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11. 구르제스의 그림자 (3)
* * *
그 수상한 기척은 저 멀리에 보이는 지평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기척을 느낄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조금 지나칠 정도로 먼 거리이니까.
그런데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건 그 정도로 그 기척의 존재감이 강렬했다는 뜻이다.
특급 모험가도 감지할 수 없었던, 매우 특이한 형질의 파장이 저 멀리에서 느껴졌다.
도대체 뭐였을까? 처음 느껴보는 형질의 파장이었는데.
『저도요, 저도 이런 건 처음이에요.』
이제야 좀 침착함을 되찾았는지, 백신아가 나만 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의지를 전달했다.
친한 사람들하고 있을 때면 몰라도, 근처에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는 조심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아니네요. 좀 꺼림찍해요.』
'저쪽 방향이면…… 구르제스가 있는 방향이야. 구르제스하고 관계가 있는 건가?'
지금 우리가 있는 여기가 바다를 구경거리로 삼는 관광지라고 치면, 구르제스는 완벽한 어촌이다. 같은 해안가 도시라고 해도 차이가 크다.
샤를로트가 이 부근에 살았을 적에만 해도 전혀 보지 못했던 수상한 신흥 종교에, 바다에서 느껴지는 이 꺼림찍한 감각…….
뒷목이 살짝 뻐근하다. 아무튼,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현지인들의 괴상한 짓거리는 1분 가까이 계속되었다.
다들 자리에서 무릎을 털고 일어난 후, 다시금 자신들의 가야할 길을 알아서 찾아가기 시작했다.
"……신흥 종교인가?"
"아마도요."
일련의 행위가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서 지켜보던 연금술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샤를로트도 그렇고 연금술사도 잘 모르는 걸 보면 최근 사이에 벌어진 일인 건 틀림없는 것 같다.
"우리가 해야 할 일하고는 그다지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괜히 흥미가 동하는걸. 너무 줏대 없어 보이려나?"
연금술사는 이곳의 풍토에 관심이 생긴 얼굴이다. 하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좀 성장을 했는지, 호기심이 든다고 해서 무작정 관심을 보이는 것도 좋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는 눈치.
나는 잠시 고민한 후, 내가 느낀 것에 대해서 다른 세 사람에게 공유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고?"
"네, 저만 느낀 게 아니라. 이 녀석도 느낀 거 같더라고요."
허리춤의 백신아를 가리킨다. 연금술사와 루이스는 물론, 백신아의 존재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고 있던 샤를로트도 시선을 검왕검으로 돌린다.
루이스가 꺼림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너만 그러면 모를까. 신아까지 그러니까 영 불안한데."
"물론 이건 나와 신아가 다른 사람에 비해서 특히 다양한 성질의 마력을 감지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 이거 자체로 뭔가 문제가 있다고 보긴 어렵지."
사람의 눈으로 비유하면 평범한 사람들은 볼 수 없는 자외선이나 적외선까지 보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천변무궁류의 기본구조 상 평범한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것을 느끼는 능력이 필요하니까.
그리고 적외선이나 자외선에 변화가 발생한다고 해서 그게 꼭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그 적외선과 자외선이 무엇을 목적으로 변화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한 것처럼, 이것도 마찬가지다.
무작정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고 해서 그것을 무조곤 네거티브한 방향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평소에는 이런 느낌을 거의 받지 못해서 조금 놀란 건 사실이지만.
"그리고 우리 해야 할 일도 바쁜데, 생판 모르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일일이 조사하기도 좀 그렇잖아. 하더라도 우리 볼일은 다 마치고 하든가 해야지."
연금술사가 이 일에 흥미를 보인 것처럼, 나도 사실 이 지방의 특이한 현상에 대해서는 꽤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재미있어 보이니까, 조사도 한 번 해보고 싶고.
하지만 그 전에 끝내둘 건 다 끝내놓고 해야지.
호기심이라는 건 양날의 검이다.
하루하루 조용히 흘러가던 일상을 무너트리는 변화는, 보통 호기심으로부터 발생한 지금까지와 다른 행동에서 시작된다.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서 돌아다닌 끝에 얻은 것도 많지만, 호기심 때문에 그만큼 고생한 기억도 많다.
