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 12. 해신?? (8)
* * *
미행을 들키지 않게 조심해서 추적을 시작한다.
당연히, 그쪽도 미행은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따금씩 등뒤를 돌아보면서 상황을 파악했지만 그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을 속였다.
미리 잡아둔 고양이나 쥐 등을 사용해서 착각시키거나, 철판의 반사를 이용해서 광원을 흐트리거나, 방법은 많았다.
미행이라는 건 단순히 기척을 숨기는 실력이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이런 식으로 하는 거지.
그들의 목적지는 교회 뒷문에서 20분 정도 도보로 걸어가면 도착할 수 있는 낚시터였다.
물론 구르제스를 소개하는 팜플렛이나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은 아주 비밀스런 장소로서, 최근까지도 섬세하게 관리하고 있었는지 전체적으로 준수한 보존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여기가 목적지인 걸까. 근처에 배가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바다로 나갈 생각은 없는 것 같은데. 여기에서 뭘 어떤 식으로 해신과 연락을 취할 생각인 걸까.
내가 낮게 고민에 빠진 그때, 불현듯 시야에 노이즈가 끼어들었다.
"……이건."
마치 전파의 수신 상태가 좋지 않은 텔레비전의 화면처럼, 시야에 보이는 풍경이 파직, 파직 소리를 내며 튀고 있었다. 따갑게 찔러대는 고통에 나는 오른쪽 눈을 감싸쥐었다.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뭐야, 백신현 너 갑자기 왜 그래?"
루이스가 내 상태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걸 보면 아마 이건 내 눈에만 보이는 노이즈 같은데.
도대체 지금 내 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후우……."
조용히 호흡을 정돈하면서 고통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힘을 쓴다. 하지만 노이즈는 잠잠해질 줄을 모르고, 내 시야에 비치는 풍경을 제멋대로 바꿔놓기 시작했다.
뭔가가 보인다.
현실에 보이는 풍경과 구분되는 또 하나의 가상 현실이 노이즈를 동반하며 펼쳐진다.
그러니까 그것은, 그야말로 대학살극의 한중간이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도끼에 머리가 깨지고, 해머에 뭉게져서 살해당했다.
하지만 그 살인에는 합리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는 의미이다.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가학적인 행위가 동반된 학살이었다.
목적이 있어서,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서 죽이는 것이 아니라.
굳이 말하자면 즐기기 위한 살인.
그러한 가상 현실이 내 시야에 펼쳐지고 있었다.
내 시야를 침범한 가상 현실은 진짜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실감이 느껴졌다. 일종의 공감각이 작용한 탓일까. 들리지도 않는 소리가 들리고, 풍기지도 않는 냄새가 풍기는 느낌이 든다.
사람의 배가 갈라지면서 내용물이 쏟아져나온다. 그것은 수많은 혈액과 냄새를 동반하면서 쏟아졌다.
비릿한 냄새에 머리가 아프다.
"……."
표정을 찡그리면서 한 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다. 그 순간, 내 시야에 펼쳐졌던 가상 현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도대체 뭐지? 조금 전의 그건……
나는 진하게 풍겨오는 현기증을 참으면서 자세를 고쳐 잡았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본다. 루이스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걱정스런 얼굴로 내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한 풍경 같은 게 보였다고? 난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
곤혹스런 표정을 한 루이스에게 설명하니까 이런 식의 반응이 돌아왔다.
역시 조금 전의 그 풍경은 나만 본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도대체 뭐였을까.
그저 평범한 환각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잠시만요, 검주. 그러니까 갑자기 검주의 시야에 이상한 풍경이 펼쳐졌다는 말인가요?」
"……그래."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백신아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뭔가, 알고 있는 게 있는 걸까.
잠시 조용하던 백신아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검주도 아시다시피 천변무궁류의 검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영역까지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마력의 성질이나 흐름을 파악하는 감각은 특급 모험가조차 따라올 수 없을 거에요.」
"……."
