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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08화 (108/287)

〈 108화 〉 13. 검왕을 찾아서 (9)

* * *

루이스가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신현이가 불리할 거라고 생각해요. 전 예전에 홍 기룡의 기술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암살 문파에서 유래된 기술 답게 모두 위력보다는 속도에 중점을 두고 있었거든요."

루이스는 2년 전의 기억과 눈앞의 현실을 조용히 매치시키며 검지 손가락을 흔들었다.

"체급이 낮은 신현이에게는 아무래도 어려운 상대가 되겠죠."

여기에서 말하는 체급이란 눈에 보이는 육체의 크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몸 안에 축적되어 있는 마력의 양과 한 번에 발산할 수 있는 최대치를 은유한 표현이다.

백신현은 힘이 있는 강인한 육체의 소유자이지만 본격적으로 마력을 다루는 영역에 들어가면 최약체에 가깝다.

특히 빠른 속도로 쉬지 않고 공격을 때려 박는 날렵한 상대에게 취약한 편이다.

홍 기룡의 교호류는 연속 공격에 특화되어 있는 유파가 아니기 때문에 아주 최악까지는 아니었지만, 경쾌한 움직임으로 빠르게 치고 빠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속도가 부족한 백신현에게 있어서는 까다로운 상대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 합을 섞고 흐름을 타면 그때부터는 신현이의 차례예요. 교호류는 결정력이 부족한 편이라 신현이의 솜씨로 버텨낼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루이스는 그 자리에서 검지로 원을 그렸다.

"결국, 신현이가 하기 나름이라는 거죠."

* * *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이 뭉근하게 덮쳐온다.

수준 이상의 강자와 검을 맞댈 때면 언제나 이런 느낌을 경험하게 된다.

가지고 있는 힘이 지나치게 거대한 나머지 그 힘이 파도처럼 일렁이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홍 기룡은 소문대로 특급에 버금가는 수준의 실력자였다.

재수 좋게 상성이 맞아 떨어지지 않는 이상 지금의 내 수준으로는 쉽게 쓰러트리지 못하는 강자라는 의미이다.

과연 내게 존재하는 승산은 어느 정도일까.

나는 그 자리에서 가볍게 스탭을 밟으며 비무를 준비했다.

이윽고 홍 기룡의 모습이 통로에서 나타났다. 그는 붉은 무복 위에 긴 로브를 두른 중년인으로, 수염을 멋드러지게 정리한 선이 굵은 사내였다.

그는 나의 얼굴을 발견하고 가까운 위치까지 다가온 뒤, 상체를 살짝 숙이며 포권했다.

나도 포권을 해야 하는 건가 싶어, 어색한 동작으로 그의 동작을 흉내냈다.

"홍 기룡이라고 하오."

"백신현입니다."

"그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대를 잘 알고 있소. 회동 당시에 스페트로의 앞을 막아섰던, 그때의 청년."

"맞습니다."

"먼 발치에서도 그대의 힘과 속도를 느낄 수 있었지. 자료에서 그대의 얼굴을 본 순간부터 투지가 샘솟았다오. 부디, 멋진 승부를 만들어봅시다."

홍 기룡은 말을 끝마친 후 자리에서 돌아섰다.

상대가 그때의 내 모습을 보고 있었다면 내 마력만 보고 방심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요행을 기대할 수 없는 진짜 실력과 실력의 싸움이 될 것이다.

나도 자리에서 돌아서서 준비에 들어간다. 내 무기는 허리춤의 검 한 자루. 그리고 홍 기룡의 무기는 짧은 두 자루의 검.

'작정하고 치고 빠지기 시작하면 지금의 내 속도로 따라잡긴 어렵겠지. 최대한 버티면서 천변무궁류의 전개에 들어간다.'

새삼 머릿속으로 되새기기는 했지만, 결국 평소대로 하겠다는 소리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내게 온갖 다양한 전술을 상황에 따라 맞춰 쓸 수 있는 기량은 없다.

힘과 속도에 한계가 있는 이상 취할 수 있는 전술과 자세는 정해져 있다.

고민을 마치고 홍 기룡과 서로 마주본 순간 본격적으로 친선 비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제대로 자세를 잡기도 전에 급하게 몸을 왼쪽으로 날렸다. 홍 기룡은 그 직후 내가 서 있던 위치를 뚫고 지나갔다.

옆구리의 천이 살짝 찢어졌다. 빠르다. 일직선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속도 하나만큼은 루이스에 버금갈 정도였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독인가."

몸을 돌린다. 멀리 떨어진 위치에 다시 단도를 역수로 쥐고 선 홍 기룡이 보인다.

자세히 보면, 쇠로 된 칼날이 부자연스러운 각도로 빛을 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표면에 뭔가가 발라져 있다.

이 경우,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건 당연히 독이다.

홍 기룡은 숨겨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긴장을 풀지 않은 자세로 입을 열었다.

"그렇소. 그대의 싸움은 이 눈으로 견식한 경험이 있는 바, 그대에게 최적화된 전술을 준비해온 것이오."

