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04화 (104/287)

〈 104화 〉 13. 검왕을 찾아서 (5)

* * *

"……아, 그런데 신현 씨. 이거 다 먹고, 수녀원으로 돌아가기 전에…… 들리고 싶은 곳이 하나 있어."

"들리고 싶은 곳? 아, 올리비아 만나러 가려고?"

"응."

샤를로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나도 샤를로트를 지금까지 보아온 경험이 있어서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야기를 얼추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올리비아는 샤를로트에게 있어 상당히 각별하게 여겨지는 존재였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샤를로트는 무척 기쁜 얼굴이었다.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고마워하니까 내 기분이 이상해진다.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샤를로트를 돌아본 바로 그때, 그 뒤로 보이는 창문의 바깥에서 어디에서 많이 본 얼굴이 보였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황급히 얼굴을 숨겼지만, 그런다고 저 새파란 머리카락까지 숨길 수는 없다.

나는 차갑게 식은 시선으로 샤를로트에게 잠시 양해를 구한 후, 식당 바깥으로 나왔다. 식당의 창틀 아래에 올리비아가 쪼그린 자세로 앉아 있었다.

"너 거기서 뭐하냐?"

"아, 음, 어, 그, 오랜만이다. 백신현."

"어, 그래. 안녕."

올리비아는 내가 불러도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쪼그리고 앉아서 올리비아와 시선을 맞췄다.

"샤를로트를 보러 온 거 아니야? 그럼 그냥 자리에 합석을 하지, 처량하게 앉아서 뭐 하는 짓이야?"

"그게…… 분위기가 좋아보여서."

"뭐?"

"괜히 끼어들었다가 아가씨가 언짢아 하시면 곤란하지 않냐."

"뭔 소리야. 넌 샤를로트를 그렇게 오랫동안 모셔놓고도 아무것도 모르냐."

나는 자꾸 물러나려던 올리비아의 손목을 잡고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올리비아도 안 그런 척하면서 스스로 일어나는 거 보면 샤를로트가 신경 쓰이기는 하는 것 같다.

작정하고 올리비아가 버텼다면 내 힘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나는 살짝 고갯짓을 하며 올리비를 재촉했다.

"들어가자. 조금 전에도 샤를로트가 네 이야기를 했어."

"……알겠다."

괜히 폼 잡기는.

내가 흘겨보자 올리비아는 슬금슬금 시선을 피하기 시작했다. 부끄러운 줄은 알고 있는 것 같다.

올리비아와 함께 다시 식당으로 돌아왔다. 내가 언제 돌아오나 입구만 지켜보고 있던 샤를로트는 함께 서 있는 올리비아의 모습을 발견하고 미소를 지었다.

"아, 올리비아. 이 근처에 있었던 거야?"

"……네, 아가씨."

"잘 됐다. 나, 마침 네 얘기 하고 있었거든. 이쪽에 앉아."

샤를로트가 앉은 자리를 옮겨서 올리비아가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올리비아는 송구스런 얼굴로 자리를 차지했다.

"듣기로는 멀리 구르제스까지 다녀오신 듯한데, 무슨 일은 없으셨습니까?"

"아, 신현 씨가 말해줬구나."

"네. 구르제스로 떠나기 전에 백신현에게 전달 받았습니다."

올리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현 씨는 사건을 몰고 다니는 체질인지, 구르제스에서도 재미있는 일이 많이 있었어. 조금 힘들긴 했지만, 충실한 경험을 했지."

"위험한 일은 없었습니까?"

"신현 씨하고 루이스 씨는 조금 고생 했지만, 나한테는 별 일 없었어. 애초에 나를 끼워주지도 않았고."

샤를로트가 물끄러미 시선을 돌려서 나를 쳐다본다.

"날 끼워주지 않는 이유는 나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조금 아쉬운 느낌은 있어."

"뭐, 그런 게 싫다면…… 너도 알잖아?"

"응. 내가 지금보다 더 강해져서 거치적거리지 않을 정도가 되면, 그때는 신현 씨도 날 끼워주겠지."

이젠 긴 설명이 필요 없었다.

샤를로트는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해서 얘기할 필요가 없었다.

척하면 척이다.

"그것보다도 올리비아. 올리비아는 별 일 없었어? 여전히 뒷수습을 하느라 바쁘지?"

"네, 그렇습니다. 몇 달은 족히 이 도시에서 머물러야 정리가 되겠죠."

올리비아의 말이 끝났을 때 즈음해서 조금 전에 주문했던 음식이 나왔다. 나는 종업원에게 추가로 올리비아 몫의 식사를 주문한 뒤, 다시 고개를 돌렸다.

"고맙다, 백신현."

