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 12. 해신?? (7)
* * *
"신현 씨, 오래 기다렸지……? 준비 다 끝났어. 이제, 움직이면 돼."
샤를로트가 호텔 방에서 물건을 챙기고 나왔다. 내 생각이 맞다면 아마도 두 사람이 갈아입을 옷이다.
"그럼 루이스, 이쪽을 잘 지켜줘."
"아, 뭐. 그쪽이나 조심해."
루이스를 호텔에 남겨둔 후, 샤를로트와 함꼐 움직였다.
내가 샤를로트와 함께 움직이는 이유는 샤를로트가 혼자서 이동하다가 뒤를 밟히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일은 미연에 방지해야 하는 게 맞다.
그리고 샤를로트가 잘못 뒤를 밟히면 녀석 뿐만 아니라 연금술사까지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나와 함께 길을 걷던 샤를로트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기 시작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또 뭔가 일이 있는 거지? 신현 씨."
"아, 맞아. 너도 알겠지만, 우리가 지금 해신하고 한바탕 할 준비를 하고 있거든. 이것도 그런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지."
"내가 도와줄 만한 일은 없고……?"
"괜찮아. 네가 나서지 않아도 우리 선에서 충분히 끝낼 수 있을 거 같다."
"그럼 다행이다."
샤를로트가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샤를로트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곳은 적지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잠시 함께 걷고 있으니, 예상했던대로 미행이 붙기 시작했다. 나는 감지할 수 있지만, 샤를로트는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꽤 수준 높은 미행이었다.
미행이 실패한 건 그들의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니다.
그저, 나와 루이스에게 통하지 않은 것뿐.
나는 잠시 동안 그들의 미행을 방치한 뒤, 여러 갈래 길이 나온 순간 샤를로트의 허리를 낚아채서 들어올린 후 재빠르게 골목으로 빠졌다.
"잠, 신현 씨!?"
"미행이 붙었어. 지금부터 따돌린다."
"아, 어, 알았어!"
역시 샤를로트는 눈치가 좋다. 내 말을 들은 순간 스스로 입을 틀어막아서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대비했다.
아직은 수련 기간이 부족해서 4급에서 5급 정도의 실력에 불과하지만, 훗날 샤를로트의 실력이 본궤도에 올랐을 때가 기대된다.
잘 하면 루이스가 가지고 있던 최연소 특급 모험가의 타이틀을 가져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쉴 세 없이 방향을 꺾으면서 추적을 혼란시키고, 마지막에는 좌우의 벽을 번갈아서 걷어차며 위쪽으로 올라갔다.
바로 위쪽에는 3층 건물의 옥상이 있다. 난간에 손가락을 걸어서 넘어간다.
위에서 내려다본 미행은 완전히 길을 잃고 혼란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혹시라도 발견되면 안 되니까 옥상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이동한다. 이 건물의 옥상은 쓰지 않는 장소인지 전체적으로 낡은 느낌이 강하게 풍겼다.
난 높은 위치에서 대략의 방위를 파악한 후, 검왕검의 제작공방이 있는 거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옥상을 통해서 이동하다가, 저쯤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게 좋겠다."
다행히 옥상과 옥상 사이의 높낮이가 크게 차이 나진 않았다. 이 정도면 크게 소리를 내지 않고 이동할 수 있을 거 같다.
이것보다 더 크게 차이가 나면 아무래도 바닥을 걷어차고 뛰어올라갈 때마다 소리가 심하게 나니까.
"그런데 신현 씨……, 지금 마력을 써서 한 건 아니지?"
"어, 마력을 쓰면 추적 당하기 쉬우니까."
지금 내가 보인 정도의 퍼포먼스는 어느 정도 마력을 다루는 소양이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여기에 있는 샤를로트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마력을 써서 신체 강화에 들어가면 아무래도 마력을 추적하는 기법에 덜미를 붙잡힐 가능성이 있다.
내가 마력을 쓰지 않고 신체 능력만 써서 올라온 이유가 있다.
"……조금 전의 그거, 엄청 재밌었어."
샤를로트는 마치 재미있는 놀이기구라도 탄 것처럼 만족스런 얼굴이다.
일단 급한대로 샤를로트의 허리에 팔을 감고 들어올린 상태로 움직인 건데, 본인은 그게 또 재미있었나보다.
하긴, 애들은 격하게 놀아주면 놀아줄수록 더 좋아하는 성질이 있으니까.
샤를로트의 실제 나이는 열네 살이지만 애가 워낙 순한 인상이라 실제 나이에 비해서 상당히 어려 보이는 축이고.
다시 한 번 허리에 팔을 감아서 들어올려주니까 샤를로트가 좋아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서 즐길 줄 아는 샤를로트는 진정한 일류였다.
