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69화 (69/287)

〈 69화 〉 9. 성욕의 연금술사 (3)

* * *

진짜, 대단한 사람이다.

나도 차마 속으로만 생각하고 실제로 입에 담지도 않았던 건데, 그걸 자기 입으로 말하고 계시네.

여자는 나이를 먹으면 오히려 성욕이 증가한다던데, 이 사람도 그런 과인가. 아니, 하지만 이 사람의 신체 나이는 딱 20살 전후. 호르몬 상태 같은 것도 그때와 비교해서 하나도 달라진 게 없을 텐데.

도대체 어디에서 이런 성욕이 나오는 거야.

한 번 이쪽에 눈을 뜨니까 진짜 장난 아니네, 이 인간.

"……아, 그러고 보니까 그러네요. 그런 용도로도 쓸 수 있겠다."

나를 더 환장하게 만드는 건 옆에서 듣고 있던 백신아의 반응이다.

아니, 얘는 또 왜 이래.

나는 당연히 얘가 대경하며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건 진짜 예상 밖의 반응이다.

"백신아, 너는 화도 안 나냐? 네 소중한 공간을 그런 용도로 쓰겠다는데."

솔직히 '일상'의 공간과 '투쟁'의 공간을 분리해서 생활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 보면, 이건 뭔가 소중한 영역을 침범 당한 느낌이라서 기분이 좀 그런데 말야.

"신현이 너는 이게 화가 나는 거야?"

"검주께선 그런 기분이세요?"

어라, 뭐야. 혹시 여기에선 내가 소수파?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조금 당황스럽다. 괴짜인 연금술사야 그렇다 쳐도 백신아는 틀림없이 나와 같은 의견일거라고 생각했었는데.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 공간은 쓰임새가 많은 곳이잖아. 물론 풍경이 너무 건조해서 오래 있으면 정신 건강에는 안 좋을 거 같지만……, 여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현실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시간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으니까."

연금술사가 오른손으로 손가락을 퉁긴다. 바로 그 다음 순간, 그녀의 손에는 이미 검은 분필이 쥐어져 있었다.

"너처럼 극적인 단련은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나 같은 마법사의 경우 여기에서 평소에는 길고 시간이 오래 걸려서 쓰기 어려운 마법식을 연습할 수도 있겠지. 내 입장에서 보면 끝 없이 뻗어 있는 화이트 보드가 생긴 거나 마찬가지니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연금술사가 검은색 분필로 바닥에 선을 죽죽 긋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무리 큰 피해를 입어도 원상복구되는 그 특성상 실수하면 대형사고가 터질 수 있는 마법을 연습할 수 있는 시험대도 될 수 있을 테고."

"아, 하지만 현실하고는 조건이 조금 차이가 있으니까, 그 부분은 좀 염두해두셔야 해요. 아무리 현실처럼 보여도 이곳은 가상 세계. 물리법칙의 차이가 사알짝 있긴 하거든요."

연금술사의 의견을 백신아가 옆에서 보충했다. 나야 이곳에서 질리도록 수행해온 덕에 잘 알고 있는 문제지만, 연금술사가 여기에서 얻은 성과를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하려다 실수라도 저지르면 곤란하니까.

"그럼 바깥에서는 신현이를 시켜서 도움을 좀 받으면 되겠네. 어지간한 대형사고는 네 선에서 커버해줄 수 있잖아."

"뭐, 그건 그런데요."

발동에 실패한 마법은 대부분 폭발로 이어진다. 하지만 내 실력이라면 어지간한 수준의 사고는 피해가 커지기 전에 검술로 제압할 수 있다.

천변무궁류의 특성은 대부분 마법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대기 중의 마력에 간섭할 수 있다는 건, 당연히 마법에도 검술로 간섭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뭐, 아무튼…… 신아 너는 여기를 그런 용도로 써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뜻이지?"

"네네. 어차피 전 제 주인의 쾌적한 생활과 실력 상승을 위해서 개발된 검인걸요. 쓸 수 있으면 부모 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게 세상 이치인데, 겨우 그 정도 가지고 뭐라고 하진 않는다구용."

백신아는 웃는 얼굴로 설레설레 손을 흔들었다.

정작 네 주인은 지금 수치심 때문에 속이 뒤집어질 상황인데, 그런 요소는 하나도 고려를 안 해주는 건가.

"그리고 실리적 측면에서 도움도 많이 되잖아. 현실에서는 한 번 했다 치면 후유증 때문에 며칠은 침대에서 못 일어나는 데다가, 이불 빨고 몸 씻고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걸."

"그건 선생님만 그렇죠. 전 아무리 해도 멀쩡한데요."

"그건 네가 이상한 애라서 그렇고."

연금술사가 손을 뻗어서 내 옆구리를 살짝 비틀어 꼬집었다. 아프지는 않은데, 살짝 따끔했다.