"됐어. 한 끼 정도야 뭐."

올리비아가 나보다 가진 돈은 더 많겠지만, 오늘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식사를 끝마친 후에는 샤를로트를 수녀원으로 인도했다. 수녀원의 입구 앞에서 샤를로트가 나를 돌아보며 햇살처럼 웃었다.

"고마워, 신현 씨. ……다음에도 또 놀자."

샤를로트가 수녀원의 모퉁이를 돌아서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배웅한 뒤 몸을 돌렸다.

열네 살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어른스러운 아이다. 나는 저 나이 때 어떻게 살았더라. 거의 짐승처럼 살았던 것 같은데.

루이스도 저 나이 때는 그냥 싸가지 없는 귀족 영애였고.

가정 교육을 잘 받은 덕일까, 그게 아니면 그냥 타고 난 걸까.

"올리비아 너는 안 들어가냐?"

"아, 오늘은 조금 시간이 있다."

올리비아는 나보다 조금 작은 키다.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리고 질문했다.

"매일 같이 눈코뜰 세 없이 바쁜 건 아냐. 기약 없이 대기해야 할 때도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야."

"그건 그것대로 마음이 불편할 거 같은데."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시간만 죽이는 것도 못할 짓이다.

목을 왼손으로 쥐고 느릿하게 주무른다. 눈동자만 움직여서 올리비아를 곁눈질한다.

"그것보다도,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음."

올리비아는 속마음이 들킨 것처럼 소리를 냈다.

녀석은 잠시 허둥대더니, 나처럼 목을 주무르면서 고개를 돌렸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네가 구르제스에서 거대한 적과 맞서 싸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던 일이라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구르제스에도 스페트로 가문에 소속된 인간이 있었던 걸까. 세력의 크기 하나는 진짜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정보원의 수준이 높지 않아서 자세한 상황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심야에 바다 쪽에서 거대한 존재가 울부짖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 꽤 되는 거 같더군. 마치 거대한 뱀 같은……"

"맞아, 바다 쪽에서 꽤 거대한 몬스터와의 전투가 있었지."

"역시 그런 일이 있었던 건가."

올리비아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감탄했다.

"그런데 그게 왜? 샤를로트까지 함께 대동한 자리에서 몬스터와 싸움을 벌인 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런 건 아니다. 네가 아가씨를 끌어들였다면 이야기는 달랐겠지만, 네 성격 상 그럴 일은 없었던 것 같고."

"그럼?"

"그저…… 네가 지금까지 구르제스에 확실히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게 다야."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최근 들어서 정보원을 통해서 들려오는 소문이 있다. 얼굴을 숨기고 다닌 채 각지의 실력자를 쓰러트리고 있는 검사가 있다고."

올리비아는 말을 잠시 끊은 뒤, 낮게 심호흡을 하며 덧붙였다.

"아직 특급 모험가가 패배했다는 말은 없지만, 각지의 실력자 중에서도 희생자가 꽤 나온 걸로 안다. 내 지인 중에도 피해자가 있더군."

초가을인 탓에 바람이 조금 차다. 올리비아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으며 정면을 보았다.

"그런데 그 정체불명의 검사의 목격 정보 중에서 영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 검사가 쓰는 검술의 형태였지."

올리비아는 오른손만 뽑아서 검지를 정면으로 겨누었다.

"첫 번째, 잔상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베어내는 초고속의 참격."

그 다음에는 쭉 뻗은 검지를 수평으로 긋는다.

"두 번째, 전신을 붉은 마력으로 휘어감은 채 발해지는 초강력의 신체 강화."

마지막은 아래로. 일직선으로 곧게 떨어진다.

"세 번째, 검신을 푸른 마력으로 휘어감아서 펼쳐지는 초중량의 검신 증강."

허공에 검지를 멈춘 올리비아가 나를 돌아보며 질문했다.

"내가 왜 거슬리다고 말했는지 너도 알겠지?"

"……천변무궁류의 삼검이군. 초고속의 참격은 유성, 신체 강화는 혜성. 그리고 검신의 증강은 거성."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목격 정보에 불과할 뿐. 네가 쓰는 진짜 검술과 동일한 물건인지는 알 수 없다. 그 어떤 검술의 유파라고 해도 초고속의 베기, 신체 능력 강화, 검신 증강 등의 기술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기술이니까."

올리비아가 작게 헛기침을 하며 덧붙였다.

"하지만 서로 다른 기술을 발휘할 때마다 발현하는 마력광이 달라지는 유파를 난 지금까지 너의 천변무궁류 이외에는 보지 못했어. 아니, 애초에 마력광의 색채가 쉴 세 없이 변환하는 걸 본 것도 네가 처음이다."

