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55화 (55/287)

〈 55화 〉 8. 나와 검주의 어사일럼(Asylum) (4)

* * *

"조금 전부터 아가씨의 추측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그건 도대체 무슨 소리지? 애초에 샤를로트는 왜 저 꼴이 된 거야?"

나는 팔짱을 끼고 질문했다. 애초에 샤를로트와 올리비아가 이 꼴이 되어서 나타난 것도 이상하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이야기의 사이 사이를 잇는 허리 부분이 절단되어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스페트로 가문을 향한 의문이 깊어진다.

"……그래, 일단 그것부터 말해줘야겠지."

올리비아는 무겁게 한숨을 토해내면서 마른세수를 여러 번 반복했다. 길쭉한 속눈썹 끝에서 피로와 탄식이 진하게 묻어 나온다.

"너도 어느 정도 짐작했겠지만, 지금 가주님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는 란즈 가주님이 아니다. 스페트로 가문의 전대 가주……, 템페스트 드 스페트로에 의해서 란즈 가주님은 완전히 육체의 주도권을 빼앗긴 상태야."

이번 사건이 시작된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들어온 이름이다.

처음 본 건 제피로스 정신 병원의 환자 리스트에서였나. 그 다음에는 루이스에게 들었고, 끝내는 보이드의 입에서까지 흘러나왔던 그 이름.

템페스트 드 스페트로.

미쳐버린 전대 최강의 특급 모험가.

"너희들이 나를 별장에서 쫓아낼 때 느껴졌던 투기도 그 인간의 것이었겠지. 안 그러냐?"

"……그렇다."

올리비아는 내가 이 점을 지적할 거라고는 생각치 못했던 듯, 조금 머뭇거리는 기색이었다.

"아가씨의 말씀을 빌리자면, 템페스트조차 '그'의 진짜 이름은 아닌 것 같았다."

그 말을 듣고 루이스가 자신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지식을 늘어놓았다.

"전대 최강의 특급 모험가인 템페스트는 평소에는 무척이나 온화한 인물로 알려져 있었지만, 광증에 빠진 이후 사람이 변했다고 알려져 있죠. 그 사람도 피해자일 뿐이라는 건가요?"

"……아가씨는 그렇게 추측하셨습니다. 현재 가주님의 몸을 차지하고 '그것'은 스페트로 가문 대대로 내려온 '광증' 그 자체가 아닐까…… 하고."

"마력을 매개로 사람의 몸에 기생해서 인격을 빼앗는 계열이네. 고대의 주술 중에서 드물게 보이는 종류야. 윤리적인 문제와는 별개로, 효율 자체가 지나치게 떨어지기 때문에 시대의 흐름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연금술사가 부족한 설명을 보충했다. 그쪽은 나도 조금 지식이 있다. 백신아가 내 몸을 조작하는 기술 또한 '그런 계열'의 기술이기 때문에 최근 들어서 깊이 파고들기 시작한 분야다.

술식을 구축하는 난이도도 지나치게 높은 데다가, 그 기생 마법의 대상의 기량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가 갈라지기 때문에 쓰기도 어렵고, 준비 과정도 오래 걸리는 술식이다.

윤리적인 문제고 나발이고, 일단 효과가 좋으면 무슨 짓을 저질러서라도 기술에 손을 뻗는 것이 인간의 심리인데, 술식 자체가 완전히 맥이 끊어진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백신아가 내 몸을 5분밖에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아마 그런 문제가 어느 정도 엮여 있지 않을까 싶은데…….

"흑주대천신공이군. 깊이 습득하면 습득할수록 '그것'에게 몸을 빼앗기는 원리인가?"

나는 이렇게 추측했다.

이미 흑주대천신공을 가까이에서 본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추측이었다. 그 싸움 속에서 나는 흑주대천신공과 백신아가 내 몸을 지배하는 원리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눈치챘고, 눈앞의 상대가 스페트로 가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정해진 기술을 정해진 순서와 법칙으로 펼쳐서 '먼 존재'를 부르는 매개가 되고, 최후에는 몸을 빼앗긴다……."

