그 한 순간에 한해, 극한의 참격보다 빠르고 무거운 참격을 발할 수 있다.
검과 검이 부딪치고 힘 싸움조차 이루지 못한 채 천변무궁류가 무너진다.
그리고 그때 또 다시 백신현의 몸에 속도가 붙었다. 그 궤적은 정확히 수직 상승.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의 원리를 방향만 바꿔서 사용했다.
그것을 다시 파천계도성이 쫓는다. 시작은 천변무궁류가 먼저였어도, 파천계도성은 얼마 가지 않아서 천변무궁류의 속도를 따라잡게 된다.
하지만 파천계도성이 아슬아슬하게 천변무궁류를 따라잡은 그 순간 백신현의 방향이 급격하게 틀어지면서 또 다시 그의 추적을 벗어났다. 관성을 무시하고 직각으로 힘의 방향이 꺾이고, 녹색 마력 입자가 그 자리에 선으로 남는다.
그것을 쫓는다.
하지만 닿기 전에 또 다시 방향을 바꾼다.
다시 쫓는다.
그리고 천변무궁류는 다시 그의 추적을 따돌리고……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단순한 연속 공격. 그게 전부일까.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백신현의 의도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검은 검사의 눈매가 예리하게 변한 그때, 백신현은 또 다시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을 써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몸을 던졌다.
그 순간이 되어서야 검은 검사는 백신현의 의도를 알았다.
'가……! 속……!!'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이 아니다.
검은 검사는 백신현의 현재 역량과 마력의 흐름 등을 고려해서 그 한계를 가늠하고 있었다.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으로 도달할 수 있는 속도의 한계 영역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백신현은 그것보다 아주 조금 빠른 속도에 안정적으로 도달해 있다.
이것은 사소하지만 큰 차이다.
넘어설 수 없는 한계 영역이 부서졌다.
그리고 백신현은 또 다시 가속한다.
넘어설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새로운 속도의 영역을 향해.
시작은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니다. 제일검을 겹치고, 겹치고, 또 겹친 끝에 기존의 천변무궁류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흐름이 탄생하려 하고 있었다.
이것은 기존의 천변무궁류에서는 있기 어려운 발상이다.
천변무궁류의 기술은 그 하나 하나가 필살급 위력을 자랑한다. 같은 수준이라면 최소 호각. 힘 싸움에서 패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수련을 끝마치지도 못한 채 실전에서 각종 기술을 사용하게 된 백신현 같은 경우는 극히 드문 케이스다.
기술은 필요에 의해서 발전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천변무궁류라면 지금처럼 위력 부족에 허덕이며 새로운 기술을 짜낼 필요가 없다.
검술의 수준이 어중간한 경지에 멈춰 있는 백신현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발상이다.
'아직은 파천계도성으로 추적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내가 따라잡을 때마다 재차 가속을 해버린다면……'
파천계도성이 천변무궁류에 적대하는 검술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약점이다.
파천계도성은 천변무궁류보다 아주 조금 빠르고 무거울 뿐이다.
또한 천변무궁류의 흐름에서 힘을 얻는 그 특성상 천변무궁류가 힘을 쓸 때마다 거기에 맞춰서 수동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즉, 언제나 그의 가속은 백신현보다 조금 늦게 시작된다.
'말하자면 이것은…… 양측의 집중력 싸움이라고 볼 수 있다. 조금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파천계도성으로 쫓아가면 차이를 좁힐 수는 없겠지만 더 벌어지는 건 방지할 수 있겠지.'
백신현은 검은 검사가 따라 붙을 때마다 다시 한 번 가속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검은 검사는 그때마다 파천계도성으로 백신현의 뒤를 쫓을 수 있다.
따라서 양측의 가속이 끝없이 지속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검은 검사가 파천계도성으로 계속 쫓기 시작하면 백신현도 가속을 멈출 수 없다.
한 순간이라도 멈추게 되면 그 순간 추월 당해서, 허리가 끊어지고 말 테니까.
불리한 조건을 부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유리해진 것도 아니다.
결국 서로의 집중력이 끊어질 때까지 같은 기술을 반복해야만 하는 치킨 게임에 들어간 셈이다.
'하지만 소모전을 선택한 것은 실수다. 나의 정신적 내구도는 인간의 그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아. 천천히, 천천히 깎아서 끝을 보면 충분하다.'
천변무궁류와 파천계도성의 상성 관계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높이 살 수 있지만, 상성을 부수기 위해서 선택한 전술 또한 자충수에 가깝다.
패배를 피하기 위해서 들어간 길 또한 패배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하지만 검은 검사는 내심 그 사실을 의식하면서도 전혀 긴장을 풀지 않았다. 한 순간이라도 실수하면 차이가 벌어진다.
