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12. 해신?? (9)
* * *
일전의 전투가 떠오른다.
거대한 뱀, 나쟈와의 전투가.
눈앞의 해신과 나쟈는 서로 많은 것이 닮아 있었다. 두께와 길이는 해신이 더 크다.
저 덩치로 과연 제대로 움직일 수는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인……, 간……?』
바로 그때, 머릿속으로 여과없이 날카로운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귀로 들은 소리는 아니었다.
이전의 백신아와 같은 방식일까.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그 소리를 들은 게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윽……!?"
루이스도 해신이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지 표정을 찡그리며 상반신을 살짝 낮췄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그 정도로 기분 나쁜 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으니까.
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몸 상태가 이상했다. 나와 루이스가 동시에 눈과 코에서 피를 흘렸다.
특수한 저주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에 말을 거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압박해서, 괴상한 현상을 발휘시킨다.
전성기에 비해서 아득히 약해진 지금의 시점에서도 이 정도의 위력이 나올 지경이라면, 과연 과거의 놈은 도대체 얼마나 무시무시한 놈이었다는 걸까.
특급 모험가조차 소리를 조금 들은 것만으로도 피를 토할 지경인데.
우리의 움직임이 잠시 굳은 틈을 타서, 해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선의 그것을 수백, 수천 배 크기로 확장시킨 것 같은 날카로운 비늘이 표면 위로 올라온다.
해신의 공격은 그 비늘을 표창처럼 쏘아 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비늘 하나 하나의 크기는 인간의 몸통 크기 정도. 하지만 해신의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거대한 몸뚱이를 덮기 위해서는 과연 저것과 같은 비늘이 얼마나 필요할까.
수백 개, 수천 개. 어쩌면 수만 개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해신은 한 번에 수천 개 이상의 비늘을 우리들의 머리 위에서 쏟아붓기 시작했다.
인간의 몸통 만한 것이, 한 번에, 수천 개씩 쏟아내리고 있다. 회피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비늘과 비늘 사이의 간격은 매우 촘촘해서 빠져나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형태로, 비늘이 파괴하는 면적은 가로 세로로 약 500미터 전역이다. 비늘이 바닥에 충돌하면서 도탄되는 부분까지 고려하면 범위는 더 넓어 지겠지.
끌려온 사람들이 어디까지 도망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무사히 도망쳤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다. 그쪽을 신경 쓰기에는 이쪽도 내 코가 석자인 상황이다.
거의 균등하게 쏟아지는 비늘의 포화 속에서 아주 조금 밀집력이 떨어지는 지점을 파악하고 달려 나갔다. 검으로 비늘을 튕겨내면서 내 한 몸을 지킬 수 있는 위치를 만들었다.
루이스도 비슷했다.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검으로 연신 비늘을 튕겨 내고 있었다.
수천 개의 비늘을 한꺼번에 쏟아 냈지만, 해신에게 눈에 띄는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비늘이 사라진 자리를 새로 돋아난 비늘이 나타나서 채워나간다. 비늘이 회복되는 속도가 어마어마하다.
마치 쉬지 않고 쏟아지는 빗방울을 쳐내는 기분이다. 차이점은 그 하나 하나의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크고, 잘못 맞으면 그대로 내 머리가 뭉게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애초에, 해신의 공격 패턴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따개비!"
비늘에 붙어 있었던 걸까. 어느 시점부터, 검왕검의 표면에 특이하고 까끌까끌한 질감의 껍데기가 달라붙어 있는 게 보였다.
검의 무게 벨런스가 달라졌다. 당연히 검끝에 실리는 위력도 약해지기 시작한다.
쳐내는 힘이 약해진다.
'그렇다면……!!'
천변무궁류?????
제삼검?三?
청
거성巨?
검왕검의 칼날을 중심으로 마력이 넓게 퍼진다.
검의 크기와 중량을 늘려서 파괴력을 극대화시키는 천변무궁류의 제삼검은 그 과정에서 막대한 고열을 동반한다.
따개비가 자글자글 타들어가더니 흔적도 없이 재가 되어 흩어졌다.
루이스는 물론이고, 나 또한 어느 정도 특급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평가 받는 검사이다. 나의 검극은 겨우 이 정도의 공격에 흐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해신은 아직 본격적인 공격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놈의 진짜 무기는 이런 비늘이나 따개비 같은 게 아니라 두께 수십 미터, 길이만 수백, 수천 미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몸뚱이 그 자체니까.
