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76화 (76/287)

〈 76화 〉 10. 검왕검에 대하여 (3)

* * *

"……뭐야, 내가 이기지 못할 걸 알면서 싸움을 붙인 거냐?"

"그 말을 보아하니……, 틀림없군……. 진짜로 그 괴물 같은 놈을 쓰러트릴 줄이야……."

말라 비틀어진 노인의 눈빛이 흥미로 번들거린다.

그의 시선이 빠르게 움직였다. 벽에 붙어있는 온도계를 체크. 창문으로 비쳐드는 햇빛을 통해 현재의 시각과 계절을 가늠한다.

"그 후로 며칠이 지났지?"

"대략 보름 정도 지났어. 네가 말하는 그 템페스트라는 놈은 열흘 전에 쓰러졌지. ……그것보다도, 대답해. 내가 못 이길 걸 알고 일부러 싸움을 붙인 거였나?"

마력과 함께 살기를 조용히 분출했다. 코어가 파괴된 현재의 보이드에게는 지금의 압박을 견뎌낼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낯빛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질린다.

내 의지를 어느 정도 표출한 후 조용히 기세를 거둔다. 보이드는 호흡이 불편한지 구속복을 걸친 상태 그대로 연신 기침을 토해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너와 검왕검이 힘을 합치더라도 승산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잘 쳐도 10% 미만이라고 판단했었지……."

보이드는 사레가 들린 사람처럼 한참 동안 고약한 기침 소리를 내며 몸을 흔들었다.

구속복에 묶인 노인을 압박하는 눈매 더러운 남녀 한 쌍. 모르는 사람이 보면 우리가 나쁜 놈으로 보이겠다.

"하지만 그대를 죽이기 위해서 싸움을 붙인 건 아니다……. 어차피 그대와 템페스트는 언젠가 부딪치게 되었을 테지. 나는 그것을 아주 조금 앞당겼을 뿐이야."

보이드가 조용히 말했다.

"애초에 그대를 진정으로 죽음의 함정으로 빠트리고자 마음 먹었다면 그대에게 흑주대천신공의 정보를 제공하지도 않았겠지……. 물론, 그렇게까지 해도 이길 승산이 희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말을 잠시 멈춘 보이드가 자리에 앉은 나의 안색을 살핀다.

놈이 낮게 신음한다.

"……고작 보름 동안 그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기운이 몰라보게 달라졌군. 강적과의 전투에서 새로운 힘을 손에 넣은 것…… 인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이쪽은 보다시피, 너의 부탁대로 템페스트를 쓰러트렸다. 그렇다면 너도 거래 조건을 지켜야겠지?"

애초에 나와 보이드 사이에는 그러한 거래가 이뤄진 상태였다. 내가 그 템페스트를 쓰러트려주는 대신 보이드는 내게 검왕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로.

하지만 눈앞의 노인은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를 비웃는 듯한 시선으로 웃기 시작했다.

"거래라…… 그래, 그런 걸 했었지……. 그럼 어떡하면 좋을까……? 나도 그대에게 이것저것 빚을 진 게 많아서 그런지, 솔직하게 대답해주기가 조금 망설여지는데……."

"……."

나는 턱을 괸 채 보이드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었다. 애초부터 나와 보이드는 서로 적대하던 사이였으니까.

내 입장에서 보면 하루아침에 갑자기 나타나서 연금술사를 습격하고, 나까지 죽이려고 한 놈이다.

녀석과 정상적인 형태의 거래가 가능할 거라고는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내가 비교적 냉정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

오히려 보이드는 조금 다른 형태로 내 기대를 충족하고 있었다. 아, 그래, 여기에서 솔직하게 거래의 대가를 지불하면 보이드가 아니지. 그 정도로 상식과 윤리가 통하는 상대였다면 애초에 우리를 습격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어떤 의미에서 그는 상당히 뻔한 상대였다.

그래서 더 상대하기 쉽다.

나는 보이드의 얼굴을 가만히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너는 지금까지 심령을 제압 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바깥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

"……?"

"지금 이 정신병원 앞에는 네가 말하는 템페스트……, 정확히는 스페트로라는 존재가 일으킨 사건을 조사하러 찾아온 제2위의 특급 모험가가 있다."

보이드는 물론이고 루이스조차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나는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눈을 가늘였다.

