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 12. 해신?? (2)
* * *
해신??은 검왕의 시대에 이 일대의 바다를 주름 잡고 있었던 아주 거대한 괴물이었다.
형태는 거대한 물뱀이고 기호 식품은 인간.
제물의 대가로 이 일대의 어획량을 늘려주는 축복을 내리는, 그야말로 바다의 신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모종의 건으로 해신은 검왕과 충돌을 일으켰고, 그 전투 끝에 쓰러져서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검왕의 비기가 목에 꽂혀서 머리와 몸통이 영원히 이별하게 되었다고.
쓰러진 남자에게서 들은 건 대충 이 정도였다.
그리고 그는, 검왕에게 쓰러졌던 해신이 다시 부활해서 이 마을의 바다 깊은 곳에 숨을 죽이고 있다고 말한다.
완벽한 힘을 되찾을 때까지.
"……그, 그래서 저희는 해신이 완전히 눈을 뜨기 전에 쓰러트리기 위해서 힘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보이드 선생님에게 협력을 구하거나, 특급 모험가를 고용하는 등의……"
쓰러진 남자가 우리들의 눈치를 살폈다.
특급 모험가라는 단어에 루이스가 묘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루이스는 조금 심하게 미인이다. 가만히 있어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당기는 힘이 있었기 때문에 쓰러진 이들도 나 이상으로 루이스를 신경 쓰고 있었다.
듣자하니 칼도 쓰지 않고 다 쓰러트린 모양이고.
도대체 뭣하는 사람인가 싶을 거다.
난 살짝 입술을 검지로 문지른 뒤, 시선을 아래로 낮추고 질문했다.
"해신이라는 건 구체적으로 얼마나 강하죠? 지금 상황은?"
눈에 살짝 힘을 주고 압박을 가했다. 그것만으로도 눈앞의 남자는 물속에 잠긴 것처럼 얼굴이 파랗게 질리면서 꺽꺽 거렸다.
"전성기와 비교하면 터무니 없을 정도로 약해진 상태이지만, 현 시점에서도 아마 어지간한 특급 재해 수준의 힘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이미 이 어촌의 유력자를 하수인으로 삼아서 영향력을 높이고 있는 걸로 파악 중이고요."
"요컨데, 여기에서 성행하고 있는 해신교가 평범한 사이비 종교는 아니라는 소리네요. 해신하고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거니까."
"그, 그렇습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선 사이비는 아닌가.
신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으면서 신의 이름으로 온갖 헛짓거리를 하는 놈들과 비교하면 오히려 이쪽이 진짜인 걸지도 모르겠다.
실제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와의 연결을 통해, 영향력을 뻗치고 있으니까.
"해신이 부활한 이유는 불명이고요. 그렇죠?"
"그, 그렇습니다. 검왕의 수기나 이 어촌의 기록을 살펴봐도 해신이 검왕에게 패배한 건 명백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수백 년이 흐른 시대에 난데없이 해신이 다시 나타났다는 게……"
"해신이 검왕에게 깨지기 전에 새끼를 쳤을 가능성도 있고, 그게 아니면 여타 다른 특급 재해처럼 일정 주기를 두고 새로 나타나는 부류일 수도 있겠죠."
가끔씩, 그런 놈들이 있다.
부활할 여지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철저하게, 잘근잘근 찢어 놓아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알아서 다시 나타나는 놈들이.
내가 알고 있는 괴물 중에서는 나쟈가 그런 분류에 해당된다.
아무리 부수고, 아무리 죽여도 소용이 없다.
대기 중의 마력이 모여서 핵이 탄생하고, 그 핵을 중심으로 모여든 마력이 거대한 육체를 만든다.
그것도 꼭 정해진 지역이나 구역에서만.
피와 유전자를 통해서 이어지는 몬스터의 경우 아예 씨를 말려버리는 방식으로 위험을 제거할 수 있지만, 그런 계열의 몬스터는 씨를 말리는 방법도 안 통한다. 애초에 씨를 말려야 할 정도로 많은 개체가 나타나지도 않고.
온갖 몬스터들 중에서도 특히 수준이 높은 최상위 단계의 몬스터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마치, 거대한 의지가 간섭하는 것처럼.
몬스터가 자연 발생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위적인 의지에 의해서 탄생한 존재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이기도 하고.
해신 역시 그런 부류일지도 모르겠다.
부활 주기가 몇 년 단위였던 나쟈와 비교했을 때, 장장 200년 가까이 이전의 힘을 회복하지 못하고 수면 아래에서 때를 기다리는 해신의 '격'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검왕과 격전을 벌였다는 표현을 고려하면, 최고 전성기의 해신은 현대의 특급 모험가조차 감당하지 못할 수준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전력을 데리고 와서 해신과 한바탕 해볼 생각이셨다. 대충 이 정돈가요?"
