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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65화 (65/287)

〈 65화 〉 8. 나와 검주의 어사일럼(Asylum) (14)

* * *

"……음, 이걸 씌우고 할 수는 없겠지……. 틀림없이, 하던 도중에 빠져버릴 거 같아."

고무를 하나 더 꺼내서, 내 것과 비교하듯이 바라본다. 하지만 조금 전에 그랬던 것처럼, 내 것을 뿌리까지 덮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상태로는 행위 도중에 빠져버리거나 찢어질 가능성이 있다. 연금술사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신 후 알약으로 된 피임약을 복용했다.

"뭐가 그렇게 아쉬운 거에요?"

"모처럼 만들었는데, 제대로 쓸 기회가 없잖아. 그게 좀 아쉬워."

나는 연금술사가 아니라서 그녀의 심정에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지만,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다.

무인인 내 시점으로 표현하면 열심히 노력해서 습득한 기술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전투가 끝나는 상황과 비슷한 느낌이겠지.

'이 기술로 이기고 싶다', '이 기술로 마무리하고 싶다', 나라고 그런 욕구를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

그러한 마음가짐 자체가 미숙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피임약을 복용한 후, 연금술사가 그 자리에서 몸을 빙글 돌렸다. 다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는 구도가 되었다.

그녀가 속옷을 옆으로 비켜놓고 음란한 구멍을 검지와 중지로 벌렸다. 매우 점성이 높은, 꿀처럼 번들거리는 액체가 길게 아래로 늘어지면서 내 음경을 적셔 나간다.

"후……, 후……"

자리에서 일어선 채로 다리를 굽히면서 내 것과 보짓살의 위치를 여러 번 조정한 후, 귀두 부분만 천천히 삽입해나간다.

"후……, 윽……"

귀두가 삼켜진 순간, 어마어마한 힘으로 조여진다. 언제나 이때가 힘들었다. 그녀의 몸은 언제나 처음 같았다.

그 상태에서 연금술사는 체중과 힘을 실어서 조금씩 내 것을 깊은 곳까지 삼켜 나간다. 그러다 턱, 하고 끝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이것이 그녀의 끝. 더 들어가서는 안 되는 가장 소중한 장소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꾸욱 하고 부드럽게 들어갔다. 지금까지와 비교해서 명백히 차이가 발생했다.

"선생님……?"

"항상 낑낑거리면서 삽입하는 것도 좀 웃기는 그림이기도 하고…… 흐응, 그래서 뭐, '안쪽'을 조금 손 본 거야…… 극, 네 것…… 에 맞는 형태가 되게……"

호흡이 불편한지 연금술사의 발음이 여러 번 샜다. 쿡, 콜록, 하면서 기침도 꽤 나왔다. 얼굴이나 호흡은 오히려 과식하다 체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와중에 속으로 들어갔던 정액이 다시 올라오려고 했던 것 같다. 연금술사는 급히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후, 꾸윽, 끄윽, 소리를 내면서 올라온 내용물을 다시 잘근잘근 씹어서 집어 삼켰다.

그녀의 몸은 서로 연결된 부분을 시작으로 상당히 높은 위치까지 부풀어 있었다. 새까만 원피스 위로 그 위치가 도드라져보인다.

호기심에 손을 뻗어서 살짝 만져보자, 쿵쿵 거리면서 맥동하는 음경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까지 들어간 게 훤히 보인다.

위로 들린 원피스 아래로 연결된 부분이나 그녀의 배꼽 같은 부분이 똑똑히 눈에 들어왔다.

"……이런 몸으로 왜 그렇게 허약하신 건지 잘 이해가 안 되네요."

"바보 같은 소리…… 그윽, 유사 현자의 돌 같은 선단?? 따위로 재구성된 몸이…… 후우, 일조일석으로 열심히 단련한 육체보다 강할 리가 없잖아…… 기이, 보통 사람하고 비교해서…… 읏, 내구도만 조금 높을 뿐이야……."

연금술사는 차가운 목소리로 단언한 뒤, 돌출된 부분에 손을 얹고 위아래로 문질러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체 나이도 이 상태로 고정되면서…… 흐응, 더 이상 나이를 먹지도 못하게 됐고 말이야……. 어린 얼굴이라 묘하게 얕보이는 일도 많고……"

흐으, 하고 연금술사가 목구멍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래도 내 몸 상태를 신경 쓰고 있는 건지, 움직임은 상당히 느린 편이었다. 나의 배 위에 두손을 얹은 상태에서 허리를 둥글게 돌리면서 온몸으로 자극한다.

