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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16화 (116/287)

〈 116화 〉 14. 한 걸음 앞 (4)

* * *

자택에 복귀하니, 루이스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연금술사도 기운을 차렸는지 창백한 안색으로 맞은편에 앉아있다. 찻잔에 뭘 담아서 마시고 있다.

색깔을 보아하니 내가 주방에 놓아둔 찻잔 같은데, 아주 자기 집 물건처럼 쓰고 있다.

어차피 지금에 와서는 그다지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

"왔어? 홍 기룡 그 사람이 뭐라고 말해?"

"올리비아한테 들었던 말하고 똑같아. 내 검술하고 같은 걸 봤다고 하더라고."

"……진짜 천변무궁류인가? 올리비아 그 사람한테 들은 건 어디까지나 소문이지만, 홍 기룡은 네 검술을 실제로 본 사람이잖아."

연금술사는 찻잔에 뭘 담아서 마시고 있었지만 루이스 앞에는 아무것도 없다. 한 잔 따라서 내민다.

"아, 고마워."

"어차피 싸움을 피할 방법은 없어. 진짜로 천변무궁류를 쓴다고 하더라도, 맞서 싸워서 이길 수밖에 없겠지."

"……의외로 네가 이길 가능성이 높을 거 같은데."

"왜지?"

고개를 돌려서 질문한다. 루이스는 내가 내려준 차를 한 모금 머금고, 혀를 삐죽 내밀었다.

"맛 없네. 너 진짜 더럽게 못 탄다."

"시끄러. 그것보다도 조금 전의 그건 무슨 소리야?"

"하지만 생각해봐. 척 봐도 그 정체불명의 검사가 가지고 있는 마력은 나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고."

루이스는 맛이 없다고 불평을 하면서도 순식간에 찻잔 안에 들어있는 걸 싹 마셔버리고는 "한잔 더"를 요구했다.

다시 한 번 내려준다.

"그런데 겨우 홍 기룡 상대로 그렇게 시간을 끈 걸 보면, 소문에 비해서 생각보다 내용물은 별 거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

루이스는 다시 내려준 차를 홀짝인 다음 무례하게 검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네가 그 쥐꼬리 만한 마력으로 무슨 짓을 벌여왔는지, 나는 속속들이 다 알고 있잖아."

쥐꼬리 만한…….

최근 3개월 동안 열심히 수련해서 조금씩 최대치를 높였는데도 루이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건가.

아니, 일일이 충격 받을 때가 아니지 지금.

그래서 결론이 도대체 뭐야.

"그 정도 마력으로도 특급 레벨의 상대와 맞서 싸우는 게 가능할 정도로 대단한 검술이 바로 천변무궁류인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 정체불명의 검사가 별 거 아닌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싸움이라는 게 그런 식으로 수치로 명확하게 표시되는 게 아니잖아. 그리고 나도 한 번 싸울 때마다 어마어마하게 고생 중이고."

결과는 나의 승리로 끝났지만, 싸움은 결과가 전부가 아니다.

내가 특급 수준의 강자들과 부딪칠 때마다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저런 말은 쉽게 나오지 않을 텐데.

"하지만 승리는 승리잖아. 네 전체적인 실력이 특급의 영역에 어느 정도 이빨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고. 오히려 난 네가 지나치게 쫄아 있는 거 같은데?"

"네가 하고 싶은 말은 알겠는데."

나는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보다 더 높은 마력을 가지고 있는 놈이 홍 기룡 상대로 시간을 꽤 써서 처치하는 정도라고 치면, 천변무궁류의 숙련도는 내가 더 높을 수도 있다는 거잖아. 그래서 승산이 있다고 보는 거고."

"아, 맞아 맞아. 그런 말이야. 네 검술은 출력보다는 기량이 더 중요한 무술이잖아. 그럼 실제로 붙었을 때 네가 좀 더 유리할 거 같지 않을까? 하는 거지."

그리고 루이스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덧붙였다.

"뭐, 꼭 네가 혼자서 일대일로 싸워야 할 필요는 없지만……, 느낌상 그 습격자는 일대일 상황이 아니면 아예 나타나지도 않을 것 같아서."

지금까지 드러난 모든 습격도 그런 형태였다.

그 검사는 언제나 일대일 상황을 강요하거나, 그게 아니면 일대일 비무가 될 수밖에 없도록 주변에 최대한 많은 시선이 세팅된 상태에서 도전했다.

