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10. 검왕검에 대하여 (5)
* * *
"……그게 무슨 소리야?"
"어, 드, 들렸어?"
아닌 척 하면서 은근히 엿듣고 있던 루이스가 귀를 쫑긋 세우면서 질문했다. 내 옆에서 귓속말을 하던 샤를로트는 깜짝 놀랐다.
특급 모험가의 감각 앞에서 어설픈 방비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감각 자체가 워낙 유별나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적절한 대처가 필요한데, 솔직히 이건 샤를로트가 루이스를 너무 얕본 거다.
이번 사건을 거치며 샤를로트는 이전에 비해 조금 더 성숙하고, 침착한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사람의 본질이 그렇게 쉽게 변할 수는 없다. 예상 밖의 지적을 들은 샤를로트는 금세 허둥대면서 얼마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버렸다.
"어, 그게, 그게 있잖아. 그, 뭐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말더듬이 기질이 다시 살아났다.
나는 샤를로트를 조금 진정시킬 생각으로 가볍게 손을 들어서 조그만 어깨에 오른손을 얹었다. 그리고 천천히 심호흡을 시키면서 흔들리던 감정을 안정시켰다.
나도 샤를로트와 마주본 채 함께 심호흡을 하면서 감정을 진정시키는 걸 도왔다. 서로의 호흡에 영향을 주면서 고조되어 있던 감정을 끌어내렸다.
"자, 진정."
"……후우. 아, 고마워. 신현 씨……"
샤를로트가 가볍게 딸꾹질을 하면서 멀어진다.
"응,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나는, 스페트로 가문의 분가 출신이거든. 그리고 그때 내가 살고 있던 마을이 바로 구르제스야."
"그럼 네 친부모님도 그쪽에 계시는 건가?"
"아마도, 이사하지 않으셨다면."
샤를로트의 표정은 놀라울 정도로 담담했다. 본인은 이미 다 털어냈다는 의미일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친부모님도 나의 광증에 대해서 알고 계셨고, 그래서 아버님에게 나를 맡긴 걸지도 몰라. 난 친 부모님하고 함께 살던 시절부터 온갖 무기술을 수련 받았었는데, 그 와중에도 창은 단 한 번도 쥐어본 적이 없었거든."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가 다시 편다. 소녀 답지 않은 굳은 살이 손바닥 위에 자글자글 박혀 있다.
하지만 샤를로트는 오히려 내게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일 정도로 여유를 과시하면서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내가 구르제스를 떠난 건 4년 전의 일이야. 그래서 그러는데……, 혹시 신현 씨가 구르제스에 찾아갈 생각이 있다면 나도 같이 데려가주지 않을래?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수녀원은 어쩌고?"
"구르제스에도 같은 종파의 수녀원이 있으니까 아마 괜찮을 거야. 그리고, 애초에 내가 제피로스 수녀원에 몸을 맡기고 있는 건…… 나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인걸."
샤를로트가 나를 보며 다시 미소지었다.
꽃이 피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사람들하고 같이 움직이는 거니까.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야."
* * *
샤를로트를 수녀원으로 돌려 보낸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옆집에서 연구에 골몰하던 연금술사까지 데리고 와서 대략적인 상황을 다시 정리했다.
"현 시점에서 가장 많은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 여기라는 뜻이군. 구르제스에 있는, 검왕검이 제작된 비밀공방."
"체포돼서 갇히기 전까지는 보이드가 연구용으로 쓰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녀석은 자신이야말로 검왕검의 적법한 계승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방을 함부로 훼손하진 않았다고 말했어요."
"……그럴듯 한걸. 검왕검에 정신이 팔려서 여기까지 왔다가 감옥에 처박힌 바보 같은 녀석이니까."
연금술사가 조용히 보이드의 인상에 대해서 평가했다. 우리가 본 보이드는 비교적 이성적인 데다가, 검왕검의 약점을 공략해서 나를 위기로 몰아넣었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앞뒤 분간도 못하고 정신이 팔릴 정도로, 그에게 있어서 검왕검은 무척이나 중요한 물건이었다는 뜻이다.
「제 생각도 같아요. 제 기억에 남아있는 보이드도 유독 검왕검에 대한 집착이 심했거든요. 어쩌면 검왕에게 단순한 협력자 이상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백신아가 연금술사의 평가에 동조했다. 녀석은 이 중에서 지금의 보이드 뿐만 아니라 과거의 보이드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우리 중에서 가장 정확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나는 백신아의 말을 듣고 조용히 의문을 품었다.
"동경인가?"
