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 12. 해신?? (4)
* * *
"크아아아!!"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칼날이 내 머리카락을 몇 가닥 잘라냈다.
조금 전에도 느낀 거지만, 순수한 마력의 용량이나 최대 출력만 따져 보면 어지간한 특급 모험가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검왕이야 규격 외의 존재라고 치더라도, 그 제자까지 이 정도 수준으로 단련되어 있을 줄이야.
나는 이를 드러내며 호전성을 드러냈다. 조금 전에는 루이스가 함께 있어서 쉽게 제압할 수 있었지만, 내가 혼자서 맞서 싸웠다면 그렇게 쉽게 제압하지 못했을 것이다.
꽤, 강하다.
아마 1급 모험가 중에서도 최상위권으로 분류될 정도의 실력이 아닐까.
내가 아는 사람과 비교하면 올리비아와 비슷한 정도일까.
카가가각……, 검과 검이 맞물리면서 불꽃이 튄다.
"기술을 쓰지 않은 힘과 속도만으로도 이 정도의 위력이라니……"
하지만, 올리비아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건 결국 나보다는 약하다는 소리다.
난 이미 올리비아에게 이긴 적이 있었으니까.
캉!!
"크……!!"
마력의 용량과 최대 출력은 특급 모험가에 준하는 수준이지만, 기술적인 요소가 거의 없다시피 해서 그 출력을 효율 좋게 쓰지 못하고 있었다.
바닥을 딛고 있는 다리는 균형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검 속에는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다.
아무리 출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쓰는 사람이 이 모양이라면 돼지 목에 진주다. 힘의 분배가 효율적으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검에 실린 위력도 부족하다.
나의 검은 그런 검에 꺾일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다.
전체적인 능력은 오히려 올리비아보다도 아래. 올리비아와 맞붙었을 때보다도 더 강해진 지금의 내겐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내가 밀리는 건 마력의 출력으로부터 비롯되는 힘과 속도의 차이 뿐.
겨우 그것 뿐이다.
쏟아지는 모든 공격을 받아내고, 받아내고, 쳐낸다. 연속 공격은 끝 없이 이어지지 않는다. 공격 후에 찾아오는 한 순간의 짧은 공백을 노려서 반격에 들어갔다.
캉!! 파비아의 손에서 튕겨 나온 칼이 허공을 반 바퀴 돌았다.
"아쉽다. 기술을 제대로 쓰는 당신하고 한 번 붙어보고 싶었어."
다음 순간, 나는 왼발을 앞으로 뻗어서 파비아의 다리를 걸어서 넘어트린 후, 검을 아래로 돌려서 그대로 찍어 내렸다.
"흑……!"
인간의 이성을 상실한 상태에서도 죽음의 공포는 선명하게 느껴졌는지, 검이 코앞에 드리워진 그 순간 파비아는 딸꾹질 소리를 내며 어깨를 흠칫거렸다.
그 순간에도 기회를 노려서 검을 휘둘렀지만, 이미 파악된 공격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검을 휘두르기 전에 먼저 손목을 발로 밟아서 반격의 여지를 봉했다.
완벽하게 제압한 상태였다.
"……천변무궁류가 아니었어. 그렇지?"
「네, 무척이나 수준 높은 대단한 검술인 건 맞지만, 천변무궁류는 아니었어요. 지금 이 아씨가 쓰고 계신 건 검왕이 천변무궁류보다도 이전에 만들었던 독자적인 검술이겠지요.」
"이성을 아예 상실한 상태라 기술을 보지 못한 게 아무래도 아쉽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행을 해온 가닥이 있기 때문인지, 본능적인 움직임 속에서 이따금씩 번뜩이는 감각이 느껴지는 검극이 느껴졌다.
아마 본능적으로 기술을 펼칠 수 있을 정도로 단련해온 흔적이 아닐까 싶다.
생각하는 것보다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기술을 몸의 골수까지 새겨 놓은 거겠지.
그래서 아쉽다.
모든 능력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이 여자의 실력은 나는 물론이고 루이스와 비교해도 윗줄에 있을 거 같은데, 그 진가를 전혀 보지 못했으니까.
이 여자의 광증이 호전되면 좀 더 제대로 붙어볼 수 있을까.
뭐, 그러니까, 결국 결론을 말하자면.
"내 사저라고 인정해줄 정도는 되네. 기회가 되면 그때는 제대로 한 번 붙어 봅시다."
"……크으?"
파비아의 심기체가 전체적으로 흐트러진 게 눈에 보였다. 전투에 의한 소모, 그리고 죽음의 공포를 앞에 두고, 크게 흔들린 정신.
지금이라면 심령 제압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코앞에 칼을 겨눈 상태로 조용히 집중한다.
