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77화 (77/287)

〈 77화 〉 10. 검왕검에 대하여 (4)

* * *

"……그런데 있잖아. 아주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건 아니었지?"

루이스가 묘한 시선으로 나를 돌아본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뭐가?"

"보이드에게 했던 말 말이야. 끝까지 얘기 안 하면 감옥에서 납치해서 고문하겠다고 협박한 거. 진심이 꽤 뭍어 나온 말 같았는데."

아, 그 소리구나.

나는 별 대답 없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실상의 긍정 표시다.

아무리 보이드가 못난 놈이라지만 능력까지 밑바닥인 상대는 아니었다. 무작정 거짓말을 한다고 해서 그걸 덜컥 믿을 정도로 어설픈 놈까지는 아니라는 뜻이다.

정신병원 앞에서 진을 치고 있던 마그누스의 모습을 보고 즉석해서 떠올린 거짓말인 건 사실이지만, 그 행위에도 어느 정도 진심은 섞여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그거야 그렇지. 애초에 그런 방법도 고려는 하고 있었다니까? 심령 제압술을 통해서 대답을 들어대는 기술도 만능은 아니거든."

나는 오른손을 가볍게 털면서 대답했다.

"그 기술도 상대 쪽의 정신력이 예상했던 것보다 강하거나, 강력하게 거부하면 대답을 들어내기 어려워. 그리고 그때가 되면 나도 교도소 벽을 부수고 보이드를 납치한 뒤, 폭력이 동반되는 심문을 통해서 정보를 끄집어냈겠지."

물론, 심령 제압에 걸린 시점에서 거의 99%는 대답을 토해낸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그것도 100%는 아니다. 그리고 그때를 대비해서 또 다른 수단을 구비해두는 것은 내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내 입장에서 보면 보이드는 그런 수단을 가릴 만한 상대도 아니라고. 뼈를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놈인데."

나는 보이드의 얼굴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진심으로 혀를 내둘렀다.

실제로 보이드를 고문해야만 하는 상황이 찾아오더라도 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행위에 돌입했을 것이다.

수단을 고민할 상대가 아니니까.

하지만 오히려 이런 태도가 보이드에게는 효과적으로 먹혔다.

내가 놈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이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보이드도 내 말을 진심으로 판단하고 정보를 토해냈다.

그 정보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는 건 옆에 서 있던 루이스가 대신 해 주었다.

마력으로 증폭된 감각을 통해서 심장의 박동이나 자각하지 못하는 근육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말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는 식이다.

대기 중의 마력을 감지하는 감각은 내가 루이스보다 우위에 있지만, 그 이외의 부분에선 아직 나도 쫓아갈 수 없다.

특급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란 그런 것이다.

거기다가 이건 기술적인 부분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마력의 출력에서 비롯된 차이이기 때문에 좁힐 방법도 마땅치 않다.

"일단 집으로 돌아갈까? 지금 바로 찾아갈 건 아니잖아. 그 지방에 대한 조사도 해야 하고."

여행을 가더라도 그 도시에 대해서 미리 공부를 하고 찾아가야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원정도 마찬가지다.

보이드가 말한 그 비밀 공방은 여기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해안가 마을이기 때문에 내부 사정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아, 집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들리고 싶은 곳이 하나 있는데. 괜찮을까?"

"상관은 없는데, 신현이 너 또 어디 가려고?"

루이스가 영 미심쩍다는 듯 도끼눈을 뜨고 나를 노려본다. 난 침착하게 대답했다.

"별 건 아니고, 샤를로트가 맡겨진 수녀원 있지? 거기를 한 번 들려보고 싶어서."

"엄청 신경 써주네……. 걔가 그렇게 신경 쓰여?"

"아직 애잖아. 올리비아에게 가끔씩 돌봐달라고 부탁 받기도 했고."

물론 올리비아가 그런 부탁을 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알아서 샤를로트를 찾았겠지만.

"그럼, 같이 가자. 걔가 잘 지내고 있는지 나도 좀 궁금하고."

루이스는 상당히 부드러운 반응을 보였다.

란즈 가주나 올리비아를 비롯한 스페트로 가문 자체를 탐탁찮게 보는 루이스도 샤를로트앞에서는 비교적 너그러워지는 경향이 있다.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은 만큼 과거의 자기 자신과 샤를로트를 겹쳐 보고 있는 거겠지.

내가 그런 것처럼.

* * *

샤를로트가 신세를 지고 있는 수녀원은 제피로스 수녀원이라는 이름이다.

이 도시에는 이런 이름이 많다.

수녀원의 규율 자체가 그렇게 엄격한 편이 아니었던 데다가, 애초에 소규모였던 점도 있어서 비교적 간단하게 샤를로트의 면회를 허락 받았다.

친족이 아닌데도 빠르게 허락이 떨어진 이유는 올리비아가 미리 내 이름을 수녀원장에게 전해두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수녀원장부터가 올리비아의 지인이었다니까.

공원 벤치에 앉은 샤를로트가 가까이서 나를 보며 싱그럽게 웃었다.

"찾아와줘서 고마워. 신현 씨. 그리고 루이스 씨도."

수녀복 차림의 샤를로트는 눈부시게 사랑스러웠다. 양갈래로 묶고 다니던 머리카락을 아래로 내리고 그 위에 후드를 쓴 것 뿐인데도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남자애들이 보면 3초만에 함락될 거 같다.

샤를로트가 내 옷소매를 꾸욱꾸욱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마지막으로 보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다시 보니까 되게 좋다."

