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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86화 (86/287)

〈 86화 〉 12. 해신??

* * *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대답이 없는 게 수상하게 느껴졌는지, 바깥에서 찾아온 검왕회는 문을 열고 들어올 생각인 것 같았다.

"……."

루이스는 잠시 고민한 후, 침묵으로 일관하기로 했다. 검에서 손도 뗐다.

'내 성질머리대로라면 먼저 문을 박차고 나가서 다 때려잡고 봤겠지만, 애 정서 교육에 안 좋겠지? 나처럼 더러운 성격이 되면 곤란하니까.'

백신현이 보면 기겁하다 못해 뒤로 넘어갈 지경이겠지만, 사실 루이스도 자신의 성격이 더러운 줄은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런 성격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저 이 지저분한 모험가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성격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지.

고분고분하면 얕보이고, 굽히면 얕보이고, 양보하면 얕보이는 더러운 세계다. 힘과 폭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어느 정도의 성깔은 필수 요소였다.

지금, 루이스가 성격을 죽인 건 모두 여기에 있는 샤를로트 때문이었다. 마치, 자식에게 못된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모의 마음이 루이스의 내면에 살짝 피어났다.

문이 바깥에서 열렸다. 샤를로트를 등뒤로 물려놓은 다음, 루이스는 검을 쓰지 않는 상태에서 최대한 경계심을 발휘했다.

느껴지는 기운만 살펴보면 모두 별볼 일 없는 놈들이었지만, 실제로는 또 어떨지 모르니까.

겉으로 보이는 기운만으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루이스는 백신현을 통해서 알고 있다.

"……역시 보이드 선생님이 아니었어, 누구냐!!"

하지만 그들은 보이드가 이곳에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문이 열린 순간 나타난 여섯 명의 검사들이 제각각 검을 뽑아들어서 루이스와 샤를로트의 목에 겨누었다.

금발에 가려진 루이스의 이마에서 힘줄이 한 순간 빠직, 하고 올라왔지만 루이스는 최대한 진정하기 위해서 부단히도 애를 썼다.

곰곰히 대응 방법을 고민하던 루이스는 문득 백신현의 평소 언동을 떠올리고, 그대로 실행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렇게 함부로 칼을 겨눠도 되는 건가요? 저희가 보이드가 보낸 사자일지도 모르는데?"

루이스는 존댓말인데도 왠지 열 받는 건방진 목소리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냈다.

백신현 자신은 잘 모르는 모양이지만, 녀석이 존댓말을 쓸 때만 언제나 이런 기분 나쁜 목소리가 나온다.

예외는 연금술사에게 존댓말을 쓸 때 뿐이다.

"저흴 잘못 건드렸다가 보이드의 기분이라도 상하면, 그때는 어쩌시려고 이러시는지 잘 모르겠네요."

"……."

"3개월 동안 갑자기 보이드가 소식도 없이 사라져서 많이 조급한 상황이 아니신가요? 아니면 말구요."

루이스는 자세한 전후 사정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습득한 정보를 토대로 가장 그럴듯한 진실을 버무려서 입에 담았더니, 눈앞의 표정들이 시시각각 틀어져간다.

보이드가 소식도 없이 사라졌다는 부분은 정확한 사실이었다. 보이드는 그때부터 백신현과 백신아에게 패배한 뒤, 감옥에 갇혀 있었으니까.

200여년 전의 시대의 생존자인 보이드는 여기에 있는 이들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정보원이었을 것이다.

보이드가 자취를 감춘 이후 그들이 많이 조급한 상태였다는 건 예상하기 쉬웠다.

"……저, 정말로? 정말 보이드 선생님이 보내신……"

"아뇨, 이건 거짓말."

"응?"

루이스가 배시시 웃으면서 자세를 갑자기 낮췄다. 그들은 놀란 나머지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설령 놀라지 않았더라도 대응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특급은 기존의 기준으로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특급이다. 작정하고 움직이면 따라잡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갑자기 몸을 낮춘 루이스가 오른다리를 길게 뻗어서 제자리를 한 바퀴 돌았다. 주변 다섯 명의 몸이 한 순간에 밸런스를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다리에 걸린 건 샤를로트도 마찬가지였지만 루이스는 샤를로트가 넘어지기 전에 뒷덜미를 낚아채서 들어올린 뒤, 그 자리에서 폴짝 뛰어올랐다.

