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 15. 마검?? (4)
* * *
"백신현……!!"
루이스가 이를 바득 갈았다.
전투의 흐름을 완전히 읽어내진 못했다.
천변무궁류는 물리적인 흐름 뿐만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없는 무형의 흐름마저 휘어감아서 제어하는 검술.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영역에서 얼마나 고차원적인 공방이 이뤄졌을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결과는 눈에 보였다.
천변무궁류의 제삼검이 파괴되면서 백신현이 무력화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백신현이 머리를 밟혔다.
완전히 제압되어서 꼼짝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루이스가 검을 틀어쥐고 돌격하려던 바로 그때, 검은 검사에게 머리를 밟히고 있던 백신현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검은 검사의 말이 백신현의 머리를 부수고 지면을 세게 밟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눈의 착각이다.
밟혀서 부서진 건 그 자리에 남아 있던 잔상. 진짜 백신현은 검은 검사의 발 아래에서 빠져나온 채, 비어 있는 옆구리에 칼을 꽂아 넣고 있었다.
천변무궁류의 제사검. 그것은 그 자리에 질량을 가진 잔상을 남겨서 적의 눈을 현혹시키는 기술이다.
아마 머리를 밟힌 그 시점에서 제사검의 준비는 끝나 있었을 것이다.
온갖 속임수를 즐겨 쓰는 백신현에게 가장 어울리는 천변무궁류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완전히 허를 찌른 상황. 텅 비어 있는 옆구리에 사정 없이 칼날이 파고든다. 하지만 그 순간 백신현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옆구리에 꽂힌 칼날이 그대로 검은 검사의 몸을 통과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피와 고통은 없다. 검은 검사의 몸이 그 자리에서 안개처럼 흩어졌다.
조금 전의 백신현과 거의 동일한 기술이다. 질량이 있는 잔상이 그 자리에 남아서 상대방의 감각을 혼란시켰다.
검은 검사는 백신현의 검이 도달할 수 없는 사각을 점하고 있었다.
조금 전의 공방이 다시 한 번 재현된다.
"흐읍!!"
백신현이 등뒤에서 파고든 검을 받아낸다. 하지만 검은 검사의 무기는 검 한 자루 뿐만이 아니다.
단단하게 틀어쥔 그의 왼쪽 주먹이 백신현의 얼굴을 강하게 후려쳤다. 백신현의 얼굴이 훅 돌아간다.
"큭!!"
하지만 그건 백신현 또한 마찬가지. 검은 검사의 주먹이 얼굴을 후려친 그 순간, 백신현은 다리로 검은 검사의 배를 걷어차서 거리를 벌린다.
서로 일격씩 주고 받은 셈이다. 하지만 양측의 신체 능력의 차이를 고려하면 이 공방은 백신현에게 큰 손해였다고 볼 수 있다.
퉤, 하고 백신현이 입술 사이로 피를 뱉으며 다시 한 번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의 기술 하나 하나가 천변무궁류의 기술에 맞춰서 준비된 기술 같았다.
파천계도성의 시작검은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에 대응하고, 가속검은 천변무궁류의 제이검에 대응하는 식이다.
단독으로 써도 높은 수준의 검술로서 기능하지만 특히 까다로운 점은 천변무궁류를 상대로 사용했을 때 더더욱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이다.
천변무궁류의 기술 하나 하나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특성이 그의 검술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그의 검술을 강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백신현은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천변무궁류가……, 통하지 않는다……'
쿵! 쿵! 쿵!
실로 꿴 것처럼 천변무궁류의 삼검이 연달아서 펼쳐진다.
무작정 내지르지 않는다. 천변무궁류 하나 하나에 대응하는 기술에 맞서기 위해서 서로 다른 기술을 빠르게 연계할 생각이다.
검은 검사의 모든 검술은 각각 천변무궁류의 기술 하나 하나에 대응하는 식으로 준비되어 있다.
즉 시작검으로 천변무궁류의 파괴할 수는 있어도, 가속검으로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을 파괴할 수는 없다.
천변무궁류의 기술 하나 하나로 맞설 수 없다면 스스로가 알고 있는 모든 기술을 연속해서 펼쳐 판단을 흐려지게 만든다.
제일검에 맞춰서 시작검을 쓰면 그 즉시 제이검으로 전환한다.