호기심을 해소하더라도, 일단 해야 하는 일은 모두 다 끝낸 후에 시작하고 싶었다.
"그럼, 그렇게 할까. 사실 나도 최근 들어 고생한 일이 너무 많아서 예전만한 의욕이 잘 나거든."
연금술사도 나의 방침에 크게 불만은 없는 얼굴이다. 나도 그렇지만, 연금술사도 최근 몇 달 동안 진짜 심하게 고생했다.
그런 고생을 하고도 달라진 게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은 신아 이외에는 그다지 관심도 없고. 신기하다고 해도 그것만큼 신기하지도 않을 테니까."
연금술사는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잡아두는 성격이었다.
그리고 연금술사는 나와 백신아만이 감지했던 수상한 기척보다도, 그 수상한 기척을 감지해낸 백신아의 능력이 더 호기심을 자극하는 존재였다.
작은 호기심은 큰 호기심에 눌려서 사라진다.
"식사나 하러 갈까."
"아, 조금 전의 그거 말입니까? 작년부터 부쩍 세를 늘리기 시작한 해신??을 모시는 종교입니다."
"해신이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좀 찜찜했기에, 나는 눈앞의 호기심이나 조금 해결해볼 심산으로 식당 주인에게 조금 전의 현상에 대해서 설명을 부탁했다.
저녁 시간을 지나친 조금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식당에는 우리 이외의 손님이 없었다. 식당 주인은 꽤 경박한 성격인지 내 질문에 손을 비비면서 대답해주었다.
"저는 잘 몰랐는데, 원래 이 부근 지방에서 활동하던 소규모 종교 단체였던 거 같더라구요. 역사로는 한 200년 정도 됐다든가? 아, 해신이라는 건 바다를 잔잔하게 해주고 물고기가 잘 잡히게 도와주는 신이라고 하더군요."
생각했던 것과 비교해서 크게 특이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원래 고전 신앙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현상과 깊이 밀접해있는 요소이기도 하고.
쉽게 말하면 눈에 띄는 개성이 없다고 해야 할까.
이 정도 소규모 종교는 어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에 이쪽에 익숙한 연금술사와 루이스는 벌써 흥미를 잃은 얼굴이었다.
나도 살짝 졸음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꾹 참아 넘기면서 질문을 계속했다.
"그래서, 여기 사람들도 그런 걸 믿고 있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니고요.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댄데."
식당 주인은 요란하게 부정했다.
지금 시대라.
과학이 만연한 세상에서도 사이비에 빠지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마음에는 와닿지 않는 표현이었다.
"말이 종교 단체지, 사실상 봉사 활동 단체나 마찬가지거든요. 현지에서 어부들의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힘든 사람들은 데려와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해신이 진짜로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은 사람들이에요."
"교단은 여기에 있는 겁니까?"
"아니요……. 그게 참 신기한 게, 도시 크기나 입지 조건도 여기가 훨씬 좋을 텐데, 교단은 구르제스에 두고 있더라고요. 저희 입장에선 그게 더 진실되게 보여서 마음에 들긴 하지만."
구르제스.
조금 전에 감지한 그 수상한 기운도 구르제스 방향에서 느껴진 것이었다.
뭔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려나.
그 사이에 주문했던 음식이 주방에서 나왔다. 식당 주인은 우리에게 음식을 가져다준 후, 카운터로 돌아가서 자기 일을 하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먹음직스럽게 손질된 파스타를 포크 끝으로 쿡쿡 찔러대면서 말했다.
"하는 것만 보면 멀쩡해보이네. 보통 저러다가 사이비로 변하지만."
"그러게."
몬스터가 만연한 세상이지만, 진짜 무서운 건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이다.
그리고 나도 루이스도 이런 쪽의 경험은 비교적 풍부한 편이었기 때문에, 기존의 경험에 겹쳐보면서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다지 관심을 둘 필요는 없겠다. 해신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바다 지방이 아니면 먹히기도 어려울 거 같고."
"그렇겠지. 진짜 사이비로 틀어진다고 해도 이건 경찰이 해야 할 일이고."
내가 이 일에 끼어들어야만 하는 사정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들은 게 사실이라면 그다지 간섭할 이유도 없다.
속마음까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지금은 평범한 종교 활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게 아닐수도 있어요.』
'넌 또 왜 갑자기 그래? 뭔가 짐작 가는 거라도 있어?'
