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10. 검왕검에 대하여 (6)
* * *
'……무겁다.'
나는 최근 몇 달간에 걸쳐, 내 주제에 맞지 않는 수준의 강자들과 맞서 싸워왔다.
보이드와도, 스페트로와도 다르다.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살기도, 야수처럼 넘실대는 광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느껴지는 것은 그저 순수한 투지.
그것이 보이지 않는 무형의 압박이 되어서 나를 짓누르고 있다.
현재 오십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는 마그누스의 나이는 보이드나 스페트로와 비교해도 젊은 편이다.
200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 이 시대까지 활동해온 보이드. 그리고 그것보다 훨씬 더 이전의 시대부터 흑주대천신공의 광증으로 살아온 스페트로.
하지만, 지금의 마그누스로부터 느껴지는 투기는 보이드와 비교해도 아득히 높은 영역에 있고, 스페트로와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없을 정도다.
수명 연장의 비술이나, 광증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어 정해진 수명 이상으로 살아가는 등의…… 그러한 형태의 샛길에 빠지지 않고, 오직 강함 그 자체만을 추구하고 살아온 한 남자의 50년.
그 혼이 명확한 투기의 형태로 드러난다.
"……일단, 여기에서 위치를 옮기는 편이 서로 좋겠지. 특급의 힘은 원하지 않아도 주변에 수많은 파괴를 흩뿌린다."
대치한 두 검사 중 선공을 취한 것은 마그누스 쪽이었다.
그의 덩치만한 크기의 대검을 양손으로 틀어쥔 후, 이를 바득 갈면서 대각으로 휘두른다.
아래에서 위로, 마치 걷어 올리듯이 솟구치는 일섬. 제대로 맞는다면 뼈도 추릴 수 없다.
눈에 훤히 보이는 공격을, 눈을 찌푸리면서 방어 자세에 들어간다. 쿵!! 검과 검이 충돌한 그 순간 나의 몸은 그 자리에서 수십 미터 이상의 거리를 대각으로 솟아오른 상태였다.
"……큭!"
알고는 있었지만, 단순한 파괴력에 있어서는 오히려 스페트로의 공격보다도 무겁다.
공격이 올 것을 알고, 그 충격을 흘려보내기 위한 모든 준비를 끝마쳤음에도 예상 이상의 위력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방어가 전혀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무시무시한 타격.
손에 쥐고 있는 것이 검왕검이 아니었다면 이 시점에서 이미 검을 부러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그누스는 하늘 높이 솟아오른 나를 각력으로 추격했다. 그와 나의 거리는 이미 서로의 검을 휘두르기만 해도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공중에서 검을 수평으로 올려든 마그누스가 조용한 목소리로 나를 칭찬했다.
"그 찰나에 교묘하게 충돌각을 비틀어서 충격을 줄였군. 자세도 거의 무너지지 않았어. 나의 공격은 지나칠 정도로 위력이 강하기 때문에, 막는다고 막히는 공격이 아닌데 말이야."
콰직!! 공중에서 대검을 등 뒤로 크게 젓힌 후, 몸 전체를 회전시키면서 꽂히는 수평 베기. 이번에도 방어는 성공했다. 하지만 나의 몸은 다시 그 자리에서 뒤로 튕겨나갔다.
수십, 수백 미터 가까이 날아간 몸이 한 순간 소리의 속도를 넘었다.
펑, 하는 소리가 귓전을 스친다.
눈앞의 풍경이 획획 지나쳐간다. 그리고 마그누스는 내가 날아간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나를 추적했다. 그가 다시 한 번 눈앞에 엄습한다.
대검을 머리 위로 들어올린 상태로 모든 체중과 무게를 실어서 내리꽂는 일격필살의 찍어베기.
"하아아아아아아아압!!!!"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내 몸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바닥에 처박혔다.
추락하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유성을 닮아 있었다.
그렇다. 유성이다.
"천변……, 무궁류……"
내 몸뚱이가 바닥에 처박히기 바로 직전,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에 돌입했다.
맹렬하게 불어온 마력의 기류가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내 몸을 휘어감았다. 아래에서 위로 내 몸을 밀어올리면서 낙하의 속도를 급격하게 줄인다.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은 마력의 기류를 한 방향으로 집중시켜서 몸을 밀어내는 초고속의 이동기이다.
그 방향은 그야말로 자유자재. 뒤에서 앞으로 몸을 쏘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인 사용법이지만, 그 이외의 방향으로도 얼마든지 몸을 밀어낼 수 있다.
착지 직전에 급격하게 브레이크를 건 후 그 자리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그리고 그 직후 빠르게 몸을 뒤로 물린다. 내가 착지한 바로 그 자리에 마그누스의 대검이 무시무시하게 꽂힌다.
쿵!! 대검이 바닥에 꽂히는 것과 동시에 흙바닥이 아주 뒤집어졌다.
어느 세 나와 마그누스의 무대는 도심이 아니라 제피로스 바깥의 숲으로 옮겨졌다.