「아마도요. 애초에 검왕 어르신 자체가 그 시대의 무인들에게 있어선 동경의 대상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이상한 일은 아니죠.」
천하제일인?下?一人.
백신아의 말을 들은 직후, 그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강하다는 것은 멋지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자의 곁에는 늘 사람들이 모인다.
검왕에게 동경과 흠모의 감정을 품은 사람들의 심정도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특히 보이드 같은 경우, 자신의 기술이 천변무궁류에 일조할 수 있었다는 걸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니까요. 검주도 아시죠? 천변무궁류의 제사검.」
"알아. 그게 보이드의 기술을 일부 적용해서 만들어진 기술이잖아."
천변무궁류의 제사검, 삼렬성.
이것은 보이드의 분신 술식을 응용해서 좀 더 실전에 쓸 수 있는 형태로 개조한 기술이다.
이 기술에 들어갔을 때 순간적으로 나의 마력은 검은 색으로 형질이 변한다.
보이드, 스페트로와 같은 색으로.
"그럼 근시일 내로 준비를 끝마치고 구르제스에 가는 걸로 결정이 된 건가?"
"오히려 망설일 이유가 없지. 지금의 우리라면 스페트로 같은 상대라도 나타나지 않는 이상 크게 위험할 게 없을 테니까."
루이스의 질문에 내가 대답했다. 정보의 윤곽이 드러난 시점에서 더 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다.
"구르제스……, 에 가겠다……."
그런데 어째선지 연금술사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신경 쓰이는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난 주저 하지 않고 연금술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아니,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거기가 옛날부터 소문이 좀 안 좋은 곳이거든."
"진짜요?"
특급 모험가로서 전국을 돌아다닌 루이스에게도 영 생소한 이야기인 거 같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금술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아, 너희들 기준으로는 옛날 이야기라서 잘 모를 수도 있겠네."
연금술사는 가볍게 세대 차이를 인식한 뒤, 손을 들고 설명에 들어갔다.
"요즘은 모르지만 예전에는 실종자가 많이 나오는 마을로 유명했어. 해안가 마을이다보니까 365일 내내 안개가 끼어 있어서 분위기도 좀 기분 나쁘고."
"아, 선생님도 예전에 가보신 적이 있나 보시네요."
"가벼운 관광 정도였어.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좀 묘해서 며칠 머물다가 바로 떠났지만."
구르제스에 그다지 좋은 감정은 없는지 연금술사가 표정을 찡그린다.
"하지만 조금 기분 나쁜 걸 제외하면 별 문제 없는 마을인 건 사실이야. 실종자가 많은 건 그냥 치안이 좋지 않기 때문이겠지. 너희들에겐 별 문제 없을 거 같은데."
연금술사가 나와 루이스의 얼굴을 한 번씩 훑어본 후 평가했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나도 루이스도 마냥 편하게 실력을 쌓아온 게 아니다.
치안이 조금 나쁜 정도는 우리에겐 별로 문제도 되지 않는다.
"아니면 차라리 스텔라에게 한 번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스텔라요? 선생님 친구?"
"……친구 아냐."
가벼운 농담이었는데 연금술사는 정색하며 받아쳤다.
"아무튼, 그 녀석의 활동 범위에 구르제스가 들어가는 걸로 알고 있어. 물론 주 활동 범위하고는 거리가 좀 있기 때문에 잘 모를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러니까, 말 그대로 한 번 물어볼 만한 가치는 있다 정도였다.
사실 이런 시골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루이스가 특이한 거지, 대부분의 특급 모험가는 대도시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시니까 일단 기억은 해 두겠지만, 그다지 그 사람에게 손을 벌릴 일은 없지 싶네요. 괜히 말을 섞고 싶지도 않고."
"응, 마음대로 해."
그 마을에서 아예 살고 있었던 샤를로트도 있고.
굳이 그쪽한테까지 도움을 요청할 필요는 없을 거 같다.
그리고 아예 정보도 모른 상태로 그 마을을 찾아가는 게 조금 찜찜한 거 뿐이지, 어차피 우리의 목적은 관광이 아니라 검왕검이 제작되었다던 루키우스의 비밀 공방이다.
그 마을의 내부 사정에는 솔직히 관심도 없다.
"내 경험상 여기에서 구르제스까지는 대충 일주일 정도가 걸릴 거야. 왕복에는 2주. 그 도시에서 체류하는 기간까지 합치면 대충 3주 정도면 되겠지."
구르제스에 들러본 경험이 있는 연금술사가 대략적인 스케줄을 잡았다.
