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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09화 (109/287)

〈 109화 〉 13. 검왕을 찾아서 (10)

* * *

"……저게 뭐야?"

"루이스, 무슨 문제라도?"

보기 드물게 표정을 찡그리는 루이스를 돌아보며 연금술사가 질문했다. 백신현이 정확히 검과 검집을 양손에 한 자루씩 쥐고 자세를 취한 시점이었다.

연금술사는 물론이고, 파비아까지 루이스의 태도에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루이스는 두 사람의 시선을 잠시 동안 살핀 후 헛기침과 동시에 입을 열었다.

"처음 보는 자세라서요."

"그건 정확히 무슨 뜻이지……?"

"그게 말이죠. 전 하루가 멀다하고 검왕검의 가상 공간 내에서 신현이와 부딪치고 있잖아요. 신아하고도 가끔씩 부딪치고요."

루이스가 검지를 척 들고 얘기했다.

"아마 전, 이 세상에서 천변무궁류와 가장 많이 부딪쳐본 사람일거예요. 그런데 그런 제가 모르는 천변무궁류의 자세가 나왔다……? 이건 좀 이상하죠."

루이스가 백신현과 부딪치는 건 비단 가상 공간 뿐만이 아니다. 가상 공간에 뒤지지 않는 정도로, 현실에서도 수도 없이 검을 부딪쳐 왔다.

현실과 가상의 간극을 최대한 좁히기 위해서.

하지만 가상 공간을 비롯한 그 어느 전투에서도 백신현은 저러한 자세를 보인 적이 없었다.

백신아 또한 마찬가지다.

천변무궁류는 한 자루의 검을 좌우로 바꿔 쓰거나 양손으로 쥐어서 휘두르는 일검류.

쌍검의 자세 같은 건 보지 못했다.

"……신현이가 자주 쓰는 장난질인가?"

지금의 상황에서 루이스가 내릴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결론이다.

백신현은 속임수에 능하고 거짓말에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와 상이한 자세를 취함으로써 홍 기룡의 공격을 망설이게 하는 것이 목적일 가능성이 있다.

백신아의 천변무궁류와는 다르게, 백신현의 천변무궁류에는 어느 정도 준비에 들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벌기 위해서 취한 자세가 바로 저것일지도 모른다.

"난 싸움에는 문외한이라서 잘 모르겠는데, 그런 속임수가 통할까?"

"안 통하죠. 우리 같은 프로는 척 봐도 알 수 있어요. 그게 노력 끝에 완성된 자세인지, 아니면 급한대로 골라잡은 임시변통인지."

루이스는 차갑게 대답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알 수 있는 문제를 백신현이 모를 리는 없고.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루이스는 일단 눈에 보이는 결과물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근거 따윈 없는,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지나치게 맹목적인 믿음이다.

녀석이 눈에 뻔히 보이는 수를 쓸 리가 없다……, 지금까지 함께 싸워오면서 뼈저리게 느낀 사실이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루이스의 눈이 비치는 백신현의 모습은 마치 언제 불이 붙을지 알 수 없는 시한폭탄처럼 보였다.

* * *

"……쌍검의 자세라. 회동에서 벌어졌던 전투에서는 보지 못했던 자세구려."

호흡을 정돈한 채 자세를 굳힌다.

검집은 뒤로, 검은 앞으로.

홍 기룡은 나로부터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둥근 원을 그리듯이 걷고 있었다. 나의 자세 속에 숨어있는 빈틈을 탐색하기 위해서이다.

"처음 보는 자세에 무작정 돌진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회동에서 벌어졌던 전투에서 목격한 바, 그대의 검술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더 빠르고 강맹하게 변해간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는 어느센가 나의 등 뒤를 점한 채 눈을 날카롭게 뜨고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떠오르오. 그대의 마력은, 그대의 검술에 비해서 지나칠 정도로 부족한 수준이오. 만약 쌍검을 들게 되면 안 그래도 많지 않은 마력을 둘로 쪼개서 검과 검집에 따로 분배해야 하지."

……정답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최정상의 무술가와 다르게 마력이 턱없이 부족한 나는 마력을 둘로 쪼개서 분배하는 만큼 하나 하나의 공방력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

홍 기룡 또한 일류다.

나의 자세를 본 것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알아냈다.