고작 세 번의 검격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하하! 대단하군. 지금까지 내 공격을 세 번 이상 받아낸 건 특급의 자리에 오른 이들밖에 없었다. 그런데 자네가 설마 그 정도의 영역에 도달했을 줄이야!!"
무대는 나무가 빼곡하니 자라난 울창한 숲속.
촘촘하게 자라난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은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간격밖에 되지 않는다.
대검을 휘두르기에는 상당히 불리한 환경이었지만 마그누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한 번 대검을 휘두를 때마다 나무가 숭덩숭덩 잘려서 쓰러진다. 전혀 효과가 없었다.
'보이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가……'
물러서고, 피하고, 흘려내면서 조용히 그의 강함을 측정한다. 보이드도 특급을 기준으로 중위권 정도의 실력자였지만, 마그누스와는 도저히 비교가 안 된다.
그때와 비교해서 다소 실력이 늘어난 지금의 나라고 해도 마그누스에게 제대로 유효타를 넣을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한 번 검을 부딪칠 때마다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스페트로는 이런 괴물을 어떻게 쓰러트린 걸까.
쿵!!
마그누스의 찍어베기를 검을 수평으로 들어서 받아냈다. 하지만, 사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히는 공격은 충격을 흘려보내기 제일 어려운 공격 중 하나다.
머리 위에서 수직으로 꽂히기 때문에 충격을 흘려보낼 수 있는 방향이 한정된다.
방어가 실패했다. 대검이 검왕검을 양단하면서 그대로 내 머리를 향해 짓쳐들어오고─── 그때, 마그누스도 뭔가 이상한 점을 느낀 것 같았다.
"이 감촉은……? 인간이 아냐, 그렇다면 혹시……!"
그 직후 마그누스의 앞에 서 있던 '백신현'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검은 마력과 함께 녹아내렸다.
그리고 그 분신의 배후에 모습을 숨기고 있던 나의 본체가 마그누스의 옆구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천변무궁류의 제사검, 삼렬성이 일으킨 현상이다.
질량을 가진 분신으로 한 순간 상대의 판단을 혼란시키고, 그 틈에 본체가 파고들어서 공격을 명중시킨다.
캉!! 마그누스는 아슬아슬하게 방어했다.
"깜짝 놀랐다……. 네가 스페트로와의 전투에서 쓰는 걸 보지 못했더라면 한 방 먹었을지도 모르겠군."
"이쪽은 나름대로의 묘수가 막혀서 꽤 충격입니다."
내가 냉엄하게 대꾸한 바로 그때, 푸른 마력이 검을 휘어감으면서 증폭되었다. 길쭉한 칼날이 상하좌우로 넓게 펼쳐진다.
그것은 그야말로 전설 속에서 나오는 마룡??이라고 해도 양단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크고 거대하고, 묵직한 참룡검???.
같은 대검이지만 마그누스의 것과 비교해도 오히려 이쪽이 더 길고 두껍다.
천변무궁류의 제삼검, 거성을 통한 검의 강화이다.
콰직!! 허리의 힘을 써서 단숨에 마그누스의 몸을 밀어낸다.
이 일격은 마그누스에게 있어서도 상당히 의외였는지, 그의 목구멍을 타고 당황스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흐……!"
서로의 거리가 충분히 벌어졌다.
검을 들고 대치한 상태에서 나는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대충 알았어요. 역시……, 아직은 도저히 이길 수가 없네요."
"음? 더 붙어보지 않는 거냐? 네 성격을 생각하면 팔이 끊어져도 악바리처럼 달려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지만, 교체 선수가 도저히 못 참겠다네요. 어서 싸우게 해달라고 아우성이에요."
그리고 이 시점에서 다시 몸을 다치게 해 버리면 치료하는데도 한 세월이 걸릴 거 같고.
가끔씩은 적당히 할 때도 있어야 하는 거다.
"교체 선수라……."
"지금까지의 저로 생각하면 큰 코 다치실 겁니다. 아니, 진짜로 심하게 다칠 수도 있어요."
"그런 건 알고 있다. 나도 '그 존재'와 스페트로의 싸움은 두 번이나 지켜봤으니."
가볍게 심호흡을 한 후, 나 자신의 의식을 구석으로 밀어보낸다. 그리고 내가 물러난 그 범위만큼 나 아닌 다른 존재의 마력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육체의 주도권이 나 아닌 다른 존재에게 넘어간다.
눈을 감고 다시 떴을 때, 이미 나의 육체에는 검성의 혼이 스며들어 있었다.
마그누스는 변화를 눈치챈 것인지 조용히 전신의 근육을 경직시켰다.
그가 환희에 떠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회동에서 자네가 난입했던 그 순간부터 쭉 이렇게 생각했었다. 저 자식하고 한 번 신명 나게 붙어보고 싶다고 말이야."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입에서 나 아닌 다른 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그누스도 그 차이를 직감했는지,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저도 현 시대 최강이라고 불리는 특급 모험가들과 꼭 붙어보고 싶었어요. 루이스 아씨와 싸우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가끔씩은 다른 사람하고도 붙어봐야죠."