물론, 피부를 베이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조금씩 스치는 수준으로 맞아가며 천변무궁류의 준비에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그 찰나 단도에서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그의 의중을 파악했다.

날에서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단도를 마력으로 강화하지 않았다는 것.

즉 독의 존재를 의미했다.

마력을 통한 무기의 강화와 독은 공존할 수 없다. 마력을 휘어감은 쇠붙이는 매우 빠르게 진동하는 것과 동시에 고열을 품게 된다.

독이나 세균에 있어서는 더할나위 없는 최악의 환경이다. 시험은 해보지 않았지만 마력을 휘어감은 칼날의 온도를 고려하면 바이러스조차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독을 쓴 무기가 사장된 것에도 이와 같은 사정이 있다. 검에 마력을 휘어감지 않으면 마력으로 강화한 육체를 돌파하기 어렵다. 무기에 독을 사용한들 체내로 침투시키는 과정부터가 난관이다.

검에 마력을 두르면 독을 쓸 수 없다.

하지만, 마력을 쓰지 않으면 상처를 입혀서 독을 체내에 침투시키는 것조차 어렵다.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 독공은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전투 속에서 독공을 거의 목격하지 못한 이유도 이러한 이유다.

마력을 사용한 무예가 전장의 주류로 자리 잡은 이후로, 대부분의 독공이 실전되고 말았으니까.

그러나 홍 기룡과 그의 교호류는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암살 유파.

독을 쓰는 기술에도 정통한 것 같았다.

내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성이다.

이로써 나는 그의 검에 스쳐서도 안 된다는 또 하나의 리스크를 짊어지게 되었다.

친선비무에서 살인독을 쓰지는 않겠지만 나를 무력화시키는데는 차고 넘치는 수준의 독을 발라두었겠지.

"그대의 기교는 특급의 영역을 넘어 준신의 수준에 이르러 있으나, 특이하게도 마력의 출력이 너무나도 떨어지지. 그 모순을 파고드는 것에 승기가 존재한다고 판단하였소. 부디, 이 전술을 멋드러지게 깨트려 보시길!!"

홍 기룡의 술수는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그가 로브를 벗어던진 순간, 로브 아래에서 무수히 많은 단검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고대 동방의 어느 암살 유파에서는 만천화우라고 하여 수많은 암기를 일제히 뿜어내는 기술이 존재한다고 하던데, 마치 그것을 연상시키는 듯한 기세였다.

그 하나 하나의 무기에 독이 발라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뒤로 물러서면서 차분히 그 모든 공격을 쳐낼 생각이었지만, 홍 기룡의 다리는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쏟아지는 암기를 우회하는 경로로 돌아 들어와서, 나의 측면으로 단검을 찔러온다.

그의 속도는 조금 전과 비교해서 상당히 빨라져 있었다.

무기에 마력을 분배하지 않아도 되는 만큼, 신체 강화에 마력을 돌린 건가.

가볍게 혀를 찬다. 대처하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승리할 수 있어야 비로소 최강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두뇌회전이 가속된다. 홍 기룡은 무기에 할애하던 마력을 신체 강화에 추가로 소모함으로서 평소 이상의 속도를 획득했다.

하지만 평소 이상의 속도를 완벽하게 다루지 못하는 탓에 방향 전환을 거듭할 때마다 희미하게 밸런스가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

당연한 일이다. 과도한 힘과 속도는 제 자신의 몸을 해치는 법. 수준에 맞지 않는 수준의 강화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홍 기룡은 그것조차 감안하고 속도를 높인 듯 했지만, 내게는 그것이 파고들 수 있는 빈틈으로 작용한다.

홍 기룡은 앞서 투척한 암기보다도 빠르게 다가왔다. 암기보다는 홍 기룡을 멈춰 세우는 것이 먼저다.

선택과 집중을 끝마친 뒤 홍 기룡의 찌르기에 대응한다. 측면에서 내 옆구리를 노리고 쏘아 보내는 찌르기.

다리와 허리를 동시에 굽혀서 몸을 낮게 가라앉힌다. 둥글게 굽어진 등 위로 홍 기룡의 찌르기가 빗나가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몸을 들어올려서 홍 기룡의 몸을 아래에서 위로 들어올렸다.

나의 등과 홍 기룡의 복부가 접했다. 그대로 넘겨서 홍 기룡의 몸을 앞으로 넘어트린다.

마치 기계체조의 기술처럼 홍 기룡의 몸이 넘어간다. 그는 머리가 아래로, 다리가 위로 올라온 상태로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훅……!!"

뒤집혀서 넘어간 그의 등 뒤로 그가 앞서 투척했던 수많은 암기가 쏟아졌다. 그러나 마력이 스며들어 있지 않은 단도는 그의 육체에 상처 하나 내지 못했다.

하지만 내게는 충분한 여유였다. 그의 몸에 가로막혀 암기의 기세가 멈춘 그 순간 나는 이미 뒤로 물러나서 여유 있게 남은 암기를 방어할 수 있었다.

마력으로 강화했다고 한들, 그의 몸은 인간에 불과하다. 인간의 키와 체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렇다면 타격을 입히는 건 불가능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넘길 수 있다.