"……여기까지 생각한 후,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소. 혹시 쌍검의 자세는 그저 나의 눈을 혼란시키기 위한 속임수가 아닌가? 쌍검을 경계해서 파고드는 순간 검집을 내던지고 일검류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홍 기룡은 나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자세에서 조용히 상반신을 앞으로 숙였다.

무게 중심을 앞으로 향하는 그 자세는 현대 육상의 크라우칭 스타트를 닮았다.

"그러니 지금부터 한 번 확인해보겠소. 그대의 그 자세가 그저 속임수인지, 그게 아니면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펼쳐진 자세인지……"

거의 바닥에 밀착하다시피 한 자세로, 홍 기룡이 움직였다.

이것이 교호류의 특징인 것 같다. 낮은 위치에서 파고든 후, 상승하며 물어뜯는다.

수면 아래를 배회하는 상어의 움직임이 이런 식일까.

하지만 그것을 보고 대응하려고 하면 급작스럽게 자세를 바꾸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공격이 꽂힌다.

이지선다를 강요하는 단순한 전술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까다롭다.

나는 몸을 빠르게 반전시키면서 왼손에 든 검집을 놓아버렸다. 홍 기룡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오른손의 검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와중에도 마력의 감각을 일깨워서 검집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을 것이다.

검에 마력을 집중한다. 그 상태에서, 기술은 쓰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다.

하지만 홍 기룡은 브레이크를 걸지 않고, 일직선으로 나아가던 궤도를 아주 조금만 왼쪽으로 수정해서 검을 회피. 그대로 바닥을 세게 내딛으며 상승했다.

홍 기룡이 오른손을 위로 높이 뻗는다. 허리를 뒤로 젓혀서 회피. 그의 단도에는 독이 발라져 있다. 스치기만 해도 위험하다.

그리고 내가 회피 자세에 들어간 찰나 왼손의 단도가 나의 목을 쥐어 뜯기 위해서 파고들어왔다.

이 자세에서는 피하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기술을 써서 빗나가게 한다.

검에 집중시켰던 마력을 해방한다. 희푸른 마력이 넘실거리며 빛을 발했다.

"……!!"

천변무궁류의 제삼검이 실행됨에 따라 날의 너비는 넓어지고, 길이는 더욱 더 길게 늘어난다.

현재, 홍 기룡은 나의 검을 매우 아슬아슬하게 회피하는 궤적으로 파고든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확장된 칼날은 홍 기룡이 확보하고 있던 안전 영역까지 사정 없이 밀고 들어가게 된다.

홍 기룡은 급하게 공격을 그만두고 제삼검의 영향력이 닫지 않는 측면으로 빠졌다. 살짝 왼쪽으로 빠졌던 몸이 아예 왼쪽으로 나가버렸다.

격돌 직전, 나는 스스로 왼손에 쥐고 있던 검집을 내던졌다. 그것이 홍 기룡이 왼쪽으로 회피한 이유다.

오른쪽으로 빠지면 내 검이 쫓아올 가능성이 있지만, 왼쪽으로 빠지면 검으로 추적하는 것도 어렵고 왼손으로 붙잡는 것도 쉽지 않다.

그는 이미 회동에서 천변무궁류의 제삼검을 목격했다. 그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여유롭게 회피할 수 있도록 왼쪽에 발을 둔 상태로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오른손의 검으로 닿을 수 없는 왼쪽으로 빠진 그 순간 뒤로 크게 젓혀져 있던 왼팔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홍 기룡이 눈을 크게 뜬다.

확실히 그 순간, 나는 왼팔을 뒤로 크게 젓히면서 검집을 내던졌다. 하지만 그것은 검집을 포기한 행위가 아니었다. 검집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임으로써 홍 기룡의 의식에서 '왼손'의 존재감을 흐릿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실제로는 검집을 뒤로 내던진 직후, 시간차를 두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갈고리처럼 굽힌 약지와 소지로 검집이 아니라 검집을 허리에 고정할 때 사용하는 둥근 고리 형태의 가죽 끈을 붙잡았다.

제삼검을 이 순간에 사용한 것도 같은 이유다. 고밀도의 마력 덩어리를 이 자리에 배치함으로써 마력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감각을 혼란시키는 것이 진짜 목적이었다.

고수는 눈으로 보지 않아도 사물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 그 감각을 꼬아놓지 않는 이상 완벽하게 페이크를 거는 건 어렵다.

