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90화 (90/287)

〈 90화 〉 12. 해신?? (5)

* * *

"……."

주사기를 꺼내서 기절한 남자의 피를 채혈한 뒤, 루이스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연금술사의 조수로 일하다 보면 갑작스럽게 광물을 캐거나 동물의 피를 뽑아서 가져가야 할 때도 생기는데, 그런 일을 자주 겪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지고 다니게 된 물건이다.

가지고 다니는 가방 자체가 크지 않은 편이라 쓰임새는 한정적이지만.

그 후에는 바로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연금술사와 샤를로트가 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잠시 검왕검의 제작공방을 들리기는 했지만,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하지는 않았다.

연금술사가 등을 돌린 채 뭔가 집중을 하고 있었는데, 그 작업을 방해하지 않게 주의한 까닭이었다.

호텔방에 돌아온 후, 공작 키트를 꺼내서 혈액 샘플의 검사를 시작했다.

전문적인 시설이 아니라서 자세한 성분 분석까지는 어렵지만, 손으로 돌려서 쓰는 원심 분리기를 챙겨 왔기 때문에, 혈액과 마약 성분을 분리하는 건 가능할 거다.

사용자의 상태를 보고 마약에 중독되어 있는 상태라는 건 확인했지만, 보다 확실한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근거가 필요하다.

손으로 돌리는 원심 분리기는 그것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였다.

수동 원심 분리기. 말 그대로 사람의 손으로 맷돌의 어처구니처럼 생긴 손잡이를 쥐고, 마구 돌려서 성분을 분리하는 물건이다.

이거 말고도 마력석을 동력으로 써서 초고속으로 돌릴 수 있는 물건이 구비되어 있지만, 그건 지금 연금술사가 검왕검의 제작 공방에 가져가서 쓰고 있다.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건 이게 전부다.

구멍이 여섯 개 뚫린 키트에 혈액과 마약 검사를 위한 용액을 첨부한 후, 손잡이를 손으로 쥐고 온힘을 다해서 돌리기 시작했다.

"팔 아프겠다, 그거."

루이스는 두꺼운 부츠를 벗고 맨발 차림으로 침대에 걸터 앉아 있었다. 수동 원심분리기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손잡이를 마구 돌려대는 내 모습이 심히 안타깝게 보인 모양이다.

"스무 살 넘은 뒤로는 몸에 힘도 많이 붙어서 어느 정도 할 만 해졌지만, 예전에는 진짜 고생도 이런 생고생이 없었지. 아마 내 근육이 팔부터 붙기 시작한 건 이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을 거야."

나는 투명한 눈으로 먼곳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물론 연금술사의 공방에는 언제나 마력으로 돌아가는 원심분리기가 있었지만, 가끔씩 원심분리기를 여러 개 써야 할 때가 발생하면 곤란해질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연금술사가 나를 시켜서 쓰게 했던 게 바로 이 물건이다. 지금이야 근육도 많이 붙고 덩치도 커졌지만, 그 시절의 나는 아직 좀 비리비리 했었거든.

이를 악물고 죽을 상으로 원심분리기를 돌려대곤 했다.

이러다가 부서지진 않을까 싶을 정도로 한참 동안 원심분리기를 돌린 끝에 혈액과 마약 성분의 분리가 완료되었다.

그 다음에는 원심분리기에서 떼어낸 후 마약의 성분 구성 요소를 자세하게 살펴볼 생각이었는데……, 바로 이때 문제가 발생했다.

원심분리 끝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마약 성분이 한 자리에 뭉치면서 눈에 보일 정도로 커지더니, 갑자기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나는 황급히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유리병을 집어들었다. 뚜껑이 열려 있는 입구 부분을 앞으로 향하게 돌려서 일직선으로 날아들던 마약 성분을 받아냈다.

곧바로 뚜껑을 잠궈서 봉인하자, 새하얀 고체 형태로 뭉친 마약 성분은 이도 저도 못하고 유리병의 안쪽을 쉴 세 없이 때려대며 날뛰었다. 하지만 유리병이 부서질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크기가 작고 속도도 부족했기 때문에, 유리병을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루이스가 보기에도 상당히 황당한 광경이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가까이 다가왔다.

"도대체 뭐야? 이거 진짜 마약 맞아? 마약이 자기 혼자서 막 움직이기도 하고 그래?"

"나도 몰라."

유리병 안에 갇힌 마약 성분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쉴 세 없이 날뛰고 있다. 마치 벌레 새끼 같다.

"……그런데 이거, 내가 옆에서 보니까 네 입 안으로 뛰어들려던 거 같던데. 신현이 네가 보기엔 어땠어?"

"내가 보기에도 그런 궤적이었어. 함부로 손으로 만지기도 그래서 유리병을 쓴 거고."

