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 13. 검왕을 찾아서 (4)
* * *
편지를 보고 나서 다시 한 번 공방을 둘러본다.
연금술사, 샤를로트는 물론이고 파비아마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사실 앞의 두 사람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파비아가 없는 게 신경이 쓰인다. 인간의 이성을 제대로 가지지도 못한, 네 발로 기어다니는 수인 여자.
그리고 어쩌면 나중에는 내가 사저라고 부르게 될 지도 모르는 사람.
외출하면서 파비아까지 함께 데리고 나간 걸까. 물론 불가능할 건 없겠지만, 귀찮은 걸 싫어하는 연금술사가 그런 짓까지 하면서 외출을 한 게 신기하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것하고는 결이 다르다. 그 여자는 개과 수인. 인간의 크기와 덩치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니까.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잠시 고민한 뒤, 마부에게 양해를 구하고 공방을 나왔다. 편지에는 샤를로트가 태어난 생가의 주소가 쓰여 있었다. 연금술사의 필체는 아니었고, 아마 샤를로트가 남긴 글씨가 아닐까 싶다.
왜 이런 걸 나 보라고 놔둔 쪽지에 써 놓았는지는 모르겠다.
고개를 살짝 까딱거린 후, 주소를 찾아서 걷기 시작했다.
해신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마을의 구조는 외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헤매는 일 없이 똑바로 걷기 시작한다.
하지만 얼마 가지도 못하고 벌써 용무를 끝마치고 돌아오던 샤를로트와 마주쳤다. 녀석의 좌우로 연금술사와 파비아가 나란히 걷고 있다.
연금술사와 샤를로트야 늘 보던 그 얼굴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파비아의 모습이 상당히 특이했다. 꼬질꼬질하게 때가 끼어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전체적으로 단정해진 느낌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 뿐, 눈동자에서는 여전히 이지를 찾아볼 수 없다. 시선이 시도 때도 없이 획획 돌아가면서 주변의 사물을 훑어본다.
헥헥, 거리며 내는 소리가 꼭 강아지 같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불쌍한 것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파비아를 한 번씩 돌아보고 있었다.
아, 확실히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좀 있는 것처럼 보일 거 같다.
샤를로트는 그런 파비아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서로의 손목을 얇은 끈으로 연결해서 고정하고 있었다. 개의 목줄과 똑같은 역할을 하는 물건 같다.
나아가던 걸음도 멈춰서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중, 저쪽에서도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샤를로트가 손을 높이 들면서 "신현 씨!" 하고 부른다.
연금술사도 "안녕"하고 목소리를 냈지만 너무 소리가 작아서 들은 건 나밖에 없다.
발걸음을 빠르게 해서 단숨에 가까워졌다. 내게 한 번 제압된 경험이 있는 파비아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는지 뒷걸음치면서 샤를로트의 뒤에 숨는다.
하지만 그 이외의 수상쩍은 행동은 보이지 않은 게 내 입장에선 천만다행이다. 겉으로 보면, 지금의 파비아는 정말로 멀쩡해 보이니까.
내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좀 얌전해진 건가?
"공방에 와보니까 샤를로트의 생가에 찾아갔다고 하던데. 그래서 만나보고 오신 건가요?"
파비아 쪽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하니까 시선은 연금술사 쪽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연금술사는 내 질문을 듣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집을 팔고 이사한지 벌써 몇 년이나 지났다고 해서 허탕만 치고 오는 길이야."
"그랬어?"
샤를로트를 돌아본다. 녀석은 살짝 눈가에 힘을 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 아쉽다."
"정말로? 괜찮은 거야?"
"아, 응. 신경 안 써줘도 괜찮아. 진짜로, 기대는 별로 안 했거든. 그래서 신현 씨에게 말도 안 하고, 이렇게 다녀온 거야."
샤를로트는 행여나 내가 마음을 쓸까 걱정이 들었는지 황급히 말을 덧붙이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음, 진담인지 거짓말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네. 난 루이스처럼 심장 박동으로 거짓말을 구분할 수 있는 수준까진 안 되니까.
파비아는 그 동안에도 얌전하게 샤를로트의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런다고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조그만 몸이 아니었지만, 본인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파비아에게서 최대한 거리를 둔 뒤, 함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파비아 저 여자,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얌전한데요. 무슨 수라도 쓰신 거예요?"
"그런 건 없어. 잘 먹이고 잘 재우긴 했지만, 그 이상은 뭘 할 시간이 없었잖아."