여유를 부릴 수 없는 건 검은 검사도 마찬가지다.
지금부터의 공방은 순수한 끈기의 싸움이 될 테니까.
양측의 속도가 끝없이 높아지기 시작한다. 소리는 끊어지고, 양측이 한 번 부딪칠 때마다 그 자리에 잔상이 상처처럼 남았다.
속도의 한계를 겨루면서도 서로를 향한 견제는 멈추지 않는다. 부딪치고 부딪치고 부딪친다.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소리가 퍼질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리고 서로의 정신력이 끝까지 버티더라도, 이기는 건 나다.'
검은 검사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변수가 통할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큰 공격을 쓰지 않고 빈틈이 적은 공격 위주로 견제하면서 조금씩 목을 죄여들어가듯이 승부의 균형을 무너트려간다.
설령 백신현의 정신이 마지막까지 무너지지 않더라도 이 공방은 검은 검사의 승리가 될 수밖에 없다.
파천계도성은 천변무궁류의 흐름을 역으로 이용해서 그보다 빠르고 무겁게 몰아치는 검술이다.
예를 들어 천변무궁류가 한 번 가속할 때마다 '100'이라는 속도가 더해진다고 쳤을 때, 파천계도성은 '101'의 속도가 더해진다.
처음에는 크지 않은 차이이겠지만 서로의 가속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이 '1'의 차이는 조금씩 크기를 늘려가기 시작한다.
설령 백신현이 무너지지 않더라도 상관 없다.
파천계도성이 가지고 있는 확고부동한 우위는 쉽게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그 '1'의 차이가 유의미한 효과를 보이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쿵!!
파천계도성의 가속이 이윽고 천변무궁류를 완전히 앞서 나갔다.
이때, 백신현은 다시 한 번 가속에 성공했지만 검은 검사는 충분한 여유를 남겨둔 채로 그의 속도에 따라 붙은 상태였다.
서로에게 한 번씩, 평등하게 주어진 가속의 기회.
하지만 백신현은 이미 가속을 끝낸 상태이고, 검은 검사는 아직 한 번의 가속을 남겨두고 있었다.
"발상은 좋았다."
거의 밀착한 거리, 필사적으로 거리를 벌리는 백신현을 노려보며 검은 검사가 소리친다.
"하지만 임기응변으로 짜낸 임시변통의 기술로 파천계도성을 쓰러트리는 것은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군. 완성도가 천박해."
이미 서로의 속도가 대등한 상황에서 검은 검사가 홀로 가속한다.
검과 검이 부딪치고 파천계도성이 천변무궁류의 기세를 완전히 짓눌렀다.
"큭……!!"
백신현의 오른팔이 돌아가지 않는 방향으로 꺾이면서 손에 쥐고 있던 검이 하늘을 날았다.
그것은 검은 검사가 머릿속에 그린 미래와는 차이가 크다. 그 찰나, 백신현이 다시 한 번 가속하면서 충격을 흘린 탓이다.
검을 날리고 오른팔을 꺾었을 뿐. 백신현의 숨통은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
놓치지 않는다.
백신현이 천변무궁류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고 검은 검사는 차분하게 그 경로를 파악한 뒤, 파천계도성의 힘으로 추적에 들어간다.
원리 자체는 천변무궁류의 제일검과 동일하다. 마력의 흐름을 일점에 집중시켜서 그의 몸을 마치 탄환처럼 쏘아 보낸다.
검을 잃은 백신현에게 대적할 방법은 남아 있지 않았다.
다시 한 번 검은 검사의 몸이 탄환처럼 쏘아졌다.
백신현은 그 짧은 사이에 검집을 뽑아서 방패처럼 공격을 받아냈지만, 용광로에 물을 끼얹는 정도의 효과밖에 없었다.
왼손의 다섯 손가락이 무참하게 분질러지면서 그의 몸이 수십 미터 가까이 나가떨어진다.
천변무궁류의 가속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검은 검사가 다시 한 번 더 가속하기만 해도 싸움은 끝이 난다.
하지만.
"맞는 말이야."
백신현이 피기침을 토하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검은 검사의 추가타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난 천재가 아니거든. 임기응변으로 즉석해서 훌륭한 기술을 짜내는 재주는 없어. 기술의 수준도 당연히 천박하지."
스스로도 알고 있었던 문제점이다.
원리를 최대한 단순하게 짠 것도 그와 같은 이유다.
가장 익숙한 천변무궁류의 기술인 제일검을 중심으로 기술을 구축해서 천박한 완성도를 최대한 보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계는 명확하다.
임시변통은 임시변통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이 기술은 앞으로 천천히 완성시켜 나갈 생각이야.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위기는 뛰어 넘었으니까."