일점에 뭉친 마약 성분은 새하얀 고체였지만, 인간의 피부는 생각보다 유연하기 때문에 손으로 잘못 받았다가 그대로 피부에 스며들 가능성도 있었다.

그 찰나에 손을 쓰지 않고 유리병을 집어든 건 그런 이유였다.

위험한 상황에서, 나의 순간적인 판단은 꽤 잘 맞는 편이다.

"아무래도 이거, 마약이 아니라 기생 생물의 일종 같은데. 체내에 유입되면 마약하고 비슷한 효력을 발휘하는."

중독 증세를 일으키던 남자가 추가로 이걸 요구한 걸 감안하면, 아마 체내에 흡수된 후 대사 과정을 통해서 배출되는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게 평범한 마약이 아니라 마약과 비슷한 성질을 가졌을 뿐인 수상쩍은 물건이라면 마약 특유의 환각이나 중독 증상을 제외하더라도 또 뭔가 특수한 내막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난 유리병을 손으로 쥔 채 루이스를 돌아보았다.

"역시, 수상한 건 해신인가."

"잠깐만. 그게 왜 그렇게 되는데? 너 혼자 결론 내리지 말고, 나한테도 좀 알려줘봐."

따라오는 게 아무래도 버거웠는지 루이스가 볼멘소리를 냈다. 난 손에 쥔 유리병을 가볍게 흔들면서 대답했다.

"여기는 바닷가라서 아무래도 농사 짓기 좋은 환경은 아니잖아. 그렇다는 건 마약이 유통된다고 해도 여기에서 직접 마약 원료가 되는 식물을 키워서 재배했을 가능성은 아무래도 낮지."

난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면서 설명했다. 루이스는 생각이 조금 굳어 있을 뿐,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라서 설명만 제대로 해줘도 쉬이 알아듣는 기색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다른 곳에서 재배한 마약을 받아서 쓰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 경우 직접 재배해서 마약을 유통하는 것과 비교해서 상당한 양의 초기비용이 들고, 원금을 회수하기까지의 시간도 상당히 길어져."

"……흐음."

루이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지금 해신교의 교세를 보면 돈이 부족해서 허덕이는 것 같진 않잖아."

"그건 그렇지. 근데 그건 따로 스폰서가 붙어 있어서 그런 걸수도 있지 않나?"

스폰서가 돈을 잔뜩 꽂아줘서, 지금 당장은 교세가 안정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 루이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 가능성을 부정했다.

"루이스. 보통 종교 측에서 스폰서에게 돈을 받을 때, 어떤 식으로 받는지 알고 있어?"

"음, 어두울 때 몰래 박스에 돈을 채워서 넘겨주나?"

루이스가 든 예시가 절묘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나올 뻔한 웃음을 참으면서 대답했다.

"그런 경우가 없진 않겠지만 보통은 기부금을 통해서 돈을 넘겨주지."

"아."

기부금의 형태로 종교 단체에 돈을 지원하고, 그것을 통해서 탈세를 저지르는 범죄자들.

루이스에게도 비교적 익숙한 예시일 것이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해신교가 기부를 받았다는 기록이 많지 않아. 그마저도 대부분 소액 규모. 해신교라는 거대한 덩치를 이끌고 나가기에는 액수가 많이 적지."

"그러니까 스폰서의 도움을 받고 있을 가능성도 제외 했다 이거지? 이제야 이해했어."

"그런 식으로 하나씩 제외해나가다보면, 이 마약의 수급에도 해신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아무래도 제일 높아."

"그래서 나온 말이, 해신이 수상하다는 거구나."

"그렇지. 해신을 통해서 융통했을 가능성이 있을 거 같아서."

"신 주제에 마약을 유통하다니, 그릇이 조그만걸."

루이스가 살짝 감탄했는지 입을 벌렸다. 하지만 사실, 그다지 대단할 건 없는 결론이었다. 누구나 시간을 들이면 지금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 그것이 조금 빠른 것뿐.

"그럼 이제, 어떻게 해 볼까? 교단에 몰래 숨어들어가서 장부라도 까 볼까?"

"아니, 이걸 반으로 쪼개서 경찰에 가져다주고 수사를 하게 만드는 게 좋을 거 같아. 그걸로 해신교를 흔들어보자. 그럼 해신에게 뭔가 접촉을 취하기 위해서 수를 쓸지도 몰라."

"……여기에 있는 경찰이 해신교하고 한 패거리라서 제대로 우리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루이스 입장에선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하지만 충분히 예상했던 질문이었기 때문에 나도 가벼운 태도로 대답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걸 반으로 쪼개겠다는 거지. 일단 절반을 보내놓고, 경찰의 대응을 보고 우리도 방침을 바꾼다."

난 조용한 목소리로 힘 있게 말했다.