연금술사는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수순을 곱씹은 후, 한쪽 눈만 뜬 채 입을 열었다.

"악마 소환의 원리와 거의 같아. 아마 '악마'를 소환하는 게 아니라 '흑주대천신공의 제작자'를 소환하는 걸로 식을 고친 거 같은데."

"그것이 스페트로 가문에 내려온 광증의 정체……. 그렇죠?"

"맞아. 그리고 흑주대천신공을 누대에 걸쳐 대대로 수행해옴으로써 스페트로의 '핏줄' 자체에도 변화가 발생한 거야. 그래서 흑주대천신공을 수행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가끔씩 광증이 발생하는 현상이 나타난 거지."

그리고 지금의 스페트로 가주도, 전대의 템페스트 역시 그 광증의 피해자에 불과하다.

"……그렇다. 나도 그 사실을 너와 가주님의 전투에서 겨우 눈치를 챘지. 란즈 가주님 또한 어느 시점에서 몸을 빼앗긴 상태였다는 것을."

올리비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숨길 것도 없겠다, 죄다 토해 내는 심정인 것 같다.

그로써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싶어하는 걸까.

"물론 나도 바보는 아니다. 가진 힘도 없이 함부로 추궁해봐야 오히려 내 쪽이 절단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 그래서 최대한 알아채지 못한 척을 하면서 그의 상태를 지켜볼 생각이었다."

과거형이다.

다른 원인이 있어서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말이었다.

"……비무를 끝마치고 퇴장하는 통로에서, 세 명의 특급 모험가가 우리를 찾아왔었다. 그리고 가주님의 몸을 차지하고 있던 '그'는 당연한 듯이 전투에 임했지. 대화로 풀어볼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

새삼스럽지만 진짜 미친 놈이다.

"그런데 그때……, 그는 전혀 생각치도 못한 행동을 했다. 내가 언제나 등에 매고 다니던 창을 빼앗아서 아가씨에게 쥐어주더니…… '제일 약한 놈 하나는 네가 해치우거라'하고 말한 그 순간……"

"샤를로트가 미쳐버린 건가."

"……그렇다."

나는 시선을 흘기며 침대에 묶여 있는 샤를로트의 상태를 다시 확인했다. 아주 위험한 환자를 운송하듯이, 누워 있는 소녀의 위로 새하얀 벨트가 몇 겹씩 감겨 있다.

조금 전의 샤를로트는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진하고, 강렬한 투기를 뿜고 있었다.

샤를로트가 제 11위의 특급 모험가와 맞서 싸웠다는 사실은 우리도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다른 두 사람하고 다르게, 그의 상처는 아래쪽에서 위로 짓쳐올리듯이 난 상처가 많았다. 즉, 자기 자신보다 키가 작은 사람과 맞서 싸웠다는 건데…… 그 신장과 성별 따위를 측정했을 때 나온 결과가 샤를로트였다.

"올리비아, 너는 저번에 샤를로트에게 절대로 창을 쥐어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었지. 혹시 그것이 광증의 트리거야?"

그때부터 쭉 의문이었다.

명색이 창술명가라는 곳이 창은 안 가르치고 다른 무기만 줄창 가르친다는 게.

창을 가르쳐서는, 창을 쥐게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닐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스페트로 가문의 비전 창술은 두 개가 있다. 첫 번째는 흑주대천신공. 그리고 두 번째가 나도 익히고 있는 흑주영식살법?????이지."

나도 알고 있다.

올리비아가 휘두르는 흑주영식살법은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무수한 무공 중에서도 수위를 다툴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창술이었다.