일대다수의 상황을 꺼려하는 건 틀림없다.

혹시나 우리가 습격 당하더라도 일대일의 상황에서 마주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올리비아한테도 이거 주고 왔어."

나는 얄팍한 양피지가 여러 개 겹쳐진 두루마리를 품안에서 꺼냈다.

지금은 줄 사람이 많지 않아서 올리비아에게만 건네줬지만, 예비는 꽤 많이 만들어뒀다.

"……나도 하나 줘봐."

"아, 여기."

루이스에게도 한 장 떼어내서 넘겨준다. 루이스는 그것을 돌돌 말아서 허리춤의 가방에 집어넣었다.

테이블에 턱을 괴고, 아래에서 위로 나를 바라본다.

"요새, 그 사람하고 자주 다니나보다? 올리비아하고."

"어쩌다보니까 자꾸 마주치게 되네."

아무래도 피차 눈에 띄는 차림이다보니 길을 걷다가도 서로를 쉽게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마주치면 대화도 좀 나누고, 그러다가 술이 생각나면 같이 마시러 가기도 하고.

난 간이 고장나서 술 대신 우유로 참고 있지만.

"……넉살도 좋다. 그 인간들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루이스는 아직도 스페트로와의 싸움을 잊지 못한 건가.

하긴, 나도 가끔씩 꿈에 나와서 깜짝 깜짝 놀라곤 하니까.

하지만 내 생각에 지금 저 말은 그때 일을 잊지 못해서 나온 말이 아닌 거 같다.

나는 루이스를 흉내내듯 턱을 괴며 질문했다.

"뭐야, 너 질투하냐?"

"……그런 건 아니고."

획 고개를 돌린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표정이 훤히 보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것도 많이 발전한 거다.

예전이었으면 문답무용으로 정권 지르기가 날아왔을테니까. 루이스도 나이를 먹으면서 차갑게 넘기는 법을 배운 거 같다.

"네가 그런 걱정할 필요가 없다니까. 올리비아는 그냥 친구야. 너하고는 좀 다르지."

"……난 아무말도 안 했거든? 아, 그리고 질투 아니라니까!"

하지만 나도 그동안 나이를 헛 먹은 건 아니다. 루이스와는 오랜 인연이다. 기분을 풀어주는 방법은 완벽하게 습득한 상태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루이스의 표정은 금세 새침하게 풀어져버렸다. 이를 드러내며 바득바득 갈았지만, 그게 끝이다.

음, 이거 생각보다 너무 쉬운데.

"……근데 정확히 우리가 무슨 관계지?"

한참 동안 얼굴을 붉힌 채 이를 갈던 루이스가, 문득 떠오른듯 고개를 들었다.

일단은 친구 사이이지만 평범한 친구 사이에서는 못할 짓도 많이 했다. 돈 없을 때는 동거도 해보고, 얼마 전에는 몸도 섞었고, 혼욕도 했고…… 하여튼간에 평범한 친구 사이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잔뜩 해댔었지.

그렇지만 연인 사이냐고 물어보면 그건 또 아니고.

의식한 적은 없지만 생각해보면 상당히 신기한 관계다.

그럼 섹프……? 음, 아냐, 이건 용어 선택이 상당히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중간하기 그지없는 이 관계를 도대체 무슨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생각외로 고민이 길어지자 루이스는 오히려 재미를 느낀 듯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대단한 질문은 아니지만, 네가 고민하는 표정을 보니까 재미있네."

"생각보다 대답이 술술 안 나오네……."

지금의 상황을 명쾌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다.

"히히히."

하지만 루이스는 벌써 기분이 풀린 얼굴이다. 도대체 어디의 어느 포인트에서 기분이 해소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루이스의 성격은 도통 종잡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하여튼 내 주변의 인간들은 죄다 성격이 이상하다. 나 빼고.

"됐어.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고, 일단 훈련이나 하자고."

루이스가 자리에서 일어난 뒤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 시간까지 여기에 죽치고 앉아 있었던 이유가 그거때문인 것 같다.

얼마 전까지는 내가 일방적으로 배우는 입장이었지만, 백신아를 손에 넣고 천변무궁류를 습득하게 되면서 어느 정도 합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요즘은 오히려 내가 유효타를 더 많이 낼 때도 있다.