쏟아지는 비늘과 따개비로 내 위치를 그 자리에 고정시킨 후, 해신이 그 자리를 향해 얼굴을 겨눴다.
턱을 벌린다.
벌어진 입 사이로 마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아직 기술이 완성되진 않았지만, 그 모습만 봐도 느낄 수 있는 게 있었다.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있던 루이스가 소리쳤다.
"저건……!!"
구강에 고밀도의 마력을 뭉쳐서 집중시킨 후, 날숨과 함께 토해낸다. 해신의 크기를 고려하면 모여든 마력의 양은 아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수준일 것이다.
피하긴 어렵다. 해신이 다음 공격을 준비하면서 쏟아지던 비늘이 잠시 끊어지긴 했지만, 뿜어낸 비늘이 많아도 너무 많다.
아직도 쏟아지는 중이라서 하나라도 쳐내는 걸 게을리하면 바로 상반신이 날아갈 수 있다.
이걸 받아내느라 내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을 노려서 공격을 준비한다.
처음부터 그런 조합인 것 같았다.
「검주, 교체 안 해도 되겠어요?」
"백신현! 안 도와줘도 괜찮겠어!?"
두 여자가 동시에 소리친다. 조금 차이는 있었지만 뉘앙스는 거의 같았다. 그러니까, 안 도와줘도 괜찮겠냐고.
나는 이를 바득 갈면서 대답했다.
자존심을 담아서 외친다.
"문제 없어, 이 정도는!!"
나는 천변무궁류의 제삼검을 전개한 상태로 왼쪽 다리를 살짝 들었다.
오른쪽 발로 축을 잡고 빠르게 회전하면서 주변의 모든 비늘을 튕겨내는 안전한 공역을 구축했다.
그 상태에서, 천변무궁류의 다음 공격을 준비한다.
두 다리로 바닥을 딛어서 회전하던 몸을 정지했다. 몸을 살짝 웅크렸다가 쭉 펴면서 강하게 지면을 걷어찼다.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이 요결에 따라서 펼쳐졌다.
하얀 유성白?
소리조차 늦었다.
다음 순간 나는 해신의 머리를 살짝 빗겨가는 위치에서 푸르게 빛나는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쿵!!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해신의 머리를 사정없이 후려친다.
무시무시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감촉이 살벌하다. 하지만 위력이 부족했다. 내 검이 해신의 머리통에 꽂히는 바로 그 순간, 해신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숨을 토해내서 급격하게 머리의 방향을 틀어버린 것이다.
그 결과, 원래는 해신의 머리를 양단했어야 했을 일격이 많이 약해졌다. 해신의 머리통은 움푹 들어가기는 했어도, 쪼개지지는 않았다.
공격이 실패했다. 그 다음에는 해신의 차례였다.
『검……, 왕……!!』
가까이에서 본 해신의 몸은 정말로 수많은 비늘에 의해서 뒤덮힌 모양새였다. 머리와 목 부분의 비늘이 일제히 일어나서 나를 겨누고 있다.
"칫……!"
이곳은 발 하나 딛을 곳 없는 허공. 회피는 어렵다. 그렇다면 여기에서는 천변무궁류의 제사검을 쓴다. 삼렬성의 요결로 나의 전방에 질량이 있는 분신을 구축. 일시적으로 해신의 거리 감각을 혼란시킨 다음 배후로 들어간다.
그런 생각으로 기술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나는 이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조금 늦게 쫓아온 루이스가 나를 노리고 쏘아진 모든 비늘을 튕겨내버렸다. 1초에 수십 번씩 검을 휘둘려서 하나도 남기지 않고 처리한다.
"알고는 있었지만, 반응 속도가 빠르네. 나쟈하고 붙을 때가 생각나."
"나쟈라."
내가 떠올리는 나쟈와 루이스가 떠올리는 나쟈는 서로 다른 형태일 것이다.
내가 싸운 건 어디까지나 불완전하게 깨어나서 가지고 있는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미완성판.
하지만 루이스가 싸운 건 충분한 준비 기간을 가지고 나타난 완전체이니까.
불현듯 해신의 머리에 왕관처럼 돋아있던 뿔이 길게 늘어나면서 수십 갈래로 갈라졌다. 마치 팔랑크스의 형태로 쏟아지는 창 같다. 찔리면 위험하겠지. 그대로 관통 당할지도 모른다.
"백신현!"
"음!!"
