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10. 검왕검에 대하여
* * *
"연금술사 선생님, 검왕검의 재질은 아직 불명이죠?"
나는 시선을 돌려서 질문했다. 품이 큰 티셔츠의 아랫단을 조물거리고 있던 연금술사가 고개를 들었다.
"응. 최소한의 구성 요소조차 전혀 파악하지 못한 상태지. 지금까지 온갖 물질을 다뤄왔지만, 솔직히 이런 물질은 난생 처음이야."
전투 기술은 조금 모자란 편이라지만, 온갖 물질을 창성하고 조합하는 분야에 있어 연금술사 만한 사람은 없다.
화학 분야에 있어서는 특급 모험가 수준의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온갖 다양한 기능을 투입한 상태에서도 내구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경이로운 강도. 완벽한 무게 밸런스. 그리고 일정 수준 이하의 손상은 스스로 수복하는 능력까지……. 이런 물질을 만들어낸 사람의 제자로 들어가고 싶어질 정도랄까."
들으면 들을수록 기가 막힌다.
도대체 그 시대에, 뭘 어떤 식으로 하면 이런 물건이 나타날 수가 있는 걸까.
"일단, 자연적으로 나오는 광석이 아니라는 건 틀림없어. 누군가가 인공적으로 조합해낸 물질이야. 그건 확실해."
나도 검왕검을 무조건 의지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당연히,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뜯어보고 있었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눈앞이 깜깜해질 정도로 검왕검의 수준이 높았던 것 뿐.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오히려 힘이 빠질 따름이다.
"으음, 차라리 보이드가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가?"
"그렇겠지."
루이스가 팔짱을 끼고 중얼거렸다. 녀석이 말한 것처럼, 이 시점에서 보이드는 새로운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나도 당연히 그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놈에게서 정보를 뜯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다니고 있었던 거고.
"사실, 나도 원래는 그 보이드의 입을 열기 위해서 지금까지 수행하고 있었던 거란 말이야. 결국 한 번은 보이드에게서 이야기를 들어야 하니까."
보이드는 현재 그 시대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몇 안 되는 생존자이다. 그는 어쩌면 나 이상으로 검왕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진술을 끌어낸다고 쳐도, 어떤 식으로? 좋은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루이스가 미심쩍은 눈초리로 질문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방법이야 많잖아. 보이드를 탈옥시킨 후에 납치해서 고문하는 방법도 있고."
"……."
"하지만 괜히 소동 일으키는 것도 좀 그렇고, 그 과정에서 피해도 크게 발생할 테니까 안 하는 거지.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도 크고."
내가 워낙 무모한 방식으로 싸우다 보니까 자주 오해 받곤 하는데, 사실 나는 그런 무모한 방식을 그다지 선호하는 성격이 아니다. 성과는 조금 적더라도 실패하지 않는 안전한 전술이 좋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런 걸 일일이 따져가면서 싸우면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적이 많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모한 방식으로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던 거다.
보이드의 경우, 꼭 그런 식으로 무모하게 나설 하등의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손 대지 않아도 제피로스 정신병원이 알아서 그를 지켜주고 있으니까.
"전투 의지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쓸 수 있는 심령 제압술이 하나 있어. 그리고 이거의 응용편으로, 심령을 제압한 사람을 심문할 수 있는 기술이 또 별도로 존재하지."
심령 제압술은 무형의 마력으로 상대의 의지를 짓누르는 기술이다. 소위 말하는 '살기로 상대의 움직임을 제압하는 기술'과 같은 계통으로 이해하면 편하다.
그리고 그 응용편으로 존재하는 이 기술은, 심령이 제압될 정도로 나약한 정신 상태의 인간에게만 쓸 수 있는 방법이었다.
심령이 제압된 상태의 인간에게 한층 더 강력한 압박을 가해서 스스로 묻지도 않은 질문에 대답하게 만드는 원리였다.
마치, 지독히 엄한 부친의 앞에서 나약한 어린 아이가 추궁하지도 않은 잘못을 토해내는 것처럼.
"원래는 이걸 써서 보이드에게서 검왕검에 대한 걸 알아낼 생각이었어. 그런데 이것도 상대방의 정신이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게 조작하는 게 은근히 어렵거든. 수련 기간이 어느 정도 필요해."
"하긴, 최근에는 스페트로 때문에 수행할 시간 자체가 없었겠구나."
"그렇지. 초신성을 준비하기 위해서 수련 시간을 있는대로 때려 박았으니까."
그런 이유로, 현 시점에서 당장 그 기술을 쓸 수는 없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는 방법이 꼭 그 기술만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오른손으로 단단하게 굳은 목을 주물거리면서 말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그 기술을 완전히 익힐 때까지 보이드를 내버려두는 것도 좀 그렇고, 그냥 오랜만에 다시 찾아가보지 뭐. 우리가 스페트로를 쓰러트렸다는 소리를 듣고 또 무슨 변화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흑주대천신공이라는 이름도 그 자식한테 들은 거라고 했지?"
"어, 맞아."
"못된 놈은 못된 놈끼리 눈이 맞는다더니. 그 둘도 딱 그 짝이었나보네."
루이스가 툴툴대면서 중얼거린다. 보이드와 스페트로가 서로 아는 사이였다는 건 내게 있어서도 꽤 놀라운 일이었다. 사람은 서로 비슷한 수준끼리 만나게 된다더니, 그 둘이 바로 그 꼴이다.
"하지만 지금은 보이드보다 먼저 란즈 가주부터 찾아가보는 게 좋을 거 같아."
"아, 그 사람도 보이드에게 들어서 검왕검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했었지."
