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10. 검왕검에 대하여 (2)
* * *
"……음?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란즈 가주가 문득 루이스의 시선을 눈치채고 눈을 가늘였다. 전사에게 있어 무기는 생명과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그가 루이스의 시선에 신경을 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 별 건 아니고요."
루이스는 란즈 가주의 말을 듣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제가 지금 검이 없어서 일을 못하고 있거든요. 그쪽도 아시다시피 특급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는 무기를 찾는 것부터가 일이잖아요."
"아……, 그 고충은 나도 잘 알지. 온힘을 다하는 특급의 마력을 견뎌낼 수 있는 건 우리도 이 창 하나 뿐이니까."
란즈 가주는 조용히 공감했다.
사실 내가 그의 특급 모험가 잔류를 예상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부분 때문이다.
비록 외팔이가 되어서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마력을 비롯한 전체적인 전투 능력은 여전히 1급 모험가와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다.
같은 특급 모험가의 수준에서 조금 뒤쳐졌을지는 모르지만, 그의 실력은 여전히 1급으로 떨어지기에는 아깝다.
기껏해야 루이스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특급 모험가의 말석으로 내려가는 게 고작일 것이다.
그 정도로 특급과 1급의 차이는 크다.
1급 모험가까지는 그 어떤 무기라도 크게 가리지 않고 쓸 수 있지만, 특급의 영역에 들어가면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공급되는 마력에 견뎌낼 수 있는 무기를 찾아내는 것부터가 큰 일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특급 모험가의 마력이 발하는 출력은 그 아래의 모험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평범한 무기에 루이스가 마력을 싣는다고 치면, 아마 10초도 견뎌내지 못하고 날이 녹아내리고 말 것이다.
초신성을 견뎌내지 못한 루이스의 검이 그랬던 것처럼.
마력으로 무기를 강화하는 것도 무기와 사용자의 수준이 크지 않을 때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지나친 마력은 오히려 무기 자체를 망가트린다.
실력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실력에 걸맞는 무기가 필요하다.
"저 창을 제가 잠시 빌려가도 될까요?"
"음……?"
"제가 예전에 쓰던 것보다는 좋아 보여서요. 한 번 조사해 보고 싶거든요. 저희가 이번 사건으로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 정도도 안 되나요?"
루이스가 사람을 안심시키는 미소를 지으며 란즈 가주를 돌아본다.
하지만, 루이스를 잘 알고 있는 내 눈에는 보인다.
루이스의 얼굴을 얇게 휘어감은 차가운 내숭이.
"……!!"
녀석이 웃는 얼굴로 마력을 방출한 순간, 란즈 가주와 올리비아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원리는 내가 쓰는 심령 제압과 거의 비슷하다. 감정이 실린 마력으로 상대방을 압박해서, 숨도 제대로 못 쉬게 하는 방식이니까.
하지만 나의 그것이 매우 세련된 기술적인 측면이 강한 것과 비교해서, 이쪽은 그저 막대한 마력 그 자체로 찍어누르는 것에 불과하다.
당연히 낭비가 심한 방법이지만, 특급의 수준에서는 사소한 문제이다.
물이 가득 차 있는 수조를 손바닥으로 몇 번 퍼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란즈 가주의 몸이 그 자리에서 쩍 굳었다. 뒤에 서 있던 올리비아는 보이지 않는 압박에 눌려서 허리를 꼿꼿히 펴고 있었다.
양쪽 모두 그 자신의 의지로 벌어진 현상은 아니었다.
고통을 느끼면 반사적으로 몸을 굽히는 것처럼 거칠게 닥쳐오는 마력에 반사적으로 몸이 굳어졌을 뿐.
올리비아는 말할 필요도 없고, 란즈 가주 또한 어느 시점에서 루이스와 실력이 역전된 상태였다. 양팔이 무사한 란즈 가주라도 루이스에게는 이길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왼팔마저 잃어버린 지금의 그에게 승산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루이스의 압박을 견디는 것조차 버겁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농담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인한테서 무기를 내놓으라는 그런 무례한 소리는 안 한다고요."
그들은 루이스가 스스로 힘을 거두고 분위기를 누그러트릴 때까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분위기가 이완된 상태에서도 한참 동안 숨을 고르면서 천천히 컨디션을 회복해나간다.
"그, 그렇군……. 무인으로써, 그것은 아주 당연한 행위지."
