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20화 (120/287)

〈 120화 〉 15. 마검?? (3)

* * *

"천변무궁류가 해체되고 있는 건가?"

루이스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전투의 무대가 교회 안에서 바깥으로 달라진 것처럼, 그들 또한 교회 바깥으로 나와서 전투의 상황을 눈으로 쫓고 있었다.

물론 천변무궁류의 흐름까지 읽어낼 수 있는 감각은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술적 역량과는 완전히 구분되는 영역이다.

애초에 자질이 없는 사람은 들여다볼 수조차 없는 환상의 영역.

하지만 그 흐름을 보지 못하더라도 현실에 드러내는 물리적인 결과물은 눈으로 볼 수 있다.

루이스, 올리비아를 비롯한 세 명의 고수의 눈에는 불현듯 움직임이 느려진 백신현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마력의 기류를 볼 수 없는 사람이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띄는 변화였다.

백신현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걸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전…… 과거, 온 세계를 돌아다니며 온갖 무술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그때, 올리비아가 짚이는 것이 있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 중 하나. 동방의 대륙에서는 바다 위에서 습격해오는 해적에 맞서기 위해서 그들이 쓰는 도의 모양을 연구하고, 도식의 형태를 해체해서 해적들의 검술을 부수는 파훼식을 제작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물론 해적의 무술에는 한계가 있다. 솜씨 좋은 고수가 배에 함께 있다면 해적의 습격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무술가는 그러한 고수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해적의 무술을 위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그 검술은 그러한 이들을 위해서 연구되었다.

"하지만 해적의 무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대륙의 검술에는 존재하지 않는 몇 가지의 특이한 흐름이 더해지고, 최종적으로는 해적의 무술에 상당히 가까운 형태의 검술로서 완성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당연히 그렇겠죠."

가만히 듣고 있던 루이스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대답했다.

"해적의 무술에 대륙의 사람들이 고생했다는 건 상성이 뒤지게 안 맞든, 해적의 무술에 생각치도 못한 강점이 있었든 뭔가 이유가 있었다는 소리고, 그런 상황을 뒤집기 위해서는 해적의 무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적극적으로 흡수시킬 수밖에 없으니까요."

무술계에서는 상당히 흔한 일이다.

어느 한 가지 무술에 대항하기 위해서 전략을 짜고 기술을 연마할수록, 그 전략과 기술은 오히려 무너트리려는 무술과 상당히 유사한 형태를 띄게 된다.

유명한 현자는 말했다. 괴물과 맞서 싸우는 자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무슬의 세계에도 정확히 같은 원리가 통용된다.

"저 검사의 무술이 천변무궁류와 유사한 결과물을 발생시키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이 아닐까요. 천변무궁류에 대응하기 위해서 탄생한 무술이기에…… 천변무궁류와 유사한 기술을 보유하게 된 것입니다."

애초에 그가 쓰는 검술이 천변무궁류일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올리비아가 들은 것도 어디까지나 소문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저 그 소문으로 들려온 검술의 형태에서 천변무궁류의 흔적을 찾았을 뿐.

천변무궁류와 유사하면서도 전혀 다른 무술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천변무궁류, 라."

루이스가 눈을 찌푸렸다.

『검주. 검주도 눈치채셨어요?』

'……그래.'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긍정한다.

천변무궁류의 흐름이 눈에 띄게 약해져 있었다. 착각이 아니다. 검을 휘어감고 있던 속도는 느려지고, 칼끝에서는 나약함이 일렁거린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검은 검사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찌르기다.

천변무궁류의 기법에는 현존하는 검술에 존재하는 모든 방향과 초식이 스며들어있다.

찌르기부터 시작해서 종베기와 횡베기, 그리고 대각베기까지. 천변무궁류는 모든 종류의 검술을 적재적소에 활용해서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낸다.