아무도 그 움직임을 쫓아오지 못했다.

검왕검의 제작 공방은 그다지 넓지 않은 편이었지만, 루이스는 제작 공방의 벽이나 천장까지도 제 집처럼 돌아다니며 자유로운 궤적을 그렸다.

순식간에 포위망에서 벗어난 루이스는 공방의 구석진 자리에 샤를로트를 앉혀놓고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기에서 잠시만 기다려. 금방 끝낼게."

"아, 응."

단적으로 말해서, 루이스는 조금 전의 그 움직임만으로 이 자리에 선 전원의 머리를 터트릴 수도 있었다.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순전히 샤를로트의 교육에 좋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루이스에게 있어 이들의 가치는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샤를로트로부터 돌아서면서 루이스가 입맛을 다셨다.

"에이, 백신현처럼은 안 되네. 역시 입을 터는 건 내 스타일이 아냐. 난, 주먹질로 먹고 사는 놈이니까."

살짝 고개를 갸웃거린 후, 루이스는 검도 뽑지 않고 여섯 명의 검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승부는 몇 초도 이뤄지지 못했다. 애초에 수준 자체가 너무 다르다.

루이스는 이 좁은 제작 공방의 벽이나 천장 따위를 써서 자유롭게 움직이는데 비해, 그들은 벽에 쉴 세 없이 검을 부딪치거나 같은 진영끼리 발이 꼬이면서 최소한의 연계조차 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의 연계가 제대로 되었더라도 루이스의 피부 한 장 깎아내지 못했겠지만, 최소한 루이스의 실소 섞인 웃음 소리를 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뭐, 난 평화로운 자세로 대화를 요구했는데 저쪽에서 먼저 칼을 겨눈 거니까. 정당방위라고 봐도 무방하지."

특급 모험가는 단순히 힘이 세고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도달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일반적인 모험가와는 명백히 구분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과 속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힘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다룰 수 있는 이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들의 진정한 능력은 일반적인 모험가와 비교해서 자릿수가 두 개 정도는 다른 어마어마한 출력을 다루면서도 그 출력을 적절하고 능숙하게 분배해서 완벽하게 사용하는 '실력'에 있다.

그 어떤 필드에서도 그 힘은 죽지 않는다. 거동이 불편한 좁은 공간에서도 그들은 벽과 천장을 자유롭게 사용해나가면서 환경의 힘을 120% 끌어낸다.

여기에 있는 이들은 전원 모두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진 검사였지만, 특급의 영역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했다.

검도 쓰지 않는 루이스의 주먹이 1초에도 수십 번씩 급소에 꽂힌다.

"자, 이걸로 끝. 아, 너무 일찍 끝나서 오히려 진이 빠지네. 나중에 신현이랑 한바탕 해야겠다."

루이스가 바닥에 춤추듯 내려선 그 순간 그 자리에 검을 들고 굳어 있던 전원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흡사 마법 같은 솜씨였지만, 실상은 어마어마한 속도에 의한 연속 공격에 불과했다.

"……루이스 씨도 참."

그리고 샤를로트는 루이스가 놓아준 특등석에서 그 모든 수순을 지켜보고 있었다.

샤를로트는 쓴웃음을 지은 채다. 루이스와 오래 교류한 건 아니지만, 그 길지 않은 교류 속에서도 루이스의 성격은 확실하게 드러났다.

'확실히 신현 씨하고 비교하면, 좀 무식……? 아, 아니, 야성미가 있다고 해야 하나……? 뭔가 정반대라서, 오히려 사이가 좋은 듯한 느낌.'

루이스의 행동거지 하나 하나가 샤를로트에게 있어서 뼈가 되고 살이 될 수 있는 좋은 경험이기 때문에, 샤를로트는 최대한 눈을 부릅뜬 채 루이스의 전투 기술을 최대한 관찰하려고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가장 큰 전제로서, 루이스의 속도는 빨라도 너무 빠르다. 눈으로 쫓는 것만 해도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신현 씨도 되게 대단한 거 같아. 눈으로 쫓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 게 특급인데, 그런 특급하고 잠시나마 검을 섞을 수 있을 정도이니까.'

