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 12. 해신?? (10)
* * *
해신의 좌우에서 천변무궁류의 제삼검이 동시에 꽂혔다.
거대한 칼날이 좌우에서 비늘을 찢고 피부를 가르고, 뼈를 잡아 뜯었다.
수 미터 이상의 크기로 증폭된 푸른 칼날은 해신의 몸통에 상당히 넓은 크기의 상처를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칼날이 상당히 깊숙하게 파고들었음에도 아직 부족하게 느껴질 만큼, 해신의 목은 조금 지나치게 두꺼웠다.
어느 시점부터 칼끝에 걸리는 느낌이 많이 약해졌다. 해신의 피와 살이 꾸덕꾸덕하게 칼날에 달라붙어서 날카로움을 크게 감소시킨다.
파죽지세로 들어가던 칼날이 멈춰선다.
'……이건 아마도, 내 실력 부족이다.'
내가 아니라 백신아에게 검을 맡겼더라면 이렇게 어중간한 형태로 검이 멈춰서진 않았겠지.
제삼검의 위력이 이 정도로 크게 차이가 난 건 전적으로 나의 실력 부족이 문제였다.
지금의 내가 실전에서 쓸 수 있는 천변무궁류의 기술은 제오검까지가 한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이전의 제일검부터 제사검까지의 기술을 완벽하게 쓸 줄 아는 것도 아니다.
유성은 느리고, 혜성은 지속 시간이 짧다. 삼렬성은 최대 이렬성까지밖에 발휘하지 못한다.
거성 또한 마찬가지다.
단기간에 실전에서 쓸 수 있는 정도로 몸에 체득시키기는 했지만, 백신아의 제삼검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부족할 수밖에 없다.
무?란 그런 것이다.
아무리 실전 속에서 단련했다고 해도, 수행 기간 자체가 길지 않은 만큼 한계는 보일 수밖에 없다.
실전에서 얻을 수 있는 강함이 있는가 하면, 긴 수행 속에서만 붙잡을 수 있는 강함도 있으니까.
거성의 공격이 실패한 직후, 나는 재빠르게 제삼검을 해제했다.
비정상적으로 증폭되어 있던 칼날이 원래의 크기로 돌아오면서 해신의 근육과 살점 사이에 끼어 있던 검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상처 부위에서 뽑아낸다. 비늘을 세게 걷어차면서 해신의 몸통으로부터 벗어난다.
공격이 실패한 시점에서 해신의 반격은 충분히 예견되어 있는 것이었다. 내쪽으로 쓰러지던 몸을 꼿꼿하게 지탱하면서 해신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용아검에 찢긴 해신의 몸통은 위아래의 틈이 벌어져서 덜렁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기능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는지 서로 찢어진 몸통 부위에서 온갖 형태의 비늘이 솟아올랐다.
일제 발사인가. 나는 서둘러 방어 자세에 들어갔지만, 해신의 공격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윽……!?"
급하게 방어 자세에 들어가려던 내 손가락에 불현듯 해신의 피가 얽혀들었다. 조금 전에 용아검을 꽂으면서 묻은 피다.
색깔은 푸른색.
그것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면서 내 손가락에 얽혀들었다.
그 모습, 그 형태를 보고 나는 문득 눈치챘다.
'……알았다. 여기에서 유통되던 마약의 정체는, 해신의 피였나?!'
해신의 피를 추출한 뒤 그것을 말려서 가루의 형태로 유통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내 몸을 빼앗기 위해서 기생하려는 일련의 행동으로부터 바로 얼마 전에 연구했던 마약과의 동질성을 느꼈다.
지금은 손에 튄 피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면서 내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고, 시간을 들여가며 내 피부 속으로 파고들 생각일 것이다.
그렇게는 안 된다.
하지만 내가 대처에 들어가기 전에 해신의 공격이 박차를 가했다. 비늘이 산탄총처럼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것과 입에서 한 줄기의 섬광이 뿜어져나왔다. 초고밀도로 압축 시킨 마력을 숨결과 함께 토해낸 일격이다.
그 일격의 속도는 오히려 비늘이 쏟아지는 속도보다도 빨랐다. 늦게 쏘아진 섬광이 앞서 쏘아진 비늘과 부딪치면서 그 궤적을 불규칙적으로 뒤틀어 놓았다.
섬광 또한 비늘과 충돌하면서 마구잡이로 난반사되기 시작했다. 이제 그 궤적은 너무나도 복잡해서 함부로 읽어낼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호흡한다.