"경찰이 해신교와 관련이 없어서 그쪽을 후벼준다면 우리야 좋은 거고, 경찰이 해신교의 일을 덮어준다고 해도 아마 그쪽에서 무슨 반응이 나올 거야. 나머지 절반은, 일이 다 끝난 후에 해신교를 감옥에 집어넣을 때 증거로 쓴다."

우리가 힘을 쓰면 지금의 해신이라도 쓰러트릴 수 있겠지만, 해신교를 감옥에 집어넣는 건 아무래도 어렵다.

이 마약은 해신교를 감옥에 집어넣을 때 증거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제법인데? 너, 오늘은 좀 평소보다 멋있게 보인다?"

루이스가 히죽 웃으며 나를 다시 봤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럼 평소에는 날 도대체 어떻게 보고 있었다는 거지.

난 평소에도 이 정도는 하잖아.

"일단 각본부터 좀 짜자. 내 생각에 이 중 절반을 경찰에 가져다줄 때는 너하고 내가 같이 가는 편이 좋을 거 같아."

"음음."

루이스가 팔짱을 끼면서 내 말을 경청할 준비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그떡였다.

"선글라스를 벗은 네가 특급 모험가로서의 신분을 강조하면서, 일이 지지부진해질 때는 이 일대를 총괄하는 경찰청에도 갈 수 있다는 식으로 일부러 말을 흘리는 거지."

"그 말을 듣고 경찰이 열심히 일해주면 우리야 좋은 거고, 경찰이 진짜 해신교와 영합했더라도 그 말을 쉽게 흘릴 수는 없을 테니까?"

"그래. 특급 모험가라는 거물이 떴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액션을 유도할 수 있겠지. 그리고 해신교를 압박하면 압박할수록, 그들이 해신과 직접 접촉해서 조력을 구할 가능성이 높아질 거야."

"재미있어 보인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야기는 밤이 깊어질 때까지 이어졌다.

* * *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날.

우리는 날이 밝은 직후 또 다시 관광을 온 젊은 부부인 척 시늉을 하면서 구르제스의 경찰서에 방문했다.

그들은 으레 시골 경찰들이 그러하듯이, 루이스가 신분을 밝히기 전까지는 우리들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한 태도로 우리들의 인내심을 시험에 들게 했다.

하지만 루이스가 신분을 밝힌 그때부터 그들의 태도는 확 달라졌다.

너무나도 속이 뻔히 보이는 태도 변화라서 나도 루이스도 속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우리는 끝까지 서로 팔짱을 낀 상태로 경찰들과의 면담을 끝마쳤다.

이제 뭐가 되더라도 반응이 오겠지.

"그래서 백신현 네가 보기엔 어때?"

"뭐가?"

루이스는 경찰서를 나오면서 내게 질문했다.

내 팔에 팔짱을 낀 매우 인접한 거리에서.

"이 마을의 경찰이 해신교에 잠식되어 있을 가능성."

"일단은 반반이야. 지금까지 나온 정보에 의하면 해신교가 경찰하고 충돌할 만한 일은 전혀 없었던 것 같으니까."

경찰이 해신교의 사정을 봐준 기록이 있다면 그걸 토대로 두 조직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었겠지만, 현 상태에서는 아무래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나로써는 최악의 가능성을 고려하는 것이 우선이다.

"우선은 가장 최악의 가능성. 이곳의 경찰이 해신에게 잠식되어 있을 가능성을 대비해서 준비하는 게 좋겠지."

나는 루이스를 흘끔 돌아보면서 질문했다.

"……수사가 지지부진하면 특급 모험가인 네가 더 상위 기관에 간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흘려뒀잖아. 이 상황에서, 경찰이 해신교하고 영합하고 있다면 어떤 식으로 나올 거 같아?"

"내가 더 상위 기관과 접촉하기 전에 제거하려 들겠지."

"그래, 그러니까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미리 준비를 끝마쳐야 해."

내가 고려하는 최악의 가능성은 꽤 잘 맞아 떨어지는 법이다.

지금까지 내가 상대해온 적들이 결코 호락호락한 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이겠지.

내가 준비하는 만큼, 그들도 열심히 준비해서 나와 맞서 싸웠으니까.

이번에는 어떨까.

"……아, 백신현. 뒤는 돌아보지 말고. 숨을 죽인 채 조용히 걸어."

바로 그때, 루이스가 내게 찰싹 달라붙으면서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바로 눈치챘다.

난 루이스에게 입술을 맞추듯 조용히 얼굴을 가져가면서 질문했다.

"미행이 붙었군?"

"응, 맞아."

이거 참.

난 좀 공백을 두고 나서 액션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해신교의 세력을 조금 얕보고 있었나보다.

우리가 경찰서에서 나오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미행이 붙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이거 생각보다……, 결판이 빠르게 날 거 같은데?"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