그렇지만 마력의 흐름을 제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천변무궁류의 특성상, 그 대부분의 검술은 찌르기보다는 휘두르는 쪽에 보다 방향성이 치우져있다.

검은 어디까지나 휘둘러서 베는 무기다. 찌르기의 비중은 높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저 검사의 검술은 다르다.

'찌르기야.'

『네, 찌르기예요.』

천변무궁류의 흐름의 사이 사이에 존재하는 '공백'을 절묘한 찌르기로 파고들어서 모처럼 구축한 천변무궁류의 흐름을 뿌리부터 붕괴시킨다.

이것은 베어내는 작업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함부로 기류의 틈새를 베어내려 하면 오히려 기류에 휘말려서 방향과 힘을 잃고 무너지고 말 테니까.

하지만 찌르기는 다르다.

수많은 기류가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틈새만을 노리고 공략하기 위해서는 찌르기가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바로 조금 전에 놈은 말했다.

온갖 위협에 맞서 싸우는 것이 무의 본질이라고.

그리고 저것은 대? 인간, 대? 야수의 영역을 초월한, 그야말로 대? 천변무궁류의 검술.

천변무궁류와 유사한 검술을 부린다는 소문이 도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천변무궁류를 부수기 위해서는 우선 천변무궁류에 대해서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저것은 천변무궁류를 부수기 위해서 탄생한 검술.

천변무궁류와 유사한 현상을 발생시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어떻게 하지?'

전투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경우의 수 중에서 가장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상황이 벌어졌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당연히 핵폭탄이 떨어진 기분이다.

어쩌면 좋지, 어쩌면 좋지. 젠장, 내 밑천은 천변무궁류밖에 없는데 그게 지금 무력화된 상황이다.

천변무궁류를 쓰지 못하는 나의 한계는 명확하다.

그냥 백신아에게 맡겨버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당연히 한다.

같은 상황이라도 나와 백신아의 대응력은 하늘과 땅만큼 크게 차이가 나니까.

하지만 그건 싫다.

단순한 자존심의 문제는 아니다.

'어차피 내 몸이 아무리 축나더라도 백신아는 움직일 수 있다. 그렇다면 바로 교체할 필요가 없어. 최대한 부딪쳐서 정보를 파악한 뒤 그때가서 교체해도 돼.'

이것은 그저 효율의 문제이다.

백신아에게 주도권을 넘겨준 그 순간부터, 내가 기존에 입은 부상과 손상은 거의 대부분 무시할 수 있다. 백신아가 내 몸을 조작하는 원리는 실을 붙인 인형에 가깝다.

관절이 빠지고 다리가 부러지더라도 실이 붙어있다면 움직일 수 있다. 그러한 문제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찜찜한 느낌이 든다.

저항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이대로 무작정 백신아에게 주도권을 넘겨서는 안 될 것 같은…… 나 스스로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직감이 느껴진다.

탁, 타닥.

"……."

뒤로 물러나면서 아직 흩어지지 않은 마력의 흐름을 가늠한다.

상당수의 마력이 흩어졌지만 아직 남아있는 것이 있다. 그것을 모조리 휘어감는다.

연속된 찌르기에 의해서 마력의 기류는 무너졌다. 하지만 한 번 나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던 마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주변을 부유하는 중이다.

그 흐름을 다시 한 번 낚아채서 기술을 준비했다.

천변무궁류?????

제일검?一?

초록색 마력 입자를 흩뿌리며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이 공간과 거리를 무시하고 일직선으로 쭉 질주했다.

하지만 통하지 않는다. 칼날이 빛을 반사하면서 쭉 나아가는 것과 동시에, 검은 검사 또한 검을 뒤로 잡아당기면서 기술을 준비했다.

충돌은 그 직후였다.

파천계도성?????

시작검???

은색 칼날이 눈부신 빛을 발하며 부드러운 궤적을 그렸다.

이번에는 찌르기가 아니다. 천변무궁류의 제일검과 같은 초고속의 참격이 빠르게 접근한 뒤 타이밍을 맞춰서 나의 검을 후려쳤다.