코어에서 뽑아낸 마력을 전신에 균등하게 배분하면서도, 동시에 함부로 흩어지지 않도록 강하게 붙잡았다.
그로써 나의 육체는 고밀도의 마력에 의해 매우 뜨거운 열기를 방출하는 상태가 되었다.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뜬다.
그것은 매우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현상으로, 내가 반개半?한 눈으로 천하를 목도한 순간 대기 중의 마력이 나의 팔과 다리에 알아서 달라붙기 시작했다.
나의 육체가 붉게 변질된 마력을 휘어감으며 환하게 빛났다.
그저 낮게 외친다.
"천변무궁류……"
제이검?二?
적赤
혜성?
발 딛을 곳 하나 없는 허공에서 나의 육체가 맹렬하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비늘과 섬광이 다가오는 속도 이상으로 빠르게 물러난다. 그리고 어느 정도 물러났다 싶었을 때, 급격하게 방향을 꺾어서 위쪽으로 상승. 완벽하게 공격 범위에서 빠져나갔다.
내가 지나온 자리에 브이자의 궤적이 붉은 섬광으로 남는다.
『크오오오오!!』
급격하게 상승하는 나를 쫓아 다른 부위의 비늘이 날아오기 시작했지만, 비늘이 날아오는 속도보다도 내가 움직이는 속도가 더 빠르다.
내가 갑작스럽게 공중에서 선회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천변무궁류의 제이검의 원리에 의해 내 몸뚱이가 고밀도의 마력을 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상태의 나는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을 별도의 준비 과정 없이 약식으로 발휘하는 것이 가능하다.
고밀도의 마력 덩어리가 된 나의 육체가 천변무궁류의 기술에 존재하는 온갖 발동 조건을 크게 완화시키는 원리이다.
천변무궁류가 다루는 것은 천지자연 중에 존재하는 마력의 흐름이고, 고밀도의 마력을 응축시킨 육체는 그 흐름을 조작하는데 있어 최적의 무기가 되니까.
그 뿐만 아니라 고열을 발생시키는 그 특성상 해신의 피가 내 피부에 스며들더라도 그 즉시 제거할 수도 있었다. 내 손을 붙잡고 있던 해신의 피는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빠르게 상승한 후, 해신의 몸통을 강하게 딛으면서 발판으로 삼았다. 그 즉시 비늘이 올라오지만, 표면에서 일어서는 속도보다 내가 나아가는 속도가 빠르다.
두두두두두, 해신의 비늘을 강하게 내딛으면서 위로 달려 나간다. 비늘은 내 속도와 비교해서 지나치게 느렸다. 오히려 내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흔적처럼 차례로 비늘이 올라선다.
혜성은 어떤 의미에서 천변무궁류의 그 어떤 기술보다도 강력한 기술이지만, 지속 시간이 무척 짧은 데다 리스크가 지대하다는 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다.
장기전에는 적합하지 않은 기술이다.
최대한 빠르게 승부를 본다.
내가 노리는 건 해신의 머리 부분이었다. 빠르게 달려가면서 검을 양손으로 쥔다.
지금부터 내가 시도하는 것은 혜성에 의해 증폭된 신체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일격필살의 베기.
콰직!! 디딤발을 강하게 내딛은 순간 그 부분의 피부와 비늘이 통째로 박살나면서 살점이 튀었다.
아래에서 위로, 비스듬이 걷어 올리듯이 검을 내지른다. 노리는 건 해신의 머리 뒤쪽에 붙어있는 아가미. 그쪽으로 칼날을 파고든 후, 힘을 주고 그대로 쭉 밀어나갔다.
혜성에 의해 획득한 완력과 속도를 모조리 밀어넣은 일격이었다. 칼끝에서 시작된 참격은 멈추지 않고 끝까지 나아간 뒤, 해신의 머리통을 비스듬하게 쩍 갈라버렸다.
해신의 머리를 베어 찢으며 나아간 참격이 반대쪽으로 뿜어져 나왔다.
나는 이것이 해신의 최후라고 믿고 있었다.
"……?"
하지만 그 직후, 잘려서 미끄러진 단면이 마치 시간을 되감은 것처럼 처음의 위치로 돌아오는 게 보였다. 잘려나간 단면이 부글부글 거품을 내며 다시 접착되었다. 빠르게 재생된다.