"천변무궁류는 천지자연 중의 마력을 끌어오기 때문에 마력광의 색채가 고정되어 있지 않지. 사용하는 기술의 쓰임새에 따라서 성질과 색채가 변하는 거니까."

나는 낮은 목소리로 천변무궁류의 특징을 제시했다.

"그래서 그 정체 모를 검사의 소문을 들은 그 순간부터 네 얼굴이 머릿속에서 도저히 떠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다가 정체를 숨긴 채 무사수행, 도장깨기를 하러 다니는 것도 너라면 충분히 하고도 남을 짓 같았고."

"……부정을 못하겠는데."

고개는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강하게 부정하긴 어려웠다.

올리비아는 생각보다 내 성격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네가 지금까지 구르제스에 계속 있었다면……, 그 정체불명의 검사는 네가 아니라는 소리가 되겠군."

"정체는 아직 불명인거지? 정보원들이 뒤를 밟았을 텐데, 모두 실패한 건가?"

"그야말로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유령처럼 사라지는 존재라서 추적에 애로사항이 있는 모양이다."

올리비아가 팔짱을 끼고 살짝 턱을 들었다.

"비유가 아니라 그 검사를 실제로 본 정보원의 증언이야. 불현듯 바람이 몰아치면서 검사의 모습이 흐릿해지더니,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더군."

"……출현 장소는?"

"아, 내가 가지고 있다."

올리비아가 갈색 재킷을 살짝 열어서 지도를 한 장 꺼냈다. 근처에 있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펼친다.

이미 올리비아가 여러 번 손을 대었는지, 손때를 탄 흔적이나 접었다가 다시 편 흔적. 그리고 펜으로 표시한 출현 장소가 눈에 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지도에서 큰 성과를 얻긴 어려울 거 같다.

그야말로 신출귀몰. 나타나는 장소가 저마다 제각각이라서 경로를 추측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한 가지 알아낸 건 있어. 그건 바로 이 검사가 일주일의 간격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공간 이동 마법이라도 사용하는 건가? 이 출현 순서대로라면 도저히 말이 안 되는데."

"그건 확실하지 않다. 어쩌면 같은 복장, 같은 검술을 공유하는 여러 명이 함께 활동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최소한 일반적인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은 나와 올리비아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또한, 그 정체불명의 검사가 노리는 표적의 수준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어. 마치 차근차근 순서를 밟아서 올라가고 있는 것처럼."

"머지 않은 시일 내에 특급 모험가에게도 마수가 뻗칠 가능성이 있군."

"꼭 특급 모험가가 아닐 수도 있다. 유명 문파의 장문인 정도쯤 되면 특급하고 대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평가 받고 있으니까."

지도를 다시 거둬서 품속으로 가져간 올리비아가 코를 훌쩍거리며 말했다.

초가을의 건조한 날씨가 체질에 맞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너도 이 사실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물론이고 너 역시…… 특급 모험가를 곁에 두고 있지 않나."

"아, 루이스에게도 알려 줘야겠지."

따지고 보면 이건 올리비아의 배려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백신현. 이후로 예정은 따로 있나?"

"오늘은 따로 없어. 선생님도 오늘은 아마 퍼져 계실테고."

20일 동안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체력이 바닥난 연금술사는 지금쯤 완전히 뻗어 있을 것이다.

"나도 오늘은 따로 예정이 없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고, 결과는 며칠 뒤에야 나오겠지. 그러니까…… 한 잔 하지 않겠나?"

올리비아가 손으로 술잔을 꺾는 시늉을 하며 나를 돌아봤다.

"상관은 없는데, 술은 안 돼. 스페트로하고 싸울 때 간을 좀 다쳐서 근 일 년 동안은 술 마시면 안 된다고 했거든."

"그때 찔리면서 생긴 상처인가."

"맞아. 회복 자체는 됐는데, 그래도 술은 최대한 피하라고 하더라고."

나는 스페트로에게 창으로 관통 되었던 부분을 문지르며 대답했다.

치료 술식도 완벽하진 않다.

일상 생활 및 전투에 지장이 없는 수준까지 회복된 것만 해도 운 좋은 줄 알아야 한다.

"음, 그렇다면 내가 우유도 내주는 술집으로 안내하지. 나도 몰랐는데, 여기에는 괜찮은 술집이 많이 있는 거 같더군."

"거기 내가 아는 곳 같은데?"

이 도시에서 살면서 별의 별 술집, 식당을 다 드나들어 봤다.

아마 올리비아가 알고 있는 술집은 모두 내가 알고 있는 장소일 것이다.

"그럼 가보자."

먼저 일어난 올리비아가 내 등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