란즈 가주, 란즈 드 스페트로.
내 지인들과도 상당히 깊게 연관되어 있는 남자다.
보이드와도 서로 아는 사이였고, 올리비아가 가지고 있던 검왕검의 단편적인 지식도 모두 그 사람이 출처다.
검왕검에 대해서 알고 있으면서도 보이드와 알고 지내는 사이인 그 남자라면, 보이드를 협박할 수 있거나 그와의 거래에서 유리한 국면을 취할 수 있는 정보를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번 사건으로 내게 큰 빚을 지고 있다.
갑자기 찾아가더라도 전혀 미안할 게 없는 상대였다.
* * *
란즈 가주를 비롯한 스페트로 가문의 본거지는 여기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이지만, 그들은 현재 스페트로와 관련된 사건의 사후 처리 때문에 아직 이 도시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스페트로 가문의 별장은 초신성의 여파에 의해 완전히 소멸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들은 현재 도시 외곽에 있는 어느 폐쇄된 교회를 근거지로 두고 있었다.
스페트로 가문의 재력을 감안하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 정도로 이번 사건이 그들에게 입힌 타격은 심각했다.
위치는 예전에 올리비아에게 들어둔 상태였기 때문에 찾아가는 게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어서오십시오 백신현 님, 루이스 님. 안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존댓말 안 써도 괜찮아."
"아니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오늘은 가주님을 찾아 오신 손님이 아니십니까."
거 참.
올리비아의 대답을 듣고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전히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하는 성격이다.
실력이야 그렇다 쳐도, 올리비아의 이런 태도는 나도 배울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이런 때 보면 확실히 나보다 연상이긴 하다.
나는 현재, 스페트로 가문이 머물고 있는 교회 앞에서 올리비아의 인사를 받고 있었다. 폐쇄된 교회를 도대체 어떤 식으로 수리한 건지, 그 낡은 교회가 지금은 새 것처럼 깔끔하다.
특급 모험가와 1급 모험가가 신체 능력을 십분 활용한 결과가 틀림없었다.
교회 앞에는 올리비아 뿐만 아니라 스페트로 가문의 별장에서 함께 일하던 다른 고용인들도 함께 서 있었다.
그들은 신기하게도 나와 스페트로의 결전이 있기도 전에 모두 별장에서 빠져나간 상태였는데, 고용인들이 무사할 수 있었던 건 나 이전에 스페트로와 맞서 싸웠던 마그누스와 스텔라의 공로였다.
본격적으로 한바탕 싸우기 전에 마그누스는 그들을 모두 내보내달라고 스페트로에게 요구했고, 무인 기질이 있는 스페트로가 그것을 허락하면서 전원이 별장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곳에 있는 고용인들은 별장까지 따라올 정도로 근속 일수가 꽤 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함부로 경찰에게 신고를 하는 등의 행위가 오히려 스페트로 가문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건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다가 올리비아의 호출에 맞춰 다시 이곳에 모이게 되었다.
스페트로 가문의 사람들에게선 단순한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가 아닌, 좀 더 깊고 진한 느낌이 풍겼다.
"다들 정예네. 다들 실력이 꽤 있어 보여."
"주변 감시를 맡고 있는 고용인들은 3급 이상의 뛰어난 실력자입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등급이 전부는 아닙니다만."
올리비아는 루이스의 말에 가볍게 대답한 뒤, 나를 살짝 돌아보았다.
녀석은 눈에 보이는 수치만으로 나를 얕보았다가 된통 당한 경험이 있다. 경험이 묻어나오는 절절한 시선이었다.
깔끔하게 청소된 교회 내부에는 샤를로트가 없었다. 벌써 수녀원으로 들어간 걸까.
물론 샤를로트를 최대한 빠르게 안전한 장소로 보내야 한다는 그 생각은 이해하지만, 그런 심각한 사건이 있었던 직후인데 조금 더 가까이에서 상처를 보듬어줄 수는 없었을까?
란즈 가주에게 있어, 샤를로트는 도대체 뭘까.
"가주님. 손님을 모셔왔습니다."
그는 현재, 신부가 사용하는 개인실에 틀어 박혀 있었다.
의자에 앉은 상태로 범상치 않은 두께의 종이를 하나씩 마구 써내려가고 있다. 특급 모험가의 신체 능력을 십분 발휘한 동작이기 때문에 손이 움직이는 잔상이 보일 지경이었다.
"……아."
란즈 가주가 글씨를 써내려 가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현재의 그는 왼팔을 잃어버린 외팔이였다. 그의 몸을 차지하고 있던 스페트로를 쓰러트리는 과정에서 꽂힌 초신성이 남긴 흔적이다.
이외에도 왼쪽 반신 전체에 걸쳐 크고 작은 화상 자국이 남아 있다. 그의 몸에 남아있는 상처 대부분이 초신성에 의해 발생한 것이었다.
원래라면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 재활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도 병원에서 조금 일찍 퇴원해서 사건의 사후 처리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랜만일세. 서로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건…… 거의 한 달 만인가?"
"그렇습니다. 그 뒤로는 쭉 그쪽이 몸을 빼앗긴 상태였으니까요."
"면목이 없군……."
란즈 가주가 쓰게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이야기가 듣고 싶나? 자네들은 내게 있어서도 큰 은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력할 것을 약속하지."
"일단 보이드에 대해서 알고 계신 것을 모두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
한편, 내 옆에 앉은 루이스는 란즈 가주가 아니라 전혀 다른 것을 향해 시선을 돌린 상태였다.
란즈 가주의 등 뒤에 거치된 그의 창을 노려보고 있다.
날카로운 눈으로.
조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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