지금까지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다. 마구잡이로 허리를 흔들어댈 때와는 또 다른 형태의, 뭉근한 자극. 그녀의 안쪽에서 음경이 스칠 때마다 성감이 느릿하게 올라왔다.

연금술사가 위에서 아래로 포개지듯이 내 손을 잡았다. 손가락이 서로 엇갈리면서 깍지를 끼었다.

"할 수 있으면 입술도 맞추고…… 읏, 싶지만…… 지금 하면……, 되게 냄새 나겠지……."

그 직후 연금술사는 또 다시 끅, 하고 트름 비슷한 소리를 냈다.

연금술사는 스스로의 손을 쓰지 않고 깍지를 끼고 있던 내 오른손의 손목을 잡아서 자신의 입이 있는 위치로 가져갔다. 내 손바닥을 써서 입을 막는다. 부쩍 가빠진 호흡이 몇 초 사이에 수십 번씩 손바닥에 부딪쳤다.

"푸우……, 쪽……, 쭙……, 이렇게 보니까…… 은근히 손바닥이 상처 투성이인걸……. 사람이 아니라…… 후으, 맹수의 육구 같아……"

그 다음에는 혀를 써서 내 손바닥을 꾹꾹 밀어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저렇게 교묘하게 음란한 움직임으로 지금까지 내 혀를 유린하고, 음경을 빨아댔던 걸까.

나도 모르게 음경에 힘이 들어갔다. 허리가 위로 올라가면서 음경의 각도가 변했다. 쿡, 하고 음경이 그녀의 안쪽을 바깥 방향으로 세게 누른다.

"……읏!!"

연금술사의 몸이 흠칫 떨렸다. 감도가 높아진 몸이 수술대에 묶인 개구리처럼 씨근거렸다.

그 상태에서 나는 연금술사와 깍지로 이어진 왼손을 내쪽으로 당겼다. 그녀의 상반신이 쭉 딸려온다. 몸이 앞으로 굽혀지는 과정에서, 내 음경을 삼키고 있는 그녀의 안쪽에도 변화가 발생했다. 꾸욱, 꾸욱, 꾸욱, 귀두의 뒷부분이 이번에는 전혀 다른 위치를 눌러댔다.

"~~~~~!!"

내 손바닥에 입술을 틀어막힌 연금술사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꿈틀거렸다.

그녀와 몸을 섞으면서 발생한 호르몬에 비밀이 있는 건지, 그게 아니면 단순한 흥분 상태라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묘하게 컨디션이 괜찮아졌다. 대사가 높아진 탓에 지금까지 혼수 상태로 굳어 있던 육체가 풀어지기 시작한 걸지도 모르겠다.

서로 이어진 상태에서, 잡아빼지 않고 자세의 변화로 자극하는 위치를 바꿔 나간다. 지금까지 짐승처럼 허리를 흔들기만 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큰 변화이다.

단순한 자극의 크기라면 빠르게 허리를 흔드는 것만 못했지만, 자극이 귀두에만 몰려 있던 그때와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자극되는 듯한 느낌이라서 조금 차이가 있었다.

뭔가 간질간질한 것이, 음경 뿌리에서 위로 기어올라오는 듯한 감각.

그리고 묘한 충만감도 있다. 내 호르몬에 뭔가 변화라도 발생한 건가.

오늘은 평소와 조금 다른 감각으로 하고 싶었다.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가져간 상태로, 까끌까글한 표면으로 부드럽게 훑는다. 아마 큰 자극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조금 간지러운 정도가 아닐까.

하지만 지금은 이 정도가 좋을 것 같았다. 뿌리까지 집어넣은 음경을 앞뒤로 흔들면서 그녀의 안쪽을 여러 번에 걸쳐 자극했다. 뇌가 저릿저릿할 정도로 강렬한 자극은 아니지만, 그 부드러운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성감이 높아져간다. 연금술사와 나는 언제부터인가 아무런 말도 없었다. 서로의 허리를 그 자리에서 꿈틀거리며 조금씩 끝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느낌이 들었다. 고환이 위로 올라가면서 팽팽하게 당겨진다. 음경이 비할 데 없이 다시금 부풀어오른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귀두에서 올라온 정액이 그녀의 안쪽을 세게 때렸다.

"윽……! 아……! 우……, 가악…………!!"