"큭!"

원심력을 받은 검집이 홍 기룡의 머리를 향해 원을 그리며 나아간다. 하지만 홍 기룡이 그것을 회피할 필요는 없었다. 마력이 스며들어있지 않은 공격은 아무리 노력해도 마력으로 강화된 신체를 파괴할 수 없다.

……그런 선입견을 파고들기 위해서 일부러 마력을 분배하지 않고 휘둘렀지만 홍 기룡은 마치 검집에 독이라도 발라져 있는 것처럼 고개를 젓히며 그 공격을 피해냈다.

내가 무슨 수를 썼을지 알 수 없으니 일단 피하고 보겠다는 행동양식인 것 같았다. 현명했다. 그가 회피를 선택하지 않고 몸으로 떼우려 들었다면 그 순간 피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말았을 테니까.

한 번 가로로 휘두르고, 그리고 또 다시 한 번 세로로 휘두른다. 홍 기룡은 두 번 모두 피해낸 후 거리를 벌리고 숨을 고른다.

홍 기룡은 지극히 당연한 행동을 했다.

눈에 뻔히 보이는 행동을 취했다면 당연히 그 속에는 속임수가 숨어 있다.

상식과 괴리된 행동을 취했다면 그 속에는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눈에 뻔히 보이는 기책으로 상대를 속여 넘길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시대는 변했고, 정보가 보급되면서 다양한 상식이 전투 속에 유입되었다.

이젠 누구나 물을 구할 수 없는 곳에서 산 위에 진을 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전투가 벌어지면 보급을 끊은 후 식량을 파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수천 년에 달하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전투에 필요한 모든 상식과 광맥은 파헤쳐졌고, 이젠 그것을 얼마나 더 잘 사용하고, 얼마나 더 잘 속여넘기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왔다.

홍 기룡의 선택은 올발랐다. 내가 휘두르는 그 뻔한 움직임 속에 도대체 무슨 속셈이 숨어 있을 줄 알고 무식하게 몸으로 받아내겠는가.

알 수 없는 공격이 오면 일단 피한다. 피할 수 없다면 막는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다.

내가 실전은커녕 연습에서도 제대로 써보지 못한 쌍검의 자세를 취한 것도 결국 그것을 위한 기만책이었다.

나는 쌍검을 제대로 써본 적은 없지만, 검집을 무기로 써서 위기를 회피한 경험은 너무나도 많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홍 기룡이 마력을 함부로 소모하지 않는 고로, 천변무궁류가 원하는 흐름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조금 더, 조금 더.

검을 쥔 손을 아래로 내리고, 왼팔을 수평으로 들어서 검을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홍 기룡의 검술에 대응하기 위해서 준비한 자세이다. 검집을 뽑아든 것은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쌍검쌍룡의 자세니 어쩌니 하는 검식을 위해서 준비한 게 아니다.

이지선다를 기본으로 하는 홍 기룡의 검술에 대응하기 위해서 준비한 것 뿐.

홍 기룡이 움직였다. 오늘만 세 번째 보는, 거의 지면에 밀착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뿜어지는 고속 돌격.

하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전에 홍 기룡이 먼저 움직였다. 팟, 팟, 하고 오른쪽으로 재빠르게 방향을 꺾은 다음, 내 후방으로 돌아 들어가서 단검으로 허리를 찌르기 위해서 파고든다.

나는 견제의 목적으로 검을 휘둘렀지만 홍 기룡은 또 다시 회피한다. 이번에는 나의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회피. 왼손의 검집을 경계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쪽으로 빠졌다면 오른손으로 쥔 검으로 추적한다. 홍 기룡이 나아간 궤적을 한 발 앞서 검으로 찌른다. 홍 기룡은 또 다시 급정지. 검을 회피한 후, 자세를 낮춰서 나의 복부를 후비고 들어간다.

허리를 비틀어서 단도를 회피한다. 그리고 다시 반격. 왼손을 크게 휘둘러서 검집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다.

그 검집의 공격을 회피할 필요는 없었다. 검집에는 여전히 마력이 전혀 스며들어있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홍 기룡은 피한다.

피하고, 또 다시 피한다.

특급에 준하는 실력자인 그는 아직도 체력이 많이 남아있는 상태다.

아마 이대로 수백 번을 휘두르더라도 홍 기룡에게 나의 검집이 도달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홍 기룡도 마찬가지.

