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9. 성욕의 연금술사
* * *
들은 적은 있다.
현 3위의 특급 모험가 스텔라와 연금술사는 한때 같은 곳에서 수학하던 동기였다고.
연금술사 자신이 그때 일을 그다지 중요치 않게 생각하기 때문에, 나도 어디까지나 지나가던 식으로 듣게 된 거 뿐이지만.
"아이샤, 아이샤 맞죠? 신현 씨의 인간 관계에 조사하던 중 당신의 이름이 나와서 많이 놀랐었습니다."
역시 조사를 한 건가.
하지만 연금술사가 루이스와도 지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의 말은 조금 특이하게 해석할 수 있다.
루이스가 특급 모험가의 말석에 섰을 때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제3위의 특급 모험가가, 내 존재에 주목하고 조사를 시작했다는 뜻이 되니까.
"……."
옆에 서 있는 루이스의 기색이 심상찮다. 그 말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한 모양이다.
"오랜만이야. 스텔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연금술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선다. 스텔라가 내민 손을 가볍게 마주잡으면서 살짝 웃는다.
10점 만점에 11점을 줘도 모자랄 만큼 완벽한 웃는 얼굴이지만, 그녀의 진짜 성격을 알고 있는 나는 그것이 연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팔뚝에 살짝 닭살이 돋았다.
"졸업 이후로 소식이 끊어져서 많이 걱정했었어요. 아이샤의 실력이면 어딜 가도 잘 살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긴 했지만."
스텔라……, 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아는 게 없어서 뭐라고 말은 못 하겠지만.
이쪽도 뭔가 느낌이 이상한데?
서로 가볍게 인삿말을 주고 받은 거 아니었나? 왜 자꾸 둘 사이에서 열기가 느껴지지?
혹시 이 두 사람……, 사이가 안 좋나?
"그런데……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이번에는 이쪽을 본다. 나도 이 여자에게 그다지 좋은 감정은 없어서 표정을 굳힌 상태로 시선을 맞춘다. 어쩌다보니 이전 싸움에서 이 여자를 구해주긴 했지만, 솔직히 마그누스야 그렇다 쳐도 이 여자에겐 별 관심이 없었다.
"당신에겐 이번에 신세를 좀 진 거 같네요. 추후, 어떤 형태로라도 보답은 꼭 하겠습니다."
"아뇨, 필요없습니다. 그런 걸 바라고 한 일도 아니고."
이 여자하고는 첫 인상부터가 최악이라, 할 수 있으면 두 번 다시 엮이고 싶지 않은 기분이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보답을 하지 않는 것도 저로써는 마음이 많이 아픈 일입니다.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꼭 보답을 하고 싶습니다."
내 대답은 들을 생각이 없다는 듯, 스텔라는 막무가내로 쏘아붙인 후 다시 연금술사를 돌아봤다.
"백신현 씨는 매우 능력 있는 분 같았습니다. 루이스 씨도 역대 특급 모험가 중에서 최연소의 나이로 자격을 획득한 실력 있는 인재지요. ……이런 분들을 지인으로 두고 있다니, 아이샤도 참 인복이 좋은 걸요."
스텔라의 시선이 나와 루이스를 차례로 훑고 지나간다.
아, 지금 말은 진심인 거 같다.
"그건 맞아. 내겐 좀 과분할 정도로 실력 있고, 착한 아이들이지. 이런 시골에서 이런 아이들하고 만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었거든."
연금술사는 나와 루이스를 좌우에 두고 있었다. 손을 뻗어서 나와 루이스의 팔에 하나씩 팔을 건다.
그녀가 삐죽 혀를 내밀었다.
"그러니까, 이 아이들에게 수작을 걸 생각이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생명의 은인에게까지 그런 짓을 하지는 않아요."
"글쎄, 그건 그때가 되어 봐야 알 수 있겠지."
연금술사는 스텔라의 말을 그다지 신용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거기다가, 아직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아이들을 빼가려고 해도 헛수고야."
"빼갈 생각 없다니까요……."
스텔라는 농담이라도 듣고 있다는 양 조용히 대답했지만, 연금술사는 여전히 스텔라의 말을 불신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짝 내쪽으로 다가와서 붙었다. 그리고 스텔라더러 보라는 듯 입을 열었다.
"너도 눈이 있으면 알겠지만, 나와 신현이의 코어에 깃든 마력의 형질은 서로 완전히 동일해. 이게 무슨 뜻인지, 너 정도의 실력자라면 알 수 있겠지."
"그게 무슨……?"
연금술사의 질문에 스텔라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찌푸렸지만, 그것도 한 순간이었다.
조금 전의 눈을 찌푸리는 그 행동이 나와 연금술사의 코어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나보다.
그렇다면 아마 스텔라의 눈에도 보이고 있겠지.
적과 녹, 서로 다른 색채의 마력이 정확히 1 : 1의 비율로 혼합되어 있는 우리 두 사람의 마력이.
"……어, 그러니까. 아이샤……, 설마?"
