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58화 (58/287)

〈 58화 〉 8. 나와 검주의 어사일럼(Asylum) (7)

* * *

"침식도는 대략 23% 정도인가."

샤를로트를 앞에 앉혀두고 체액을 추출하거나, 동공의 상태, 전체적인 대사 정도까지 파악한 후, 연금술사가 입을 열었다.

"대략 두 시간에 1% 씩 침식되고 있는 것 같아. 이 상태에서 침식도가 100%가 될 때까지는 대략 154시간. 6일에서 7일 정도가 걸리겠지."

안경을 쓴 연금술사는 진료기록지를 손끝으로 탁탁 두들겼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 아이의 침식도가 이 상태 그대로 진행되었을 경우고, 이런 경우 통상적으로 침식도가 60%가 넘어간 시점에서 갑자기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해. 요컨데, 실질적으로 제한 시간은 74시간 정도야."

"대략, 3일이네요."

상당히 빠듯하다. 하지만 그런 형태라도 일단 한계 시간이 정해지니까 오히려 안심이 된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길의 끝이 보였다. 물론, 그 길의 끝은 출구가 아니라 낭떠러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앞이 출구든 낭떠러지이든, 혹은 그것보다도 훨씬 더 가혹한 가시지옥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내가 해야 할 일은 달라지지 않는다.

절대로 뒤집을 수 없는 싸움을 넘어서서, 승리를 잡아내는 것.

* * *

"……."

휴양용 별장에 지하 감옥 따위의 시설이 존재하는 이유는, 아직 치안이 안정되지 않았던 흉흉한 시대상의 영향이라고 알고 있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비교적 세상은 평화로운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불과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이 세상은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인간에게 존재하는 '마력'이라는 힘이 바로 그 원인이다.

누구나 마음을 먹으면 가볍게 사람을, 장벽을, 법치를 파괴할 수 있었던 시대.

이곳의 별장은 그런 시대가 남긴 슬픈 흔적 중 하나이다.

꼭 여기뿐만이 아니라 옛 시절에 지어진 건물을 돌아보면 어디서나 감옥의 존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스페트로 가주는 지하 감옥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스페트로 가주가 아니다.

얼마 전까지는 템페스트 드 스페트로라고 불리던 전 최강의 특급 모험가였고, 사실 템페스트조차 그의 진짜 이름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진짜 이름조차 잊어버린 수백여 년 전부터 살아온 어느 무인이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무인이 그러하듯 그 또한 한때는 천하제일의 이름을 쫓아 무의 세계를 내달렸고, 그 끝에서 수명과 세월의 한계에 주저 앉은 흔해빠진 인간 중 하나다.

순순히 수명과 세월의 한계를 인정하고 포기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는 도저히 무의 길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온갖 수단을 강구한 끝에 탄생한 것이 고대의 비술과 자신의 창법을 융화시킨 흑주대천신공. 바로 그것이었다.

효과는 간단하다. 흑주대천신공은 고대에 존재하던 악마 소환의 주술을 무?의 형식을 빌려 해체한 것으로, 정해진 구결과 정해진 방법으로 수행하면 악마 대신 '그'의 영혼을 불러들여서 '씌이게' 된다.

육체와 수명의 한계를, 육체를 갈아타는 것으로 넘어선다.

그것이 '그'가 선택한 길이었고, 누대에 걸쳐 이어져내려온 흑주대천신공에 의해 그의 영혼은 아득히 오랜 세월을 주유했다.

하지만 아직도 무의 극은 멀다.

너무나도 멀다.

'그'는 의자에 앉은 채 지하 감옥의 철창 안에 결박되어 있는 남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

제 2위의 특급 모험가 마그누스. 그리고, 제 3위 스텔라.

그들은 며칠 전에 그의 별장을 조사 명목으로 찾아왔었고, 그 후 '그'와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구속되었다.

죽이지 않고 놓아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전투 능력이 아까웠고, 다시 한 번 붙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그누스가 살아온 세월은 '그'가 살아온 세월의 1/5도 채 되지 않았지만 둘 사이의 실력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만약 마그누스가 10년만 더 수행을 했더라면, '그'의 상태가 조금만 좋지 않았더라도 결과는 뒤집혔을지 모른다.

