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13. 검왕을 찾아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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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거리를 걷고 있다.
아직 해도 채 떨어지지 않은 시각이지만 다른 곳으로 새지 않고 빠르게 복귀할 생각이다.
지금은 구두 약속에 불과하지만 바로 다음 주에 큰 싸움이 하나 잡혔다.
계약금은 선불로 받고, 친선비무에서 승리하면 추가금을 받는 방식이다.
이 추가금이 특히 크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말 그대로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돈계산에 밝고 속물인 나는 당연히 최선을 다해서 준비할 생각이다.
자취방으로 돌아온 후, 몸을 씻고 헐렁한 무복으로 갈아입은 후 굳어 있던 몸을 풀기 시작한다.
다음 주까지 시간이 많지 않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극적인 실력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최대한 친선 비무 당일에 맞춰서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친선 비무까지 앞으로 6일. 루틴으로 컨디션을 잡기엔 빠듯한가."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면서 중얼거린다. 혼잣말은 아니었다. 백신아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실전에서는 쓸 수 없는 방식이지만, 친선 비무의 날짜가 정확하게 지정되어 있는 지금이라면 몇 가지 특정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통해서 인위적으로 컨디션을 끌어올릴 수 있다.
이때, 컨디션을 끌어올리는데 요구되는 행동이 바로 루틴이다.
예를 들어 대회와 대회 사이의 간격이 긴 비주류 스포츠의 경우 단 한 번의 시합을 위해서 몇 달, 몇 년에 걸쳐 몸을 만들고 루틴을 짜는데, 지금 내가 고민하는 것도 그러한 형태의 루틴이다.
6일이라는 시간이 짧은 건 사실이지만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짧은 기간 동안 몸에 붙일 수 있는 루틴을 구성한 뒤, 친선 비무 당일에 맞춰 110%의 컨디션을 끌어올릴 생각이다.
이것은 그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승리를 거두는 것을 목표로 하는 내 평소 지론과 반대되는 작업이지만, 모험가는 의뢰인의 소망을 이루어주는 것을 업으로 삼는 직업이다.
내 개인의 신념으로 말미암아 의뢰인을 실망시킬 수는 없다.
돈을 받고 프로로 일한다는 건, 그런 의미다.
「검주, 있잖아요. 검주. 돈 받으면 어디에 쓸까요?」
"아직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쓸 생각부터 하냐?"
내가 핀잔을 줬지만 백신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녀석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느낌 상 눈동자가 동전 모양으로 변해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 하지만 검주는 돈을 쓸 줄 모르시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대신 생각해 드려야죠. 히히히, 얼마나 들어올까. 기대되네요.」
백신아가 개구지게 웃는다. 솔직히 좀 재수 없는 웃음 소리다. 저것도 재주라면 재주랄 수 있겠다.
「그건 그렇고요, 검주. 올리비아 씨가 하신 말은 사실일까요?」
"그 정체불명의 검사 얘기?"
「네, 그거요.」
그것도 올리비아에게서 들은 말이다. 천변무궁류의 삼검과 유사한 검술을 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사의 이야기.
올리비아는 몰랐겠지만, 그 말을 들었을 때 백신아는 무척이나 요란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은 건 나 뿐이다.
천변무궁류의 검사라고 확정된 건 아니지만,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다.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이름난 고수를 연달아 쓰러트렸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루이스도 표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
검을 손에 쥐고 불과 5년도 되지 않아 지금의 경지에 오른 불가일세의 천재.
그 이름과 명성은 상당히 드높다.
천변무궁류도 천변무궁륜데, 사실 그쪽이 더 마음에 걸린다.
스트레칭을 하면서 그 정체불명의 검사와 마주쳤을 때의 상황을 가정하고 이미지를 그린다. 검은 천으로 얼굴을 숨긴 괴인.
굳어 있던 근육을 느슨하게 만든 후에는 늘 하던 대로 근육 트레이닝을 시작한다. 허리와 허벅지에 무게추를 붙이고, 높은 곳에 있는 바를 틀어쥔 후 하나, 둘, 셋, 넷.
어느 정도 열이 오르기 시작하면 늘 하던 대로 몸의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그 후로 두 시간 즈음 시간이 흐른 직후였을까. 예고도 없이 등뒤의 문이 열리더니, 짙게 깔린 저녁노을 속에서 연금술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개도 돌리지 않고 연금술사라는 걸 알아본 이유는 이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이 그녀밖에 없어서다.
"신현아. 헬프."
"어쩐 일이세요?"