나는 옥상과 옥상 사이를 넘나들면서 샤를로트에게 질문했다.
"네가 보기에는 어때? 광증 치료는 잘 되어가고 있는 거 같아?"
"……솔직히 말하면 나도 잘 모르겠어. 연금술사 선생님께서 하고 계시는 일은 너무나도 수준이 높아서, 따라가기도 버겁거든."
샤를로트는 쓸데없는 허세나 거짓말이 없는 녀석이었다. 그저 입술을 물결무늬로 우물거리면서 솔직담백하게 진실만을 고했다.
"오히려 선생님 쪽이 광증에 빠지신 거 같은 느낌도 들고……? 갑자기 혼자서 고개를 숙이고 중얼중얼 거리시는 걸 볼 때마다 솔직히 좀 무섭거든."
아, 무슨 소리인지 알겠다.
그런 연금술사의 모습을 나도 자주 보아왔으니까.
"그건 긍정적인 신호야. 나도 자주 봤거든. 너무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아."
"진짜로?"
"응, 진짜로. 지금 네가 하는 일이, 원래는 내가 하던 일이었으니까."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인 다음, 골목길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나서 아래로 내려간다.
시간을 길게 끄는 것도 좋지 못한 행동이다. 제작 공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바로 걸쇠로 잠근다.
"발소리를 들어보니까 신현이네. 뭔가 상담할 거라도?"
"아뇨, 그런 건 없어요."
연금술사는 공방의 풀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시약으로 반응을 테스트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녀는 돌아보지도 않고 내가 도착한 것을 눈치챘다.
그녀가 앉아 있는 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이전에 본 수인 여자가 네 다리로 쪼그리고 앉아 있다. 마치 집을 지키는 용맹한 번견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도 나하고 부딪칠 때하고는 다르게, 막 날뛰는 기색은 없다. 광증이 약해진 걸까. 그게 아니면 힘의 차이를 인식하고 얌전해진 걸까.
어찌됐든, 힘 쓸 일이 하나 줄어든 것만 해도 내 입장에선 좋은 일이다.
"그럼 할 말이 따로 있어서 찾아온 건가?"
"그것도 아녜요. 보니까, 알아서 잘 하고 계시는데 뭘."
애초에 이런 쪽으로는 내가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난 지금까지 연금술사처럼 머리가 좋고, 지식이 넓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힘을 쓰는 일은 우리가 하고, 머리를 쓰는 일은 연금술사가 한다.
짧은 대화를 나눈 뒤, 나는 그 자리에서 살짝 발길을 돌렸다. 샤를로트는 우리 둘의 모습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지만, 이런 게 우리 스타일이다.
"샤를로트. 일단 오늘은 이 공방에서 나오지 말아줘. 괜히 이상한 벌레가 꼬이면 너도 귀찮을 거 아냐."
"아……, 응. 알았어."
"길게 끌진 않을게."
하루 이틀은 모르겠지만, 계속 여기에서 나가지 못한다면 그것도 큰 스트레스가 될 것이다.
나도 그 사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길게 끌 생각은 없다.
최대한 빠르게 끝장을 볼 것이다.
"선생님. 전 다시 나가볼게요. 오래 걸리진 않을 거에요."
"오래 끌어도 난 상관 없어. 실내에만 있는 건 익숙하니까."
"선생님은 그렇다 쳐도, 샤를로트는 정신병 올 걸요. 그리고 한 번 더 올 생각이에요. 짐 가져다놔야 하니까."
외출은 커녕 평소에 잘 씻지도 않은 연금술사와 샤를로트를 같은 선상에 두기도 애매하다.
최근 들어서 연금술사가 씻기 시작한 것도 나하고 자꾸 몸을 섞으면서 찝찝함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니까.
두 사람과 일별해서 공방을 나왔다. 그리고 주변에 인기척이 드문 틈을 타서 사람들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길목을 써서 큰 대로로 빠진다.
그 도중에 내게 따라붙은 미행을 모조리 처리하고, 루이스가 기다리는 호텔 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여, 빨리 돌아왔네."
"네 쪽은 끝났어?"
"짐 자체가 그렇게 많지도 않았잖아. 벌써 다 끝났어."
루이스는 우리가 가져온 모든 짐을 가방에 밀어넣고 차곡차곡 쌓아둔 상태였다. 이 방에 있던 짐은 물론이고 샤를로트와 연금술사의 짐도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나를 제외하면 전원이 여성이다보니까, 내가 연금술사나 샤를로트의 짐에 손을 대는 것보다는 루이스가 건드리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해서 루이스를 여기에 남겨두고 갔던 거다.
있는대로 밀어넣은 짐은 여행 가방 네 개 정도의 분량으로 정리되었다.