제이검에 맞춰서 가속검을 쓰면 그 즉시 제삼검으로 바꾼다.
기술의 연속 변환으로 맞서 싸운다. 천변무궁류를 위해서 준비된 카운터에 그대로 맞아주지 않는다.
백신현은 그 전술을 상상한 것만으로도 가볍게 현기증이 도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천변무궁류를 쓸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모든 기술이 틀어막힌 상황에서 검은 검사에게 맞설 수 있는 방법은 이것 하나 뿐이다.
천변무궁류로 파천계도성을 무너트리기 위해서는 백신현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각오가 필요했다.
콰직, 바닥을 강하게 내딛으면서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이 시동한다. 그에 맞춰서 검은 검사도 시작검에 들어간다.
"……하아아아아앗!!"
유성과 시작검의 격돌 직전, 백신현의 몸이 천변무궁류의 이치를 무시하고 더욱 더 가속했다.
그 찰나, 몸을 앞으로 밀어보내는 마력의 흐름을 추가로 몸에 휘어감아 혜성의 효과를 발휘했다. 혜성에 의해서 증폭된 각력이 백신현을 더더욱 높은 속도의 지평에 도달하게 만들었다.
물론 서로 다른 두 가지 기술을 연속해서 시도한 대가는 크다. 마력의 흐름이 어설프게 엉키면서 백신현의 다리를 비롯한 하체 전반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가했다.
뚜드드득, 하고 하체에서 울려 퍼진 소리는 근섬유가 찢어지는 소리였다.
리스크를 짊어지고 시도한 공격. 그러나 검은 검사는 그 직후 빠르게 대응에 나선다. 제이검에 맞서는 파천계도성의 두 번째 기술, 가속검.
백신현은 그 사실을 머리로 이해하기도 전에 이미 천변무궁류의 다음 기술에 들어가 있었다. 검은 검사라면 틀림없이 이 정도 전환에는 반응한다. 그런 확신이 있었다.
다시 한 번 천변무궁류의 형태가 변한다. 제이검에서 제삼검. 뱀이 허물을 벗듯이 변화가 빠르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 변화는 본래 허용되어 있던 형태의 변화가 아니다.
이미 마법적으로 완전한 구조를 띄고 있던 기존의 천변무궁류의 구조를 억지로 무너트리고 비트는 행위.
정해진 이치를 벗어난 움직임은 틀림없이 위화감을 낳고 기술의 완성도를 떨어트린다.
뿌득, 뿌득, 뿌득. 백신현의 전신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리가 연달아서 터져 나왔다.
각 기술의 경계를 무너트리고 무모하게 통합시키려 든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흡!!"
리스크를 동반해서 완성한 일격. 그러나 검은 검사는 그 모든 변화에 일일이 반응해서 대응책을 제시했다.
검과 검이 부딪쳤다. 백신현은 순식간에 힘 싸움에 밀려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큭!!"
바닥을 몇 바퀴 구른 후, 튕겨오르듯이 재차 일어선다.
조금 전의 격돌에서는 패배했다. 하지만 그 충격은 조금 전과 비교해서 가볍다.
천변무궁류의 연속 전개가 효과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기술의 연속 전개 끝에 그 천변무궁류에 맞서는 기술도 흔들렸다.
그 사실을 확인했다면 해야 할 일은 명백하다.
조금 더 빠르게, 그리고 조금 더 날카롭게 천변무궁류를 연속해서 펼쳐내는 것.
지금은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많이 서툴고 부족했다. 하지만 한 번 시도해보니까 아주 못할 짓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시도하면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날카롭게 펼칠 자신이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조금 연속해서 펼친 것만으로도 발목이 나갔다. 이제 이런 짓은 앞으로 두세 번 정도가 한계일 거야.'
고통을 갈무리하며 천천히 호흡한다.
발목의 붓기가 느껴진다. 심한 부상은 아니지만 여러 번 반복되면 어떤 결과가 될지 알 수 없다.
그리고 백신현이 이미 한 번 지금의 연속 공격을 보여준 만큼 검은 검사의 대응도 좀 더 철저하고 견고하게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조금 전과 같은 효과를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외의 대응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달려들어서 부딪칠 수밖에 없다.