깍지로 이어진 손이 바이스처럼 내 손을 세게 조여왔다. 손자국이 남을 정도로 힘이 들어간 왼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후……, 아……, 빈틈없이……, 가득 들어왔다…….""

밀착한 상태에서 연금술사는 아랫배에 최대한의 힘을 주어서 요도에 남아있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빨아들이려고 했다. 그녀의 배는 이미 원형으로 완만하게 부풀어 있었다.

"자세…… 잠시만 바꿔……. 이대로 뽑으면…… 읏, 흘러버려……."

서로 이어진 상태로 자세가 바꾼다. 연금술사와 나의 위치관계가 달라졌다. 침대에 그녀의 등을 붙이고, 양 허벅지를 아래쪽에서 잡은 채 앞으로 민다.

평소에는 이 자세에서 전 체중을 실어서 그녀를 찔러댔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 정도에서 끝내기로 서로 합의를 한 상태였다.

"으으……, 윽…….'

그녀를 누른 상태에서, 아주 천천히 음경을 뽑아낸다. 음경을 뽑아낼 때는 점철된 애액과 정액에 의해서 쩌억 소리가 났다. 군침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소리다.

뽑아낸 순간, 몇 방울의 정액과 애액에 침대 시트 위로 떨어졌다.

"흐…… 읏……, 하앗……, 윽……."

보지를 빈틈 없이 누르고 있던 마개가 사라진 순간 그녀의 안쪽에서 정액이 역류하듯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힘을 강하게 줘서 닫는다. 좌우로 굳게 닫힌 보짓살 틈새로 거품이 살짝 새어나왔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수습하는 것만으로도 한계 상태인 것처럼 보였다. 나는 연금술사의 상태를 잠시 살핀 후, 근처의 티슈를 뽑아서 내 것을 닦으려고 했다.

그러지 못했던 이유는, 연금술사가 입술을 삐죽 내민 채 내 손목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

이것만큼은 내게도 양보할 수 없다는 듯, 오른손으로 보짓살이 벌어지지 않도록 붙잡은 채, 몸을 앞으로 굽혀서 내 것을 햝기 시작했다.

"푸흐, 베……."

끝날 때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 * *

검을 쥐고 싶은 기분이었다.

의사는 절대 안정을 요구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가만히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늦은 밤을 틈타서 병실을 나왔다. 닫혀 있던 옥상 문을 열고, 하늘에 뜬 보름달을 바라본다.

살랑살랑 부는 밤바람이 기분 좋다.

헐렁한 환자복 차림의 나는 검 한 자루를 손에 쥐고 옥상에 올라와 있었다.

가상 공간에서의 수행도 좋지만, 나는 역시 몸을 움직여서 수행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성격이다. 물론 여전히 몸은 아프고, 이 상태에서 함으로 몸을 잘못 놀리면 크게 다칠 수 있다는 건 이해하고 있다.

몸을 움직일 때가 아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검을 휘두르고 싶은 지금의 충동을 참아내지 못했다.

그 후로 3일.

샤를로트는 내가 그 싸움에서 쓰러진 후, 3일 만에 간신히 눈을 떴다고 말했다.

그 정도로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팔과 다리에 아직도 '그'와의 싸움에서 느낀 감각이 환상통처럼 남아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방치하면 흩어져버릴 것 같다.

그러니까 더 흐려지기 전에 몸을 움직여서, 그 감각을 몸에 완전히 흡수하고 싶었다.

스페트로가 백신아의 검기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 것처럼.

나 또한 스페트로의 창극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어쩌면 그 정도로 강한 상대는 이제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지도 모른다. 내 생애 최초로 맞이한, 특급 모험가조차 넘어선 최강의 적.

……강적이었다. 지금까지 맞서 싸웠던 그 누구보다도.

이제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최강의 적의 창극을 하나씩 차례로 곱씹으면서, 거기에 맞춘 대응식을 검으로 휘둘러 나간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힘과 속도가 뒤쳐지는 게 전부가 아니다. 기교에 있어서도 아직 나는 그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아직 그만큼이나 남아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가면 '뭔가'를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열심히네."

등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검극이 잠시 멈췄다. 고개를 돌린 그 자리에는, 어느새 편히 움직일 수 있는 체육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연금술사가 서 있었다.

그 옆에는 오른팔 전체에 걸쳐 깁스를 한 루이스도 있다.

어디에서 칼 한 자루를 뽑아온 루이스가 내게 칼을 겨눈 채 입을 열었다.

