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14. 한 걸음 앞 (3)
* * *
중동.
동방의 중앙이라는 의미이다.
실 쓰임새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중동'과 대동소이하다. 구파일방, 오대세가를 비롯한 동방의 대륙을 극동이라고 쳤을 때, 중동은 그 대륙을 지나서 훨씬 더 깊은 곳에 있다.
나처럼 실제로 가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사막 지형과 온갖 다양한 향신료로 유명하다.
동방 대륙에 비해서 외부에 크게 알려져 있진 않지만, 이 중동이라는 곳은 의외로 무예의 역사가 상당히 오래된 비밀스런 지역 중 하나다.
수천 년 전의 벽화에서도 마주선 두 남자가 서로 주먹질을 하며 무예를 겨루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이니까.
하지만 비밀주의가 심한 데다가 전체적으로 친왕권적인 성향이라 외부에 알려진 정보가 많지 않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그렇지만 올리비아는 다르다는 건가.
"나는 일 때문에 배를 타고 많은 곳을 돌아다녀봤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이 바닥 자체가 안전한 일만 할 수 있는 곳은 아니야. 양지는 물론이고 음지의 위험한 공간에도 여러 번 드나들어야 했지."
올리비아는 과거 일을 회상하는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는 중동의 지하무술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최강자였다."
"그 정도인가?"
"그렇다. 그래서 당연히 너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알데바란의 이름은 중동 이외의 지역에서도 꽤 유명하거든."
알데바란.
중동 지하무술계의 최강자.
그런 사람이, 지금은 진 노인의 경호원으로 일하고 있는 건가.
"10여년 전 불현듯 모습을 감춘 그가 어째서 진 어르신의 경호원으로 활동하고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처음 진 어르신과 만나는 자리에서 그의 모습을 보았을 때는 심장을 토해낼 것 같은 기분이었다. 긴장돼서 아주 죽을 맛이었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기만 해도 치가 떨리는지 올리비아는 한참 동안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를 너무 자극하지 마라. 실질적인 중동의 최강 실력자인 만큼 그 경지는 최상위의 특급 모험가와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아."
올리비아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진다.
"혹시 진 어르신이 홍 기룡이 아니라 알데바란을 친선비무에 내보냈더라면 너라도 이길 수 없었겠지."
아래로 내려간 시선이 지금은 내 허리춤의 검을 바라보고 있다.
"그 검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겠지."
현재 나의 실력은 외팔이가 된 란즈 가주를 근소하게 초월하는 실력이다.
요컨데 특급 모험가의 말석 정도라는 건데, 그 정도 실력으로는 마그누스나 스텔라 등의 최정상급 모험가에게 맞설 수 없다.
그들과 동급 이상으로 보이는 그 남자, 알데바란에게도 아마 이길 수 없겠지.
아직 갈 길이 멀다.
"……그건 그렇고, 나도 너한테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어, 말해봐."
"그, 진 어르신께서 말씀하신 아이샤…… 라는 이름 말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연금술사 선생님의 본명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내가 하도 어릴 적부터 선생님, 선생님 하고 따르다 보니까 입에 붙어서 그렇지, 연금술사는 본명을 숨기고 다닌 것이 아니다.
하물며 올리비아는 우리들의 뒷조사도 했을 테니까. 당연히 연금술사의 이름은 알고 있을 거다.
"진 어르신하고 연금술사 선생님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어서 그런 얘기가 나온 건지 궁금하다. 대답해줬으면 좋겠다."
"선생님은 그 사람의 손녀거든."
"콜록콜록!!"
올리비아는 적잖이 당황한 듯 헛기침을 했다.
입에 뭘 머금고 있었다면 그대로 뿜어냈을 것 같은 표정이다.
"으, 으음. 몰랐다……! 모험가 길드에서 열람할 수 있는 기록에는 가족 관계 같은 게 쓰여 있지 않으니까……."
"진가의 사람은 성인이 되면 대륙을 순회하며 견문을 쌓는 여행을 떠나야 하는데, 선생님은 도중에 때려치고 가출했거든. 우리도 이런 곳에서 선생님의 조부하고 마주칠 줄은 몰랐어."
이건 진심이다.
물론 진가의 세력은 어마어마하게 넓은 만큼 언제 어떤 식으로 마주치게 되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참 공교로운 경우라고 해야 할까.
"……잠깐만, 백신현."
그런데 올리비아는 지금의 대화에서 뭔가 껄끄러운 점을 발견한 것 같다. 눈을 날카롭게 뜬 상태로 내 얼굴을 가만히 응시한다.
"그런데 내 기억이 맞다면 너와 연금술사 선생님은 분명…… 크흠, 서로 일선을 넘은 관계가 아니었나?"