천변무궁류의 기술을 연속해서 펼친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그것에 대응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날카롭게.
백신현은 준비를 끝마쳤다.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을 시작으로 하는, 백신현의 독자적인 연계식이 다시 시작된다.
질풍이 분다.
유성은 천변무궁류의 기술 중에서 가장 먼저 습득하게 되는 기술이다.
마력의 흐름을 제어하고, 그 방향과 속도를 지정하는 테크닉은 천변무궁류의 모든 기술에 공통적으로 필요한 요점인데 제일검 유성을 습득하는 것으로 사용자는 천변무궁류라는 이름의 유파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
천변무궁류의 모든 기술은 유성에서 시작된다.
"……."
검은 검사가 오른손으로 쥔 검을 앞으로 세게 내지른다.
초고속의 참격에 맞서는 것은 초고속의 찌르기.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에 맞서는 파천계도성의 시작검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두 개의 유파가 부딪치기 직전, 천변무궁류의 형태가 빠르게 변환된다. 허물을 벗듯 검술이 또 다른 검술을 부르며 순식간에 모습을 바꾼다.
제일검에서 제사검으로. 다시 제삼검으로. 그리고 또 다시, 제이검으로.
검술이 변하고 변하고 또 다시 변한다. 그 변화 속도는 조금 전과 비교해서 확연하게 빠르다. 검은 검사는 천변무궁류의 모든 기술에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다.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대응책이 따라올 수 없을 정보로 빠르게 파고들어야 한다.
'하지만 따라잡고 있어. 나도 빨라졌지만, 저 녀석도 빨라졌다……'
전환 속도는 백신현이 조금 빠르다. 하지만 검은 검사도 아슬아슬하게 그 전환에 대응하고 있다.
그렇다면 좀 더 빠르게.
천변무궁류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몸에 익혀두었던 파르네제식 검술따위도 총동원해서 가장 집요하고 복잡한 흐름을 자아냈다.
놈의 검술을 무너트리기 위해서.
뿌득, 뿌득, 천변무궁류의 이치에 맞지 않는 연속기를 반복할 때마다 모든 체중과 관성을 감당해야 하는 발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유성, 혜성, 거성, 삼렬성. 네 가지 검술이 서로 다른 색채를 연달아 흩뿌리면서 빠르게 변화한다.
"……흐읍!!"
이윽고 검은 검사가 조금씩 후진하기 시작했다. 천변무궁류의 다종다양한 변화가 파천계도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백신현이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천변무궁류의 네 가지 기술을 통해서 발생할 수 있는 조합은 256가지에 이른다. 거기다 그 사이 사이에 파르네제식 검술의 요결이 더해져서 나오는 경우의 수는 그야말로 무한에 가깝다.
제 아무리 천변무궁류의 카운터로 존재하는 무술이라고 해도 대처하는 것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검은 검사는 몇 개의 빈틈을 노출시켰지만 백신현은 굳이 그 틈으로 파고들어가지 않았다. 그 모든 빈틈이 오히려 백신현을 유인해서 무너트리기 위해서 만든 거짓된 빈틈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보다 쉽게 상대를 쓰러트리고 싶다. 눈에 보이는 빈틈에 파고들고 싶다.
투사들이 본디 지니고 있는 안일한 마음가짐을 파고든 함정이다.
하지만 속지 않는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중해서 조금씩 조금씩 검은 검사의 방어를 깍아나간다.
백신현을 유인하기 위한 몇 가지의 빈틈이 여러 번 발견되었지만 단 한 번도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현실의 싸움이란 변수가 많은 것.
손쉽게 파고들 수 있는 편리한 약점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우직하게 밀고 나간 끝에 승리가 있다.
쿵!!
반복된 공격의 끝에 파천계도성의 방어가 처음으로 균열을 보였다. 겨우 드러난 조그만 균열을 놓치지 않는다. 균열을 향해 수도 없이 검을 후려쳐서 균열을 크게 열어 젓히는 작업에 들어간다.
'방어는 이걸로 부순다.'
파괴의 결의를 검에 실어 휘두른다.
지금의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최고최대의 위력을 가진 일격.
하지만 그 공격은 검은 검사의 방어를 부수기는커녕, 그의 손에 붙잡혀서 정지하고 말았다.
"……?!"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다.