루이스가 나를 찾았고, 나는 루이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서로의 검을 공중에서 부딪쳤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동시에 허리를 튕겨서 자석의 같은 극이 반발하듯이 거리를 두었다.
서로 벌어지면서 공격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이렇게 한 번 멀어지면 허공에서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한정되어 있는 나와는 다르게, 루이스는 정제된 마력을 분사하는 것으로 공중에서도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을 쓸 수 있었다.
빠르게 공격 범위에서 벗어난 후, 공격이 끝나자마자 다시 한 번 앞으로 나아간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루이스의 공격이 무겁게 꽂힌다.
하지만 위력이 부족했다. 루이스의 공격은 비늘을 몇 개 떨어트리는 정도에서 그치고 말았다.
녀석의 실력을 알고 있는 나는, 저것이 루이스의 전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것 같았다.
역시……, 검이 부러지는 걸 우려해서 힘을 제대로 못 쓰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루이스!!"
나는 급하게 허리춤의 검집을 뽑아서 루이스를 향해 집어 던졌다. 구체적인 말은 하지 않았지만, 루이스는 그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내 의도를 파악하고 가장 알맞은 대응에 들어갔다.
빠르게 날아온 검집을 낚아채서 다시 한 번 마력을 싣기 시작한다. 주저하지 않고, 지체하지 않고 있는대로 힘을 몰아넣어서 위력을 증폭한 검집이 다시 한 번 해신의 머리에 꽂힌다.
검집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꽂힌다. 으직, 하는 소리와 함께 검집이 꽂힌 자리가 푹 들어간다.
해신의 몸이 비틀거리면서 넘어간다. 그리고 그 넘어지는 위치 아래에는 조금 빠르게 추락하던 내가 있었다.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야말로, 잠시 아껴 두었던 천변무궁류의 제사검에 들어갔다.
천변무궁류의 제사검, 삼렬성은 일시적으로 질량이 있는 잔상을 남겨서 상대방의 간격을 속일 때 쓰이는 기술이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하려는 건 회피가 아니다.
공격을 위해서 쓴다.
"……후."
천변무궁류의 요령에 의해서 낙하 속도를 떨어트린다. 빠르게 추락하던 몸이 마력의 흐름에 밀려서 살짝 떠오른다.
공중에 떠 있던 나의 몸뚱이와 살짝 틀어지는 형태로 또 하나의 백신현이 그 자리에 나타난다. 말은 삼렬성이지만, 난 아직 삼렬성까지는 제대로 쓰지 못한다.
해봐야 이렬성二??.
잔상 하나를 만들어서 나의 몸을 두 개로 불리는 것이 한계.
해신의 몸이 내 위로 쓰러진다. 어느 정도 거리가 줄어든 순간 그 자리에서 두 명의 백신현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뛰었다.
루이스와 함께 공중에서 위치를 바꿨던 것과 같은 방식이다. 진짜 백신현과 가짜 백신현이 서로의 몸을 걷어차서 이동. 각각 해신의 좌와 우를 점한다.
기술이 시작된다.
해신의 좌우에서 천변무궁류의 제삼검이 동시에 꽂힌다. 거대한 칼날이 좌우에서 비늘을 찢고 피부를 가르고, 뼈를 잡아 뜯었다.
천변무궁류?????
제삼검?三?
청
거성巨?
고급식高??
용아검??
마치, 먹잇감을 물어뜯는 용의 턱처럼.
* * *
"……아."
같은 시각.
연금술사는 검왕검의 제작 공방에서 강한 진동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지진이라도 벌어진 듯한 강렬한 울림이었다.
손에 든 찻잔에 파문이 일었다. 연금술사가 일으킨 파문은 아니었다. 보다 크고 강력한 진동이 제작 공방과 이 찻잔에도 영향력을 끼쳤다고 봐야 했다.
"어, 저기. 선생님. 지금 이 진동은……, 혹시……"
샤를로트도 피부로 느낀 모양이다.
"아마도 시작한 거겠지."
마력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 정도로 먼 거리였지만 그 마력의 충돌로부터 비롯된 진동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자세한 전투의 진행 상황까지는 알 수 없다.
살짝 눈을 가늘인 연금술사가 불현듯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슨 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
그리고, 연금술사가 돌아본 방향을 향해 네 다리로 쭈그리고 앉은 수인 여자도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이전과 비교해서 많이 또렷해진 눈동자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뭔가를 느끼기라도 한 것처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