아, 역시 그게 제일 신경 쓰이는 건가.
올리비아도 나하고 연금술사의 관계는 잘 알고 있다. 스페트로를 쓰러트리기 위해서 준비하던 과정에서 이미 많은 것이 드러난 상황이다.
"그렇다면 네가 진가에 데릴사위로 들어갈 수도 있는 건가……."
"무슨, 선생님하고 진가가 연을 끊은지 10년도 넘었는데."
올리비아 얘는 생각이 그쪽으로만 돌아가는 건가.
나하고 연금술사의 관계를 알고 있는 만큼 그 점이 신경 쓰이는 것도 이해는 하는데.
"……하지만 또 하나의 의외의 인간 관계를 알게 됐군. 너하고 알고 지내기를 잘한 것 같은 기분이다."
"귀찮을 것 같은 부탁은 안 들어줄거야."
"그건 나도 안다. 하지만 너를 알고 나서 이것저것 이득을 본 게 많아서 말이야. 친구 하나는 내가 참 잘 뒀군."
올리비아가 웃으면서 내 등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올리비아는 이런 태도 때문인지 이성이라기보다 친근한 동성 친구 같은 느낌이 든다.
다른 인간 관계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카페에서 잠시 쉰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루이스도 언제까지고 연금술사를 돌봐줄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운 사람이 아니다. 이제 슬슬, 교체해줄 시간이 된 거 같다.
"올리비아. 너도 알다시피 아마 그 검사의 다음 차례는 란즈 가주 아니면 루이스가 될 가능성이 높아."
"음."
"혹시라도 그 검사가 진짜로 찾아오고, 승부를 건다 싶으면 이걸 사용해줘."
"이건……"
등허리에 매고 있던 가방에서 돌돌 말린 양피지를 하나 뽑아서 내민다.
사실 이건 두 장의 양피지가 서로 앞뒤로 붙어있는 물건이다. 끄트머리 부분을 잡고 앞뒤로 갈라서 두 장으로 만든다.
"사용한 재질부터 구조까지, 완전한 동일한 형태의 두 술식이야. 이건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둘 중 하나에 손상이 가면 나머지 하나에도 동일한 손상이 피드백되지."
술식 자체의 내용물은 평범한 섬광 마법이다. 물리적인 피해를 거의 입히지 못하는, 눈속임.
하지만 그 술식의 구조 자체가 상당히 특이하고 괴기하기 때문에 또 다른 술식과 겹칠 염려가 없다.
동일한 두 장을 그려내는 것도 쉬웠다.
비슷한 물건끼리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건 마법의 기본이다. 그걸 잘 활용하면 서로 피드백을 받아서 파괴하는 응용도 가능하다.
올리비아는 바로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면 이걸 찢어서 불러달라는 거군."
"반대의 경우에는 내가 이걸 찢을 거야. 그때는 네가 란즈 가주님을 데려와 주면 돼."
"알았다. 이 경우에는 우리도 당연히 협력을 해야지."
물론, 경찰 또한 경찰대로 수사를 하고 있겠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다음 차례가 누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거슬리는 놈은 최대한 빠르게 정리하는 게 내 마음도 편하다.
"……그럼 다음에 보자."
"알았어. 조심해라, 너도."
올리비아와 인사를 나누고 돌아선다.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허리춤의 검이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알데바란이라……, 척 보기에도 꽤 강해보였어요. 체격만 해도 거의 검주와 비슷한 수준이었구요.」
"그렇지."
근육은 아무리 키워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보통은 근육을 어느 정도 잡고 난 이후 마력 수행에 집중하는 것이 보통이다.
시간대비 효율측면에서도 그 편이 훨씬 낫다.
나나 마그누스처럼 운동 능력을 저하시키지 않는 아슬아슬한 수준까지 근육과 체중을 붙이는 게 오히려 드문 경우다.
그런데 알데바란은 체격만 해도 거의 나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힘으로 붙어도 나에게 쉽게 밀리지는 않을 거 같다.
「올리비아 씨는 자극하지 말라고 말하셨지만. 후후, 저는 오히려 그 사람을 자극해서 한 번 붙어보고 싶은걸요. 중동 지하무술계 최고의 고수라니. 듣기만 해도 기대되는 이름이예요.」
물론, 이 녀석이 헛소리 하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오늘은 유독 목소리가 아슬아슬하다. 약에 미친 사람이 내뱉는 말처럼 들린다고 해야 할까.
나는 녀석의 헛소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툭 내뱉었다.
"욕구불만이야?"
「후후, 당연하죠. 최근 들어서 거의 싸우지 못했잖아요.」
모의 전투는 나와 거의 매일 같이 하고 있지만 그걸로는 부족한 것 같다.