'그'가 두 명의 특급 모험가에게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검왕검'과의 싸움에서 새로운 심득을 획득한 덕이 컸다.

마그누스는 '검왕검'의 싸움을 지켜보았지만, '그'는 '검왕검'과 직접적으로 검을 맞부딪치며, 그 우월한 검술의 영역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그 차이가 승부를 가른 것이다.

'검왕검'과 싸우지 않았더라면, 그 심득을 얻지 못했더라면 오히려 그가 패배했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마그누스가 승산을 논하며 찾아왔던 것은 결코 틀린 판단이 아니었던 것이다.

세상은 넓고, 강자는 많다.

그리고 무예의 세계에는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 짧은 세월을 살아왔음에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젊은이들이 있다.

"흑주대천신공만으로는 어려운 것인가……. 역시, 그 신창??을……."

'그'가 머릿속에 샤를로트의 얼굴을 떠올렸을 때,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던 그의 감각에 맹렬한 충격이 떨어졌다.

"……!!"

흡사 천둥번개와도 같이 날카롭고 무거운 칼날이 둔중하게 떨어지는 듯했다.

그것은 투기.

지금의 투기는 오로지 '그' 하나만을 노리고 쏟아진 것으로, 그 자신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며칠 전, 회동의 자리에 난입해서 자신의 창을 가로막아섰던 그 때의 청년. '그'는 이름조차 모른다. 그저 검왕검에게 선택 받은 인간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그 남자가 스스로의 다리로 이곳을 찾아왔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

* * *

"여기부터인가."

나는 멀리 별장이 보이는 위치에 서 있었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그저 완만하게 올라가기만 하는 오솔길을 일직선으로 올라가면 별장에 도달할 수 있다.

오솔길에는 아무런 표시도 되어 있지 않았지만, 나는 어째선지 내가 서 있는 이 위치가 경계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넘어서는 순간, 나의 존재가 드러날 것이라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건 나와 루이스, 그리고 올리비아 뿐이었다. 샤를로트와 연금술사는 자택에서 대기 중.

그 후로 73시간이 지났다.

샤를로트의 침식도는 이제 58%에 도달했고, 갈수록 심해지는 광증에 휘말리지 않도록 옆에서 케어해줄 수 있는 연금술사 뿐이다. 그 두 사람을 이곳에 데리고 와서 좋을 일이 없었다.

애초에, 그다지 전투에 도움도 되지 않을 거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체크하자. 일단 최우선 목표는 '그 놈'을 쓰러트리는 것. 그리고 샤를로트의 말에 의하면 제 2위와 3위는 그 놈에게 지기는 했어도,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어. 너희 둘은 일단 그 둘의 생존을 확인해줘."

그 두 사람이면 아무리 컨디션이 나빠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도움이 안 되더라도, 빚은 지워둘 수 있겠지.

어차피 이 싸움에서는 루이스와 올리비아의 전투 능력조차 크게 영향을 끼치기 어렵다. 그 정도로 무시무시한 영역의 싸움이다.

……루이스와는 휴식 시간에도 검왕검 내부의 가상 공간에서 함께 수련을 했으니까, 또 모르지만.

올리비아가 루이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별장의 구조는 제가 파악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감금할 수 있는 위치는 서너 군데밖에 되지 않아요. 그 중의 어딘가에, 두 사람이 있을 겁니다. 최악의 경우, 소각장에라도 가보면 뼛조각이라도 찾을 수 있겠죠."

"알았어. 그럼 우리는 이쪽부터 훑어보지. 최대한 서둘러볼게."

"내가 먼저 돌입할 테니까, 너희들은 우리가 돌입한 후 5분이 지나거나, 전투를 감지하면 그때 움직여줘. 그 놈은 우리가 붙잡고 있을 테니까."

"'우리'……?"

올리비아가 처음 들어보는 키워드에 조금 놀란 것 같았다.

나는 웃으며 허리춤의 검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눌렀다.

"그래, 우리."

그 순간 허리춤의 검이 낮게 흔들렸지만, 올리비아는 그것을 단순히 검이 흔들린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건 나와 루이스 뿐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상태와 전략을 체크한 후, 결코 넘어서서는 안 되는 경계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갔다.