각각 두 개씩 들어서 나온 후, 호텔에서 체크아웃했다.
오늘 벌어진 사건을 기점으로 우리가 이 호텔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는 사라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숙박 업소에 신세를 질 생각도 없었다. 아마 어느 곳을 가더라도 위치를 들키게 되겠지. 그럴 바에야 짐을 은밀한 곳에 보관해둔 후 우리만 따로 움직이는 편이 현명하다.
조금 전에 준비해서 가져가지 않고 이제야 챙기고 나온 이유는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샤를로트를 현장에서 떼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네 개의 가방을 들고 다시 한 번 연금술사가 있는 공방에 찾아가서 넘겨버린 후, 우리도 본격적으로 행동에 들어갔다.
해신교의 교회를 잘 감시할 수 있는 위치……, 를 감시할 수 있는 위치를 골라서 선점한 뒤 감시를 시작했다.
최적의 위치를 고르지 않은 이유는 당연히 해신교도 감시를 경계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싸움에서 우리와 해신교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의 숫자는 많지 않다. 따라서 서로의 수를 예측하기도 쉽다.
그 많지 않은 선택지 속에서 상대가 취할 선택지를 예측하고, 그보다 먼저 앞질러서 나가야 한다.
무조건 효율을 쫓아간다고 될 상황이 아니다.
"지금은 밤까지 기다려보자. 호텔에서 그런 사건이 있고 이제 겨우 20분 정도가 지났을 뿐이야. 저쪽에서도 아직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하진 못했겠지."
"마력의 변동수치도 주기적으로 체크해야해. 저쪽에 해신하고 어떤 식으로 접촉하고 있는지는 아직 모르잖아. 마력으로 교신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직접 해신을 만나러 가서 상담하는 걸수도 있으니까."
루이스가 눈을 도끼처럼 뜨고 말했다.
녀석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아직 해신교의 내막에 대해서는 완전히 알지 못한다.
마력을 통해서 교신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고, 직접 찾아가서 물리적으로 접촉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다행히 나와 루이스에겐 온갖 다양한 가능성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나는 천변무궁류의 검사로서 온갖 은밀한 마력의 흐름을 파악해서 붙잡을 수 있고, 루이스는 특급 모험가의 감각으로 매우 넓은 범위를 커버할 수 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감시에 매우 최적화된 조합이었다.
내가 감지할 수 없는 범위는 루이스가 커버할 수 있고, 루이스가 감지하지 못하는 미세한 부분은 내가 커버할 수 있으니까.
아직 많은 것이 불명인 상황이다. 하지만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면, 우리 때문에 해신교도 몸이 많이 달아있는 상태일 거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해신이 강하다고는 해도, 지금의 놈은 아직 완전히 힘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이 크게 벌어지고, 그 결과 대규모 토벌대가 조직된다면 해신 입장에서도 답이 없어진다.
그리고 그건 해신에 빌붙어서 살고 있는 해신교도 마찬가지.
틀림없이, 빠르게 행동에 나설 것이다.
"……."
해신교는 우리 때문에 많이 분주해졌는지, 시도 때도 없이 비슷한 복장의 인물들이 뒷문으로 드나드는 꼴을 볼 수 있었다. 후드를 뒤집어쓴 이들도 많다.
아마 오늘 아침부터 시작된 사건을 정리하고 분석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일 거라고 예상된다.
거기다가 지금은, 우리들의 행방 자체가 묘연한 상황이니까.
어쩌면 우리가 호텔에서 체크아웃한 시점에서 그들은 우리가 이 도시를 떠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마 기차역은 혹시나 우리들이 기차역으로 올 때를 대비해서 해신교가 깔아둔 사람들로 가득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신교는 과연 어떤 식으로 움직이게 될까.
그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해가 저물고 어둠이 깊이 깔린 한밤 중이 되어서였다.
"……움직인다!"
뒷문을 감시하고 있던 루이스가 눈을 날카롭게 떴다. 늦은 밤을 틈타 여러 명의 인간들이 교회의 뒷문으로 나왔다.
제일 앞에는 유독 눈에 띌 정도로 화려한 사제복을 입은 뚱뚱한 남자가 서 있다.
아, 오늘 조사하면서 그림으로 봤던 해신교의 교주다.
그의 주변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뒤로…… 밧줄에 묶인 사람들이 보인다.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다. 연령대도 다양했다. 아이도 어른도 노인도 있다.
마치 종류별로 하나씩 골라서 분류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당황스럽기는 루이스도 마찬가지인지 눈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리고 있다.
"……뭐야, 아무리 봐도 일반인 같은데. 왜 일행에 저런 사람들이 끼어 있지?"
그것도, 저렇게 묶인 상태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