연금술사가 매너리즘을 느끼는 것하고 비슷한 이유일까.
행위 자체에 만족감은 있지만,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일을 경험하고 싶은 욕망이 백신아의 가슴 속에서 넘쳐 흐르고 있다.
「검주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빠르게 강해지시는 바람에, 최근 들어 제 차례가 거의 없었죠. 해신 때도, 그리고 홍 기룡 때도.」
뭐, 조금 버겁기는 해도 내 수준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상대였으니까.
백신아가 나설 정도의 괴물은 아니었다.
아니 진짜로 그런 실력자를 찾을 수는 있을까.
특급 모험가의 필두인 마그누스나 전대 최강의 특급 모험가였던 스페트로 정도를 제외하면 합을 맞출 수 있는 상대조차 변변히 없는 실정이다.
나와 루이스가 최대한 노력해서 백신아에게 덤벼보기는 하지만 실력 차이가 너무 큰 탓에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백신아는 전대미문의 괴물 같은 존재였다.
한 번 몸을 빌려주고 나면 나조차 완전 파김치가 돼서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지치게 되기 때문에 한 번 쓰고 나면 다음이 없다는 점 또한 문제가 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지금까지 백신아에게 몸을 넘겨줄 기회가 없었다.
생각보다 백신아의 힘이 쓰일 만한 국면이 많지 않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백신아 입장에서는 상당한 욕구불만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스트레스가 심해 보인다.
정체불명의 강자인 알데바란에게 흥미를 품는 건 당연하게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그 사람하고 싸우게 해주기는 어렵다. 몰래 잠입해서 일대일 상황을 만드는 것까지야 내 능력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뒷수습하는 방법이 아무래도 마땅치 않다.
거기다가 친선비무가 되면 아무래도 비살상 대련의 형태가 되는데, 이러면 공연히 백신아의 존재만 노출하는 꼴이 될 수 있다.
백신아에게 몸을 넘겨주는 방법은 효과가 확실한 만큼 약점도 명확하다. 죽일 수 없는 대련에서 쓰는 건 곤란하다.
그렇다고 백신아가 알데바란을 죽이는 걸 허락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그럼, 이렇게 하자."
「검주,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지하무술계가 중동에만 있는 건 아니거든."
빛이 있는 곳엔 언제나 어둠이 존재하는 법.
이 대륙에도 구파일방과 특급 모험가로 대표되는 양지 무술계와 대비되는 음지 무술계가 활성화되어있다.
"그리고 지하 투기장의 대회 중에는 가면 같은 걸로 얼굴을 숨기고 출전할 수 있는 무투대회가 많아. 정 네가 그렇다면, 그 중 하나에 출전해서 네가 싸우는 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
정체만 드러내지 않는다면 나로써도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물론, 음지 격투계에서 패배는 곧 죽음을 의미하지만…… 이건 백신아에 한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내가 진짜 걱정하는 것은 백신아를 만족시켜줄 실력자가 음지에도 존재하지 않을 경우이다.
보통 음지가 양지보다 강하다는 착각이 세간에 퍼져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양지 쪽이 보수도 높고 위험성이 낮기 때문에 대부분의 실력자는 오히려 양지 쪽에 포진되어 있다.
음지에도 실력자가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 양지의 규칙에 적응하지 못한 살인광이나 또라이들이라서 대부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
음지의 평판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오히려 이쪽이 더 걱정이다.
「오오……, 저 그런 거 좋아해요! 검주, 그렇게 해주세요!」
하지만 본인은 의외로 긍정적인 인상을 받은 것 같다.
또 지랄발광할까봐 걱정했었는데, 다행이다.
「근데 검주는 생각보다 그런 쪽을 잘 알고 계시네요? 검주는 양지 분 아니세요?」
"어릴 적에 노예 검투사로 활동한 적이 있었다고 했잖아. 그때 이것저것 주워들은 게 꽤 많거든."
결국, 내가 가진 실전의 경험은 대부분 그 시절에 밀집되어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밀도가 높았던 시기가 아닐까 싶다.
나 또한 따지고 나면 무술가 커리어를 음지에서 시작한 셈이니까.
「……그럴 바에야 차라리 검주가 활동하셨다던 그 노예 투기장에 가보는 건 어떨까요? 가서 다 때려 부수는 거죠. 검주도 거기에서 고생 많이 하셨을 텐데.」
백신아가 킬킬킬 웃으면서 말한다.
말하는 투는 농담이지만 실려 있는 감정은 진심이다.
하지만 나는 웃으며 녀석의 말을 만류했다.
"아, 괜찮아."
「아, 왜요. 복수해야죠. 복수.」
"그게 아니라……"
나는 검자루를 검지로 문지르며 대답했다.
"그 노예 투기장은…… 이제 없거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