옆에서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백신아가 말한 것처럼, 천변무궁류의 기법은 루이스조차 흉내내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러 있다.
천변무궁류를 쓰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특수한 감각과 공간 지각 능력이 필요하다.
「제가 보기에는, 지금 현재 이 자리에 농후하게 차 있는 특수한 성질의 마력이 검주의 감각과 감응해서, 이 현장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을 보여줬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공간에 가득 찬 마력이 내 감각에 잡혔고, 그 감각이 공감각적으로 내 시각에 영향을 끼쳤다는 소린가."
천변무궁류의 검사는 특급 모험가조차 볼 수 없는 마력의 흐름까지 포착해서 붙잡을 수 있다.
이 공간의 마력이 그 정도로 특수한 성질을 가진 것이었다는 의미일까.
한편 그 대화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루이스가 입을 벌리면서 질문했다.
"잠깐만. 그렇다는 건 신현이가 봤다는 그 학살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소리야?"
「아마도요. 피투성이의 사건 현장을 보면 살인을 연상하고, 조각이 딱 하나 빠져 있는 퍼즐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빠져 있는 조각을 연상하는 것처럼. 이 공간에 남아있는 마력을 감지한 검주의 감각이 여기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을 연상시킨 거에요.」
"……인신공양人????"
루이스의 입에서 불길한 단어가 튀어 나왔다.
살아있는 사람의 배를 쪼개서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행위.
우리에게 해신의 존재를 알려준 검왕회의 남자도 말했었지, 해신의 주식은 인간이었고, 그 제물을 대가로 이 일대에 풍요로운 환경을 제공했다고.
지금까지 이 마을에 왔다가 실종된 사람들도 모두 해신의 뱃속으로 들어간 걸까.
그 사실을 목도한 순간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이 뱃속 깊은 곳에서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려고 했다.
이것은 아마 내가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가장 당연한 형태의 생리적 거부감일 것이다.
"……누구냐!"
하지만 내가 그 사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멀리에서 벼락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조금 전의 그 광경이 시야에 펼쳐지는 과정에서 나의 은신이 흐트러진 탓이겠지. 지금까지처럼 속여 넘기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들은 이미 우리가 숨은 장소를 노리고 달려들기 시작했으니까.
루이스는 이미 싸울 마음을 먹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검을 뽑고 있었다.
"일단 여기에서 다 쓸어버리자. 위장이 들켰으니까 이제 어쩔 수 없잖아."
"……그래야겠어. 어쩔 수 없지."
나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금쇠를 풀고 검왕검을 해방한다.
아직 혼란스러운 감은 있었지만, 나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잡념이 섞인 감정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런 거 때문에 칼 맞아 죽으면 그것만큼 웃긴 일도 없다.
"머리는 내가 친다. 나머지는 루이스 네가 잡아줘."
"알았어. 그럼, 어디 한 번 해 보실까!"
여기에서 말하는 머리는 당연히 해신교의 교주로 있는 저 중년 남성을 말한다.
나는 그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습격해오는 교도들을 무시하고 지나치며 속도를 높였다. 그들은 당연히 방향을 바꿔서 나를 추적하려고 했지만, 그것보다도 빠르게 루이스가 움직였다.
그들의 눈에는 공격이 제대로 비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퍼버벅, 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한 순간에 열 명 이상의 인원이 나가떨어졌으니까.
해신교의 인간들이 순식간에 제압되었다. 남은 건 교주와, 그 교주의 옆을 지키고 있는 직속 호위 두 사람 뿐.
이 둘은 제법 실력이 있어 보였다. 등급으로 치면 3급에서 4급 정도쯤 되려나.
하지만 그 정도의 실력으로는 나를 멈출 수 없다.
천변무궁류를 쓸 것도 없이 평범한 검술을 써서 모조리 때려 눕혀 버렸다.
"이,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저것들도 한가닥 하는 놈들 같았지만, 상대가 나빴어."