빠르게 회복된 건 그 부분만이 아니었다. 조금 전에 꽂힌 용아검에 의한 손상 또한 이미 회복되어서,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 자체가 없었던 일처럼 되어 있었다.
해신이 다시 움직인다. 머리에 붙어있는 왕관 같은 뿔이 쭉 늘어나더니, 마치 채찍처럼 내 옆구리를 향해 파고들었다.
방어는 늦지 않았다. 천변무궁류의 제이검에 의한 신체 능력의 증폭. 그리고 때에 맞춘 방어 자세. 이 두 가지 요소가 조합됨으로써 나는 아슬아슬하게 절명을 피할 수 있었다.
뿌드드득…… 하고 갈빗대에 균열이 벌어지는 게 똑똑히 느껴졌다.
나는 마치 화살처럼 쏘아져서 해수면을 향해 격돌했다.
"큭!!"
격돌하기 직전, 허공에 검을 휘둘러서 입사각을 비틀었다.
비스듬하게 수면에 꽂히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낙하하는 각도를 조금 더 완만하게 바꿔서 이후에 닥쳐올 충격을 최대한 줄이는데 집중했다.
수면에 꽂힌 순간, 나는 물속에 처박히지 않고 물수제비의 돌맹이처럼 수면 위에서 몇 번이나 튕겨오른 다음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푸핫, 하는 소리와 함께 해수면 위로 머리를 들어올렸지만 해신의 공격은 말 그대로 숨 돌릴 틈도 없이 쏘아지고 있었다. 비늘과 고밀도의 마력이 일제히 닥쳐온다. 나를 찢어발기기 위해서 움직인다.
이런 상태이지만, 아직 천변무궁류의 제이검은 끝나지 않았다. 물을 세게 걷어차면서 날치처럼 튀어오른다.
무수히 많은 비늘에 의한 범위 공격은 한 순간도 끊어지지 않았지만, 이 상태의 나는 비늘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나서 움직여도 충분히 회피할 수 있을 정도로 속도가 높아진 상태였다.
공중에 떠오른 나를 향해 비늘의 방향이 집중되었다. 하지만 닿지 않는다. 빠르게 물러난 뒤, 비늘이 도달할 수 없는 궤적을 그리며 움직인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쫓아오는 비늘은 조금 늦게 쫓아온 루이스가 모조리 튕겨냈다.
루이스는 검집에 붙어 있는 가죽 벨트 부분을 아주 요긴하게 쓰고 있었다. 그저 검왕검의 검집을 쓰는 정도가 아니라 가죽 벨트를 붙잡아서 휘두르는 식으로 철퇴나 채찍 같은 효과를 보고 있다.
루이스와 채찍. 상상하기만 해도 오싹해질 정도로 무시무시한 조합이다.
"……생각보다 귀찮네. 재생 능력까지 있을 줄이야. 진짜로 완성형 나쟈 급인가?"
나와는 다르게 루이스는 해수면 위에서도 두 다리로 버티고 서 있을 수가 있었다.
이른바 수상비?上?라는 경지인데, 나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영역이다.
물에 빠지려는 나의 허리를 감아쥔 후, 루이스는 수상비의 요령을 이용해서 해신의 공격을 끝 없이 피해나갔다.
"백신현. 그건 못 써? 스페트로를 쓰러트렸던 그거. 보니까 딱 이런 괴물에게 쓰면 좋을 거 같은데. 재생할 여지도 없이 한 번에 갈아버리면 되잖아."
"초신성 얘기라면 아무래도 무리야. 백신아의 조력이 없으면 쓸 수 없어."
원래 내 수준에서는 쓰지 못하는 기술이다.
초신성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백신아의 조력을 통한 준비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가. 그럼 됐어. 이 정도 싸움에까지 신아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좀 그러니까. 여기에서는, 내가 한 번 해보지 뭐."
루이스가 치 하고 혀를 차는 소리를 냈다.
"거두절미하고 물어볼게. 백신현 너, 10초 동안 나를 지켜줄 수 있어?"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공교롭게도 남아 있는 혜성의 지속 시간이 딱 그 정도였다. 애초에 혜성은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짧은 대화가 끝난 뒤 루이스는 나를 놓아주고 대기 자세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나대로 루이스의 기술이 준비될 때까지 시간을 버는 작업에 돌입했다.
쏟아지는 비늘을 일일이 쳐 내면서 대응했다.