"하지만 보이드에 대해서는 전부 말해주셔야 겠어요. 그쪽하고 보이드가 무슨 관계인지는 제 알 바 아니지만 제게 있어서 보이드는 적이거든요. 그것도, 멀쩡하게 잘 지내고 있던 저희들을 갑자기 습격한 아주 나쁜 적."
"……."
루이스가 한쪽 눈을 요염하게 감으며 말했다.
"그쪽이 보이드를 진심으로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은 감싸줘야 하는 때가 아니라 질책해서, 그 사람이 더 이상 못된 짓을 못 저지르도록 막는 게 우정이라고 생각하는데…… 란즈 가주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 *
"아, 재미 있었다."
올리비아의 배웅과 함께 교회를 뒤로 하면서 루이스가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그 후에도 루이스의 짓궂은 장난은 멈추지 않았다. 루이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란즈 가주와 올리비아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루이스는 사람 하나를 작정하고 엿 먹이려고 하면 꽤 지독해진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도 많이 참아준 거다.
평소 같았으면 란즈 가주가 책상 뒤엎고 덤벼들 때까지 실컷 긁어댄 후에 주먹으로 후려팼을걸. 그런 경우와 비교하면 오늘의 루이스는 차라리 조신한 편이었다.
모든 대화가 끝났을 무렵에는 란즈 가주도 올리비아도 사이 좋게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차라리 진짜 창을 빌려오지 그랬어. 어차피 네가 그런다고 해봐야 아무도 뭐라고 못할 텐데."
난 묘하게 개운해보이는 얼굴의 루이스를 돌아보며 장난스럽게 질문했다. 그러자 루이스는 조용히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쓰던 검보다는 좋아 보이지만, 그래도 신아보다는 못해보이던걸. 그다지 흥미 없어."
루이스의 대답은 단호했다.
란즈 가주의 창도 스페트로의 출력을 견뎌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무기였지만, 검왕검을 본 루이스의 눈에는 그조차 영 미덥게 보인 모양이다.
"만약 그때, 내가 초신성의 위력을 완전히 살려서 후려쳤다면…… 그 창도 같이 가루가 되었을 거야. 내가 미숙했던 탓에 위력이 많이 죽었고, 그 덕에 마무리를 확실하게 짓지 못한 거지."
루이스가 다시 입맛을 다신다.
기분이 안 좋아진 것 같다.
"그것보다도……, 나한테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뭐야. 설마 내가 저 인간들에게 좀 모질게 대했다고 그런 건 아니지?"
그거 한 마디 했다고 또 순식간에 기분이 토라진다. 전에도 느꼈지만, 루이스는 스페트로 가문만 엮이면 상당히 감정적으로 변하는 거 같다.
내가 샤를로트를 상당히 아끼는 데다가, 올리비아하고도 친구 사이이니까 그걸 경계하고 있는 거겠지.
심정은 대충 짐작이 간다.
하지만 이건 진짜 오해였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애초에 나도 그 둘에겐 그다지 좋은 감정 없다고. 샤를로트야 그렇다 쳐도, 스페트로 가문이 그 꼴이 된 건 그냥 자업자득이니까."
스페트로 자체는 불가피한 재앙이었다 치더라도 그걸 끝까지 꽁꽁 숨기다가 사건을 이렇게 키운 건 그쪽의 잘못이다.
다 큰 어른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문제를 일으켰고, 그 결과가 이것이다.
그 사건의 뒷수습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꼴을 봐도 "아, 고생하고 있구나" 정도의 생각밖에 없다.
물론 그다지 도와줄 생각도 없고.
내가 올리비아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이제 끝났으니까.
알아서 잘 하겠지 뭐.
"흥, 넌 내 거야. 저쪽에서 아무리 잘 대해주더라도 홀라당 넘어가면 화낼 거라고."
"넌 요새 그 말밖에 안 하더라. 내가 그렇게 못 미덥냐."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그냥 기분 나쁜 거 뿐이야. 내가 열심히 키워놓은 열매를 탐내려는 사람이 있으면 화를 내는 건 당연한 거잖아."
"보통 그 열매 자체한테 화를 내진 않지."
나는 별 생각 없는데 루이스가 혼자서 화를 내니까 솔직히 기분이 좀 이상하다.
화를 내더라도 내가 내야 하는데, 얘가 대신 화를 내버리니까 내가 할 말이 없어진다고.
"아, 됐고…… 보이드는 지금 바로 찾아갈 거야?"
"지금 바로 가야지. 나온 김에 한 번에 끝내버리자."
루이스와 대충 합의한 후 곧바로 제피로스 정신병원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바로 거기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어, 뭐야. 대장, 거기서 뭐 해요?"
