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56화 (56/287)

〈 56화 〉 8. 나와 검주의 어사일럼(Asylum) (5)

* * *

숨을 참은 상태에서 검을 휘두른다. 역시 잘 되지 않는다. 길쭉한 검은 특히 물의 저항을 심하게 받는 편이었다. 힘을 줘서 휘두르는데도 제대로 속도가 나오지 않았다.

검을 휘두르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천변무궁류에 들어가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수중의 마력은 대기 중과 비교해서 2할에 불과한 수준이라고 하던데, 그런 것치고는 마력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그 정도로 농도가 옅다.

마력을 감지할 수 없으면 천변무궁류는 쓸 수 없다.

시작부터 문제에 직면했다.

'……그렇다면.'

이때, 백신아에게 마력의 흐름을 읽어달라고 부탁하면 아마 정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좋지 못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1초를 무수히 쪼갠 시간 속에서 판단과 행동에 들어가야 하는 진짜 실전 쪽에서 백신아의 힘을 빌리기는 어렵다.

내가, 나의 힘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물속에서 발을 비틀면서 자세를 바꾸었다. 팔다리에 걸린 무게추가 물속에서 내 몸을 지탱하고 있다. 호흡을 멈춘 상태에서 일점을 겨눈 상태로 무수한 참격을 때려 박았다.

그때마다 검의 궤적에 따라 물이 밀려 나간다. 그것을 반복해서 물속에 아주 좁은 빈 공간을 만들어나간다.

처음의 일격이 물을 밀어내고, 그 물이 다시 돌아오기 전에 이격을 재차 꽂아서 물을 밀어낸다.

아주 미약하지만 물이 밀려나간 자리의 마력을 탐색한다. 물론 마력의 농도는 낮다. 하지만 마력을 감지하는 걸 방해하는 물이 사라졌기 때문에, 한 순간이나마 그 위치의 마력을 캐치하고 흐름을 붙잡을 수 있었다.

'……잡았다.'

흐름을 붙잡은 후, 천변무궁류로 넘어간다.

하지만 쉽지 않다. 평소에 내가 느끼는 마력의 흐름이 굵은 와이어 케이블이라면 지금의 이것은 거미줄처럼 가느다란 것이다. 조금만 실수해도 흐름이 끊어지리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픽, 하는 소리와 함께 흐름이 끊어졌다. 역시, 한 번에 성공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것은 아니었나.

이를 악물고 다음 시도에 들어간다.

호흡의 한계가 찾아올 때까지.

* * *

"헉……! 학……! 칵……!"

뭍에 상반신만 간신히 걸친 채 숨을 몰아쉬었다. 물속에서 위로 올라오는 것도 보통 중노동이 아니었다. 조금만 늦게 올라왔어도 나도 모르게 물속에서 입을 벌렸을 것이고, 그럼 그대로 질식해서 끝장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옆에 서 있던 연금술사가 다가와서 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아냈다. 내 머리카락이나 얼굴에 묻어 있는 액체가 입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이다.

"앞으로 몇 번 정도 더 할 생각이야?"

"일단……, 될 때까지요. 아직은, 그렇게 위험하지 않으니까……."

거칠게 호흡을 다듬으면서 대답한다.

첫 잠수에서는 아무런 소득도 얻어내지 못했다. 물속에서 하는 수행은 평소와 비교해서 몇 배 가까이 지독한 난이도를 자랑했다. 첫 잠수는 천변무궁류에 들어가지조차 못한 채 끝이 났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거라는 걸 다 알고 나서 시작한 일이니까. 처음 한두 번으로 소득이 나올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다.

이미 편법과 꼼수를 통해서 수련 효율을 극단적으로 끌어 올린 상태였다. 이 이상은 올릴 수도 없고, 올려서도 안 된다.

편법과 꼼수는 분명 나의 주특기이지만, 그것만으로 넘어설 수 없는 현실의 벽도 있는 법이다.

검왕검을, 백신아를 만나기 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후……! 하압……!!"

호흡을 충분히 회복한 후, 크게 숨을 들이키며 다시 잠수했다.

재차 검을 휘두른다.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 * *

그 다음은 실전 훈련이다. 물속에서 뭍으로 올라온 후, 근처에 있는 공터에서 루이스와 검을 부딪친다.

검은 민소매 티와 핫팬츠 차림의 루이스가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샌들이 달칵 달칵 소리를 냈다.

빠악!!

"큭……!!"

샌들을 신은 발에 걷어차여서 바닥을 몇 바퀴 뒹굴었다. 다리에 힘을 주고 브레이크를 건다. 끼이이이이익……!! 신발 밑창이 죄다 뜯겨져 나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루이스가 한쪽 다리를 비스듬히 든 상태로 발끝을 까딱거렸다.

"뭐야, 훈련 하더니 컨디션이 더 나빠진 거 같은데? 나도 네 상태에 맞춰서 힘조절을 좀 해줄까?"