"너도 알고 있다시피 성교로 마력을 혼합하는 건 비교적 상투적인 수법이지만…… 이 정도로 서로의 마력이 일대일의 비율로 섞이기 위해서는 상당히 오랜 시간에 걸쳐, 그리고 상당히 자주 몸을 섞는 방법밖에 없어. 못해도 수십 회에서 수백 회 정도는 필요하겠지."
……이건 어디까지나 여담이지만, 나와 연금술사의 마력 비율이 정확히 일대일이 된 건 서로 처음으로 몸을 섞은 이후 보름 정도가 지나서였다.
좀 지나치게 해댔다는 자각은 있다.
음, 자각은.
연금술사가 내 손을 안쪽으로 꾸욱 꾸욱 잡아당기면서 살짝 웃었다.
"뭐, 대충 '그런' 거니까. 알고 있으라고 해두는 말이야. 어차피 우리 애들 빼갈 생각 없으면 알아도 별 문제 없잖아."
"……아, 그렇군요. 그, 그런 거군요."
스텔라의 페이스가 무너졌다. 연금술사가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곤 전혀 생각치도 못한 얼굴이었다.
나도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았지만, 연금술사는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
"회동은 취소되었지만, 몸이 다 낫기 전까지는 여기에 있을 거라고 했지? 여기도 보다 보면 괜찮은 동네야. 천천히 돌아보면, 볼 게 많을 거야."
"……아."
연금술사는 스텔라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우리를 재촉했다.
루이스는 이래도 되는 건가, 하고 고민에 빠진 얼굴이었지만 사실 우리 입장에서도 스텔라는 그다지 달가운 상대가 아니었다.
반쯤 스스로의 의지로 연금술사의 손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 * *
장소를 바꾸어, 병원의 옥상.
아직 환자의 신분이라 함부로 병원을 빠져 나갈 수 없는 입장인 나와 루이스는 옥상에서 굳은 몸을 풀고 있었다.
병원에도 재활치료실이라는 명목으로 트레이닝 기구 따위가 갖춰져 있는 공간이 있지만, 거기는 지금 마그누스가 기구를 죄다 망가트린 바람에 할 수 있는 운동이 없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여기가 낫지. 아무것도 없는 옥상에선 기구가 부서질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되니까.
"사이가 안 좋은가봐요?"
"뭐가?"
검을 뽑아서 품세 따위를 연속해서 취하고 있던 도중, 조금 전의 일이 갑자기 떠올랐다.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구경 중이던 연금술사에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이 그렇게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엿 먹이려는 건 거의 처음 보는 거 같은데요."
"듣고 보니까 그런 거 같기도."
그 말을 듣고 이번에는 루이스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성격이면 어지간한 사람은 그냥 벌레 보듯이 쳐다볼 텐데, 오늘은 묘하게 행동거지에 감정이 실려 있었죠? 스텔라하고 동기라고 하셨는데, 그때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에요?"
"그럴 리가 없잖아."
하지만 연금술사는 우리 두 사람의 질문을 새침하게 외면했다. 물론 우리 두 사람은 그런 그녀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 들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대한다는 게 잘못된 것도 아닌데 왜 이러실까.
연금술사는 부정하고 싶어하는 것 같지만 그게 오히려 역효과라는 걸 그녀는 알아야 한다.
오히려 그런 식으로 나오니까 더 수상한 거라고.
"그런 거, 진짜 아냐. 그냥 너희들이 비무에서 그 녀석한테 엿을 먹을 뻔 했다길래 나도 조금 갚아준 것뿐."
"그것도 선생님 답지 않은데요. 남의 원한을 대신 갚아주는 성격은 아니잖아요. 저한테도 '늘 도와줄 수는 있는데, 원한은 알아서 풀어'라고 말하고 다녔으면서."
"하지만 그때, 갑자기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른 걸 어떡해. 미리 합을 맞추고 진행하면 재미 없잖아."
좋은 핑계이긴 하다.
비무에서 본색을 드러낸 스페트로에게 서로 사이 좋게 흠씬 두들겨 맞은 후 퇴장하던 우리를 향해, 스텔라는 수상힌 짓을 저지르려고 했으니까.
마그누스의 추측에 의하면 네게 부당한 빚을 짊어지게 해서 제어 아래에 놓을 생각이었다고 하던데, 나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어쩌다보니 생명을 구해주는 형태가 되었을 뿐, 솔직히 스텔라가 그 자리에서 죽어도 크게 신경 쓰진 않았을 거다.
"내가 너희만한 나이에 '그것'하고 이것저것 일이 있었던 건 맞지만, 그게 언제적 일인데 아직까지 질질 끌고 있겠어. 이제 와선 별 감정 없다니까."
진짜로 그럴까?
물론 평범한 사람이라면 원한을 잊어버리고도 남을 정도의 세월이 흐르기는 했겠지만, 연금술사는 워낙 평범한 사람하고 감성이 다르니까.