입에서 쏘아진 섬광은 궤도를 읽은 뒤 정중앙을 칼로 쪼개서 막아냈다. 칼에 맞아서 좌우로 찢어진 섬광이 루이스의 좌우의 허공을 빠르게 뚫고 지나간다.
「루이스 아씨의 저 자세…… 저게, 바로 루이스 아씨의 필살검인가요?」
"정확히 말하면 파르네제식의 검술은 아니고. 루이스가 최근 1년 동안 별도로 창안한 새로운 필살검이야. 녀석의 수준으로도 제대로 쓰기 어려운 기술이라서 어느 정도 준비 과정이 필요하지만!"
급하게 자세를 고치면서 해신의 공격을 튕겨낸다.
내가 해신과 지금까지 붙으면서 느낀 점은, 놈에게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지적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루이스가 멈춰서고 나 혼자만 움직이는 지금의 이상 현상을 가만히 보아 넘길 리가 없었다. 공격이 루이스에게 집중되기 시작한다.
비늘에 의한 탄막??. 입에서 발사되는 섬광에 의한 포격??. 꼬리를 쓴 횡격??. 머리를 들이받는 돌격??.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 해신의 공격이다.
탄막은 그 자리에서 일일이 쳐 내면서 방어한다. 포격은 측면 부분을 날이 아니라 면으로 후려쳐서 궤도를 꺾었고, 횡격은 앞서 궤도를 꺾어 두었던 포격에 부딪치게 해서 정지시킨다.
머리를 사용한 돌격은 혜성을 유지한 상태에서 얻을 수 있는 힘과 속도를 최대한 발휘해서 정면에서 부딪쳤다.
마치 초고속으로 달려오는 열차를 몸으로 막아서는 것과 비슷한, 무모하기 그지없는 일격.
하지만 지금의 내게 필요한 건 단 10초간의 여유였다.
해신의 머리가 도달하기 전에 내가 먼저 수면을 세게 박차며 달려 들었다. 조금 높은 공중에서 해신의 머리와 검왕검이 불꽃을 튀기며 충돌한다.
검왕검은 해신의 머리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나아가던 칼이 어중간한 지점에서 멈춰선다.
끼이이이이익!!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린 느낌이다.
"큭!"
아무리 힘과 속도를 싣는다고 해도 해신의 돌격을 완전히 저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해신은 두께만 해도 수십 미터가 넘어가고, 전체 길이는 수 킬로미터에서 십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메가톤급 괴물이다.
내가 이전에 살던 원래 세계에서는 무게 100,000톤, 선체 길이 300미터의 니미츠급 항공모함이 바다 최강의 괴물로 꼽혔는데, 해신의 총 길이는 항공모함과 비교해도 설명이 되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수준이고, 무게 또한 그와 비례해서 끔찍한 수준에 이르러 있을 것이다.
아무리 혜성에 돌입한 상태라고 해도 도저히 멈춰세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다.
얼른 백신아에게 배턴을 넘기라고 내 마음 속의 나약한 부분이 속삭인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충분히 내 힘으로 넘어설 수 있는 상황에서조차 백신아에게 모든 것을 의존한다면 나는 평생 반편이 신세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배턴을 넘기라고 재촉하던 백신아가, 지금의 국면에선 유독 눈에 띄게 조용했다.
할 수 있으면 넘어보라고 소리 없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다.
"흐읍!!"
버틴다. 버틴다. 그 자리에 고정된 망부석처럼 온힘을 다해서 밀어낸다. 하지만 10초를 버티기에는 아주 조금 부족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혜성의 지속 시간이 다하기보다도 먼저, 내가 먼저 혜성을 해제하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혜성에 돌입한 상태를 해제한 직후 내 표면에 갑옷처럼 달라붙어있던 마력이 사방팔방으로 날뛰며 해제되었다.
리바운드가 닥쳐온다. 이때의 느낌은 회전 드릴을 뇌에 처박은 상태에서 최고 속도로 돌리는 느낌이었다. 뇌가 바깥으로 펄떡거리며 튕겨 나온 듯했다.
몰아치는 고통 속에서 의식을 붙잡았다. 고개를 앞으로 든 뒤, 혜성의 효과가 다함과 동시에 천방지축처럼 해방된 마력의 흐름을 모조리 같은 방향으로 몰아넣었다.
거친 소용돌이가 나의 배후를 점했다.