실력차이가 상당히 줄어든 것을 느낀다.

빈집촌의 공터를 하나 잡고 자세를 잡는다. 루이스가 허리춤에서 뽑아든 검은 1급 모험가를 위해서 준비된 최상급의 물건이다.

특급의 출력을 감당하기에는 하자가 조금 있지만, 지금 구할 수 있는 물건 중에서는 최고다.

파비아가 가지고 있던 검을 쓰면 쉽게 전력을 발휘할 수 있을 테지만, 루이스는 아직도 저 검을 고집하고 있다.

단순한 고집은 아니다.

따로 생각하는 게 있는 것 같다.

겉옷을 벗어서 옆에 놓아두고 준비한다. 루이스도 추운 날씨에 맞춰서 입고 온 외투를 벗었다.

"……음, 그래. 어제는 홍 기룡하고 친선비무 붙은 거 때문에 하루 훈련을 쉬었었지……."

루이스가 입술을 가린 채 짧게 중얼거린다.

좋은 생각…… 아니, 못된 생각이 떠올랐을 때 루이스는 저런 행동을 취하곤 한다.

버릇으로 형성된 행동이다.

"그럼 오늘은 네 약점을 중심으로 공격해볼까. 홍 기룡이 파고들었다면 진짜로 위험했던 부분에 대해서."

"……."

어제의 홍 기룡은 날 상대로 상당히 잘 싸웠다.

특히, 그는 내가 스페트로와 맞서 싸웠던 당시의 상황을 목격한 사람 중 한 사람으로써 내 마력양이 넉넉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거기에 맞춘 전략을 골라서 가져왔다.

독이 발라진 그의 칼은 스치기라도 하는 순간 나를 끝장낼 수도 있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내게 있어 진정으로 까다로운 공격이었나?

그렇게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주먹과 다리로 겨루는 맨손 격투라면 모를까. 무기를 쓰는 싸움에서는 스치는 상처 하나조차도 무시할 수 없다. 팔을 맞으면 검을 쥐는 힘이 약해지고, 다리를 맞으면 순식간에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들고 만다.

상처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 있어서는 기존의 싸움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 조건이 더 까다롭고, 첨예하게 달라진 것뿐.

위험하긴 해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었다.

하지만 루이스는 다르다.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나와 많은 횟수를 부딪쳐온 녀석은 나 이상으로 나의 장점과 약점을 잘 알고 있는 상대였다.

내가 껄끄러워하는 공격에 대해서도 훤히 꿰고 있다.

어느 정도 대처는 가능했던 홍 기룡과의 친선비무와는 다르다.

알아도 대응하기 어려운 약점이, 틀림없이 존재한다.

루이스가 검을 중단세로 들고 자세를 잡는다. 나와 루이스의 자세는 꽤 닮은 편이다. 나의 검술의 근간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 루이스와 같은 파르네제식 검술인 탓이다.

"간다."

마치 사형 선고와도 같은 한 마디가 떨어졌다.

그리고 루이스는 속임수 없이 그대로 정면에서 짓쳐들어왔다.

궤적이 훤히 보이는 공격이다. 당연히 예측해서 카운터에 들어가는 것도 어렵지 않다.

"……!!"

하지만 나는 이때 그 선택을 스스로 포기하고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타이밍을 맞춰서 카운터에 들어가더라도 루이스를 쓰러트릴 자신이 없었던 탓이다.

오히려 루이스가 한쪽 팔을 희생하는 식으로 칼을 받아내고 달려들면 나로서는 대항할 방법이 없어진다.

루이스는 홍 기룡 같은 모범생 스타일하고 다르다.

견제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승산'을 쌓아올린 끝에 '회피할 수 없는 피니시'로 결정하는 스타일하고는 정반대에 위치하는 존재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부상은 감당한다. 팔 한짝이 날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일격에 목을 물어뜯는다.

홍 기룡을 비롯한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절대다수의 고수가 '이성'에 특화되어 있다고 쳤을 때, 루이스는 그야말로 '본능'에 특화되어 있는 고수이다.

그리고 이 '본능'에 특화된 고수는 내게 있어 최악의 상성을 가진 존재였다.

이성과 본능.

이 중에서 이성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맹신하는 것은 고수들의 나쁜 버릇이다.

