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60화 (60/287)

〈 60화 〉 8. 나와 검주의 어사일럼(Asylum) (9)

* * *

"그럼 이쪽도 슬슬 시작해볼까."

"……저기, 그건 무슨 뜻…… 이에요……?"

백신현이 검왕검으로부터 주도권을 넘겨 받은 후, 본격적으로 전투를 들어간 그 순간으로부터 약 30분 전의 일이다.

문을 나서는 백신현을 배웅한 후,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즈음해서 연금술사가 영문 모를 소리를 입에 담았다.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이유로 두 사람은 연금술사의 공방에 남아 있었다.

연금술사는 백신현이나 루이스와는 또 다른 특이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비교적 편하게 대할 수 있는 두 사람과는 다르게, 샤를로트는 아직도 그녀와 제대로 말을 트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굳건해 보이는 다른 두 사람과 비교해서 그녀는 전체적으로 많이 희미한 인상이었다.

조금 어리게 보이면서도 굴곡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성인 여성이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어딘가가 처연하고, 흐릿해보인다.

샤를로트는 이것이 그녀의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인지를 잘 알지 못했다.

그녀는 매우 특이한 인간이었다.

애초에 샤를로트 자체에게도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저 일이 벌어졌으니까 검사를 하고, 눈에 보이는 현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표출할 뿐.

붉은 머리카락의 연금술사가 샤를로트를 돌아본다. 그녀는 오른쪽 머리 위에 플라티나로 빛나는 유성 모양의 장식을 달고 있었다.

"신현이가 싸우러 나갔지만, 쟤네들한테 다 맡겨둘 수는 없잖아. 우리도 할 수 있는 만큼은 도움을 줘야지."

조금 전에 백신현을 배웅할 때와는 또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무심하면서도, 눈동자는 조용하게 타오르고 있다. 소녀의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투지가 느껴진다.

"그리고, 너도 싸우러 나가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 한 거 같고."

"……으."

샤를로트가 양손을 등뒤로 숨긴다. 하지만 정말로 샤를로트의 손을 보고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연금술사는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고 주변의 기구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샤를로트도 알고 있는 장비들이다. 주변에 흐르는 마력의 농도나 크기 따위를 파악하는 측정기. 철판으로 된 네모난 상자 같은 외형이고, 주변에는 피부에 접착할 수 있게 되어있는 전극 같은 것이 잔뜩 달려 있다.

얼마 전에는 이것을 비롯한 다양한 장비를 사용해서 샤를로트의 침식도를 측정했었다.

전선에 연결되는 형태로 붙어 있는 전극을 샤를로트의 이마와 뺨에 다시 접착하기 시작한다. 한 마디 말도 없이 저질러진 행위였지만, 샤를로트는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자세한 내용은 물론 모른다.

하지만 이 사람이 뭔가를 하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전극이 차갑다. 빠르게 달라붙는다.

"저기……,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려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 요?"

어느 정도 준비가 끝났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샤를로트는 호기심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연금술사는 등을 돌린 채 다른 물건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샤를로트에게 등을 보인 상태 그대로 조용히 대답한다.

"네 침식도를 높일 생각이야."

"……."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현재, 샤를로트의 침식도는 59%를 아슬아슬하게 밑돌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것을, 갑자기 높이겠다고?

샤를로트는 그녀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침식도가 60%가 넘어가는 순간부터 침식되는 속도가 빨라지는 그 특성상, 샤를로트에게 주어진 사실상의 데드 라인은 60%가 한계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도 60%를 아슬아슬하게 밑도는 이 시점에서 전투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연금술사는 그 기본 전제를 무너트리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신현이와 루이스가 알아서 이겨준다면 다행이지만, 그 둘의 실력을 잘 아는 내가 보기에도 솔직히 이번 싸움은 너무 위험해.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봐야 겠지."

그리고 연금술사가 생각한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이것인 것 같았다.

기구를 정비하던 연금술사가 무기질적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원리는 간단해. 너의 침식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현재 스페트로 가주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그 존재'와 너 사이의 연결 고리는 강해지지. 그걸 역으로 이용하는 거야."

"그러니까…… 제 쪽에서 오히려 연결 고리를 타고 '그 존재'에게 간섭하라는……?"

연금술사의 말을 샤를로트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샤를로트는 침식도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 존재'와 특급 모험가들의 전투의 결과를 파악하거나, 그 존재의 현 상태 같은 것을 추측하곤 했다.

그것을 조금 더 강하게 해보자는 의미였다.

'그 존재'와 샤를로트 사이에 이어진 연결 고리를 샤를로트가 역으로 타고 올라가서, 그의 전투를 방해하라는…… 그런 의미로 들렸다.

"맞아. 네 마력을 침식하고 있는 '검은 마력'을 이쪽에서 활성화시키면 네 침식도가 빠르게 오르기 시작하겠지. 당연히 연결 고리도 더 두꺼워질 거고. 넌 그걸 써서, '그 존재'의 전투를 방해해. 난 이쪽에서 네가 완전히 침식되지 않게 붙잡고 있을 테니까."

어느 세 연금술사의 손에는 샤를로트가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특수한 도구 따위가 들려져 있었다.

그것을 통해서 샤를로트의 침식을 활성화하는 한편, 100%에는 도달하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겠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샤를로트는 다른 의문이 느껴졌다.

"그런데…… 어째서 이걸 지금에 와서 하시는 거에…… 요? 신현 씨에게 미리 말하고 작전을 짰다면, 좀 더 손발을 잘 맞출 수 있었을 텐데……"

"어차피 안 된다고 말했을 게 뻔하니까."