인간의 몸와 체중으로 인간을 초월한 힘과 속도를 휘두르는 만큼 오히려 이런 식의 그래플링이 효과적으로 쓰인다.

홍 기룡은 넘어가던 와중에도 다급히 바닥을 손으로 짚어서 몸을 지탱한 후, 몸을 몇 바퀴나 회전하면서 자세를 다시 잡았다.

"그대는 검술 이외의 체술에도 능통한 모양이군!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활로를 찾아내는가……?"

균형을 잡고 똑바로 선 홍 기룡은 두 다리를 어깨 너비로 벌린 후, 상반신에서 힘을 빼고 느슨하게 만들었다.

탈력 상태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이 공격을 버텨 보시오."

그의 육체가 더더욱 낮은 위치로 가라앉는다. 아예 상반신이 바닥에 거의 밀착하다시피 아래로 내려간 바로 그때, 갑작스럽게 그의 몸이 최대한의 탄력을 발휘해서 앞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바닥을 기어다니는 뱀. 아니, 차라리 지중을 헤엄치는 상어에 가깝다.

목표는 다리.

'……기동력을 빼앗을 생각인가!'

하지만 무작정 회피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노골적으로 표적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 공격을 회피한 그 순간 숨겨둔 진짜 공격이 날아들 가능성이 높다.

왼쪽 대각의 후방으로 빠르게 물러난다. 홍 기룡은 그것을 보고 즉시 궤적을 수정. 나를 빠르게 따라잡는다.

속도 차이가 너무 심각하게 크다. 그런 건 알고 있었다. 이건 그저 그의 대응을 보기 위한 행동이다.

물러나는 것보다 그가 다가오는 속도가 빠르다. 그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한 뒤, 그의 단검이 본격적으로 내 다리를 노리고 휘두러진 그 순간을 노려서 움직였다.

바닥을 세게 차서 몸을 띄운다. 낮게 가라앉은 홍 기룡의 위로 넘나든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그의 노림수. 내가 그의 위로 넘나든 바로 그 순간 갑작스럽게 그의 단도가 바닥에 꽂히면서 브레이크를 걸었다.

끼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빠르게 정지한다. 남아 있던 관성이 그의 다리를 바닥에서 들리게 만들었다.

그의 몸이 앞구르기를 하듯 한 바퀴 돌았다. 다리는 쭉 뻗은 발차기의 자세다. 회오리처럼 회전한 그의 오른쪽 뒷꿈치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기세로 내 팔뚝에 꽂힌다.

"……!!"

뿌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심장이 목구멍에서 터져 나올 듯한 고통이 닥쳐왔다.

역시, 진짜 공격은 검이 아니라 다리. 회피했을 때를 노리고 파고들어오는 제2타가 홍 기룡의 목적이었다.

제대로 금이 간 것 같다. 하지만 미리 알고 마력을 넉넉하게 집중시켜 두었기에, 골절까지는 막을 수 있었다.

미리 알지 못했다면 팔이 아니라 머리에 꽂혔을 공격이었다. 이 정도 손해로 버텨낸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몸이 붕 날아서 멀리까지 나가떨어진다. 홍 기룡도 그 틈을 타서 자세를 수습한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좋지 않다.

"……오른발의 발가락이 모조리 부러졌구려."

"다리를 부러트리고 싶었지만, 잘 안 될 거 같아서."

마력의 차이가 큰 만큼, 마력이 많이 집중되어 있는 팔이나 다리 같은 걸 부러트리는 건 어렵다.

하지만 신체의 말단 부위로 갈수록 마력을 통한 강화 효과가 약해지는 건 사실이기 때문에, 부러진 팔로 뒷꿈치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 발가락을 후려치는 방식으로 그 다리의 발가락은 모두 박살을 내 줬다.

이쪽은 왼팔에 금이 갔다. 이 정도는 해 줘야 공평하지.

마력의 가용용량에는 압도적인 차이가 있지만, 결국 상대도 인간이다.

아무리 상성이 좋지 않아도 파고들 틈은 얼마든지 있다.

난 지금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와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프군. 실전에서 이런 종류의 공격을 당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인가, 상당히 생소한 기분이오. 못 버틸 정도까진 아니지만 기분 나쁘게 아파."

그에 비하면 나는 꽤 고통에는 익숙한 편이다. 내성도 제법 있다고 자부한다.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펴면서, 자세를 잡고 낮게 심호흡을 한다

아직 천변무궁류에 들어가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한 번 해볼까.

"검집을……?"

홍 기룡이 의아한 듯 눈을 떴다.

그가 어떤 태도를 보이더라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금이 간 왼팔을 움직여 검집을 아예 허리춤에서 통째로 뽑아냈다.

홍 기룡이 두 자루의 단도로 쌍검술을 쓰고 있다면, 이쪽도 마찬가지로 쌍검으로 간다.

오른손의 검을 앞으로, 왼손의 검집을 뒤로 당긴 채 자세를 잡는다.

천변무궁류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검식.

일검일룡一?一?의 자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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