검에 실려 있던 모든 힘과 속도가 한 순간에 흩어져서 사라졌다.
마치 마법이 풀린 것처럼 그야말로, 순식간에.
전혀 생각치도 못한 상황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한다. 아니, 그래도 생각해야 한다. 이대로 굳어 있으면 틀림없이 당한다. 그런 생각이 팔과 다리를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조금 늦었다.
검은 검사의 검이 백신현의 몸통을 대각으로 찢는다. 아슬아슬하게 몸을 비튼 탓에 검이 깊숙히 파고들진 못했지만 백신현의 몸통에 실선이 달리며 그 자리에서 피가 솟았다.
"컥……!"
고통이 달린다. 흐려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고개를 든다.
그 상태에서 백신현이 선택한 천변무궁류의 한 수는 제삼검. 검의 날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며 날을 쥔 검은 검사의 손가락을 날리기 위해서 날뛰기 시작한다.
검은 검사가 쥐고 있던 날을 놓치고 물러선다. 그리고 정확히 제삼검의 전개가 끝난 순간 전진해서 다시 한 번 백신현의 지척으로 파고든다.
힘을 실은 어깨 치기가 백신현의 몸을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위치까지 날려 보냈다.
"나는 분명히 말했다. 천변무궁류는 통하지 않을 거라고."
검은 검사는 백신현의 피로 젖은 어깨를 느릿하게 돌리면서 차갑게 입을 열었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면 이해할 때까지 베어주겠다."
* * *
'……생각해보자.'
검은 검사가 무슨 속임수를 쓰고 있는 건 틀림없다.
녀석의 모든 행동이 기존의 상식과 원리를 무시하고 있다.
루이스가 모르는 숨겨진 내막이 분명히 존재한다.
'백신현이 저렇게 얻어 터지는 동안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는 건 말이 안 돼. 그러니까 생각해. 생각해보자. 검은 검사는 도대체 무슨 속임수를 쓰고 있는 걸까.'
마력의 흐름을 읽을 수 없는 루이스에게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애시당초 천변무궁류의 검사는 다른 인간과 비교해서 전혀 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다.
장님에게 종이의 색깔을 물어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할 수밖에 없다.
백신현이 루이스에게 분석을 부탁한 이유는 혼자만의 힘으로 검은 검사의 속임수를 밝혀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장에서 한 발짝 떨어진 위치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일단 저 검은 검사의 특징은 명확해. 천변무궁류의 카운터가 되는 검술을 쓰고 있고, 아무리 공격을 받아도 충격을 잘 받지 않고, 특이한 공간 이동술을 쓰고 있지.'
검은 검사는 이제 그 특수한 공간 이동술까지 본격적으로 섞어서 쓰기 시작했다.
백신현이 검을 휘두른 자리에 검은 검사는 없다. 흩어지듯 사라진 뒤, 전혀 다른 위치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천변무궁류의 제사검과는 느낌이 다르다.
그건 어디까지나 잔상을 그 자리에 남겨둘 뿐, 백신현이 움직이는 모습은 똑똑히 눈에 보였으니까.
원리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생각을 다르게 해 보자. 어째서 '저런 현상'이 벌어지는지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저런 현상'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거야.'
루이스가 알고 있는 모든 상식을 총동원해서 분석에 들어간다.
검은 검사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수많은 정보가 스쳐 지나간다. 그 중에서 중요한 정보를 걸러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기준을 명확히 잡아둔 뒤 거기에 맞지 않은 정보를 쳐내기만 해도 충분했으니까.
'내가 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술식 중 가장 저것과 유사한 것은 보이드의 분신 술식이야.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인간이 아닌 보이드의 분신은 가슴팍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더라도 죽지 않고, 부서지지 않아.'
그것을 루이스는 지식이 아니라 실제로 겪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뒤 루이스는 머리로는 그대로 생각에 잠긴 채, 반쯤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검은 검사가 정말로 분신 술식을 쓰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한쪽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은 뒤, 피로 마법진을 구축해서 분신과 연결되어 있을 '본체'를 찾아본다.
루이스의 수준이 높은 편은 아니라 추적까지는 어렵다. 하지만 본체와 분신의 연결 여부를 파악하는 건 이 정도 수준으로도 충분하다.
잠시 눈을 감은 채 탐색에 들어간다.