"그렇습니다……. 해신이 있는 현재 위치가 지나치게 깊은 심연이다보니 저희도 설득할 수 있는 증거가 너무 부족해서 군대를 끌어들이는 건 불가능했고, 어쩔 수 없이 저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해결을 보려고 하다 보니까……."
눈앞의 남자가 거듭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저희가 알고 있는 범주 내에서 최고의 실력자셨던 보이드 선생님의 조력을 받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이드 선생님께서 체포를 당하셨다니……. 누, 누명이라도 쓰신 건……?"
"그런 건 아니에요. 살인미수에 기물파손. 진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감방에 갇히게 된 거죠."
"그럴수가……"
남자의 표정이 단숨에 어두워졌다. 보이드의 실력은 특급 모험가를 기준으로 잡아도 중상위권에는 넉넉하게 들어갈 수 있는 수준. 그가 전력외로 빠져버렸으니, 아마 어마어마하게 암담한 심정이겠지.
좌절한 남자를 내버려둔 채, 나는 루이스를 돌아보면서 질문했다.
"네 생각은 어때?"
"글쎄? 잘 해봐야 특급 재해 수준이라면 꼭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을 거 같고."
루이스가 눈을 흘겼다. 선글라스에 가려져서 가까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볼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변화였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는 살기에 압박 당한 것처럼 움찔거렸다.
"그리고 난 솔직히 이 사람들 밉상이야. 도와주는 꼴이 되는 건 마음에 안 들어."
"내 생각도 비슷하긴 한데."
특급 모험가도 고용할 생각이라고 하니까, 우리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크게 문제는 없을 거 같다.
안 그래도 지금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 상황인데.
하지만, 바로 그때 벌어진 일이었다.
허리춤의 검이 낮게 진동하면서 여성의 음색을 냈다.
「검주. 그리고 루이스 아씨. 제가 한 마디 드리고 싶은 말이 있는데, 괜찮을까요?」
갑자기 들려온, 현실감 짙은 목소리. 나와 루이스도 놀랐지만, 더 놀란 것은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남자였다.
도대체 어디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건가, 의문 섞인 시선으로 눈을 깜박거린다.
깜짝 놀란 내가 백신아의 말을 멈추려고 한 바로 그때, 샤를로트가 갑자기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났다. 그리고 나와 루이스의 사이에 서서, 복화술을 하듯 입술을 벙긋거렸다.
"아, 제가 한 말이에요. 검주, 검주. 자, 그렇죠?"
"아……."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서 보면 어색하기 그지없는 행동이었지만, 눈앞의 남자는 설마 검이 말을 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지 어영부영 납득하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샤를로트가 몸을 반쯤 이쪽으로 돌려서 옆얼굴을 보였다.
입술을 벙긋거리면서, 다음 말을 기다린다.
「…….」
백신아도 호흡을 맞출 생각이 들었는지, 샤를로트가 따라올 수 있을 정도로 말하는 속도를 크게 떨어트렸다.
「전, 해신하고 싸워보고 싶어요.」
"어째서? 또 호승심이야?"
루이스가 시선을 대각선 아래로 떨어트렸다. 백신아를 보고 하는 말이었지만, 현재 그 위치에는 나와 루이스의 사이에 끼인 샤를로트의 머리통이 있다. 샤를로트를 보고 하는 말처럼 들렸을 것이다.
샤를로트가 열심히 백신아의 말에 맞춰 입술을 벙긋거렸다.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럼 뭐지?"
「굳이 말하자면……, 실리를 취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실리라."
「나쟈가 그러했듯, 해신에게도 핵이 있어요. 그리고 이 핵은 독기가 매우 강해서 사람이 쓰기에는 하자가 큰 물건이지만…… 무기의 소재로는 아주 딱이거든요.」
백신아가 설명을 시작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샤를로트가 검지를 들어서 주변의 주목을 끌어모았다. 흡사 설명이라도 할 것 같은 움직임에 시선이 모인다.
「루이스 아씨에게 필요한 검을 쓰는 데 아주 요긴하게 쓰일 수 있을 거에요. 특수 합금을 재련할 때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겠죠.」
"아하, 과연. 그런 걸로 실리를 취해보자? 그게 다야?"
루이스는 어느 정도 납득한 얼굴이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백신아는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루이스도 그것을 간파하고 가소로운 시선으로 백신아를 바라본다.
물론, 위치 관계 상 루이스가 보고 있는 건 샤를로트의 머리통 부분이다.
「그런 건 아니에요. 이건, 루이스 아씨를 설득하기 위한 '이유'. 그리고 검주에게는 또 다른 이유가 필요하겠죠.」
샤를로트가 황급히 고개를 돌려서 시선을 맞춘다. 그 모습이 매우 재미있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전 지금 해신에 대해서 새로운 정보를 들을 때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슴의 떨림을 느끼고 있습니다.」
두손을 앞으로 모은 샤를로트가 그대로 꼬옥 쥐어서 스스로의 가슴에 갖다붙인다.