나는 애초에 고정된 수입이 없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3주 정도 시간을 빼는 건 아무런 문제도 없다.
루이스도 지금은 검을 쓸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잠시 영업을 접은 상태.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왕복에 3주……"
조용히 중얼거린다.
루이스는 귀신 같이 그 소리를 듣고 내게 관심을 보였다.
"왜, 급한 일이라도 있어?"
"그런 건 아니고. 왕복에 3주라고 치면 우리가 돌아올 때쯤에는 다른 특급 모험가도 다 여기를 떠나 있겠구나 싶어서."
"그거야 그렇겠지. 다들 바쁜 사람들이잖아."
마그누스나 스텔라 같은 사람들이 지금 이 도시에 남아 있는 건 어디까지나 부상의 재활 치료와 스페트로 사건의 사후 처리를 위해서이니까.
"……."
"왜, 신현이 너 또 이상한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지?"
아, 역시 루이스는 나하고 알고 지낸 기간이 길어서 내 표정만 보고도 대략적으로 상황을 파악한 것 같다.
나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런 건 아냐. 그냥…… 예전에 이 녀석이 했던 말이 생각나서."
「저요?」
오른손으로 백신아를 조용히 두드렸다.
루이스는 여전히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 * *
거리에 붉은 노을이 길게 깔린다. 집을 나온 나는 다시 한 번 제피로스 정신병원을 찾아와 있었다.
보이드에게 용건이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용건이 있는 건 보이드가 아니라 제피로스 정신병원에서 스페트로 사건의 수사를 돕고 있는 마그누스였으니까.
"아, 이제 막 퇴근하시나 보네요."
"음, 뭐야? 놓고 온 물건이라도 있는 건가?"
그는 막 일을 마쳤는지 경찰복을 벗고 평소의 허름한 망토 차림이었다. 등에는 업무 중에는 볼 수 없었던 그의 대검을 짊어지고 있다.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혹시 나한테 볼일이 있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역시 마그누스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나를 휘어감은 분위기로부터 상황을 파악한 것 같다.
아직 젊은 내게는 아무래도 부족할 수밖에 없는, 연륜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강함.
제1위에도 버금간다고 알려진 그 실력은 한 번 패배를 겪은 이후임에도 여전히 건재했다.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대장이 이 도시를 떠나기 전에 반드시 한 번 검을 부딪쳐보고 싶었습니다."
"아니, 괜찮아. 나도 '놈'과의 싸움 이후로 아무래도 손이 근질거리던 참이었거든. 그런데 주변에는 나와 검을 부딪치기는커녕 마땅히 대화도 제대로 나눠주지 않는 사람들 뿐이라서 많이 답답했던 차였어."
마그누스는 오히려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갑작스런 결투 신청에도 그는 매우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한 순간에 그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주변의 대기를 압박하면서 강하게 누른다.
"싸우는 건 좋다. 하지만 나와 싸우는 건 어느 쪽이지? 너인가? 그게 아니면 네 안에 잠재되어 있는 '또 다른 존재'인가?"
"처음에는 접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다른 녀석이 대장을 상대할 거에요."
내가 갑자기 이런 행동에 들어간 이유는 간단하다.
그저 문득, 한참 전에 백신아가 했던 말이 한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온갖 특급 모험가가 모이는 대규모 행사인 '회동'.
그리고 그 회동을 목적으로 모여든 수많은 특급 모험가.
처음 회동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백신아는 특급 모험가와 싸워보고 싶다며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 뒤로 온갖 사건이 연쇄적으로 벌어지는 바람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조금 늦게나마 그 미련을 풀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건 말하자면……, 스페트로와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준 백신아에게 주는 포상이다.
"……하지만 참, 자네도 천벌 받을 짓을 하는군."
"천벌이요?"
"그래. 현 제2위의 특급 모험가와 전 최강의 특급 모험가를 쓰러트린 남자의 대결…… 돈 받고 티켓을 팔면 순식간에 떼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가 했더니.
어이가 없어서 웃었더니, 그가 고약한 미소와 함께 등에 짊어진 검에 손을 가져가면서 말했다.
"돈을 받고 경기장을 빌려서 대결을 주선하는 프로모터들이 보면 분통을 터트릴 거야. '떼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이렇게 날려먹다니!' 하고……."
마그누스의 상반신이 조금 앞으로 기운다. 목적이 행동에 그대로 드러나는 자세.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면서 달려나갈 준비를 끝마쳤다.
"하지만…… 자네도 나도 그런 걸 위해서 싸우는 건 아니니까. 그다지 상관 없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