"필요 없어. 제대로 해."

속이 뻔히 보이는 도발에 나는 알면서도 넘어가줬다. 역시, 사람이 좀 지치고 피곤할 때는 열을 오르게 하는 방법이 최고다.

루이스의 저 말이 나를 화나게 하기 위한 도발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

검과 검이 부딪치고, 얻어터져 나가면서, 나는 조금씩 형체도 불분명한 '뭔가'가 칼 끝에 걸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천변무궁류?????

제일검?一?

하얀 유성白?

캉!!

"헤……!!"

하지만 아직 초신성은 멀다.

너무나도 멀다.

* * *

"그런데 저기…… 여기에서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건가?"

"뭐가?"

나는 당근을 입에 물고 대답했다.

나도 그렇고 루이스도 몸을 쓰는 직업이다보니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무지하게 먹는 편이다. 그리고 그만큼 많이 움직이기 때문에 살집도 없고.

애초에 마력을 쓰는 과정에서 체온이 높아지고, 대사 또한 빨라지기 때문에 마력을 원숙하게 다루는 사람들은 어지간해서는 살이 잘 찌지 않는다.

모험가이면서 살집이 있는 사람은 쓰는 거에 비해서 지나치게 식사량이 많은 편이거나, 혹은 '그런 방식'을 통해서 힘을 축적하는 계열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게 아니라…… 음, 이런 상황에서 느긋하게 수행을 하고 있어도 되는 건가 싶어서……."

"내가 수행하는 게 느긋하게 보였다고?"

난 당근을 세 번에 걸쳐서 씹어 삼킨 후, 작게 이죽거렸다.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런 건 아니고…… 그, 특급 모험가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두 사람이 어떤 꼴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현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가만히 있기가 좀……"

"알고 있어, 그런 건."

올리비아의 심정은 나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굳이 그런 식으로 퉁명스럽게 대답했던 건, 올리비아를 조금 골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예상했던대로, 스페트로 가주와 올리비아는 본인들 선에서 일을 끝마치지 못하고 기어이 나한테까지 불길이 번지게 만들었다.

제 딴에는 부외자인 내가 휘말리지 않도록 배려를 한 거라지만, 결국 그 배려와 관계 없이 나와 루이스는 이 사건에 엮이게 되었고 몸과 영혼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올리비아를 탓해봐야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수행에 집중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짜증이 치밀어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 정도 심술은 용납되지 않을까? 좀 더 일찍 나한테 사실을 털어놓았다면 상황이 많이 달라질 수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

"일단, 내가 어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좀 수집해봤는데."

대화를 듣고 있던 연금술사가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제 2위와 제 3위의 특급 모험가가 행선지를 밝히지 않고 사라진 건 사실인 거 같아."

연금술사가 자세를 바꾼다. 테이블을 팔꿈치로 짚은 채, 턱을 괴는 자세.

"그리고 오늘까지 돌아오지 않은 거 같았어. 그러니까, 쟤가 하는 말이 진짜였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가씨는 흑주대천신공을 통해서 뭔가를 느꼈는지 저희에게 최악의 결과가 발생한 거 같다고 말하셨죠."

자신의 얼굴에 나이프가 겨누어지자 올리비아는 순간적으로 움찔하는 기색이었지만, 함부로 떠들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금세 수그러들었다.

난 올리비아를 향해 조용히 말을 걸었다.

"그럼 반대로 묻겠는데, 특급 모험가 중에서 최고 수준의 두 사람도 작살났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모하게 쳐들어가봐야 뭐가 되겠어. 잘 해 봐야 개죽음이지."

나라고 그들의 행방이 신경 쓰이지 않는 건 아니다. 3위야 그렇다 쳐도 2위는 나도 꽤 대화를 자주 나눠본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그들마저 당했다면 이젠 이 도시의 그 누구도 '그것'을 당해낼 수 없다.

단 하나.

백신아를 제외하고는.

끓어오를 것 같은 감정은 잠시 접어두고, 냉정하게 준비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이 다음에는 나와 루이스가 당하게 될 테니까.

나는 주먹을 꾹 쥐면서 말했다. 아직 그들이 완전히 죽었다고 확정난 것도 아니다. 흥분해서 가봐야 개죽음이다…….

"그리고 내 생각이 맞다면 아직 며칠 정도는 수행할 시간이 있을 거야. 일단 올리비아 네가 샤를로트를 데려온 만큼 '그것'도 한 동안은 샤를로트를 잡아가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을 게 뻔한 데다가……"

내 시선이 아직 눈을 뜨지 않는 소녀에게 잠시 머물렀다가 멀어진다.

"아직 '그것'은 스페트로 가주의 몸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상태일 테니까."

이것은 지금까지 백신아에게 몇 번씩 몸을 빌려주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몸을 다루는 데에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기술력과 출력이 필요하다.