방어에 집중한 나의 검술은 홍 기룡이라고 해도 쉽게 돌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어색한 태세가 지속될 수 있는 이유는 홍 기룡이 나의 검집을 경계해서 깊숙하게 파고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검집의 움직임을 무시하고 깊숙하게 파고들면 그의 공격은 내게 도달할 수 있다.

홍 기룡은 깊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마음을 굳힌 듯 낮게 가라앉은 얼굴로 자세를 취했다.

나의 검술은 전투가 길어질수록 위력이 더해지는 검술. 그리고 홍 기룡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홍 기룡은 조금 무리해서라도 깊이 파고들 생각이었다. 그런 각오가 자세에서 느껴졌다.

그는 돌격에 앞서 손에 쥐고 있던 두 자루의 단도를 투척했다. 그 속도는 빠르지만 궤적은 단순하다. 나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목과 허리를 조금씩 비트는 것만으로 흘려보냈다.

조금이라도 내 신경을 분산시키기 위한 견제에 가까웠다. 홍 기룡은 부지불식간에 두 자루의 단도를 추가로 뽑아든 뒤 빠른 속도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도 그의 움직임에 맞춰서 대응을 바꿨다. 가죽 끈을 놓고 검집을 고쳐쥔 뒤,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그러나 홍 기룡은 피하지 않았다. 검집에 숨겨져 있는 속임수 따위는 무시하고, 오직 현실을 마주보기로 결정했다.

"……."

검집에는 마력이 없다. 따라서, 맞아도 데미지는 기대할 수 없다.

혹시 내가 그 찰나에 빠르게 마력을 이동시켜서 검집을 강화한다고 해도 그 타이밍을 보고 회피할 수 있다.

쿵!! 검집이 홍 기룡의 목에 꽂힌다. 하지만 그는 눈을 감지도 않았고, 그 이전에 제대로 된 데미지도 받지 않았다. 마력이 없는 일격으로, 마력에 의해 강화된 신체를 파괴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내가 이 전투에서 검집을 뽑아든 것은 그저 홍 기룡을 기만하기 위한 행위에 불과했을까.

그렇지 않다.

"……음!?"

검집이 그의 목에 접한 그 순간, 나는 힘을 주고 그의 몸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마력에 의해 강화되었다고 해도 그의 육체는 여전히 인간의 것이다. 체중도 마찬가지. 그의 무게는 여전히 불과 수십 킬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발이 밀리면서 자세가 무너졌다. 좌우에서 휘두르던 단도가 방향이 비틀려서 공중을 헛쳤다.

"큭!!"

홍 기룡이 오른발을 뒤로 물린 뒤, 그 다리에 힘을 줘서 밀려나가던 몸을 지탱했다.

그 잠시간의 경직을 놓치지 않았다.

머리를 뒤로 당겼다가 앞으로 휘두른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코가 뭉게지면서 질퍽질퍽한 소리가 났다.

홍 기룡의 코는 마력으로 강화된 탓에 아예 부서지지는 않았지만, 코는 그 구조상 마력을 많이 실을 수 없는 부위다. 홍 기룡이 비명 소리를 내지르며 뒷걸음질친다.

그것을 추적한다.

천변무궁류의 준비가 이로써 끝났다.

나의 육체를 중심으로 마력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붉은색으로 발광하기 시작했다.

천변무궁류의 제이검, 혜성의 시작이다.

"그건……?!"

홍 기룡은 다급하게 단도를 휘둘렀지만 오히려 오히려 내 팔뚝에 부딪친 날이 부러지면서 하늘로 솟았을 따름이다.

이 상태의 나는 일시적으로 특급 모험가에 버금가는 신체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불안정한 자세로 휘두른 단도의 위력은 반감된다. 하물며 마력을 휘어감지 않은 칼날로는 더더욱 지금의 내 피부를 찢을 수 없다.

검을 쓸까……? 아니, 그것은 좋지 않다. 친선비무에서 피를 볼 수는 없으니까.

오른손으로 쥐고 있던 검을 바닥에 꽂아서 잠시 손에서 떼어낸 후, 자유로워진 손을 내질러 홍 기룡의 턱을 후려쳤다.

손맛이 있다. 충격이 뇌까지 다이렉트로 들어간 느낌이 들었다.