"경찰이나 검찰을 비롯한 공권력하고도 어느 정도 연결 고리가 있는 사람이야. 이번 전투에서 나와 함께 스페트로와 맞서 싸운 사람인데다가, 나하고도 꽤 친분이 있지."

어디 가서 아는 사이라고 자칭할 정도는 된다. 견습 모험가 시절에 그의 밑에서 어느 정도 지도를 받은 적도 있거니와, 함께 격전을 헤쳐 나간 전우이기도 하니까.

"네가 그런 식으로 비협조적인 태도를 계속 유지한다면, 나는 그 사람하고 별도의 거래를 진행해서 널 다른 교도소에 이감시키게 할 거야."

"그게……, 무슨……?"

"그리고 네가 다른 교도소로 이감되는 길을 습격해서, 너를 납치할 거다."

나는 투명한 유리 앞에 바위처럼 단단히 틀어쥔 주먹을 가져갔다. 그 유리벽 너머에 보이드의 머리가 있다.

"그때는 아무리 네가 난리법석을 떨어도 봐주지 않을 거야.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물리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네 입에서 진실이 나오게 만들 거다."

살짝 웃는다. 나는 어느 정도 여유를 과시하듯이 보이드를 차가운 시선으로 깔아보았다. 보이드도 180 전후의 제법 큰 키이지만, 나보다는 작다. 당연히 앉은 상태에서도 눈높이는 내가 더 높다.

"꼭 그런 귀찮은 방법을 취하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은 많아. 지금 이 자리에서 물러난 뒤, 밤을 틈타 정신 병원의 벽을 부수고 널 납치할 수도 있어. 그 다음에는 똑같지,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물리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네 입을 열게 할 거다."

그리고, 나는 살짝 한숨을 쉰 후.

"네가 말했잖아. 이곳의 보안 설비도 템페스트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고. ……그럼, 그 템페스트를 쓰러트린 우리가 이곳의 설비를 돌파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

"예전의 우리라면 몰라도 지금의 우리에게 이 정도의 설비를 돌파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야. 널 납치해서 물리적인 고통을 주는 것도 간단하단 말이다."

좋지 못한 상상을 한 건지, 보이드의 표정이 팍 찡그려진다.

"내가 그러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여기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괜히 일거리를 더 늘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야. 괜히 공권력의 영역을 침범해서 안 그래도 불안하기 그지없는 치안을 더 망치고 싶지도 않고."

"……아, 그러고 보니 대장이 너한테 말했었던가. 네가 그 힘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 게 우리에게 있어선 큰 행운이었다고."

내 말을 듣고 떠오른 게 있었는지, 루이스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조곤조곤 말했다.

"하긴, 네가 마음 가는대로 힘을 휘두르기 시작하면 이 세상의 규칙 같은 건 순식간에 죄다 박살이 나 버리겠지. 이젠 좀 대장의 말이 이해가 가는데."

나는 루이스를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나도 어지간하면 그런 짓은 잘 하지 않아.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안 하는 건 아니야. 들키지만 않으면 뭐든 해도 되는 게 이 세상의 이치거든."

눈을 잠시 감은 후, 다시 뜬다.

그리고 다시 돌아본 보이드의 얼굴은 눈에 띌 정도로 안색이 나빠진 상태였다.

내가 진심이라는 것을 읽어낸 거겠지.

그 정도 능력은 있는 인간이니까.

"자, 다시 한 번 묻겠다. 검왕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걸 전부 말해."

"……농담이 안 통하는군."

보이드는 시선을 피하면서 자세를 낮췄다. 여전히 시건방진 말투였지만, 명백히 기가 죽은 것이 느껴진다.

"거래는 거래다……. 약속했던대로……, 내가 알고 있는 검왕검에 대한 정보를 넘기도록 하겠다."

* * *

보이드의 이야기는 면회 시간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필요한 내용을 모두 수첩에 기입한 후 자리에서 일어난다.

몸을 돌린 나의 등을 바라보며 보이드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도 참 운 없는 남자로군……. 검왕검에게 선택 받은 것이 하필이면 '저런 남자'일 줄이야……. 적으로 돌릴 상대를 잘못 골랐어……."

솔직히 무슨 소리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린 뒤, 면회실을 나섰다.

심령 제압은 걸어두지 않았다. 물론 보이드의 존재 가치를 무시하거나 그를 얕보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여기에서 다 이유가 있다.