백신현은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검은 검사를 향해 다가갔다.
그때까지도 검은 검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입술을 떠듬거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검은 검사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진다.
그의 가슴팍을 뚫고 나온 검왕검의 칼날이 은색으로 빛나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완전히 불시에 일어난 등뒤에서 찔러온 칼날.
검은 검사는 이미 무력화된 상태였다.
그의 무릎에서 덜컥 힘이 빠진다.
마력으로 이뤄진 육체는 무적이 아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데미지를 입으면 마력의 순환이 약해지면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등을 뚫고 들어간 일격은 검은 검사를 무력화시키고도 남을 정도의 위력을 품고 있었다.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은 마력의 흐름을 한 방향에 집중시켜서 사용자의 몸을 탄환처럼 날려보내는 기술이지. 그리고 그건 네 기술도 마찬가지야. 원리는 똑같으니까."
"설…… 마……"
"하지만 제일검은 사용자의 육체만 골라서 날려 보내는 기술이 아니야. 마치 골목길 사이로 부는 매서운 돌풍처럼…… 그 흐름에 걸리는 모든 존재를 정해진 마력의 흐름에 따라 날려 보내는 기술이지."
그의 등뒤로 검왕검을 끌어당긴 것은 바로 검은 검사 자신이 만들어낸 파천계도성의 마력의 흐름이다.
마지막 순간, 승부를 끝내기 위해서 파천계도성을 발휘한 바로 그 때, 백신현의 손아귀에서 튕겨나가 공중에 떠 있던 검왕검이 검은 검사가 펼친 흐름에 걸렸다.
검왕검과 검은 검사는 동시에 한 방향으로 집중된 파천계도성의 흐름에 올라탔지만 인간형인 검은 검사와 비교해서 검왕검의 무게는 1/10 이하로 매우 가볍다.
같은 흐름에 올라타더라도 서로의 속도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다.
검은 검사가 마지막 일격을 내지르기 위해서 가속을 시작한 그때, 검왕검은 이미 그의 등을 찢고 들어가 가슴팍을 뚫고 튀어나와 있었다.
말로 하면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마력을 다루는 무인들은 언제나 마력을 초음파처럼 발산해서 주변의 360도 모든 범위를 통찰하고 있으니까.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기습을 성공시킬 수 없다.
백신현이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을 쉬지 않고 연속해서 사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력의 발산을 통한 통찰은 초음파와 같은 원리다. 전신에서 발산된 마력이 다른 사물에 부딪치고 돌아오는 것을 통해서 사각조차 파악하고 돌아보는 것이다.
하지만 천변무궁류와 파천계도성의 초가속을 통한 치킨 게임은 발산된 마력이 사물에 부딪치고 돌아올 틈도 없는 속도의 한계 영역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즉 마력을 통한 통찰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
백신현에게는 큰 핸디캡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그는 보유하고 있는 마력양이 부족한 탓에 마력에 의한 통찰 자체를 전혀 쓰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백신현을 제외한 수많은 전사들에게는 매우 효과적으로 통한다.
처음부터 그것을 위해서 준비한 기술이었다.
"네가 말한 것처럼 임시변통의 기술로 파천계도성을 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냐."
그러니까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백신현 제일의 무기로 승부에 나섰다.
속임수와 트릭.
지금까지 몇 번씩 그에게 승리를 안겨준 최대의 무기와 함께.
"하지만 꼭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야만 이길 수 있는 건 아니거든. 파천계도성은 강력한 검술이지만, 천변무궁류가 움직이고 나서야 효과를 볼 수 있다는 큰 단점이 있어. 그게 바로 파천계도성의 약점이야."
천변무궁류에 반응해서 효과가 달라지는 수동적인 검술인 탓에 그 흐름을 읽어낼 수만 있다면 천변무궁류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 움직임을 유도할 수 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 싸움에 계산 없이 충돌한 공방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백신현은 이미 무릎을 꿇은 검은 검사의 지척에 도달해 있었다.
부러진 왼손의 다섯 손가락을 하나씩 끼워 맞춘 뒤 그대로 검은 검사의 가슴을 뚫고 나온 날을 부드럽게 감싸쥔다.
날이 살가죽에 파고들어 피가 흐르기 시작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놓치지 않게 단단하게 틀어쥐고 고개를 든다.
"실수했어……."
검은 검사는 이미 패배를 받아들인 듯 허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천변무궁류의 검사라고 생각하고 전투에 풀어나갔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군……."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검날을 쥐고 아래에서 위로 그대로 휘둘렀다.
"넌 '검사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 나의 패인인가……"
그의 상반신이 반으로 쩍 갈라지며 천천히 뒤로 쓰러져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