쿵!!

검을 쥔 손이 그대로 튕겨나간다.

손바닥이 아프다. 지나친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손아귀가 찢어진 것 같았다.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이 지금의 충돌로 파훼되었다.

검은 부서지지 않고 살아있지만 기술은 완전히 파괴됐다. 속도도 힘도 모조리 사라지고 나의 몸통이 그대로 노출된 상태였다.

"일단 첫 번째."

눈에 훤히 드러난 빈틈을 검은 검사가 내버려둘 리 없다. 놈은 별안간 몸을 회전시키더니 그 힘을 그대로 실은 채 찌르기에 들어갔다.

피할 수 없다. 아마 방어 또한 불가능할 것이다.

내가 이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면 말이다.

"큭!!"

바득, 하고 이를 갈면서 파괴되어서 흩어진 마력의 잔재를 긁어모았다. 이번에는 검이 아닌 나의 육체를 그 흐름의 중심에 둔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눈으로 볼 수 없는 마력이 아주 높은 밀도를 획득하게 됨으로써 공기 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녹색이었던 마력 입자가 불현듯 붉은색으로 변질되었다.

한계 이상의 밀도로 뭉친 마력의 성질이 변화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붉은색 마력 입자를 흩뿌리면서 나는 그 자리에서 급격하게 가속했다.

천변무궁류의 제이검이 시작된다.

이 상태의 나는 조금 전의 나보다 조금 더 거칠고 난폭해진다. 움직임에서는 부드러움이 사라지고 날카로움만이 남는다.

혜성은 통상적인 강화 마법과 비교해서 수 배에서 십수 배 이상의 강화 배율을 가지고 있다. 가속된 움직임을 제어하는 것도 간단하지 않다.

힘에 휘둘리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평소와 비교해서 움직임의 섬세함은 확실히 무뎌진다.

곡선에 가까웠던 내 움직임이 직선적으로 변했다. 방향을 전환할 때마다 거친 관성이 내 몸을 붙잡는다.

하지만 전혀 상관 없다. 검이 다가오는 것보다 빠르게 물러선 후, 그대로 방향을 전환해서 급가속. 검은 검사의 측면으로 달려들었다. 힘과 속도를 완벽하게 겸비한 칼날이 측두부에 파고든다.

호흡과 검이 일체화된 최고 최선의 일격이었다. 하지만 그 칼날이 미처 접하기도 전에 검은 검사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또 다시 그 공간 이동술인가? 아니, 지금까지 보여줬던 공간 이동을 방불케하는 특수한 이동술과는 느낌이 다르다. 움직이는 궤적이 똑똑히 보였다.

붉은 마력 입자가 놈이 지나간 자리에 분분히 흩어진다.

검은 검사는 둥근 원을 그리며 어느 세 나의 배후로 돌아 들어와 있었다. 천변무궁류의 제이검을 아득히 넘어서는 속도였다.

'……혜성의 효과를 역으로 이용해서……!!'

이때, 나는 어릴 적에 보았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릴 적에 본 영화에서는 우주선에 침입해온 외계인 침략자를 쫓아내기 위해서 우주선에 구멍을 뚫는 장면이 있었다.

우주선의 내부와 진공 상태인 우주의 기압차를 이용해서, 외계인을 바깥으로 쫓아내기 위한 임기응변이었다.

지금 검은 검사가 저지른 행위도 그것과 비슷하다.

원리는 한 순간에 바로 파악했다.

저 괴상망측한 움직임은 혜성과 같은 초가속의 효과가 아니었다. 바람 속에서 종이가 나부끼듯, 천변무궁류와 혜성이 만들어낸 흐름 속에 올라타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금의 검은 검사는 그야말로 바람이 되어 있었다.