머릿속에서 백신아가 갑자기 내게 말을 걸었다.
녀석은 검왕검의 관제를 맡고 있는 주제에 알고 있는 게 거의 없는 놈이지만, 기억에 적절한 자극이 가해지면 그때마다 자기 자신도 잊고 있던 사실을 갑자기 떠올리고는 한다.
조금 전의 대화가 녀석의 기억에 뭔가 자극을 가한 건가?
『검왕께서는 현역 시절 수도 없이 많은 적과 맞서 싸우셨어요. 그리고 생애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검왕, 혹은 무왕?王이라고 칭송 받으면서 천하제일인으로 인정 받은 거고요.』
'그건 알고 있어. 그래서 그 검왕의 행적이 어떤 식으로 조금 전의 대화와 이어진다는 거지?'
갑자기 내 말수가 없어졌기 때문인지 연금술사와 루이스가 나를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와 백신아가 말소리를 내지 않아도 서로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두 사람은 익히 알고 있다.
내 상태를 이상하게 보고 말을 걸어보려던 샤를로트를 연금술사가 조용히 말렸다. 샤를로트는 영문을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사실, 검왕께서는 사람하고만 싸운 게 아니에요. 검주도 아시겠지만.』
'당연히 알아. 천변무궁류에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보다 아득히 거대한 크기의 괴수를 전제로 만들어진 기술도 있었으니까.'
내가 지금까지 써 왔던 거성巨?이나 초신성???이 바로 그런 기술이다.
그것은 인간을 상대로 쓰기에는 지나치게 크고 넓은 범위를 가지고 있다. 애초부터 인간을 상대로 쓰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보다 크고 거대한, 사람을 상대하기 위한 기술로는 쓰러트릴 수 없는 거대한 괴수를 베어 찢기 위해서 그 기술은 만들어졌다.
『……그 검왕께서 쓰러트린 괴수 중에는 바다의 환경을 자유자재로 지배하는 거대한 뱀도 있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그 일대를 지배하면서 인간을 산제물로 취하는 존재였어요.』
'그러니까, 네가 하고 싶은 말은.'
『주변 일대 사람들이 그 존재를 칭송하면서 붙였던 이름이, 바로 해신이었거든요.』
백신아가 영 찝찝한 태도로 혀를 차는 소리를 냈다.
『……그 점이 아무래도, 신경이 좀 쓰이네요.』
* * *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호텔을 나와서 부지런히 걸은 끝에, 오후가 좀 지나서 구르제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많이 허름하고 낡은 인상이다. 바로 조금 전까지 있던 곳이 화려한 관광지라서 더 그렇게 느껴진 걸지도 모른다.
호텔을 하나 잡아서 방을 나누고, 곧바로 보이드에게 획득한 정보를 토대로 검왕검의 제작공방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200년 전의 공방이라 현 시점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보이드에게 이미 확답을 받아놓은 상태다.
보이드도 나를 찾아오기 얼마 전까지 그 공방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전체적으로 널널한 분위기의 어촌에서, 그나마 건물이 밀집되어 있는 중앙 거주구를 중심으로 돌아다녔다.
"신현아. 이쪽."
함께 활동하던 연금술사가 옆에서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린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나와 연금술사는 잘 알고 있다. 이전의 나라면 기량이 부족해서 간파하지 못했겠지만, 이제는 알 수 있다. 이 벽 너머에, 내가 찾아다니던 것이 있다.
회색으로 칠해진 벽으로 다가가서, 살짝 손으로 누른다. 손으로 느껴지는 감각으로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이지만, 아주 미세한 마력의 오차가 느껴진다.
그냥 부수고 들어가볼까? 아냐, 그건 너무 눈에 띈다.
역시 해석식을 구축해서 정석대로 뚫고 들어가는 게 낫겠지.
조용히 눈을 감고, 해석식을 짜기에 앞서 지금의 술식을 구축하고 있는 구성 요소를 파악해나간다.
"……?"
바로 그때 벌어진 일이었다.
갑자기 문 안쪽에서 내게 매우 익숙한 마력이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눈앞에 보이는 현실의 풍경이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공간 이동……? 아냐, 이건……'
환상을 보여주는 타입의 술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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