보이드처럼 완벽하게 이성을 마비시킬 필요는 없다. 오히려, 광증을 해소시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성을 남겨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제약하는 건 파비아의 신체 능력, 그리고 코어의 기능을 총괄하는 기관이다.
코어의 기능을 제약시켜서 연금술사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수준까지 떨어트린다.
놀란 근육이 경직해서 제대로 된 기능을 쓰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나의 마력으로 코어의 마력을 경직시켜서 마력을 쓰지 못하게 봉했다.
지금처럼 상대방이 정신적으로 크게 충격을 받아서 코어를 지킬 수 없는 상황에서만 쓸 수 있는 요령이다.
"……으? 으……?"
마구잡이로 마력을 퍼다 쓰던 파비아의 얼굴에 당황스런 기색이 역력하다. 갑자기 마력을 의지대로 쓸 수 없게 된 것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날뛰기라도 하면 곤란하기 때문에, 나는 다시 한 번 주먹으로 파비아의 턱을 스치게 해서 그녀의 의식을 끊어 버렸다.
"후."
호흡을 가다듬은 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을 한 번 털어낸 후, 허리춤의 검집으로 다시 복귀.
그러고 나서 문을 열고, 바깥에서 기다리던 연금술사와 시선을 마주쳤다.
"끝났어요."
"잘 했어. 확실히 네가 강해지니까, 나도 뭔가 많이 일이 편해지는걸."
연금술사가 흰 장갑을 잠시 벗고 그 손으로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물론, 서로의 신장 차이가 있는 만큼 내가 그녀의 요망에 맞춰 몸을 낮춘 상태였다.
"괜히 이리저리 움직이면 정신 사나우니까. 난 이쪽에서 이 여자의 광증을 조사해보고 있을게."
하긴, 사람 하나를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고 옮기는 것도 꽤 어려울 거 같다. 특히 여기는 인구수가 적은 어촌이라 우리 같은 외지인이 눈에 띄는 편이고.
"일단 좀 씻겨볼까……. 보이드는 쓰지 않은 거 같지만 욕실 같은 것도 있는 모양이고."
"그놈도 징하네요. 도대체 얼마나 검왕에게 빠져 있는 거지."
다른 누군가에게 그 정도로 열정적으로 빠질 수 있다는 건, 솔직히 내 상식으로는 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그 대상이 보이드 같은 인격 파탄자라면 더더욱.
"아, 그럼 저도 좀 도울게요. ……코어의 기능이 멈춘 지금이라면, 크게 위험한 것도 없을 거 같고."
"마음대로."
샤를로트가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연금술사는 언제나 같은 태도다.
난 루이스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그럼 저희는 해신교에 대해서 좀 알아보죠. 해신하고 붙기 전에 준비해야 하는 것도 있고요."
"하긴, 아무리 너희들이라도 해상전 경험은 거의 없을 테니까."
연금술사가 그 말만 듣고 내 속마음을 파악했다.
내륙 출신인 우리는 바다 위에서 싸울 일이 아무래도 드물다. 그리고 해신의 행동 권역은 그 이름처럼 넓은 바다.
경험 없는 상태로 덤벼들기에는 아무래도 조금 부담스럽다. 아무리 우리가 이길 가능성이 높다고는 해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
"그럼 저희도 움직여볼게요. 무슨 문제 있으면, 호출하세요."
"응. 너희도 무리는 하지 말고."
서로 가볍게 시선을 맞춘 다음, 등을 돌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함께 돌아다니는 편이 좋을까? 아니면 따로?"
거리로 나온 뒤, 루이스가 나를 돌아보며 질문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여기에서는 같이 다니는 편이 좋겠다. 따로 다니면 더 의심 받을 수도 있을 거 같아."
"음, 그런가?"
"여기는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곳이라서 외지인이 들어오면 바로 눈에 띄잖아. 다른 도시라면 너를 미끼로 내 놓고, 내가 음지에서 활동하는 게 맞겠지만, 여기에선 그렇게 하는 것도 좀 어려워 보이고."
애초에 루이스의 질문 자체가 그런 의도였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지만, 워낙 눈에 띄는 미인이기 때문에 루이스는 은밀 행동에 적합하지 않다. 뭘 해도 티가 나는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보통은 눈에 띄는 루이스를 전면에 내세워서 주위의 시선을 끌어들인 다음, 내가 음지에서 활동하는 방식이 주가 된다.
그 정도로 루이스의 존재감은 강하다. 나 한 사람의 존재감 같은 건 가볍게 지워버릴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구르제스는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시골의 어촌.
아무리 루이스가 주목을 끌어들인다고 해도, 나의 존재감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외지인이기 때문에 눈에 띄게 된다.
따로 행동하더라도 크게 이득될 것이 없다.
"듣자하니 해신교는 외지인에게도 적극적으로 포교를 하는 모양이더라고. 관광을 온 젊은 부부처럼 연기 하면서, 그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오면 조금씩 질문하면서 정보를 빼 보자."