홍 기룡의 안구가 흔들린다. 연속해서 움직인다. 손바닥을 안쪽으로 90도 꺾어서 다섯 손가락이 모두 측면을 바라보게 바꾼 후, 독수리의 손톱처럼 혹 기룡의 턱을 모조리 움켜쥐었다.

그대로 힘을 실어 넘긴다.

쿵!! 낙법조차 취할 틈도 없이, 홍 기룡의 뒤통수가 그대로 지면에 꽂혔다.

"커헉!!"

절호의 기회였다.

검집을 새삼 역수로 고쳐쥔 후, 위에서 아래로 그의 머리를 향해 내려찍었다. 제아무리 특급에 버금가는 실력자라도 마력을 통한 방어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머리를 당하면 즉사할 수밖에 없다.

"……."

이때 홍 기룡이 즉사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그를 끝장낼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머리를 쪼개지 않고 순간적으로 검집을 비틀어서 지면에 꽂히게 했다.

홍 기룡에게 반격의 여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인사불성인 홍 기룡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이 상태에서 반격하는 것은 불가능하겠구려."

홍 기룡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의 패배요."

"후."

검집을 바닥에서 뽑아낸 뒤 홍 기룡에게 손을 내민다. 그는 잠시 망설인 후 내 손을 잡고 일어섰다.

"그대 같은 이가 아직 무명으로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소. 젊은 나이임에도 아마 상당한 사선을 넘어온 모양이군."

"고마워요. 교호류도 꽤 강했어요."

"꽤 강했다……, 인가. 크흐흐, 역시 세상은 넓구려. 그대는 정말로 수많은 고수를 알고 있는 것 같소."

홍 기룡은 살짝 표정을 찡그리는가 싶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오늘의 패배는 기억해두겠소. 교호류는 앞으로도 더 강해질 것이오."

"아, 다음에도 한 판 붙어봐요. 꽤 재밌었습니다."

홍 기룡을 일별하고 나도 돌아선다. 바닥에 꽂아두었던 검왕검을 회수해서 검집에 집어넣는다.

쏟아지는 환호성 속에서 나는 백신아에게 질문했다.

"오늘의 점수는?"

「90점. 검집을 유효하게 쓰지 못한 게 아쉽지만, 그럭저럭 합격이에요. 오늘 밤에, 함께 복습 해보시죠.」

"그것도 잘 못 쓴 거라고 보는 건가. 아직 갈 길이 멀었는걸."

검집을 어루만지며 통로로 돌아간다.

통로의 안쪽에서는 올리비아와 란즈 가주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고했다. 널 믿고 선택하길 잘 했어."

"음."

올리비아가 내민 손에 내 손바닥을 마주쳤다.

승리의 맛은 무엇보다도 달콤했다.

* * *

"고생 많았네.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가?"

"괜찮습니다. 어르신. 혼자서 걸을 수 있습니다."

홍 기룡은 진의 호의를 거절하고 홀로 일어나서 대기실의 문을 열었다.

"제 부상은 심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그저…… 이 전투의 감각이 흩어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몸에 익혀두고 싶군요."

오늘, 틀림없이 홍 기룡은 패배했다.

하지만 그것은 교호류가 천변무궁류에 뒤쳐졌기 때문이 아니다.

홍 기룡의 기량이 아직 교호류의 가능성을 완전히 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였다.

그는 말 그대로 최소한의 응급처치만 대기실에서 거친 후 곧바로 좁은 통로를 똑바로 걷기 시작했다.

오늘의 패배가 괴로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좁은 통로를 나아가던 홍 기룡의 발걸음이 문득 멈춰선다.

통로의 반대편, 그 너머에 키가 큰 인간이 서 있었다.

"……."

무시하고 더 나아갈 수 있었음에도 홍 기룡이 그러지 않은 이유는 그 인간의 모습으로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백을 느낀 탓이다.

그 인간이 서 있는 주변의 풍경이 일그러져 보였다.

마치 별개의 차원에서 찾아온 것처럼.

목소리가 들렸다.

"홍……, 기룡……"

그의 이름이 나왔다.

홍 기룡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허리춤의 단도를 뽑아서 양손에 하나씩 쥐고 있었다.

근육이 긴장한다. 교호류의 자세를 취한 채, 한 걸음 물러선다.

"……내 먹잇감이 되어라……"

그리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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