내 육체에 어마어마한 신체 능력을 부여할 정도로 막대한 양의 마력이 이 순간 내 몸을 앞으로 밀어내는 추진력으로 변환되었다.
해신의 육체가 약 1초 가량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서고 말았다.
이 1초가 최후의 10초가 종료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파김치가 된 내 어깨 위로 루이스의 손이 얹어졌다. 루이스는 내 어깨를 단단히 붙잡은 뒤, 나를 뒤로 내던지는 것과 동시에 본인이 앞으로 나왔다.
마치 서로의 위치를 교환하듯이.
루이스는 여전히 손에 검왕검의 검집을 쥐고 있었다.
"────"
녀석이 입술이 조용히 움직였다.
파르네제식 비전검술
구금화신류九?花??
특식??
무형 · 백화요란無? · ?花??
그 순간, 검집을 쥐고 있던 루이스의 오른팔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가속된 오른팔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검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림자나 잔상조차 남지 않았다.
그야말로 무형검無??
처음에는 루이스의 어깨 아래 부분이 사라진 것 뿐이었지만, 그 검에는 더더욱 빠르게 가속하는 성질이 있는 것 같았다.
어깨, 몸통, 다리, 가슴, 머리 순으로 루이스의 몸이 차차 사라지는가 싶더니, 이내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루이스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는 잘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루이스를 보는 게 아니라, 루이스가 움직이기 전에 보이는 마력의 흐름을 읽어내서 보고 있다.
기이한 일이었다. 해신의 전신에 다닥다닥하게 붙어있는 비늘이 차례로 뜯겨나가고, 그 다음에는 그 아래에 숨어 있는 살점과 근육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해신을 향한 비유로는 조금 부적절할지도 모르지만, 마치 거대한 생선을 가지고 회를 뜨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속도는 너무나도 빠르다.
해신이 재생하는 속도로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쩍! 불현듯 하늘의 구름이 걷히며 해신이 있는 자리에 환한 달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나는 달빛을 반사하며 빛을 내는 수만 개의 칼날의 모습을 보았다.
진짜로 검이 분열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지나칠 정도로 빨라진 루이스의 속도가 만들어낸 이상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수만 개의 칼날이 비늘을 뜯고, 살점을 찢고, 혈관을 도륙냈다. 해신은 순식간에 모든 살점과 피부를 빼앗기고 새하얀 뼈를 드러내고 있었다.
해신은 어느 시점부터 더 이상 재생하지도 못했다.
그저 무력하게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을 뿐.
「대단해……. 저게 루이스 아씨의 독자적인 기술이라고요?」
"뭐, 녀석은 천재니까."
검을 쥐고 불과 4년만에 특급의 영역에 도달한 귀재.
무의 축복을 받은 여자.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이거지.
녀석을 볼 때마다 정말 인생 편하게 사는구나 싶은 기분이다.
"물론 스페트로 급의 상대에게는 써도 효과를 보기 어려울 테고, 10초 이상의 준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도저히 실전에 써먹을 건 못되지만."
애초에, 10초 이상의 준비 시간이 필요한 이유도 저 기술이 지금의 루이스의 수준으로 온전하게 휘두를 수 없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수준에 맞지 않는 기술을 조금만 무리하면 쓸 수 있다는 시점에서 녀석의 천재성도 무시무시하지만.
콰직!!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힌 일격이 해신의 뼈를 두쪽으로 쪼개면서 루이스의 검식이 차차 마무리 되었다.
"……으."
물론, 한계를 넘어선 검술을 사용한 반동은 루이스의 몸에도 고스란히 돌아왔다. 루이스는 공중에서 자세를 더 이상 유지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꼬꾸라지고 말았다.
루이스가 추락한 위치까지 헤엄쳐서 나아갔다. 축 늘어진 녀석의 몸을 아래에서 받친다.
그토록 수많은 피와 살과 근육을 쪼개놓았음에도 녀석의 몸에는 핏방울 하나 묻어있지 않았다.
아마 피가 묻어나올 틈도 없이 검을 빠르게 거두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정말로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위력은 몰라도 속도라면 천변무궁류의 난무계 필살검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없지 않을까.
"……머, 멍하니 있지 말고……. 해, 핵부터 회수하라구. 어서……"
"아, 위치는 봐 뒀어. 저쪽이야."