마음 같아서는 연금술사를 살살 달래서 그때 있었던 일을 좀 알아보고 싶지만, 아무래도 그녀에게서 이야기를 듣기 까진 꽤 시간이 필요할 거 같다.
일단은 잠시 물러날까.
"알았어요. 이야기 하기 싫으면, 이 이야기는 잠시 넘겨두죠."
"그런 거 아니라니까.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
연금술사가 콧김을 씨근거렸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연금술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꽤 바보 같은 인간일 것이다.
뭐, 본인이 이야기 하기 싫다면 됐다. 다음에 살살 달래서 들어보자.
"그건 그렇다 치고요, 사실 선생님에게 좀 상담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상담? 나한테?"
"네, 이번에 이사를 좀 하려고 하는데, 괜찮은 곳이 있을지 좀 추천 받고 싶어서요."
「이사요?」
말은 연금술사한테 했는데, 내 손에 들려 있는 녀석이 먼저 소리를 질렀다. 옥상에 다른 사람이 없으니 망정이지, 얘는 또 왜 다 들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저한테는 지금까지 그런 말 한 번도 안 하셨잖아요?」
"나도 지금 막 떠오른 생각이라서 그래."
진짜로.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네가 어린애도 아니고 이사하는 거 가지고 나한테 조언을 구하는 건 좀 이상한데……? 아니다, 혹시 나한테 그런 걸 묻는다는 건……"
아직 별 말도 안 했는데 연금술사는 벌써 내 의도를 다 파악한 얼굴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네, 선생님네 공방 근처로 좀 이사할 생각이라서요."
"……왜?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사람이 없어서 조용한 걸 빼면 그다지 메리트는 없는 동네인데. 입지 조건도 나쁘고."
연금술사에겐 오히려 그런 조건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아왔지만, 내 입장에선 조금 다르다. 입지 조건이 나쁘다는 건 보통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어려운 부분이니까.
"이번 건으로 제 얼굴이 너무 알려졌잖아요. 스텔라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벌써 제 주변 상황을 조사하는 놈들도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고요."
"전투 능력이야 그렇다 쳐도, 기반이 너무 없으니까 그런 거지."
옆에 앉은 루이스가 끌끌 혀를 찼다.
"대장이 영향력으로 막아준다고 해도 한계는 있을 거고."
"물론 제 진짜 실력이 기존의 특급 모험가를 모두 능가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겠지만, 그게 아니라는 건 여기에 있는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잖아요."
냉정하게 따졌을 때, 백신아를 제외한 나의 전투 능력은 특급 모험가 끝자락에 간신히 걸려 있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 정도만 해도 보통 실력은 아니라는 소리를 듣겠지만, 지금의 내게 쏟아지고 있는 관심의 농도를 생각하면 솔직히 아직 부족한다고 본다.
그들의 시선을 빼앗은 건 나의 능력이 아니라, 백신아의 능력이니까.
마그누스에게 최대한 내 존재를 뭉게 달라고 부탁한 이유도 이와 같았다.
내가 홀몸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내게 쏟아지는 관심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내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도 좋지 못한 영향이 쏟아질 가능성이 있다.
루이스는 알아서 하겠지만, 연금술사가 문제다.
순수한 전투 능력만 따졌을 때 그녀는 올리비아에게도 미치지 못하니까.
"그래서 내 공방 근처로 이사를 오겠다는 거구나. 가까운 곳에서 날 체크 하려고."
"그런 거죠."
연금술사에게는 무척 실례가 되는 일이겠지, 그건 나도 안다.
나도 내가 루이스의 약점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었으니까.
"……으음."
그때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연금술사도 조금 기분이 나빠진 것 같았다. 나하고 연금술사의 나이 차이를 고려하면 이보다 더한 굴욕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연금술사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감정적인 선택을 잠시 접어두고, 실리를 취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눈매가 살짝 더러워지고, 입술도 살짝 삐뚤어졌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납득시킨 듯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하긴 조금 뭣하지만, 네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 이게 꼬우면 내가 강해지면 될 일이고."
그녀는 언젠가 내게 했던 말을 스스로에게 했다.
그녀의 말이 맞다.
지금의 처지가 억울하고 분하면, 그런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될 만큼 강해지면 될 일이다.
실제로 나는 루이스에게는 아무런 말도 할 생각이 없었다.
루이스는 나보다 더 강하니까.
상황을 얼추 정리한 연금술사는 내쪽으로 다가와서 팔을 높이 뻗었다. 그리고 내 정수리 언저리를 손끝으로 쓰다듬기 시작했다.
까치발을 한 채, 손끝을 부들부들 떨어가면서.
"그리고, 모처럼 네가 그런 기특한 말을 해줬는데…… 그걸 무시하는 것도 어른으로써의 도리가 아니겠지."
연금술사의 반응이 생각보다 괜찮은 걸 보고 난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때 난 그녀에게 이런 식의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등 뒤에서 마구 박히면서 컹컹 울어 대는 건 신경도 안 쓰던 사람이, 왜 겨우 이런 거 가지고 유난이냐고.
입 밖으로 내면 맞겠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