바로 그 순간 느껴지는 흉폭한 마력에 머리가 핑 하고 돌아버릴 것 같았다. 삽시간에 시야가 아득해진다.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악의를 마주보고 있는 듯하다.

방향을 잡을 필요도 없었다.

악의의 존재감은 명확했다. 이곳으로 와라, 그런 식으로 소리 없는 압박이 전신을 눌러대는 느낌이다.

식은땀이 흐른다.

지금까지 애써 잊고 있던 공포가 가슴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압도적인 힘과 속도. 천하제일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강적.

전력의 차이는 호랑이와 토끼.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망치는 걸 선택하지 않고 싸움에 임한 건 바로 나 자신이다.

꼭 해야만 하니까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그러고 싶었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이 자리에 있다.

우리가 쌓아올린 힘과 기술을 믿고 있기 때문에.

"먼저 출발한다."

"……그래."

루이스와 가볍게 손바닥을 부딪친 후,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을 감아도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놈의 존재감은 뚜렷했다. 어차피 이 경계를 넘은 시점에서 나의 침입은 이미 들켰을 터, 지체하지 않고 속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곳에서 샤를로트에게 검을 가르치고 있었다.

연금술사 덕에 이곳의 방위 구조는 모두 암기하고 있다. 몇 미터 짜리의 벽을 단숨에 올라서서, 끄트머리에 쪼그려 앉은 채 내부 상황을 체크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 있던 고용인들은 다 어디로 간 거지? 마지막으로 살폈을 때는 경비들이나 고용인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본 거 같은데, 지금은 어째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별장의 훼손 정도도 심각하다.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되어서 성한 것이 없었다.

물론…… 두 명의 특급 모험가와 그 놈이 부딪쳤다면 이 정도 손상은 당연한 거지만.

하지만 을씨년한 이곳의 풍경이 지금의 내게는 차라리 나은 환경이었다.

주변의 피해에 신경 쓰지 않고 싸움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

벽을 넘어서 마당에 착지한다. 그리고 마치 불빛에 이끌린 나방처럼 저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느낌이 온다.

놈은 지금까지 나와 샤를로트가 수행했던 그 공간에서, 나무로 된 체육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저쪽도 내가 도착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

그리고 체육관의 입구에서, 나는 매우 신기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말라 비틀어진 미라 같은 것이었다. 최소 죽은 지 열 흘은 되어 보이는, 비쩍 마른 노인의 시체.

얼굴도 알아보기 어려운 시체의 모습에서 노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던 건 그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 때문이다.

병원에서 환자를 알아보기 위해서 걸어주는, 이름이 쓰여 있는 목걸이.

새하얀 종이에는 템페스트 드 스페트로라고 이름이 쓰여 있다.

아마 이것이, 그 놈이 이전에 쓰던 육체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그는 이 늙어 비틀어진 몸을 버리고 스페트로 가주의 몸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여기에서 그를 멈춰 세우지 않으면 이 다음에는 샤를로트의 차례가 될 것이다.

의욕이 생긴다.

가슴 속에서 다시 한 번 불이 붙었다.

체육관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부드럽게 닫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확인하죠. 승리 조건은 단 하나, '그 놈'의 육체를 무력화시킨 후, 영혼에 괴멸적인 타격을 입혀서 샤를로트 아씨의 침식을 멈춰 세울 것.』

『사실 쓰러트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거에요. 육체가 받은 충격은 영혼에도 고스란히 들어가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런 식으로 무력화시키면 최소 수십 년은 꼼짝도 못할 겁니다. 운이 좋으면 영멸氷? 시킬 수도 있을 거구요.』

『상대는 강합니다. 검주가 지금까지 맞서 싸운 이들 중 그 누구보다도, 그리고 검주가 지금까지 보아온 그 누구보다도 강한 존재에요.』

『하지만, 겁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검주는 언젠가 검왕의 경지에 도달하게 될 분.』

『그 경지와 비교하면 저까짓 놈을 두려워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어요.』

승리의 조건은 확인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가슴 속에 심지로 삼을 목표점이 눈에 보인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하나.

쌓아올린 힘을, 그저 남김 없이 부딪칠 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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