"아예 안 한다는 선택지는 없죠?"

"늘 그런 식으로 말하면서, 일단 시작하고 나면 네가 제일 적극적인 건 자각하고 있지? 안 그런 척 하면서도 은근히 밝히는 백신현 씨?"

……부정할 수 없는 게 뼈아프다.

"네 나름대로 분위기를 잡고 싶어서 그러는 건 잘 알겠지만, 그렇다고 행위를 안 하고 마구 쌓아두는 게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건 너도 알고 있잖아. 남녀 사이의 행위로만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화학 반응도 있고."

"가상 세계에서 그런 게 가능할까요?"

"그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 여기에서 하고 난 다음에 일어나면 뭔가 개운한 느낌은 들지 않을까? 그러니까 일단 해보자는 거야. 너도 여기에서 수련만 계속 하면 많이 질릴 거잖아."

수행을 하면서 질린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대답해도 안 믿어 주겠지. 이건 연금술사와 나의 감성 차이다.

"그리고, 일단 흥미로운 일이 눈에 들어오면 시도하고 보는 게 학자의 정신이거든. 그러니까 너도 순순히, 이 실험에 협력해줬으면 좋겠는데."

"……차라리 바깥에서 하는 거라면 모를까, 저 녀석 앞에서 세우기는 좀 어려운데요."

나는 연금술사로부터 애써 시선을 피하며 백신아를 돌아봤다. 녀석은 이미 팝콘과 콜라가 필요한 얼굴로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부끄러움 따위는 추호도 느끼지 못하는 듯한 얼굴. 강적 앞에서 흥분할 때마다 보여주는 바로 그 표정이다.

"아, 전 신경 쓰지 마세요. 구경만 할게요. 정 그렇게 불편하시면 제가 잠시 이 공간에서 살짝 모습을 숨길 수도 있고요."

"그렇게 해 봐야 어차피 네 눈에는 보일 거잖아."

"하지만 제가 보고 있다는 걸 의식하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차이는 꽤 크지 않을까요? 자자, 검주도 신경 쓰지 마시고."

백신아는 손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새하얀 공간 속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하지만 사라진 건 겉모습 뿐이다. 녀석의 시선은 이 가상 공간 전체에 걸쳐 쫙 깔려 있으니까.

머리 위에서 백신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어차피, 평소에도 절 옆방에 놔두고 잘만 하셨잖아요. 모습이야 안 보인다 쳐도, 소리는 다 샜는데 뭘. 이제 와서 그런 거 따지는 것도 좀 이상하다구용.」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백신아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저게 진짜……, 나중에 진짜 걷어차버릴까.

"신아는 바깥에서 볼 때와 거의 차이가 없는 걸. 내가 상상하던 그대로의 얼굴과, 태도였어. 사람이 제작한 가상 인격이 저 정도로 높은 수준의 사고 능력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명공 루키우스의 솜씨일까?"

연금술사는 전투용 복식 그대로 행위에 들어갈 생각인건지, 삐뚤어진 베레모를 도로 고쳐쓴 후, 내 손을 살짝 쥐었다.

"어느 정도 정세가 안정된 후에는 그 루키우스가 살던 곳에 찾아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저 아이도 자기가 만들어진 고향에 가면 뭔가 새로 떠오르는 게 있을지도 모르고."

"아, 제 주변 상황이 좀 안정되고 나면 그럴 생각이에요. 전 그 녀석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으니까요."

원래는 보이드에게 수를 써서 정보를 좀 뜯어낸 다음에 움직일 생각이었는데, 스페트로 건 때문에 이것저것 정신이 없어져서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했다. 그게 안 되니까 다른 일정도 줄줄이 딜레이되고……, 하여튼 정신이 좀 없는 상태다.

"……지금의 행위도 그 아이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는데 일조할 수 있을까?"

"이게요?"

"응. 인간의 성교는 수많은 화학반응을 연쇄적으로 일으키는 작용이니까 말이야. 지금까지 네 수행만 지켜보던 그 아이의 입장에서는, 이걸 보여주는 것도 꽤 신기한 경험이 될 수 있겠지."

"설마요."

이거 가지고 새로운 기능이 해금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분위기가 깰 거 같다.

애초에 성교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다니, 무슨 성 도착증도 아니고.

지극히 평범한 수준의 성벽과 성욕을 가지고 있는 내 입장에서 보면 실로 충격적인 일이다.

"그래, 그렇게 말해봐야 일단 시작하면 네가 더 적극적으로 나올 거라는 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어."

연금술사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무시했다.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라서 반박할 방법도 없다. 요 근래 들어 내가 얼마나 성욕에 휩쓸리기 쉬운 성격인지를 뼈저리게 느낀 참이다.

하지만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오히려 내 나이에 이 정도로 해대는 건 오히려 건전한 성생활이라고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나이에 비해서 경험이 늦은 탓에 쓸데없는 결벽 의식 같은 게 있는 듯한 느낌도 있다.