"그럼 도대체 왜 저렇게 얌전해진 거지?"
물론 내가 마력의 흐름을 봉인해서 날뛰더라도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묶어두긴 했지만, 그런다고 갑자기 얌전해지는 것도 좀 이해하기 어려운데.
개과라서 주제 파악을 잘 하는 건가?
"내 생각에는 아마도, 해신이 쓰러진 게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연금술사는 검지 손가락을 곧게 펴면서 스스로의 견해를 드러냈다.
아, 그 말을 듣고 생각났다.
지하실에 파비아가 남겨둔 비망록에 의하면, 그녀를 덮친 광증이 저 정도로 심해진 데에는 해신과 광증이 공명한 영향도 있다고 쓰여 있었지.
해신이 쓰러지면서 그 광증의 일부가 해소된 건가?
"너희야 바빠서 이쪽을 신경쓸 틈이 없었겠지만, 난 옆에서 연구하면서 변화 과정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었거든. 너희가 해신을 쓰러트린 전후로 태도가 부쩍 얌전해졌어."
"그런 건가요."
"그런 거야."
다시 파비아를 돌아본다. 파비아는 여전히 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움찔 움찔 몸을 떤다.
"너희가 해신의 핵도 무사히 구해왔겠다, 또 그걸 가지고 어떻게 만져 봐야겠지."
나는 이쪽 방면에 있어 연금술사 이상의 실력자를 모른다. 해신의 핵도 연금술사가 전담해서 맡고 있었다.
해신의 핵은 나쟈의 핵과 마찬가지로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을 고밀도로 압축하고 있는 물건이다.
섭취할 경우 나쟈의 핵과 유사한 효과를 볼 수 있고, 검왕검의 핵심 소재로 쓰이던 금속을 재련하는데 쓰일 수도 있다.
이번에는 루이스가 쓰게 될 검에 해신의 핵이 쓰이게 될 것이다. 해신의 핵에는 나쟈의 핵에는 없던 강렬한 독기가 스며들어 있어서 섭취하는데 조금 애로사항이 있다.
내가 잘못 먹으면 마력의 질이 완전히 오염되어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루이스도 마찬가지.
함부로 집어 삼키는 것보다는 무기로 쓰는 편이 훨씬 안전하고 효과적이다.
루이스에게 넘겨주는 게 그리 아깝지는 않다. 어차피 무기로 만드는 것 이외에는 달리 용도를 찾기 어려운 물건이고…… 내게는 검왕검도 있으니까.
공방에 다시 도착한 뒤에는 옮겨야 할 물건을 챙겨서 마차에 하나씩 싣기 시작했다.
당연히 제일 많은 양을 옮긴 건 나였지만, 샤를로트도 지지 않았다. 마력을 팔다리에 감은 상태에서 자기 상반신만한 물건을 들어서 하나씩 옮긴다.
옮겨야 하는 양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꽤 커다란 마차인데도 공간이 거의 가득 차 버렸다. 사이즈가 큰 마차를 빌린 건 좋은 판단이었던 것 같다.
모든 짐을 옮긴 다음, 공방을 열쇠로 잠그고 마차에 올라탄다.
마차는 이대로 제피로스로 향하게 된다.
루이스는 해신교의 사후 처리를 모두 끝마친 후 우리와 다른 경로로 제피로스에 돌아가기로 되어있다.
마차로 이동하는 속도를 고려하면 오히려 루이스가 우리보다 빠르게 도착할지도 모른다.
대략 20일 정도 걸리는, 긴 여정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마부가 마지막으로 인원수를 체크한 후 마차를 출발시켰다. 아주 조용한 출발이었다.
* * *
마차가 연금술사의 공방 앞에서 멈춰섰다. 긴 여정이었던 탓에 전체적으로 몸이 굳어있다. 마차에서 내려 기지개를 켜면서 굳은 몸을 푼다.
"늦어."
"언제 도착했냐?"
아니라다를까, 루이스가 우리보다 먼저 제피로스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마차에서 짐을 하나씩 내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일주일 전에."
"해신교는?"
"죄다 잡혀갔어.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하더라고."
루이스는 쓰레기를 버린 사람처럼 가볍게 손을 털었다.
아마 교주를 비롯한 주요 인력이 해신에게 잡아먹혀서 지휘 체계가 마비된 게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해신교는 본격적으로 발족한지 오래 되지 않은 신흥 종교라서 지휘 체계가 마비되었을 경우의 메뉴얼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
몇 년만 더 늦게 찾아갔더라도 상당히 귀찮은 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이비 종교의 진가는 몇 번을 뭉게도 다시 돌아오는 끈질김에 있으니까. 제대로 알을 까고, 둥지를 키우기 전에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루이스까지 함께 힘을 보태서 마차의 짐을 내리기 시작한다.