해신의 핵은 나쟈의 사례가 그러하듯 머리 부분에 위치해 있었다. 해신의 머리가 갈기갈기 분쇄되는 과정에서 나쟈의 핵이 외부로 노출되었다.
물에 잘 뜨는 재질인지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도 않았다. 루이스를 오른팔로 감싸 안은 상태로 왼팔과 다리만 써서 그쪽까지 수영해서 이동했다.
회수한 해신의 핵은 나쟈의 핵과 상당히 비슷한 형태였다.
최상급 몬스터들의 핵은 다 이런 구조인가? 나도 실제로 본 건 두 종류 뿐이라서 아직 확신을 못하겠다.
완전히 퍼져버린 루이스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쓰러트리더라도 또 수백 년 뒤에는 다시 나타나는 건가. 최상급 몬스터들은 뭔가 교활한 걸. 사람은, 한 번 죽으면 끝인데……."
감회에 잠긴 듯 입맛을 다시던 루이스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말했다.
"아니, 지금은 일단…… 뭍으로 올라가자. 계속 물에 들어가 있을 수도 없잖아."
"몸 상태는 괜찮냐?"
"진짜 꼼짝도 못할 거 같아……."
얼른 움직여야 할 거 같다. 저체온증이라도 걸리면 문제가 되니까.
해신과 싸우고 부딪치는 동안 우리는 꽤 뭍에서 떨어진 위치까지 이동한 상태였다. 방향을 더듬어서 제일 가까운 육지까지 이동한 후, 루이스를 부축하며 뭍으로 올라왔다.
루이스는 한 됫박 가까이 바닷물을 토해낸 뒤 시체처럼 그 자리에 축 늘어졌다. 완전히 힘이 다한 모습이다.
나도 루이스 정도까진 아니라도 혜성의 리바운드를 비롯한 각종 데미지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간신히 지면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서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실제 강함만 따지면 스페트로보다는 약하겠지만, 상당한 강적이었다.
"신아 너는 어땠어? 해신하고 싸우면서 따로 느낀 건 없나?"
「…….」
애초에 우리가 해신하고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 것도 백신아 때문이었다.
지금의 싸움으로 녀석이 확실하게 얻은 게 있다면 좋을 텐데, 지금까지 싸우면서 슬쩍 체크한 바로는 딱히 뭔가를 얻어낸 느낌은 들지 않는다.
백신아의 감이 헛다리를 짚었던 걸까.
강적하고 싸울 수 있었으니 나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지만, 조금 아쉽다.
「……검주, 해신의 핵이.」
그 말을 듣고 바닥에 잠시 놓아뒀던 해신의 핵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순간적으로 내 눈을 의심했다.
둥근 구체, 마치 생선의 날처럼 내용물이 비춰보이는 새파란 핵의 표면에 정체불명의 눈코입이 나타나서, 마치 사람의 얼굴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크……, 크흐흐흐……. 그, 그렇군……. 도대체 어디에서 너희 같은 놈들이 튀어나왔는가 했더니, 거, 검왕의 소행이었어…….』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목소리.
전투가 시작하기 전에 들었던 것과 상당히 비슷한 느낌이었다.
즉, 이것은 해신의 목소리라는 의미일까.
『실로 우습구나……. 스스로가 거대한 함정에 휘말리고 말았다는 것도 모른 채 마구잡이로 힘을 휘두르는 모습이……』
해신이 남긴 목소리는 그것이 전부였다.
핵 위에 드러났던 눈코입이 괴기하게 일그러지면서 잠시 동안 요동치더니, 벼락이 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다시 매끈한 핵의 표면만이 남아 있었다.
난 살짝 입술을 손끝으로 훑은 후 루이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함정이라. ……백신아를 보고 하는 말인가?"
"……모르겠어. 하지만 해신이 검왕과 대적했던 전적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헛소리라고 무시하고 넘어갈 이야기도 아니라고 보는데."
루이스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조심스럽게 내저었다.
사실, 해신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검왕검에 대해서는 상당히 수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검왕검을 제어하는 관제 인격인 백신아는 믿을 수 있는 존재이지만, 검왕검에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비밀이 잔뜩 있으니까.
그래서 온갖 기를 쓰면서 검왕검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거고.
나는 살짝 고개를 까딱, 하고 움직인 뒤 루이스에게 검집을 받아서 검왕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리 힘을 줘도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
마치 그 자리에 묶여 버린 것처럼.
누군가가, 내 손을 강하게 틀어쥐고 있는 것처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