"응?"
제피로스 정신병원 앞에 우리가 대장이라고 부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제2위의 특급 모험가, 마그누스.
그는 병원의 경비로 보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의 옆에 다른 경찰들도 서 있는 걸 보면 함께 사건을 조사 중인 것 같다.
마그누스가 내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우리의 얼굴을 본 순간,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진다. 마그누스와는 피차 좋은 감정밖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도 그와의 갑작스런 만남이 싫지는 않았다.
"그 사건 관련으로 조사 중이십니까?"
"그 사건…… 아, 그래. 그 사건 관련으로 조사 중이다."
굳이 스페트로의 이름을 꺼내지 않은 것은 옆에 있는 경비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그누스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나의 질문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려줘. 금방 끝내고 이야기하지."
마그누스는 우리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는 경비와 하던 이야기를 마무리짓고 그를 돌려보냈다. 그 다음에서야 마그누스가 다시 몸을 돌렸다.
"오래 기다리게 했구만. 미안하다, 두 사람 모두."
"괜찮아요. 그런데, 오늘은 어째 옷 차림이……?"
나와 비슷한 정도로 큰 키에 등에 짊어진 대검. 그는 특급 모험가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존재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오늘은 늘 짊어지고 다니던 대검이 보이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입고 있는 옷도 이상하다.
머리에는 경찰 마크가 붙어 있는 모자. 평상복 위에 덧대 입은 전술 조끼에도 경찰 마크가 붙어있다.
왜 이 사람이 경찰처럼 옷을 차려 입고 돌아다니고 있는 거지?
"아, 명예 경찰 그런 건가요."
"그렇지. 나 같은 명성 있는 특급 모험가가 경찰하고 협력하고 있다는 모습만 보여줘도 치안 유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
경찰은 아니지만 경찰처럼 입고 다니면서 업무를 홍보하는, 그런 이유로 옷을 차려 입고 있는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마그누스는 특급 모험가 중에서 대외적으로 제일 멀쩡한 인물이라는 소리를 듣고 사는 사람이니까.
공권력을 휘두르는 경찰의 입장에서 멋대로 힘을 쓰고 다니는 모험가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이지만, 마그누스는 그 중에서도 예외로 치는 인물 중 하나이다.
오히려 경찰이 먼저 협력을 요청할 정도라고 하니까.
감사패도 몇 개 받았던가.
"그리고 이곳에 수감되어 있는 죄수…… 환자 중에는 내가 집어넣은 녀석들도 꽤 되거든. 템페스트도 그렇고."
"하긴, 20년 전의 토벌전에도 참가하셨죠."
그때는 마그누스가 오히려 특급 모험가 중 말석에 위치해 있었다고 들었다. 지금의 나이를 고려하면 대충 그가 삼십 대 초반 정도쯤에 벌어진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여기에 어쩐 일로? 누구 면회라도 하려고?"
"아, 네. 여기에 있는 환자 중에 저희가 집어넣은 놈이 하나 있거든요."
"그래, 그럼 어서 들어가봐라. 난 좀 더 돌아다니면서 템페스트, 아니 스페트로의 탈옥 경위를 조사해야 하니까."
마그누스는 우리의 얘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넘기려는 듯한 기색이었다. 몸을 살짝 옆으로 비켜서 길을 열어준다.
우리를 들여보내고 다시 돌아선 그의 등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탈옥한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걸 생각하면 분신 술식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은가……? 으음, 잘 모르겠구만……"
마그누스의 등을 일별한 뒤, 우리는 면회에 필요한 모든 수속을 끝마친 후 곧바로 보이드를 찾아갔다. 유리벽 너머의 보이드는 여전히 고약한 모습이었다.
흐리멍텅한 눈으로 침을 질질 흘리대는 그의 모습은 참,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꼴을 더 보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는 곧바로 심령 제압술의 해체에 들어갔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나의 앞머리가 살짝 삐죽였다.
"……그어어어……"
심령의 제압이 해제된 후에도 그는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눈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의 정신은 거의 1분에 걸쳐 차차 회복되어 나갔다.
"뭐……, 냐……. 넌 그 애송이……?"
그런데 보이드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놈은 내가 자신의 눈앞에 앉아 있다는 걸 전혀 믿지 못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렇다는 건 설마……, 진짜로 그 괴물을 쓰러트렸다는 건가……?"
아무래도 나의 승리는 보이드에게 있어서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던 것 같다.
그럼 뭐야, 이 자식.
날 엿 먹이려고 일부러 스페트로하고 싸움을 붙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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