"네가 얼마 전에 말했었잖아. 스페트로 가주는 가끔씩 샤를로트를 지도할 때 이외에는 두문분출하고 있었다고. 내가 보기엔 스페트로 가주도 완전히 지배 당한 상태는 아니야. 아직 의식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저항하는 중일 가능성이 높아."

아마 방안에서 두문분출하고 있는 동안 스페트로 가주의 의식을 누르는 의식을 자행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급 모험가의 육체를 빼앗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애초에 20년 전에 있었던 템페스트 드 스페트로 토벌전에서도, 그가 패배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마지막 순간에 눈을 뜬 템페스트 가주의 의식이었다고 알려져 있지. 고작 일주일 정도로 스페트로 가주의 의식을 완전히 누르지는 못했을 거야."

우리에겐 정말로 불행 중 다행인 일이다. 이대로 붙으면 틀림없이 박살날 텐데, 그 덕에 준비할 시간이 생겼으니까.

물론 스페트로 가주의 의식이 완전히 눌릴 때까지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는 알 수 없다. 당연히 '그것'이 스페트로 가주의 의식을 다 누르기 전에 움직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

할 수 있는 만큼 준비해서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어차피 완벽하게 준비를 끝마치고 싸우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되든 안 되든 부딪칠 수밖에.

"크……, 아……."

그때, 나는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어깨를 움찔 떨었다.

멀리 떨어진 침대에서 샤를로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현……, 씨……? 올리비아……?"

광기 따윈 조금도 느낄 수 없는, 명확한 이성을 품은 목소리로.

* * *

"마실 수 있겠어?"

"……응. 쓰긴 하지만, 후후 불어서 마시니까…… 맛있다……."

샤를로트는 내게 미소를 지은 채 말하고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쓴맛을 꾹 참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연금술사의 차를 마시고 맛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거든.

요컨데 연금술사의 마음을 무시하기 뭣해서 쓴맛을 꾹 참고 마시고 있다는 건데…… 대단하다 참.

"몸은 어때? 살살 제압한다고 제압했지만 어디에 후유증이 있을지도 몰라."

"아……, 그건 괜찮아……."

물론 샤를로트에게 일일이 확인 받지 않아도 녀석의 몸에 상처가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본인이 어떤 식으로 느끼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아이의 몸을 어른하고 똑같이 볼 수는 없으니까.

"……그것보다도, 날 막아준 사람이 신현 씨지……?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단편적으로 기억이 남아있는 것 같아……."

"그래, 맞아. 너도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는 거지?"

"응……. 순간적으로 정신이 나가버리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내 의식도 남아 있었으니까……. 신현 씨라면 나를 막아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신현 씨에게 찾아가도록, 나 자신의 광증이 향하는 방향을 유도한 거야……."

본인이 자각하고 있다면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올리비아의 말에 의하면 샤를로트는 지금까지 창을 쥐고 광증에 빠지더라도 그것을 기억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을 터…….

'그것'과 샤를로트가 접촉함으로써 뭔가 변화가 발생한 건가?

이것은 내 느낌이지만, 그것이 결코 좋은 변화는 아닐 거라고 추측된다. 그것과 샤를로트가 얽힌 시점에서 상황이 더 좋게 변화할 가능성은 바닥에 가깝다.

설마, 광증의 침식도가 높아지기 시작한 징조인가……?

"신현 씨에게는 실례되는 일이었지만…… 신현 씨를 믿은 보람이 있었어……. 더 큰 피해가 나기 전에 날 막아줬으니까……."

민폐라는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샤를로트가 말한 것처럼, 녀석이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상황을 원만하게 수습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을 테니까.

오히려 광증에 휘말린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고, 행동으로 옮긴 것이 신기하다.

흑주대천신공의 광증으로도 샤를로트를 완전히 누를 수는 없었다.

"신현 씨는……? 신현 씨는 어디 안 다쳤어……?"

"뭐, 보다시피 멀쩡해."

"그건 다행이다……."

샤를로트가 느릿하게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러다 소녀의 몸이 옆으로 휘청거린다. 많이 지친 상태 같다.

작은 어깨를 감싸쥐고 다시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힌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우리들의 선에서 끝내야 했던 일에, 결국 아무런 관계도 없던 신현 씨까지 휘말리고 말았어……."

"또 쓸데없는 말을……"

나는 가볍게 넘겨버리려고 했지만, 샤를로트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언뜻 돌아본 샤를로트의 눈가는 물기로 젖어 있었다.

"우리는, 나는…… 이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지금의 '그 사람'도 그렇게 괴물 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데……, 만약 내 몸을 차지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정말로, 누구도 쓰러트릴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 거야……."

닫힌 입에서 울음처럼 흘러나온 목소리는 마치 한탄처럼 느껴졌다.

"…… 그럴 바에야 차라리……, 몸을 빼앗기기 전에 내가 죽어버리는 편이 나을 지도 몰라……."

"……."

그러니까.

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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