아직 20일간의 강행군이 끝나고 6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연금술사는 공방에 돌아온 이후 지금까지 공방에서 수면을 취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연금술사치고는 꽤 이른 기상이다. 오늘 자정까지는 꼼짝 없이 시체처럼 잠 들어 있을 줄 알았는데.
트레이닝을 멈추고 일어선다. 몸을 돌린다. 예상대로, 연금술사는 이제 막 일어난 참이었는지 머리카락이 삐죽삐죽하게 뻗친 상태였다.
본인은 부끄러움도 모르는 표정이다.
연금술사는 아직도 졸음을 다 쫓지 못했는지 느릿하게 하품을 하며 나를 불렀다.
"파비아가 없어졌어."
"파비아가요?"
그녀는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파비아는 연금술사가 맡아서 돌보게 되었다.
파비아는 사실상 인간의 형태를 한 야수나 다름없다. 마력을 봉인시켜두었기 때문에 위험성은 크게 높지 않지만, 언제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는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다.
누군가는 곁에 붙어서 돌봐줄 필요가 있었고, 그 역할을 짊어지게 된 것이 연금술사다.
애초에 바깥을 자주 돌아다니는 나와 루이스보다는 연금술사가 제격인 역할이다.
"끈으로 손목을 묶어두었었는데, 요란한 소리가 들려서 보니까 줄을 끊고 막 공방을 뛰쳐나가려던 참이었어."
"추적은 가능한가요?"
"음, 뛰쳐나가기 전에 추적술을 붙여놨으니까. 스스로 제거하지만 않았다면 쫓을 수 있어."
"알았어요. 그럼, 바로 찾아보죠."
나는 헐렁한 무복의 상의만 벗어서 옆에 걸어둔 뒤, 깨끗한 셔츠를 바로 위에 입었다. 연금술사는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피차 그런 걸 신경 쓰는 관계는 아니다.
가벼운 옷차림에 검 한 자루를 허리춤에 차고 방을 나선다.
연금술사도 본격적으로 추적을 개시했다.
"음, 멀리 나가진 않은 거 같아. 아직 이 근처에 있네."
지도를 펼친 연금술사가 설명을 시작했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파비아의 위치는 아직 우리가 있는 빈집촌이다.
정확히는 빈집촌의 더 깊은 장소로 이동한 것 같았다.
어째서지? 파비아의 광증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다. 나는 연금술사가 추적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녀를 품에 안아들어서 양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상태로 만들었다.
오른손으로 그녀의 등을 받치고, 왼손으로 허벅지를 지탱한다.
품안의 연금술사가 눈짓과 목소리로 나를 인도했다.
"이쪽."
"알았어요. 어쩐지 좀 익숙하네요."
나는 가벼운 목소리로 너스레를 떨었다. 빈집촌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건 오랜만이지만, 길 자체는 매우 익숙하다.
갑작스럽게 보이드와 맞서 싸우게 되었을 때, 도주로로 썼던 바로 그 길이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곳이라서 수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여기저기에 보이드가 새겨둔 칼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다.
묘한 기시감을 느끼면서 외길을 쭉 나아간다. 모퉁이가 몇 개 있었지만 이쪽은 외길이다. 길을 잘못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위쪽. 위쪽으로 올라갔어."
벽에 칠한 물감이 새까맣게 타들어간 위치에서, 연금술사가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물론 그 위치에 길은 없다. 하지만 연금술사의 추적술은 파비아가 여기에서 위로 솟아올랐다고 말한다.
연금술사를 품에 안은 상태에서, 다릿심만으로 뛰어 올랐다. 벽을 몇 번씩 다리로 걷어차면서 삼각 차기로 올라간다.
벽 자체는 꽤 높은 편이었지만 지금의 나라면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다. 순식간에 끝까지 도달한 뒤, 벽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천장 위에 착지한다.
파비아는 새하얀 옥상의 끝에서 네 다리로 쪼그린 채 앉아 있었다.
소리가 들린다.
아우우우─. 그야말로 영화 속에서나 들어봤던 진짜 하울링 소리였다.
파비아는 휘영청 밝게 뜬 초승달을 향해 울부짖고 있었다.
마치 뭔가를 부르고 있는 것처럼.
혹은 뭔가를 그리워 하는 것처럼.
"……개과 수인이라서 난데없이 피가 끓은 건가?"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나도 황당하기만 하다. 위험한 짓을 하려는 건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초승달을 본 게 뭔가 영향을 끼친 걸지도. 원래 수인들은 달과 밤의 마력에 예민한 경향이 있으니까."