"부부라. 조금 창피하지만 그렇게 할까나."
내가 대략적으로 방침을 정해서 제시하고, 루이스가 받아들인다. 이것이 우리의 기본 패턴이다. 루이스도 임기응변은 좋은 편이지만, 머리 쓰는 건 내쪽이 좀 더 나으니까.
루이스는 납득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 후, 가볍게 내 손목을 쥐고 끌고 가기 시작했다. 이 정도 스킨십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이다. 뭐, 함께 지내온 기간이 있으니까.
일부러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를 왔다 갔다 하면서 저쪽에서 미끼를 물기까지 기다렸다. 물론 많다고 해봐야 시골 기준이지만, 여기에서는 그나마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거리다.
당연하다는 듯이 포교하러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흘러가듯이 질문하면서, 해신교의 대략적인 상황을 알아냈다.
그러기를 약 세 시간. 우리는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들어와서, 지금껏 알아낸 정보를 하나씩 정리하고 있었다.
"……네가 보기엔 어때?"
골목길의 벽에 등을 기댄 루이스가 나를 슬며시 돌아보며 질문했다.
"음, 교회가 세워진 기간이나 포교의 규모. 그리고 지금까지 해온 활동을 종합하면 많이 수상하지."
"신현이 네가 보기에도 좀 비정상적으로 재정적 규모가 크지? 왜 그런 걸까?"
"스폰서가 있거나, 돈세탁을 위한 창구로 쓰고 있거나."
"돈세탁?"
"아, 여기에서는 안 쓰는 용언가. 쉽게 말하면, 불법 활동 등으로 획득한 자금을 정상적으로 획득한 것처럼 출처를 속이는 걸 말해."
"아, 뭔 소린지 알 거 같아."
말을 하니까 알아듣는 걸 보면, 그런 개념 자체가 없는 건 아닌데, 다른 표현으로 쓰이고 있는 모양이다. 나중에 알아둬야지.
종교는 먼 고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애용되어온 돈 세탁의 메카다.
하물며 해신 같은 존재가 뒷배로 있는 게 해신교라면 무슨 더러운 짓을 저지르고 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진짜로 그렇다 치면, 이건 우리가 나서야 하는 일이 아니라 국세청이 나서야 하는 거 아냐?"
"뭐, 선량한 시민의 입장에서 신고하는 건 전혀 문제가 없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자금을 충당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내 말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루이스가 내 팔을 잡아당겨서 찰싹 붙게 만들었다. 몸통과 다리에 이것저것 많은 것이 스친다.
가까이 붙은 루이스가 조용히 속삭였다.
"잠깐만. 온 거 같아."
"……아, 그래."
지금,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던 골목길은 보통 골목길이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은 단 한 번도 들어갈 일이 없는, 아주 깊고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는 길이다.
우리가 이런 곳에 서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라면 그에 걸맞는 오염도가 있어야 정상인데, 이곳은 매우 은밀한 길목이면서도 바닥이 상당히 깔끔했다.
최근까지도 사람들이 지나다녔다는 뜻이었다.
이미 해신교를 의심하고 있던 우리가 이런 수상한 골목길을 그냥 보고 넘길 리가 없었고, 이 길목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이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골목길 너머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선 세 명의 인간들 발견했다. 세 사람 중 둘은 해신교의 로브를 머리에 쓰고 있었고, 나머지 한 사람은 노숙자 같은 행색이었다.
"도, 돈은 다음에, 다음에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
뭔가를 거래하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된 모양이다. 몇 번의 실랑이가 오간 끝에, 쾡한 인상의 남자가 해신교단의 발차기에 얻어맞아서 쓰러졌다.
그런데 어째 마력으로 강화된 시야에 비치는 그 남자의 눈빛이 이상하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붉게 충혈된 눈동자.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 하겠지만, 저 증상은 혹시……
"루이스."
"알았어."
대화가 파토나고, 해신교단이 등을 돌려서 그 자리를 떴지만 남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망연자실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이것을 기회라고 생각한 나는 곧바로 루이스에게 부탁해서 그 남자를 제압했다.
뒷목을 수도로 세게 얻어맞은 그는 자신이 기절했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한 채 눈이 뒤집어졌다.
쓰러진 남자가 머리를 다치지 않게 받친 후, 기절한 그의 눈꺼풀을 열어서 동공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 다음에는 머리카락의 상태나 피부의 푸석푸석함의 정도. 혈관이 도드라진 정도를 측정했다.
옆에서 그 경과를 지켜보던 루이스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있잖아, 백신현. 난 지금 좀 헷갈려서 그러는데, 이거 혹시 그거 아냐?"
"맞아, 마약이야."
틀림없다.
이게 해신교의 자금줄인 모양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