내가 진로를 검으로 선택하기 전이었다면 그쪽에 매료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흑주대천신공이 광증을 부른다는 점을 눈치챈 선대의 계승자들이 만들어낸 것이 바로 흑주영식살법이다. 하지만 아가씨의 경우, 흑주대천신공의 습득 여부와 관계 없이 태어나실 적부터 광증을 심하게 가지고 계셨어."

광증이라.

저 온화한 얼굴의 샤를로트에겐 그 무엇보다도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흑주대천신공이 아니라, 창으로 인식한 물건을 손에 쥐기만 해도 의식이 날아가고 광증이 발현했지. 그리고 그때의 실력은 못해도 1급 모험가에 버금가는 수준이었고, 몸이 풀리기 시작하면 특급에도 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 나이에 특급이라……"

루이스가 흥미로운 듯 샤를로트의 얼굴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루이스 역시 검을 쥐고 몇 년도 되지 않아서 특급의 자리를 차지한 희대의 천재. 샤를로트의 어린 얼굴 어디에 '특급'에 어울리는 면모가 있는지 관찰하는 중이다.

"그리고, 샤를로트 아가씨야 말로 '그것'이 기다리던 존재인 것 같았다."

'그것'.

여기에서는 템페스트 가주를 광증에 빠지게 하고, 스페트로 가주의 몸뚱이 마처 빼앗은 그 존재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그 존재가 기다리는 존재가 샤를로트라고 올리비아는 말하고 있었다.

"누대를 이어서 계승되어온 흑주대천신공. 그리고 흑주대천신공의 계승을 통해서 핏줄을 잠식한 광증……. 그 끝에 탄생한 '흑주대천신공에 특화된 체질을 가진 인간'이 바로 샤를로트 아가씨라고."

"그렇다면, 네가 샤를로트를 데리고 여기까지 나온 이유는."

"당연히 란즈 가주님의 몸을 차지한 존재가 아가씨의 몸을 빼앗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도 너와 검왕검의 실력에 많이 놀란 거 같더군. 란즈 가주님의 몸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할 것 같다며, 아가씨의 몸을 쓰겠다고 선언해왔다."

올리비아의 눈매가 사납게 일그러졌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마지막 선이라는 것이 있다. 올리비아에게 그것은 샤를로트였던 걸까.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도 전혀 알 수 없는 영역이다.

"그것이 싫어서 덤벼들었다가 아가씨와 함께 감옥에 갇혔고, 두 특급 모험가가 찾아온 틈을 타서 탈출한 거다."

올리비아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겨우 탈출했더니, 정작 아가씨의 광증이 도지는 바람에 이 꼴이 나고 말았지만."

* * *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

나는 초신성의 수련을 위해서 공방 옆의 창고에 와 있었다. 얼마 전에 백신아의 새로운 기능을 해금할 때 사용했던 장소다.

올리비아도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해서 자신의 두 다리로 서게 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나의 현재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 동행했다.

"좋아, 연금술사 선생님. 이 정도면 될 거 같죠?"

"물이 빠지진 않을 거 같아. 그쯤하고 올라와도 돼."

그리고 나는 그 창고의 바닥을 들어내고, 삽을 써서 조금 더 아래쪽으로 네모난 구멍을 뚫었다. 가로세로로 7미터. 깊이는 3미터 정도다.

내가 빠져나온 후, 연금술사는 두꺼운 마도서의 페이지를 팔랑팔랑 넘기면서 내가 파놓은 구멍을 마력으로 얇게 코팅했다. 어설프게 하면 나중에 내용물을 채웠을 때 물이 새거나, 물의 무게 때문에 가라앉을 위험이 있다. 최대한 심혈을 기울여서 꼼꼼하게 마감한다.

『음, 괜찮네요. 이 정도면 충분할 거 같은데요?』

백신아도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다.

마감까지 마무리한 현재의 비주얼은 사이즈가 작은 실내 수영장 같은 모습이었다.