색소가 옅은 분홍색 입술이 살짝 비틀어진다.
'연결고리가 느껴지지 않아. 일단 분신 술식은 아니라는 소리야.'
루이스는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도 정말 잠깐이었다. 애초에 첫 시도로 바로 적의 비밀을 눈치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분석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조건을 계속 바꿔가면서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조금씩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
'하지만 안 돼. 백신현이 언제까지 버텨줄지도 몰라. 최대한 빠르게 결과를 내야 해.'
순간적으로 연금술사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그녀를 데려오지 않은 것이 최대의 실수였을지도 모른다.
연금술사를 과보호하는 경향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
'아냐. 선생님은 생각하지 마. 없는 사람을 찾아서 염불을 외워봐야 아무것도 안 돼. 여기에서, 내가 끝내야 해.'
고개를 한 번 흔든 뒤 검은 검사의 공간 이동을 머릿속에 그린다.
공간 이동의 이론은 얼추 들어서 알고 있다.
자세한 원리까지는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공간 이동 술식의 개발사가 피와 죽음으로 점철된 역사라는 그 사실 하나만큼은 잘 알고 있다.
'공간 이동의 술식은 두 가지 방향으로 연구되고 있었어. 첫 번째는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배치한 뒤 말도 안 되는 출력으로 공간을 휘어 버리는 방식.'
공간 술식의 연구 성과 중 유일하게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방식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자를 수백 명 가까이 요구하고, 그마저도 마력의 공진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배치해야 간신히 100g 전후의 물질을 10m 정도 움직일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지금까지는 이 정도의 성과조차 없었던 것이 공간 이동 술식의 현실이다.
국가적인 수준의 조직이 아니면 애초에 시도조차 할 수 없다.
공간 이동 직후 발생하는 후폭풍 또한 어마어마한 수준이어서, 실제로 공간 이동이 발생했다면 그 발동을 알아채지 못할 수가 없다.
검은 검사의 불가사의한 이동 기술을 '평범한 공간 이동'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두 번째…… 대상을 산산조각 분해시킨 뒤, 임의의 위치에 재조합해서 출현시키는 방식."
이론으로는 존재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방식이다.
피를 피로 씻는 공간 이동 술식의 개발사에서도 특히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킨 것이 바로 이 이론을 바탕으로 한 실험이다.
대부분 대상을 분해한 뒤 재조합하는데 실패하면서 발생한 사상자다.
'사상자도 사상자거니와 개발 과정에서 이러한 고찰이 등장했다고 하지. [분해된 뒤 다른 위치에서 재조합된 인간을 분해 전과 동일한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학계에서는 '엘레나의 마차'라고 불리는 철학 사상이다.
나무로 만든 마차에 낡은 부분이 나타날 때마다 새로운 나무를 하나씩 가져와서 보수를 하게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차에는 낡은 부분이 발생하게 되고 그때마다 나무를 가져와서 보수한다.
그 끝에 원래 마차에 쓰였던 나무가 단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도 그것을 기존의 마차라고 할 수 있을까.
루이스에게는 상당히 익숙한 예시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엘레나는 파르네제 가문의 시조로, 유명한 대영웅이니까.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두 번째 공간 이동 방식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어. 물론 나도 저 검은 검사의 공간 이동이 진짜로 그런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냐.'
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했을 때 루이스의 머릿속에서는 어느 가설이 하나 피어났다.
보이드의 분신 술식, 그리고 엘레나의 마차.
이 두 가지 요소가 조화롭게 섞여서 또 하나의 가설을 만들어냈다.
루이스는 가설의 검증을 위해 다시 한 번 술식을 전개했다. 이름은 없다.
이미 존재하는 술식의 수식을 바꿔쓰고 조합을 뒤바꿔서 루이스가 원하는 조건을 파악하기 위해서 개조한 것이니까.
하지만 바로 해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조합과 수식을 계속해서 바꿔나가며 검증에 들어간다.
이 짧은 순간, 루이스가 연속해서 펼친 술식의 개수는 약 351개.
그리고 정확히 352번째 술식을 전개한 순간 루이스의 감각에 날카롭게 잡힌 것이 있었다.
루이스의 눈이 번쩍 뜨였다.
확신을 품고 입을 연다.
"……알아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