"……혼자서 그러지 말고 나하고 한 판 하자. 나도 아무래도 손이 근질근질해서 못 참겠어."

"그 꼴로?"

"왜, 지금 네 꼴 보면 피차 상태는 비슷하다고 보는데?"

큰 깁스가 없을 뿐이지 손가락이나 발목 같은 부분에는 깁스나 부목 같은 게 붙은 상태였다. 루이스는 그런 나의 전체적인 상태를 보았을 때, 서로의 조건이 거의 비슷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런가. 뭐, 그럴지도 모르겠다.

검과 검이 부딪치면서 불꽃이 튀었다. 비록 부상 때문에 힘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상태이긴 하지만, 루이스는 그 점을 고려해도 나보다 강했다. 순수한 기술로 붙으면 나도 루이스에겐 안 된다.

루이스 자신도 쉽게 의식하지 못하는 심리의 깊은 영역까지 수를 읽을 수 있기 때문에 호각지세를 유지할 수 있는 것뿐.

"그거 알아? 마그누스 대장이 오늘 병원의 재활치료실에서 트레이닝 기구를 잔뜩 망가트렸다는 거 같아."

"그 아저씨가 그럴 사람이 아닌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격 더럽기로 유명한 특급 모험가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이, 어째서 그런 짓을?

"재활을 너무 열심히 하다가 부숴먹은 모양이더라. 그 싸움 이후로, 호승심이 마구 타오르고 있는 것 같았어."

같은 병원에 입원한 스텔라도 얼추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루이스는 전했다. 입원 기간 내내 의자에 앉은 채 웅얼거리며 마법식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어서 간호사들이 비명을 질렀다든가.

"그 올리비안가 하는 사람도 바쁜 와중에도 틈틈히 짬을 내서 신체 단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그리고 너도 나도 하라는 재활은 안 하고 옥상에 몰래 올라와서 검을 부딪치고 있지."

그 말을 듣고 나는 살짝 웃었다.

역시, 나만 그런 게 아니었던 것 같다.

다들 생각하는 건 비슷하다.

그 싸움에 참가한 전원이 투쟁 자체를 업으로 삼는 무인이었으니까. 스텔라는 마법사니까 조금 예외라고 쳐도, 사고방식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스페트로는 그 정도로 대단한 강적이었다.

그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호승심이 끓어올라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강함을 추구하는 욕망에 다시 한 번 불이 붙었다.

"……예전에, 백신아가 내게 질문했었지."

나는 루이스와 검을 맞댄 상태로 백신아를 돌아봤다.

"무?의 본질은 뭐라고 생각하냐고."

「정확히는, 검왕께서 제게 남긴 질문이셨어요.」

백신아가 빠르게 지적했다. 녀석의 목소리를 무척 오랜만에 들어보는 것 같다.

루이스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건 사람마다 다르잖아?"

"맞아. 나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게 있어서 '무의 본질'을 찾아내는 것이 내 평생에 걸친 숙제라고 생각했었지. 연금술사 선생님도 무의 본질은 사람마다 서로 다를 거라고 말씀하셨어."

고개를 살짝 돌린다. 연금술사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솔직히 난, 아직도 나 자신이 생각하는 무의 본질에 대해서 명확히 정의를 내리지 못한 상태야. 하지만, 이번 싸움을 겪으면서 잘은 표현하지 못해도…… 희미하게 그 윤곽이 보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명확하게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 지금 이 순간, 내 가슴 속에서 피어난 이 감정은 매우 복합적이면서도 다양한 것이 섞인 끝에 만들어진 것이니까.

"예를 들어, 이번 싸움에서 연금술사 선생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이 부족하다고 판단해서 샤를로트를 이용했지."

"아, 나도 들었어. 너하고 한바탕 하고 뻗은 선생님을 옮기면서."

"사실 나 자신의 호불호를 제외하면 선생님의 판단은 정말 합리적인 판단이었다고 생각해. 못 이기면 죽을 판이야. 우리가 당했다면, 그 다음에는 어차피 샤를로트 차례였겠지. 그럴 바에야 샤를로트에게 리스크를 부과하더라도 승산을 더 늘리는 게 정답이야."

내가 연금술사에게 화를 내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 대상이 샤를로트가 아닌 올리비아였다면, 나는 아마 크게 개의치 않고 올리비아를 이용해서 승산을 높이려고 들었을 것이다.