연금술사는 다시 한 번 종이를 팔랑팔랑 넘기면서 집중한 후, 본격적으로 대기 중의 수분이나 지반 아래쪽에 존재하는 물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때도 조심하지 않으면 아래의 지반이 약해져서 통째로 무너질 수 있다. 연금술사는 눈을 감은 상태에서 고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물을 정확히 2/3 지점까지 채운 이후, 연금술사는 공방에서 가져 온 여러 가지 약품을 계량해서 붓기 시작했다. 하나씩 들어갈 때마다 수면 위에 괄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난다. 겉은 번들거리고, 점성이 늘어나는 게 눈으로 봐도 느껴진다.

그것을 지켜보면서 나도 준비에 들어간다. 상의를 벗고 신발도 벗었다. 이제 내가 입고 있는 건 무릎을 살짝 덮는 헐렁한 반바지 뿐이다.

그 상태에서 팔과 다리에 무게추를 몇 개씩 매달았다. 바닥에 내려둔 검집에서 검만 뽑아서 준비 운동을 한다.

"저기, 지금 백신현은 뭘 하려는 겁니까……?"

"신현이에게 물어봐. 난 신현이가 해달라는대로 해준 거 뿐이니까."

틱틱거리는 연금술사의 태도에 올리비아는 잠시 멈칫 하더니, 내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지금 뭘 하려는 건지 대답해줄 수 있겠나?"

"아, 배우고 싶은 기술이 하나 있는데, 그게 지금 내 기량으로 못 배우는 기술이거든."

숨길 것도 없다. 나는 담백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단시간에 뭐라도 잡아 보려고 이상한 짓 하고 있는 거지."

"이상한 짓……? 지금 이 액체는 상당히 점성이 높아 보이는데, 이걸 써서 수행하는 건가?"

"맞아. 이 안에 무게추를 들고 들어가서, 검을 휘두를 생각이야."

"저항 때문에 움직이기 쉽지 않을 텐데……."

"그게 목적이거든."

이건 내가 이전에 살던 세상의 이야기지만.

운동 선수들이 하는 훈련 중에는 수중 운동이라는 게 있었다.

물속에서 숨을 참고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 심폐 지구력을 높이고, 물의 저항력에 의해서 발생하는 운동 효과를 노리는 훈련인데, 나는 초신성의 습득을 위해서 이러한 훈련 방식을 백신아에게 제시했었다.

꽤 좋은 방법일 거 같다고 칭찬도 들었고.

천변무궁류는 대기 중의 마력을 다루는 유파다. 대기 중의 마력…… 그렇다. 천변무궁류는 마력의 농도가 대기 중에 비해서 낮게 분포되어 있는 수중전에 특히 취약한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수중이라고 마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기 중에 부유하는 마력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대략 2할 정도.

그리고 나는 그런 가혹한 환경에서 천변무궁류에 도전함으로써 나 자신의 기량을 높일 생각이었다.

아무리 가혹한 환경이라도 인간은 언젠가 적응하기 마련이다.

아니, 적응해야 한다.

내가 주어진 시간은 결코 많지 않을 테니까.

"물에 추가로 약물을 혼합시켜서 점성을 크게 높인 상태야. 이거 자체가 몸에 해롭지는 않지만, 그래도 삼키지 않게 조심해. 잘못하면 기도가 막히고, 그러면 즉시 질식이니까."

"알고 있어요."

연금술사는 쪼그리고 앉아서 내용물이 가득 채워진 풀에 검지를 담그고 있었다. 농도를 체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녀를 옆으로 눌러나게 한 다음 눈에 고글을 썼다. 물에 몸을 담근다. 느낌은 좋지 않았다. 끈적끈적해서 기분이 더럽다.

머리가 수면 아래로 들어간 순간 고글이 압력으로 심하게 눌리기 시작했다. 근육을 조이는 정도도 심하다. 기존의 물에 비해서 도대체 압력이 몇 배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정도가 딱 좋다.

힘을 주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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