그렇게 말하고는 또 다시 웃는다.

……와, 깜짝이야.

조금 과장 보태서 무슨 천사라도 내려온 줄 알았다.

나중에 결혼해서 애 가지면 샤를로트 같은 아이였으면 좋겠네.

안색을 보아하니 수녀원의 생활이 몸에 잘 맞는 것 같다. 난 가문에서 멀리 벗어나서 오히려 불안해하고 있을 것 같았는데, 샤를로트의 표정을 보면 오히려 그 반대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 후로 별 문제는 없지? 갑자기 스페트로가 침식하려 한다든가, 그런 문제도 없고."

"응. 지금까진 단 한 번도 없었어. 하지만…… 언젠가 내 혈맥을 통해서 후손들에게 광증이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 이 부분은 어떻게 해결을 봐야 한다고 생각해."

그 부분은 확실히 문제다.

우리가 란즈 가주의 몸에 깃든 스페트로를 쓰러트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몸에 있던 스페트로가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육체에 기생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타격을 입혀서 쫓아낸 것뿐.

흑주대천신공이 계승되거나, 혈맥으로 이어진 광증이 눈을 뜨면 스페트로는 다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그 부분은 내가 생각해봤는데."

샤를로트를 사이에 끼고 나의 반대편에 앉은 루이스가 검지 손가락을 펴고 말했다.

"차라리 흑주대천신공을 무작정 파기하는 게 아니라, 그걸 가지고 연구해서 파해식을 짜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여. 혈맥에 광증을 스며들게 하는 흑주대천신공의 효과를 중화하는…… 정반대의 신공을 제작하는 거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애초에, 신공의 원본만 획득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일이다.

나도 루이스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흑주대천신공은 스페트로 가문의 본가에 아직 남아있겠지. 란즈 가주나 올리비아에게 부탁해서 가져와달라고 부탁하면 돼."

그 두 사람은 한동안 이 도시에서 있을 예정이다. 부탁할 기회는 앞으로 얼마든지 있다.

"……그런 게 가능할까?"

샤를로트의 질문에 나와 루이스가 차례로 대답했다.

"가능하게 해야지."

"그 과정까지 다 끝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스페트로에게 '이겼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거잖아."

한 번 시작한 싸움을 어중간한 형태로 끝낼 생각은 없다.

한쪽이 끝장날 때까지 싸움은 계속 되어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지나치게 신세를 지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마음이 불편하지만……, 날 생각해주는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는 거겠지. 신현 씨도, 그리고 루이스 씨도…… 정말로 고마워."

샤를로트가 나와 루이스를 한 번씩 번갈아 보면서 고개를 숙인다.

"나…….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그래도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잘 알아. 그리고, 두 사람 같은 좋은 어른이 세상에 드물다는 것도 잘 알고……."

"그래."

"그러니까…… 고마워. 날 이렇게까지 생각해주는 사람이 올리비아 말고도 있다는 사실이…… 정말로 기뻐."

곤란한데.

이거 뭔가 좀 뺨이 간질간질하다.

아니, 오히려 이게 정상인가.

지금까지는 도와줬더니 오히려 날 칼로 쑤셔대려는 사람밖에 없어서 내가 잠시 잊고 있었는데, 원래는 도와주면 이런 식으로 고개를 숙이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게 정상이다.

도와주고, 감사 인사를 받는다.

그런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행위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 현실이 조금 우습게 느껴졌다.

"혹시 말이야. 내가 두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해줘. 물론 내 실력으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겠지만……, 나도 두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빚을 갚고 싶어."

고개를 돌린 샤를로트가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마주친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진다.

"음, 그러면 말이야. 혹시 구르제스라고 하는 마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있어? 위치상으로는 스페트로 가문의 세력권에 가까운 곳인데."

"구르제스?"

샤를로트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솔직히 난, 이렇게 질문을 하면서도 제대로 된 대답을 듣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애초에 그 마을은 스페트로 가문의 세력권도 아니니까.

"혹시 신현 씨가 말하는 구르제스가 해안가에 있는 마을이야……?"

"아, 맞아. 알고 있는 게 좀 있나보다?"

"응. 어쩌면 내가 신현 씨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몰라."

기쁜 오산이었다.

샤를로트는 놀란 내 얼굴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내 소매를 꾸욱 꾸욱 쥐면서 배시시 웃었다.

"난 그 마을에서 태어났으니까."

"네가 구르제스에서 태어났다고? 별일이네. 스페트로 가문의 세력권도 아닌 곳에서 후계자를 출산하는 건 좀 위험하지 않나?"

모난 돌은 정을 맞는다는 말이 있다. 명성이 높아지는 만큼 그것을 탐탁찮게 바라보면서 불만을 품거나, 심지어는 피해를 입히기 위해서 접근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스페트로 가문은 샤를로트가 태어나기 전부터 손꼽히는 부잣집으로 유명했다.

당연히 차기 후계자의 안전을 생각하면 세력권 내에서 출산하는 게 일반적일텐데……,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있었나?

"……아, 그건 있잖아."

샤를로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뭣하는 짓인가 싶었는데, 내게 귓속말을 하기 위해서 시선을 높인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덩치가 큰 편인 나는 앉은키도 꽤 높다. 계속 앉은 채로 대화하는 건 샤를로트에게도 꽤 목이 아픈 행위였을 것이다.

내 옆으로 돌아와서 귀에 입을 붙인 샤를로트가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비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건 내가……, 아버님의 친딸이 아니라서 그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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