연금술사는 내 의문에 학술적 지식을 더해서 설명했다.
"초승달에 이렇게 반응할 정도라면 보름달이 떴을 때는 더 특이한 반응을 보일지도 몰라. 지난 보름달은, 너희가 해신하고 맞서 싸웠던 그 날에 떴었지."
그 말을 듣고 생각났다.
보름달을 바라보며 포효하던 해신의 모습이.
그야말로 보름달을 집어 삼킬 것처럼 크게 벌어졌던 입도.
"내 생각이 맞다면 아마 파비아는 하울링이 끝나면 알아서 돌아올 거 같아."
"그래도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죠. 저 녀석이 또 멋대로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응, 그럼 네 말대로 할까."
연금술사는 짧게 대답한 뒤 다시 하품을 하며 천천히 눈을 감기 시작했다.
잠깐만. 지금 이대로 주무시려고 이러는 거야?
아무리 사람이 피곤해도 그렇지, 이런 불편한 자세로 잠이 오긴 하는 건가.
미처 모르던 연금술사의 또 다른 일면을 발견한 느낌이다.
결국 꼼짝 없이 파비아가 하울링을 끝마칠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그 후 남은 기간 동안은 몸을 최고 상태로 끌어올리는데 집중했다. 물론 그저 몸을 계속 자극하기만 한 건 아니다.
몸을 쓰고, 남은 시간에는 틈틈히 연금술사의 연구를 도우면서 조금씩 컨디션을 끌어올려 나간다.
내게는 이런 방식이 어울린다.
5일 동안 꾸준히 루틴을 수행한 후, 올리비아에게서 호출이 왔다. 결전전야. 승부에 앞서 마지막으로 상황을 정리하는 단계이다.
이번에는 올리비아가 내 방을 찾아왔다.
"운이 좋았군. 저쪽에서 제피로스까지 와준다고 하니까 말이야. 마지막까지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겠어."
"상대에 대한 정보는?"
"오늘 아침에 막 서류의 형태로 도착한 참이다. 그저께 제피로스에 도착해서 지금은 호텔에 대기 중이라더군."
올리비아가 넓적한 갈색 봉투를 내밀었다.
안에는 여러 장의 서류가 준비되어 있다.
흑백으로 찍은 사진도 보인다.
"홍 기룡(? ??). 39세. 고대 암살 유파인 교호류???의 당주로, 지금까지 어둠 속에 묻혀 있었던 교호류를 정식으로 개파시킨 장본인이다."
"교호류라."
"들어본 적 있나?"
올리비아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시골에도 명성이 퍼져 있을 정도로 유명한 유파다.
고대의 암살 유파, 교호류.
본래는 바다 건너에 있는 동쪽 대륙에 기원을 둔 유파이지만 한 세대 전에 이쪽 대륙으로 이주. 그 후 현지의 감성을 접목해서 정식으로 개파한 것이 바로 10년 전의 일이다.
주무기는 좌우에 쌍수로 든 두 자루의 단검.
현지에서는 특급에 버금간다고 알려진 인물 중 하나다.
예상했던 대로다. 역시, 특급에 준하는 인물이 나왔다.
"아마 저쪽에도 네 자료가 넘어갔을 것이다. 물론, 프로필상으로 존재하는 너의 자료는 형편 없기 때문에…… 운이 좋으면 방심을 노릴 수도 있겠지."
서류상으로는 평범한 4급의 모험가니까, 난.
"그건 진짜로 운이 좋을 경우고, 어지간하면 안 통하겠지. 너나 너희 가주를 대신해서 내가 나가는 거잖아. 모험가 등급만 낮은 은거고수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
"어떤 의미에선 틀린 말도 아니군. 넌 모험가 등급으로 측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
올리비아가 손바닥으로 내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너만 믿는다."
올리비아가 늠름하게 미소 지은 바로 그때, 열려있는 창문의 바깥에서 아우우우─ 하고 소리가 들렸다.
음? 하고 올리비아가 눈을 깜박인다.
"뭐야, 이 근처에 늑대라도 있는 거냐?"
"그런 건 아냐. 연금술사 선생님네 신세 지고 있는 개과 수인이 있는데, 그 녀석이 내는 소리야."
"깜짝 놀랐다. 무슨 늑대인 줄 알았어."
"요 근래 들어 매일 같이 저러네. 도대체 왜 저럴까."
초승달이 뜬 밤 이후로 하루도 빠짐 없이 달을 바라보며 울부짖고 있다.
마치, 뭔가를 경고하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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