그리고 연금술사가 말한 것처럼 일단 시작하면 내쪽에서 더 적극적인 것도 사실이니까.

……아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백신아가 떡하니 보고 있는 걸 알면서도 이러는 건 진짜 말이 안 되는 거 같은데?

잘못하면 순식간에 인간성의 밑바닥을 찍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내가 나름대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던 그때, 머릿속에서 백신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검주, 있잖아요. 검주.」

"어, 갑자기 왜?"

「일단 잠시 나와보셔야 할 거 같아요. 손님이 오신 거 같은데.」

"알았어."

아, 나는 이 상황을 자연스럽게 빠져 나갈 수 있는 핑곗거리가 생긴 것에 내심 기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모처럼 재미를 볼 수 있었는데, 도대체 누굴까. 금방 용건만 끝내고 돌아가줬으면 좋겠네."

연금술사는 노골적으로 실망한 기색. 하지만 손님이 온 상태에서 이러는 것도 좀 이상한 일이다. 나와 연금술사는 서로 손을 마주 잡은 후, 고개를 들고 이 가상 공간에서 빠져나가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나와 연금술사의 의식은 내가 새로 이사한 집으로 돌아온 상황이었다. 우리는 같은 침대 위에서 서로 손을 잡고 누워 있었다.

가상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바로 이것이다, 백신아와 어느 정도 가까운 거리를 유지한 상황에서, 나의 육체와 접촉하고 있을 것.

이상의 조건을 만족하면 검왕검 내부의 가상 공간으로 의식을 이동시킬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 나의 마력을 일정 수치 이상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마치 채를 써서 물속에 섞인 불순물을 걸러내는 것처럼, 검왕검에 등록된 나 자신의 마력이 출입증이 되어서 나 이외의 다른 사용자를 가상 공간으로 불러들이는 방식이다.

연금술사와는 이것보다 훨씬 더 부끄러운 일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마주보니까 조금 어색하다. 나 혼자서 쓰기에는 조금 넓은 사이즈의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후, 새로 이사한 집의 현관으로 나간다.

아직 일어난 직후이기 때문인지 연금술사는 아직 몽롱한 얼굴로 침대에 몸을 반쯤 눕힌 상태였다.

"뭐야, 자고 있었어? 머리가 좀 산발이네."

"자고 있었던 건 아니고, 검왕검 안쪽에 잠시 들어가 있었지."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건 늦은 밤에 여기까지 찾아온 루이스의 모습이었다. 나와는 다르게 이것저것 스페트로 가문 관련으로 처리해야 하는 문제가 많아서 눈코뜰 세 없이 바쁜 녀석인데, 그 와중에도 짬을 내서 나를 찾아온 모양이다.

오른손에는 바구니가 하나 들려 있다. 집들이 선물일까?

"아, 그래? 그럼 마침 잘 됐네."

"잘 됐다니, 무슨 소리야?"

루이스는 가지고 온 바구니를 내게 건넨 후, 집 안쪽으로 허락도 없이 들어왔다. 그러다가 침대에 반쯤 누워있는 상태였던 연금술사를 보고 표정이 어색해졌다.

"……아, 내가 혹시 눈치 없이 찾아온 거야? 냉큼 돌아갈까?"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수행하려고 같이 검왕검 안에 들어가 있었던 거라고."

"진짜로? 하지만 너하고 연금술사 선생님이 같이 있다 치면, 열에 아홉은 그 짓이잖아."

루이스는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 손가락을 끼우며 뻔뻔하게 대답했다.

저딴 제스쳐는 어디에서 배워 온 거야.

"하지만 내가 방해한 게 아니라면, 잘 됐네. 어차피 나도 검왕검 안에서 수행하려고 온 거거든."

"현실에서 안 하고?"

"다른 건 현실에서 해도 되지만. 신아하고 싸울 수 있는 건 가상 공간 뿐이잖아. 이왕 수행할 거면 어마어마한 강적하고 붙어야 흥이 나는 법이지."

루이스는 손바닥에 반대쪽 주먹을 팡 소리가 나게 부딪치며 흉악하게 웃었다. 솔직히 얘는 가끔씩 사람이 아니라 인간의 형태를 한 육식 동물 같아서 무서워질 때가 있다.

"……아, 누군가 했더니 루이스였구나."

"네네, 저 왔어요 저."

연금술사도 이제야 루이스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살랑살랑 손을 흔들었다.

세 명이서 눕기에는 조금 좁아 보이는 침대의 시트를 가볍게 어루만지며 연금술사가 소리 없이 웃었다.

"그럼……, 너도 온 김에 세 사람이서 해버릴까."

"……?"

나는 물론이고 루이스도 처음 들어보는 말에 눈을 깜박거렸다.

세 사람?

수행을 말하는 건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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