나였어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지 않은 이유는 그저 어린 아이를 그런 싸움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은 나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고집 때문이다.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 더 강했다면 연금술사 선생님이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승리를 붙잡을 수 있었겠지. 내가 꿈꾸는 건 바로 그러한 형태의 강함이야."

"……예에에에에에에전에, '회동' 중에 있었던 비무 때도 너한테 비슷한 소리를 들었었지. 조금이라도 몸을 더 굴려가면서 스페트로의 정보를 획득하려던 나를 말리면서."

"그때 너는 내게 오만하다고 말 했었지."

가지고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모자랄 판에 수단을 가리는 나의 행위 자체를 루이스는 오만이라고 지적했었다.

그 말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짧은 기간 동안 루이스와 연금술사에게 같은 점을 두 번이나 지적 받았다.

"분명 지금의 나처럼 약한 놈이 수단 방법을 가리는 건 잘못된 거야. '오만'한 거지. 네가 했던 말이 맞아."

바로 조금 전에도 연금술사와 비슷한 대화를 나누었다.

"연금술사 선생님도 말씀하셨어. 그런 더러운 꼴을 보기 싫으면, 더 강해져야 한다고. 그런 수단을 쓰지 않아도 문제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게, 강한 믿음을 주라고."

합리적이라는 표현은 보통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만 표현된다.

정말로 그게 전부일까.

예를 들어 모두가 살아남을 수는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조금이라도 다수를 살리기 위해서는 소수를 잘라내야 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인 순간이 찾아왔다고 치자.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누구나 소수를 잘라낼 것이다. 나라도 그런 상황이 찾아왔다면 같은 선택을 한다. 주저하면 나머지 다수도 살아남지 못하는 상황이 찾아올 수 있다. 소수를 잘라내는 것은 지독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만약, 그런 기본 전제 자체를 아예 무너트릴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어떨까.

다수를 살리고 소수를 잘라내고, 그런 귀찮은 건 죄다 무시해버리고.

모든 사건의 원흉을 단숨에 제거할 수 있는 힘이 이 손에 있다면.

"선생님의 말이 정답이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고 싶다면, 그럴 수 있는 힘이 있으면 돼."

어마어마한 재력을 가진 부자가 쓸데없는 짓에 돈을 허투루 써도 그것을 낭비라고 표현하지 않는 것처럼.

강한 힘을 가진 악당이 이 세상 모두를 적으로 돌릴 것처럼 살아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내 개인의 신념에 반하는 수단이 있고, 그걸 쓰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상황이 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런 수단을 고르지 않아도 승리를 차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지면 된다.

힘 없는 사람의 오만을 죄악이라고 부르는 것은 세상의 이치이지만,

힘 있는 사람의 오만을 여유라고 부르는 것 또한 세상의 당연한 이치이니까.

"이번에는 내 힘이 부족했어……. 그래서 연금술사 선생님이 그런 짓을 하게 만들었지. 하지만 두 번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할 거야. 선생님도 말은 그렇게 하셨어도, 내가 싫어하는 짓은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실 테니까."

"……."

연금술사가 시선을 옆으로 돌리면서 칫 소리를 냈다.

정곡이었던 것 같다.

"……어려운 길이겠는걸. 쉽지 않을 거야. 네가 말하는 것처럼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강해져야 할 테니까. 제1위의 특급 모험가가 되는 것보다 훨씬 어렵겠지."

"상관 없어. 처음부터 그 이외에 다른 목표는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캉!! 서로의 검이 세게 부딪치면서 거리가 멀어진다.

루이스는 아무래도 답답하게 느껴졌는지, 오른팔에 세게 힘을 주고 팔에 감겨 있던 깁스를 아예 안쪽에서 부숴버렸다.

"후후, 가소로운걸. 나 따위도 못 이기는 네가, 그런 광오한 말을 입에 담을 줄이야."

잘 움직이지 않는 오른손을 여러 번 쥐었다 펴면서 루이스는 내 얼굴을 노려보고 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표정은 조금 기뻐 보인다.

"백신현 주제에 그런 말을 입에 담는 건 10년은 이르다구. ……덤벼, 네가 아직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이 내가 몸소 깨우쳐주지."

말하지 않아도 내쪽에서 먼저 덤빌 생각이었다.

기합 소리와 함께 발해진 천변무궁류의 제일검?一?이 파르네제식 가전 검술과 부딪치며 천둥번개와도 같은 날카로운 소리를 토해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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