제피로스 정신병원의 정문에는 여전히 마그누스가 서 있었다.

특급 모험가 중에서는 특히 인지도가 높고, 대외적인 평가도 높은 편이라 지나가던 사람들도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사인을 부탁하거나, 악수를 요청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저 멀리서 고개를 숙이는 소년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던 마그누스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선 후, 우리의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아, 용건은 끝났나?"

"네. 끝났습니다. 그리고 대장, 대장한테 말씀드리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오, 그건 뭐지?"

마그누스는 내 말에 뚜렷한 관심을 보였다. 어지간하면 내가 먼저 그에게 말을 경우가 없는 만큼, 그는 나의 말이 상당히 반가운 것 같았다.

"여기에 있는 교도관들이 템페스트의 탈옥을 눈치채지 못한 건, 그가 탈옥한 이후에도 그가 감금되어있는 병실에 분신 술식으로 만들어진 가짜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건 나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 수준의 분신 술식을 가진 실력자의 존재를 상상하기 어려워서 보류 중이었지."

마그누스의 말을 듣고 나는 엄지 손가락으로 내가 지나쳐온 문을 가리켰다. 그가 응? 하고 눈을 깜박거린다.

"그 분신 술식을 시도한 상대가 바로, 제가 지금 만나고 온 범죄자 '보이드'입니다. 심문을 하면 금방 답이 나올 거에요."

"……그렇군. 협력해줘서 고맙다. 바로 조사해보마."

마그누스가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내가 보이드에게 심령 제압을 걸어두지 않고 풀어둔 이유이다.

어차피 마그누스는 순수한 실력만 따져도 템페스트­스페트로에게 뒤지지 않는 실력자이기 때문에 심령 제압을 간파할 가능성도 높았다.

그럴 바에야 트러블을 부를 만한 요소는 미리 배제해두는 편이 낫다.

"아, 그리고 혹시 보이드가 다른 교도소로 이감되거나 하면 그때는 꼭 저희들을 불러주세요. 저희가 보이드를 교도소에 처박은 장본인이니까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 알았다."

마그누스와는 시원하게 이별했다.

나는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드는 마그누스의 모습을 살짝 돌아본 후, 가벼운 한숨 소리와 함께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음, 정신 병원 앞에 대장이 있는 걸 보고 적당히 이야기를 꾸며 본 건데, 은근히 효과적이네. 보이드 그 자식,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겁이 많은데."

루이스가 힘 빠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난 갑자기 네가 그런 말을 하니까 속으로 깜짝 놀랐어. 너라면 몰라도, 대장이 그런 비인도적인 짓에 협력해줄 리가 없잖아."

하지만 보이드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내 블러프에 보기 좋게 넘어가고 말았다.

루이스가 말한 것처럼, 마그누스가 그런 짓에 협력해줄 리가 없다.

애초에 그 사람은 권력과 명성으로 공권력에 개입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다.

내 부탁 몇 마디로, 거래 몇 마디로 멀쩡한 죄수를 다른 교도소로 이감시키는 등의 행위를 저지를 사람이 아니다.

마그누스는 내가 함부로 힘을 휘두르지 않는 게 정말로 큰 행운이라고 말했었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마그누스도 마찬가지다.

그 같은 인간이 사적으로 힘을 휘두르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이 세상에 있어선 참 다행인 일이다.

하지만 보이드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 차이를 이용해서 한 번 찔러볼까 싶었는데 그게 멋드러지게 들어갔다.

"하지만 꼭 그런 식으로 대답을 들어낼 필요는 없었잖아? 심령 제압술의 응용기를 제대로 익힌 뒤에 보이드에게 대답을 들어내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그건 그렇지만 그 기술을 제대로 익힐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것도 시간이 아깝잖아. 그것도 제대로 익히려면 시간이 한참 걸리는데."

그런 차에 우연히 정신병원 앞에서 마주친 마그누스의 얼굴을 보고 "아, 이러면 재미 있겠다" 하는 생각으로 즉석으로 지어낸 거짓말이 조금 전의 그것이다.

생각했던 거에 비하면 무척 쉬운 일이었다.

나는 오른손으로 목을 주무르면서 입꼬리를 씩 올렸다.

"이걸로 검왕검이 제작된 비밀 공방의 위치는 알아냈어. ……일단 그쪽부터 한 번 뒤져보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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