뭔 짓인가 싶었는데, 백신아의 말을 듣고 나름대로 적절한 제스쳐를 취해본 것 같다.
「저도 이게 뭔지는 자세히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해신과 제가 직접 부딪침으로써, '뭔가'를 붙잡을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든다는 거에요.」
샤를로트가 시선을 낮게 떨어트렸다.
길게 뻗은 속눈썹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질 것 같다.
「해신과 맞서 싸우는 것으로 잃어버린 저의 기억을 다시 수복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검주와 루이스 아씨에게는 정말로 죄송한 일이지만……, 저도 두 분을 멋대로 위험한 전장에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됐어. 대충 알았으니까."
나는 손을 뻗어서 샤를로트의 입술 앞에 손바닥을 가져갔다. 그만 말해도 된다는 의미였고, 진짜 표적은 백신아였다.
살짝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린 나는 루이스를 돌아보며 질문했다.
"그렇다는데, 넌 어때? 루이스."
"……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쟤가 우리한테 뭔가를 부탁하는 게 되게 드문 일이기도 하고. 나도 쟤한테 받은 빚은 꽤 있으니까. 그다지 상관은 없는데."
"내 생각도 그래. 이 녀석이 어지간하면 이런 말 안 하는데, 힘겹게 용기를 짜내서 이런 말을 했단 말이지. ……그럼, 그 부탁을 들어주는 게 파트너로서 해야 할 마땅한 도리겠지."
「어, 그러니까.」
백신아가 우리 두 사람의 기색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난 웃으며 대답했다.
"네 부탁, 들어주겠다는 소리야. 겨우 그 정도 부탁 가지고 벌벌 떨지 마. 안 어울리니까."
"그러게. 날 압도적으로 후드려 팰 때는 완전 기운이 남아돌던데, 별 이상한 걸 가지고 겁을 집어먹네."
바로 그때, 고개를 조아린 남자의 목에서 헉 하는 소리가 들렸다.
루이스가 후드려 맞았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 것 같다.
난 샤를로트의 머리 위에 손바닥을 얹으며 대답했다. 여기에 있는 건 샤를로트였지만, 내가 진짜로 말을 전하고 싶은 대상은 백신아였다.
"해보자, 해신 토벌."
"……저기, 그건 도대체 무슨……?"
남자는 일련의 대화를 쭉 듣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새총이라도 맞은 얼굴이다.
내가 그의 질문에 대답하려 한 바로 그 순간, 옆에 서 있던 루이스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 순간 검왕회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변했다. 몇 명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어디서 본 거 같은데" 하고 중얼거린다.
그 상태에서, 루이스는 허리춤의 가방에 손을 뻗어서 모험가 자격증을 손에 들었다.
모험가 자격증은 다급한 상황에서도 등급을 파악할 수 있게끔 각 등급 별로 서로 다른 색으로 칠해져 있다.
그리고 루이스의 모험가 자격증은 흰색이었다.
특급 모험가의 상징, 플래티나의 색이다.
"……어, 억. 억, 억, 억……"
대장격의 남자는 이미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그 정도로 놀랐나. 루이스의 실력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은 했어야 맞지 않나.
루이스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여기 있네요, 특급 모험가."
* * *
대략적인 상황이 정리된 후, 루이스가 손가락을 튕겨서 바람을 칼날의 형태로 분사했다. 그것이 검왕회의 팔다리를 구속하고 있던 와이어를 끊었다.
루이스가 구속용으로 쓰는 와이어는 힘으로 잡아당겨도 쉽게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높은 장력을 가지고 있지만, 특급의 출력 앞에선 크게 의미가 없다. 잘못하면 손목이나 발목까지도 날려버릴 것처럼 숭덩숭덩 잘려 나간다.
"어엇……"
검왕회의 대장격으로 나타난 남자는 와이어가 풀어진 이후에도 한동안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아, 괜찮으세요……?"
그 모습을 근처에 있는 샤를로트가 보고 가까이 다가왔다.
"억, 어어어억!"
"……?"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연민에서 시작된 행동이었지만, 정작 그 남자는 샤를로트와 눈이 마주친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마주한 사람처럼 엉덩이를 바닥에 찧더니, 바닥에 엉덩이를 붙인 앉은 뱅이 상태에서 마구 발을 움직이며 뒤로 물러나 버렸다.
상태가 안 좋은 걸까? 샤를로트는 순수한 마음으로 눈을 깜박였지만, 그가 그런 행동을 보이는 이유가 그녀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
알 리가 없었다.
조금 전의 대화에서 단편적인 지식을 습득한 검왕회의 남자가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그의 눈에 비친 샤를로트가 루이스를 압도적으로 후드려 팰 정도의 무력을 지닌 괴물로 보이고 있었다는 것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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