바람은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마력의 흐름 또한 마찬가지. 혜성에 돌입한 내 육체는 고밀도의 마력 덩어리를 휘어감은 상태이고, 모든 마력의 흐름은 내 육체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

검은 검사는 그 중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흐름을 관조한 뒤, 그 흐름에 올라타서 지금의 나 이상의 속도를 발휘하고 있다.

조금 전의 기술도 그렇고, 혜성을 공략한 지금의 움직임도 그렇다.

녀석의 모든 전투 기술은 거의 대부분의 상황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우수한 검술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천변무궁류에 치명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두 번째도 파훼 완료. 이게 끝이냐."

"큭!!"

급하게 몸을 틀어서 공격을 받아냈다.

하지만 지금 사용한 혜성은 모여든 마력이 많지 않은 탓에 불완전한 형태로 발휘된 상태다.

리바운드가 크지 않은 대신, 그 효과도 평소와 비교해서 많이 반감되어 있었다.

결국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몸이 쭉 밀려 나가고 만다.

파천계도성?????

가속검???

검은 검사의 공격은 계속된다. 놈의 칼날이 검은 색으로 빛을 발하는가 싶더니, 검은 광선이 일직선으로 터져 나왔다.

역시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불완전한 상태의 혜성으로는 저 공격에 버텨낼 수 없다.

이를 악물고 혜성을 캔슬. 손목을 움직여서 검을 역수로 쥔다. 그대로 지면에 꽂아서 천변무궁류의 제삼검에 들어간다.

거성에 의해서 넓게 펼쳐진 검날이 전면에 전개되었다.

검은 광선은 그 직후 쏟아졌다.

나는 바닥에 검을 박아 넣은 상태 그대로 밀려나가고 있었다.

거성으로도 그 공격을 버텨내기에는 힘이 부쳤는지 검은 광선이 지속될수록 힘이 비교적 적게 미치는 외곽의 칼날부터 붕괴하기 시작했다.

콰직! 콰직! 콰직! 푸르게 빛나는 마력의 칼날이 조금씩 무너져간다. 거성의 축에 자리 잡은 검왕검의 칼날이 열을 받아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바로 그때, 나는 거성 위로 쏟아지던 검은 광선의 힘이 아주 조금 약해진 것을 손끝의 감각으로 감지했다. 그 원인의 파악까지는 1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고개를 옆으로 몰린다.

검은 검사는 이미 코앞이다. 놈의 칼날은 푸르게 빛나는 마력을 휘어감은 채 두껍게 증폭되어 있었다.

검과 검이 다시 한 번 부딪친다. 결과는 순식간에 드러났다.

거성은 순식간에 파괴되었고, 그 자리에는 뼈대로 버티고 있던 검왕검만이 남았다.

마저 받아내지 못한 충격은 고스란히 검을 타고 내 몸에 쏟아졌다.

산산히 흩어져 가는 푸른 마력 입자 속에서 나의 몸이 뒤로 나가떨어진다. 바닥에 처박힌 후, 그 상태에서 두 번, 세 번 다시 튕겨오르면서 땅을 구른다.

"세 번째."

검은 검사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인다.

내가 주특기로 삼는 천변무궁류의 삼검이 모조리 파훼되었다. 바닥에 나가떨어진 나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어올렸지만, 그 전에 검은 검사에게 머리를 밟혀서 다시 한 번 진창에 얼굴을 처박고 말았다.

"큭……! 악……!"

"여기에서 내 손에 죽게 되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라."

머리를 밟힌 채, 눈만 움직여서 검은 검사를 노려본다.

힘을 주고 일어나려고 했지만 쉽게 되지 않았다. 머리가 흙속에 거의 파묻히다시피 박혀 있다. 잘못 힘을 주면 오히려 목뼈가 빠져버릴 것 같다.

"설령 네가 나를 쓰러트린다고 해도 네게 남아있는 건 지옥 뿐. 그럴 바에야 차라리 여기에서 죽여주는 편이 자비로운 처사일 것이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