뼈를 깎는 수행을 통해서 '힘'을 손에 넣은 고수들은 현실의 싸움이 녹록치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얕보는 것을 피하고, 분석을 통해 상대방에 맞춘 전술을 준비하게 된다.

전투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공방과 심리전이 '패배의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에 집중된다.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 규칙이 존재하는 놀이 속이라면 그들의 방식은 잘못되지 않았다.

정해진 HP가 존재하고, 그것을 다 깎아낼 때까지 싸움이 끝나지 않는 규칙이 존재한다면, 그들의 방식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재수 없게 목을 한 번 잘못 얻어맞기만 해도 끝장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탐색 ­ 견제 ­ 준비 ­ 마무리로 이어지는 '이성적인 흐름'을 시작할 수조차 없는 싸움이 널려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본능.

그리고 루이스 파르네제는 이러한 '본능'과 '센스'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쫓아올 수 없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존재이다.

내가 천변무궁류를 준비할 틈도 없이 파고들어서, 순식간에 마무리를 지어버린다.

"……! 이 녀석……!!"

피가 튄다.

고작해야 친선 비무에 불과한 전투에서, 루이스는 무식하게 나의 칼날을 왼손으로 붙잡으려는 선택을 했다. 쿵!! 마력으로 강화된 다섯 손가락이 검을 강하게 움켜쥐고 내가 원하지 않은 궤도로 비틀었다.

물론 루이스의 왼손도 무사하지 않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왼손의 손가락 중 검지와 중지가 하늘을 날았다.

하지만 그것을 대가로 얻은 것은 명백했다. 나의 검이 대각으로 꺾이고, 대지를 딛고 있던 나의 자세까지 무너졌다.

나는 순식간에 루이스의 간장차기에 걷어차여서 나가떨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내 허리 위로 올라탄 루이스에게 마운트를 잡혀서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

천변무궁류는 장기전에 특화되어 있는 검술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은, 고수들의 전술과 아주 궁합이 잘 맞는다. 진정한 고수들은 나의 마력량을 봐도 방심하지 않는다.

드러난 부분보다도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오히려 위험한 법. 그들은 나의 마력량을 보고 오히려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탐색과 견제를 통해 조금씩 미지수인 부분을 밝혀 나가고 전투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온갖 변수를 제거해나가면서 전투에 임한다.

그런 식으로 시간을 지체하는 전반적인 행위가 천변무궁류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하지만 루이스는 다르다.

무모하기 그지없는 일격으로 시작부터 파고들어서 순식간에 마무리를 지어버린다.

……말은 간단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행위는 아니다. 어중간한 돌격 따위는 내게 통하지 않는다. 깊이 파고든다해도 충분히 대처할 자신이 있다.

루이스의 방식은 당연히 상당한 리스크를 동반한다. 노리는 바가 명확하기 때문에 읽히기 쉽고, 공격 일변도의 전술은 카운터를 맞았을 때의 충격 또한 극대화시키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을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본능과 센스로 승화시켜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격으로 만들어낸다.

제대로 쓰지 못하면 격하의 상대에게도 승기를 노출시킬 수 있는 문제투성이 일격이지만, 제대로 쓸 수만 있다면 격상의 상대에게도 이빨을 꽂을 수 있는 무시무시한 일격이 된다.

전대미문의 천재인 루이스에게 어울리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머리로 싸우는 걸 못하는 것도 아니라서, 루이스와 싸우는 건 나로서도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다.

"……그래도 그렇지, 그런 식으로 손가락 막 날려도 되는 거냐?"

"아, 선생님한테 고쳐달라고 하면 되지. 단면이 깨끗해서 금방 붙을걸?"

하지만 아무리 내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해도 그렇지, 현실에서 이런 짓을 하는 건 너무 무모한 짓이다. 일단 고통이 상당히 동반될 것이고, 그 다음에는 연금술사의 잔소리까지 무더기로 얻어맞아야 한다.

나 자신도 뻔히 알고 있는 약점을 이런 식으로까지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물론, 홍 기룡이 진짜 이런 식으로 나왔더라면 아마 나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패배했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난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싸우는 사람을 딱 두 사람밖에 보지 못했다.

루이스. 그리고 그 개과 수인 여자, 파비아.

선천적인 감각을 상당히 요구하는 방식이라서 그렇다. 노력을 쌓고 또 쌓아서 고수의 영역에 도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짓을 하라고 해도 못한다.