듣기로는, 백신현은 선천적으로 마력을 코어에 축적할 수 없는 체질이라 얼마 전까지는 마력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수준이었다고 했다.

실제로 백신현은 10년 가까이 검을 수행해온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전체적으로 마력의 수준이 미묘했다. 말 그래도 일반인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었는데, 그 원인이 바로 그 체질에 있었다.

그 체질을 고친 것도 비교적 최근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그런 괴리가 발생한다.

'……하지만 그런 수준으로 온갖 위험한 싸움에 뛰어드는 걸 보면, 신현 씨도 만만찮게 무모한 느낌이고…… 결과적으로는 서로 많이 닮은 건가……?'

샤를로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등을 돌리곤 선 루이스의 뒷모습에, 또 다른 누군가의 뒷모습이 겹쳐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 *

우선적으로 필요한 장서를 먼저 구분해서 가방에 담은 뒤, 다시 계단 위로 올라왔다.

연금술사는 어느 순간부터 걷는 게 번거로워졌는지 마력으로 몸을 띄워서 두둥실 이동하고 있었다. 저러니까 몸이 약하지. 기회가 되면 억지로라도 운동을 좀 시켜야 할 거 같다.

나중에는 그마저도 귀찮아져서 그냥 내 팔에 데롱데롱 매달려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진짜 이 사람도 보통이 아니다.

계단의 끝이 보인다. 성큼 올라가서 넘어왔는데……, 또 모르는 사람들이 와 있었다.

루이스에게 당한 건지 다들 밧줄 같은 걸로 손발이 결박돼서 꼼짝도 못하는 상황이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있던 샤를로트가 우리를 먼저 발견했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아"하고 소리를 내면서 도도도 달려온다.

"신현 씨, 돌아왔어?"

"돌아왔는…… 데, 저것들은 뭐냐? 보이드 친구들?"

"비슷해. 보이드 친구들."

쓰러진 이들을 결박하고 있던 루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왕회 사람들인데, 아무래도 보이드하고 교류가 있었던 모양이야. 여기에 보이드 말고 다른 사람들이 있는 걸 보고 수상하게 여겨서, 공격해온 모양인데."

"아, 상대를 잘못 골랐구만."

난 얼추 상황을 파악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동정심도 든다. 뻗대더라도 상대를 잘 보고 뻗댔어야지.

아무리 루이스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지만, 특급 모험가도 못 알아보고 시비를 걸다니.

이건 뭐 어이가 없어서.

"……크. 당신들은 도대체 뭡니까……. 어떻게 숨겨져 있었을 이 공간을 발견하고, 그것도 모자라……"

쓰러져 있던 이들 중, 대장격으로 보이는 남자가 책장 사이의 통로를 보고 말을 흐렸다.

보이드는 물론이고 여기에 있는 사람들도 저 통로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긴, 천변무궁류를 일정 수준 익히지 않으면 애초에 찾을 수도 없게 되어 있으니까.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대면서 거짓부렁을 내뱉었다.

"음, 뭐, 일단 보이드의 지인이라고 해 둘까요? 여기에 올 수 있었던 것도 보이드에게 위치를 들었기 때문이니까."

"야, 그 래퍼토리 내가 썼어."

"뭐야, 네가 벌써 썼냐?"

루이스는 팔짱을 낀 채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그런가. 루이스가 먼저 썼으면, 어쩔 수 없지.

"아, 보이드의 지인인 건 거짓말입니다. 오히려 보이드하곤 숙적에 가까워요. 실제로 보이드가 여기에 못 오고 있는 이유도, 저희한테 지고 감옥에 끌려가서 그런 거든요."

"……뭐라고."

남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동공을 떨고 있었지만, 이 건에 한해서 난 거짓말을 할 생각이 없다. 전부 사실이니까.

나는 의자를 끌고 와서 그들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은 뒤, 그들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는 시선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보이드에게 하실 말이 있다면 저한테 말해보세요. 일단 들어보고, 괜찮아 보이면 제가 전달해줄게요. 보이드에게 볼일이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찾아오신 거 아닙니까?"

"……."

쓰러진 검왕회의 남자는 한참 동안 침묵한 끝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해신??."

또 다시, 그 이름이 나왔다.

"보이드 선생님에게 해신을 쓰러트려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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