짐은 많았지만 연금술사의 공방이 있는 이 빈집촌 일대는 대부분 그녀의 소유이다. 그녀의 명의로 되어 있는 창고에 물건을 순서대로 분류해서 차곡차곡 밀어넣는다.
분류하고 다시 정리하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다른 물건이야 그렇다 쳐도 마도서 같은 건 보관을 잘못하면 내용이 비틀리거나 상할 수도 있어서 조심해서 만져야 한다.
루이스나 샤를로트 없이 나 혼자서 했다면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렸겠지.
연금술사는 어차피 힘 쓰는 일에는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파비아가 함부로 날뛰지 않도록 제어하는 역할을 맡겼다.
파비아는 20일 간의 이동이 많이 피곤했는지 유독 기운이 없어 보인다. 진짜 강아지 같다.
샤를로트도 티는 내지 않지만 많이 지친 얼굴이다. 컨디션이 멀쩡한 건 나하고 루이스밖에 없는 것 같다.
짐을 다 빼고 마차를 돌려보낸 후, 자리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돌았다.
그때, 샤를로트가 우물쭈물 거리면서 나 들으란 듯 입을 열었다.
"그럼 나는 이제, 수녀원으로 돌아가 볼까……?"
안 그런 척하면서도 나를 힐끔 힐끔 쳐다보면서,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로.
영악한 것 같으면서도 결국 허술하다. 사람의 감정이나 심리까지 잘 버무려서 쓸 줄 알았던 올리비아와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나는 살짝 웃으며 샤를로트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마음 먹었다.
"내가 데려다줄게. 가면서 밥이나 먹자."
"아, 응. 그럼……, 같이 가볼까."
샤를로트는 안 그런 티를 내면서도 기쁜 심리를 감추지 못했는지 유독 밝은 표정이었다.
파비아를 비롯한 다른 사람에게 한 번씩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한 뒤, 샤를로트는 내 옆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다시 돌아본 제피로스의 거리는 얼마 전과 비교해서 확실히 열기가 식어 있는 분위기였다.
회동이 끝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제피로스를 빠져나갔다. 마그누스와 스텔라도 이젠 없다.
이 고즈넉하고 한적한 분위기. 이것이 내가 알고 있던 제피로스의 진짜 모습이다.
"아음……"
옆에서 걷던 샤를로트가 입을 작게 벌리며 하품을 했다. 소리를 들은 내가 돌아보니까 급하게 고개를 획 돌려서 얼굴을 숨긴다. 내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인 거 같다.
많이 피곤한 모양이다.
제피로스에서 10년 가까이 살아온 나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맛있는 식당을 많이 알고 있다. 그 중에 하나를 골라서 들어간다.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샤를로트와 마주앉는다.
"먹고 싶은 거 있어? 내가 사줄게."
"아……, 그럼 신현 씨가 먹고 싶은 걸로 같이 할게. 사줘서 고마워."
"너한테 돈을 내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
음식을 주문하고 나서 다시 샤를로트를 돌아본다. 샤를로트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턱을 괸 상태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가끔씩 후후 하고 웃는다. 이유는 모르겠다.
"뭐가 그렇게 좋아?"
"그런 게 있어."
그러고 나서 또 다시 날 보며 웃는다.
"사실 있잖아. 구르제스에 있는 생가에 돌아가면, 친부모님에게 신현 씨를 소개해주고 싶었거든."
"그래서 쪽지에 주소를 써 뒀던 거야? 나더러 찾아와달라고?"
"응."
샤를로트가 순박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현 씨는 척 봐도 믿음직스럽게 보이잖아. 이런 사람이 날 돌봐주고 있다고 말하면, 친부모님도 안심할 거 같아서."
"그래?"
나도 모르게 입술이 씰룩거렸다. 웃음이 나올 뻔 했다.
믿음직스럽다.
다른 사람의 입으로 그런 말을 들으니까 기분이 좀 이상하다.
샤를로트가 다시 턱을 괴고 고개를 들었다. 살짝 웃으면서 눈을 깜박인다. 후후, 하고 목소리가 나온다.
날 쳐다보면서 조용히 입술을 움직인다.
"……보고만 있어도, 참 좋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