이성 쪽에 감각이 상당히 쏠려 있기 때문에 천변무궁류로 맞서기 수월한 편이다.

루이스는 왼손에서 피를 뚝뚝 흘리면서 말했다.

"이 손을 고친 다음에는, 너하고 '그 짓'도 해야해. 내 안에 있는 네 마력이 슬슬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거든."

시기상으로는 어제가 제일 적절한 날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내가 친선비무로 지쳐 있었기 때문에 나를 쉬게 내버려뒀고…… 나는 연금술사와 밤새 그 짓을 했다.

나도 할 말이 없다.

루이스는 내 허리 위에서 물러난 뒤, 검을 몇 번 털어서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자유로워진 손으로 나를 잡고 일으켰다.

바닥에 떨어진 손가락은, 루이스가 말한 것처럼 단면이 깨끗해서 잘만 하면 빠르게 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습 시합을 끝내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맨발로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연금술사는 손가락이 몇 개 없는 루이스의 손을 보며 표정을 팍 구겼다.

나도 나지만 루이스도 상당히 몸을 축내면서 싸우는 스타일이라 연금술사의 고생이 심하다.

하지만 설마 연습 시합에서 손가락을 잘라먹고 돌아올 줄은 몰랐을 거다.

물론 나도 생각 못 했고.

"그래도 잘릴 때 깔끔하게 잘려서 그런가. 반나절이면 붙일 수 있겠네. 하지만 자꾸 이러면 너희 둘 다 고쳐주지 않는 수가 있어."

절단된 손가락을 봉합하고, 그 위에 칭칭 감은 붕대 위에 마법문자로 술식을 새긴다. 연금술사는 성질이 올라오기 직전의 표정으로 거의 10분 가까이 루이스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건 나도 인정해야지.

솔직히, 연금술사 믿고 지금까지 몸 막 굴린 것도 사실이다.

루이스는 깁스도 없이 붕대만 감은 왼손을 살살 움직여대면서 고개를 돌렸다.

"아, 죄송해요. 하지만 그 검사하고 제대로 한 판 붙기 전에 신현이의 약점을 현실에서 체크하고 싶었거든요. 가상 공간에선 여러 번 했지만…… 현실에서 해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니까."

그야 현실에서 내 약점을 파고들려고 치면 피를 볼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가상 공간에서는 여러 번 같은 짓을 반복했지만 설마 현실에서도 이런 미친 짓을 할 줄은 몰랐다.

보다시피 루이스가 손가락을 몇 개 날려먹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녀석이 신현이를 보면서 '찾았다'라고 말한 게 신경이 쓰여서요. 신현이가 주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까지 미뤄두던 걸 한 번 시도해본 거예요."

루이스가 고개를 획 돌렸다.

"실전에서 한 번 사람 손가락을 날려보니까 어때? 감이 좀 오지 않아?"

"뭐, 그거야."

욕은 했지만, 가상 세계에서의 경험은 오직 가상에 한정된다. 가상 공간에서 살점을 후비는 감각과 현실 세계에서 살점을 후비는 감각은 확실히 다르다.

현실에서 약점을 공략 당한 경험은 틀림없이 유용하게 쓰이겠지.

근데 그건 그거고.

그런 짓을 할 때는, 좀 나한테 미리 말해주고 시작하면 안 되나.

깜짝 놀랐잖아.

"하지만 말하고 시작하면 네가 뺄 수도 있잖아. 이런 건 모르고 해야 효과가 있다구. 그래야 나도 재미가 있고."

"재미는 얼어죽을."

참 희한한 성격이다.

왜 내 주변 사람 중에는 멀쩡한 사람이 없지.

고개를 한 번 까딱거리면서 한숨을 쉰다.

허리에 매고 있던 가방을 떼어내서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더 늦기 전에 양피지를 정리해서 놓아둘 생각이다. 이게 도대체 언제, 어느 순간 찢어질지 알 수 없으니까.

잠시 안 보는 사이에 찢어져 있기라도 하면 너무 그림이 우스워지니까.

가방에서 술식이 새겨진 양피지를 꺼낸다. 그리고 잘 보이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무거운 물건을 얹어서 고정한다.

"네 손이 낫기 전까지는 찢어지지 않고 버텨줬으면 좋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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