"……신현이의 몸을 쓰고 있지만 신현이가 아니로군. 그대가 바로 신현이가 목격한 '기연'의 정체인가?"
"기연이라뇨, 과분한 말씀을."
내 몸을 차지한 백신아가 거성을 유지한 채 검을 수평으로 들었다.
"검주와의 만남은 오히려 제게 있어 기연이었습니다. 검주도 저와의 만남으로 많은 것을 얻으셨지만,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백신아는 조용히 웃고 있었다.
"오히려 얻은 걸로 따지면 제가 더 많을 정도고요. 꽤 즐겁거든요. 나날이 실력이 늘어가는 검주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주 큰 기쁨입니다."
"그 말투를 보니 확실하게 알겠군! 신현이는 그대처럼 예의바르게 말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뭐야, 지금 그런 걸 가지고 나하고 백신아를 구분하고 있는 거야?
이건 좀 기분이 더러운데.
하지만 가벼운 목소리와는 또 별개로, 고개를 든 마그누스의 기세가 조용히 팽창하기 시작했다.
역시, 조금 전까지는 나를 봐주고 있었던 거였나.
찌릿찌릿한 투지에 피부가 따가울 지경이다.
마그누스가 호전적인 미소와 함께 웃었다.
"그대 같은 강자와 맞붙을 수 있는 것 만큼 행복한 일도 없지. 자, 그럼 정정당당하게 한 판 붙어 볼까!!"
그리고, 서로 충돌한 두 검사의 첫 선택은 힘과 힘에 의한 정면 승부.
두 자루의 검의 호각의 태세로 부딪친 바로 그때, 백신아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마그누스의 검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 * *
"……나의 패배로군."
검극이 목에 드리워진 마그누스가 낮게 중얼거렸다.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냥 무승부 아닌가요?"
"그렇지 않다. 10초만 더 싸웠더라도 내 목이 날아갔을 거야. 너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더 싸우지 못했으니까요. 제가 보기엔 무승부예요."
마그누스의 검은 내 옆구리를 베어 찢기 직전의 위치에서 멈춰 있었다.
서로가 한 걸음씩만 더 나아가도 서로의 목숨을 절단낼 수 있는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비무가 종료되었다.
먼저 검을 거둔 것은 마그누스 쪽이었다. 대검을 천천히 아래로 내린 마그누스는 만족감으로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멋진 승부였다. 겨우 5분밖에 싸우지 못했다는 게 아깝게 느껴질 정도로."
"제가 싸운 건 아니지만요. ……아, 지금 '이 녀석'이 전해달라네요. '정말 즐거운, 멋진 승부였다' 고."
백신아의 말을 마그누스에게 전한다. 그는 잠시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제 씨익 웃으면서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큭큭……. 그 '존재'의 눈으로 보았을 때 내 실력 따위는 애송이의 춤사위 정도로밖엔 보이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말해주는 건가. 평가가 아주 후하시군."
한참 동안 웃음을 멈추지 못하던 그는 이내 웃음기를 싹 지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고맙다. 너희들 덕에 아직 내가 가야 할 길이 한참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경험을 잘 살리면 제1위라도 쓰러트릴 수 있을지도 몰라."
"꼭 이겼으면 좋겠네요. 이건 진심입니다."
나는 검을 허리춤으로 되돌린 후,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그누스가 웃으며 내 손을 마주잡았다.
"1위를 쓰러트린다고 해서 나의 무도??가 끝나는 건 아니다. 우리 같은 특급 모험가의 수준조차 아득히 넘어선 진정한 고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마그누스의 시선이 한 순간 내 허리춤의 검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온다.
마주 잡은 손에 굳게 힘이 실린다.
"그리고 신현이 너도…… 머지 않아 우리들과 동등한 세계에 도달하게 되겠지."
"……."
"그때가 되면 오늘처럼 어중간한 형태가 아니라…… 서로의 자존심과 신념을 걸고 진짜 한 번 제대로 붙어보자."
"알겠습니다. 약속이에요."
마그누스와 굳게 악수를 나눈 후 몸을 돌리고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잠시 멈춰선 채 주먹을 살짝 쥐면서 고개를 들었다.
붉은 노을이 내 그림자를 길게 잡아끌었다.
"나도 아직…… 갈 길이 멀다."
힘이 빠진 건 아니다.
오히려 내 목소리에는 작은 열기가 감겨 있었다.
강자와의 싸움에서 난 언제나 많은 것을 얻어냈다. 그리고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다.
내가 목표로 하는 검의 극의는 백신아의 검이다.
하지만, 백신아와는 또 다른 형태로 검의 극의를 쫓는 남자의 검술에서 난 수많은 자극을 느꼈다.
내일의 난, 오늘의 나보다 더 강한 남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검주도 언젠가는, 저 정도로 강해질 수 있을 거에요.」
검에서 들려온 백신아의 목소리는 묘하게 후련해보였다.
욕구불만이 많이 해소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제가 보증할게요.」
"그래, 나도 힘 내야지."
살짝 웃으며 백신아의 말에 대답했다.
작게 흔들리는 검자루를 두어번 두드린 후 멈춰선 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