나는 그대로 단검을 뽑아서 교주의 어깨에 집어 던졌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교주가 벌렁 넘어지더니 전신을 꿈틀거리면서 비명을 질렀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시시해서 오히려 김이 빠질 정도다.
하지만 이게 보통이겠지.
특급 모험가에 맞설 수 있는 건 같은 특급 모험가 정도밖에 없으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절한 전원의 뒷덜미를 낚아채서 끌고 온 루이스가 그들의 몸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던졌다. 모두 눈이 뒤집어져서 흰자를 드러내고 있다.
"원래는 해신이 나올 때까지 지켜보다가 습격할 생각이었는데, 이젠 어쩌지? 일단 고문부터 해 볼까?"
루이스가 가볍게 손을 털면서 말했다.
"일단 그래야겠지. 만약 끝까지 얘기를 안 한다고 치면 그냥 죽이면 되는 거고. 그것만으로도 해신교를 와해시킬 수 있을 테니까."
아직 덩치가 크지 않은 소규모 종교의 경우, 교주의 존재가 특히 중요하다.
교주를 죽여서 '실종'시키기만 해도 아마 해신교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알아서 무너지고 말 것이다.
교주의 실종, 그리고 교주가 남겨둔 재산을 가지고 남은 놈들이 알아서 분쟁을 일으키다가 공중분해 되겠지.
물론 우리가 쓰러트려야 하는 건 해신이지, 해신교는 아니기 때문에 무작정 죽이는 것도 안 좋은 선택이긴 하지만……
「검주!!」
"……!!"
사납게 노갈하는 백신아의 외침이 나의 정신을 다잡았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가 서 있던 땅이 통째로 흔들렸다. 충격의 진원지는 물가였다. 수면 아래에 숨겨져 보이지 않는 '뭔가'가 땅에 부딪쳐서 충격을 전달시킨 것이다.
충격의 위력이 보통이 아니었는지, 지면 여기저기에 수많은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낚시터가 통째로 붕괴하면서 그 위에 서 있던 우리들도 급하게 위치를 옮겨야 했다. 나는 급한대로 여기까지 끌려온 일반인들을 붙잡아서 아직 충격이 미치지 않는 방향으로 빠졌다.
루이스도 근처에 있는 해신교도 둘셋을 틀어쥐고 함께 뛰었다.
하지만 그 짧은 사이에 우리가 빼낼 수 있었던 건 극히 적은 수의 인간들 뿐.
"억, 어어어억!!"
해신교의 교주를 비롯한 대부분의 해신교도들이 바닷속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수면 위로 솟아오른다.
그들이 스스로 떠오른 것은 아니었다. 바닷속에서 올라온 거대한 존재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과정에서 그들까지 휘말린 것 뿐이었다.
해신교도들의 몸이 수면 아래에 있는 거대한 존재에 밀려서 높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땅을 밟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굉음과 함께 솟아오른 거대한 존재는 사람 수십 명을 한 번에 삼킬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턱을 벌려서 교주를 비롯한 다른 교도들을 한 입에 꿀꺽 삼켜버렸다.
그 정도로 거대한 괴물이었다.
「어라……, 저번에 본 나쟈보다도 더 큰 거 같은데요……?」
검왕회의 남자가 말한 것처럼 그것은 거대한 물뱀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비늘은 파란색이고 눈은 없다.
머리에는 노란색의 특이한 뿔이 붙어 있어서, 마치 왕관처럼 보였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새파란 비늘 위에 참혹하게 찢긴 흔적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해신은 검왕에 의해서 목이 찢겨서 패배했다고 하는데, 그때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는 걸지도 모른다.
『크르르르……』
하늘을 향해 턱을 벌린 자세로 꼿꼿하게 서 있는 그 모습은 마치 보름달을 삼키려고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것이 바로 해신??.
한때 이 일대의 모든 해역을 지배하던 규격외의 괴물의 모습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