연금술사의 손이 한 순간 멈췄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백신현의 이름이 올라온 그 순간부터 손이 멈춰 있었다.

"이건 위험 부담이 아주 큰 일이야.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침식도가 순식간에 100%를 찍어버릴 테고, 그렇게 되면 그때는 너를 최대한 빠르게 죽여야 하거든."

"……."

샤를로트의 어깨가 움찔했다.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야. 스페트로 가주의 몸을 차지한 '그 존재'를 쓰러트리는 것 이외에도 길은 있지."

연금술사는 샤를로트의 기분이나 마음 같은 건 하나도 배려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사실만을 늘어놓았다.

"그건 바로, 침식도가 100%에 도달해서 네 몸에 '그 존재'가 깃든 순간 바로 칼로 찔러서 죽여버리는 방법이야. 그렇게만 해도 당장의 사태는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그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대전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그 존재'의 영혼이 단 하나 뿐이라는 사실이다.

샤를로트의 침식도가 100%에 도달한 순간, '그 존재'의 영혼은 스페트로 가주의 몸에서 빠져나와서 샤를로트의 육체에 깃들게 된다.

그 상태에서 샤를로트의 숨통을 끊는다면 '그 존재'도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런 방법도 있었다.

그것은 백신현이 샤를로트에게 알려주지 않은 방법이었다.

"신현이가 이런 건 말해주지 않았겠지. 아마 이유는 두 가지일 거야. 일단 그 존재가 네 육체에 깃든 순간의 타이밍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찌르지 못하면 '그 존재'는 오히려 전대미문의 힘을 가지게 되겠지. 그런 불안 요소가 첫 번째."

연금술사는 한쪽 눈을 감은 채 샤를로트를 다시 보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런 것에 의지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단순히 감정적인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다.

그 존재의 영혼이 깃드는 그 타이밍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찌르지 못하면 오히려 상황이 더 최악의 방향으로 굴러갈 수도 있다.

하지만 백신현이 그 가능성을 제시조차 하지 않은 데에는 감정적인 이유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고 있었을 것이다.

샤를로트는 그 사실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난, 그런 거 전혀 상관 없거든."

연금술사의 목소리는 무서울 정도로 담담했다. 그것이 더 강렬했다. 무리하게 목소리에 힘을 주거나, 감정을 싣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냥 그게 당연한 것처럼 조용히 늘어놓기만 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네가 죽든 말든, 그 올리비아라는 애가 죽든 말든, 그런 건 전혀 내 알 바가 아니야. 내 관심사는 신현이와 루이스 뿐이니까."

하지만 샤를로트는 오히려 그녀의 말이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느낌도 들었다.

백신현과 루이스의 선의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스페트로 가문에서 벌어진 일로 말미암아 크게 상처 입은 두 사람이 책망의 말 한 마디 남기지 않고 돌아섰을 때, 샤를로트는 오히려 더 큰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선의가, 무겁다.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네가 설령 싫다고 해도 난 이 일을 진행할 거야. 최대한 네 침식도가 100%가 되지 않도록 막아보기는 하겠지만, 안 된다 싶으면 바로 널 죽여버릴 거고."

연금술사는 검은 단검을 들어서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느낌탓일까.

그 새까만 단검의 존재감이 묘하게 강렬하게 느껴진다.

"뭐, 최소한의 자비로 고통 없이 보내주는 단검 정도는 준비해뒀어. 이게 너희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호의야."

"……괘, 괜…… 찮아……, 요. 그렇게, 해주시면 오히려 저도…… 기쁠 거 같거든…… 요……."

난데없이 벌어진 사건에 조금 놀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애초에 샤를로트는 자신의 몸에 벌어진 이상의 사태를 발견한 그때부터 스스로의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 각오가 이제 와서 흐려졌을 리가 없었다.

"그럼 됐어. 어서 준비해."

"……네."

연금술사는 특별히 놀라지도 않은 얼굴로 차갑게 대답했다. 목숨을 건 각오 따위는 질리도록 보아왔다. 이제 와서 특별하게 받아들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저 귀찮은 작업이 하나 줄어든 것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연금술사는 샤를로트의 몸에 추가적인 처치를 시작했다.

"저기……, 있…… 잖아요……."

"응."

"저도…… 사실은 이런 게 기뻐……, 요……. 저의 손으로…… 복수, 복수하고 싶었거든요……."

이쪽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는 옆얼굴을 바라보며 샤를로트가 떠듬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고맙습니다……. 저도, 이 싸움에 함께할 수 있게 해 줘서……"

"……."

그녀는 애초에 샤를로트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지도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준비는 이걸로 끝났다. 완료했다.

"……이 일이 끝나면…… 혹시 저 때문에 시, 신현 씨와 싸우지는……"

"틀림없이 또 한바탕 하겠지. 하지만 그런 건 상관 없어."

백신현의 이름이 나온 순간, 표정 변화 없이 움직이던 연금술사의 표정에 색채가 돌아온 것 같았다.

같은 무표정한 얼굴인데도 느낌이 전혀 다르다. 그게 느껴졌다.

"어차피 서로 몇 번 하다보면 금방 화해할 수 있을 테니까."

"몇 번……?"

"아니, 몇십 번일까."

"몇십……?"

마지막 말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연금술사는 샤를로트의 질문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녀의 손이 계기판 위로 부드럽게 미끄러진 그 순간, 샤를로트의 눈앞이 획 뒤집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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