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 7.5. 나와 그녀의 (진짜) 건전하지 못한 관계 (3)
* * *
"일단 이걸 좀 먹어둬."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찬장에서 조그만 유리병을 하나 꺼내서 내밀었다. 루이스는 손으로 쥐면 숨길 수 있을 만큼 조그만 유리병을 주시하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뭐야?"
"피임약이야. 연금술사 선생님이 쓰는 건데, 효과는 좋아."
솔직히 이거 아니었으면 난 한참 옛날에 연금술사 임신시키고 애를 셋 정도 보지 않았을까 싶다.
효과는 끝내준다.
"……아. 어, 그래, 피임. 피임은 중요하니까. 응."
루이스는 어떤 식으로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얼굴이었다. 유리병을 양손으로 감싸쥔 채,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한참 동안 우물거린다.
쟤가 저러니까 좀 신선하다. 그리고 좀 부끄럽기도 하다. 연금술사하고는 시도 때도 없이 해대면서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지만, 루이스하고는 진짜 처음이니까.
아직도 혀 끝에서 알싸한 프리지어향이 은은하게 돌고 있다.
당연히, 루이스의 향이다.
키스 경험도 없는 주제에 저돌적으로 혀를 뻗어대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해야 할까. 그 덕에 내 구강 안에도 루이스의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는 상태였다.
턱을 타고 흘렀던 침을 닦아냈는데도 여전히 냄새가 진하다.
"너보다는 내가 좀 더 익숙하니까 리드는 내쪽에서 한다. 불만 없지?"
"……네가 날 리드하는 건 거의 10년만인 거 같은데."
루이스는 툴툴 거리면서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 대신 고개만 옆으로 획 돌린 채, 조용히 뺨을 붉히고 있다.
나이 먹을대로 먹은 스물네 살 짜리가 저러면 안 어울려야 정상인데, 왜 얘는 어린애처럼 토라져도 예뻐 보이는 거지.
미인은 치사하다. 뭘 해도 그림이 나오니까.
상의는 소매가 없는 검은 타이즈 위에 갈색 재킷을 덧대서 입었고, 하의는 발가락 끝까지 덮어쓰는 스타킹 위에 꽉 조이는 반바지 차림이다.
지금은 보이드와의 전투에서 입은 데미지로 여기저기가 뜯어지고 헤진 상태다. 뭐,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루이스가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피임약을 복용하는 걸 확인하고 나서 다가갔다. 내가 한 걸음 가까워진 것뿐인데도 루이스는 눈을 꽉 감고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한 순간 나는 내가 잘 알고 있는 소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다녔던, 부잣집의 영애소녀. 멍을 때리고 있어도 도도하고 고혹적으로 보였던 나와 같은 나이의 여자아이.
지금은 양갈래로 묶었던 머리카락을 오른쪽으로 틀어서 올려 묶고, 눈가에는 살짝 눈물이 맺혀 있다.
새삼스럽지만 루이스도 예전하고 비교해서 참 많은 게 달라졌다.
침대에 앉은 루이스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갈색 재킷을 좌우에서 고정하고 있던 단추로 손을 가져간 그 순간, 루이스의 몸이 움찔 하고 떨렸다.
"……으."
잠시 지켜보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루이스의 갈색 재킷은 아랫단이 조금 짧은 편이기 때문에 옷깃 아래로 검은색 타이즈가 그대로 드러나는 형태가 되어 있다.
멀리 떨어져 있었을 때는 잘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면 살집 하나 없는 복부에 밀착하듯이 붙어 있는 검은색 타이즈가 상당히 야하게 보인다.
단추를 하나 풀고, 그 다음 두 번째, 세 번째를 연달아서 풀었다. 고정이 풀어진 재킷이 좌우로 크게 벌어졌다.
그 안에서 가슴쪽의 타이즈가 희미하게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열기를 응축하고 있었던 것 같다.
"후우……, 읏……"
우, 역시 크다. 지금까지는, 애써 무시하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보니까 진짜 장난이 아니었다.
"……그렇게 빤히…… 쳐다보지 마아……. 시선 다 느껴진다고……"
루이스는 한쪽 눈만 살짝 떠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내가 빤히 쳐다보고 있었던 건가. 조금 부끄럽다.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루이스의 어깨로 손을 살짝 뻗어서 어깨를 건드렸다. 그다지 힘을 준 것도 아닌데 루이스의 몸이 뒤로 밀리더니, 그대로 침대 위에 쓰러진다.
갈색 재킷이 더 이상 가슴을 고정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지, 쓰러진 루이스의 가슴이 느릿하게 흔들린다.
나도 모르게 코에서 피가 흐를 것 같았다.
"……내가, 이거 때문에 평소에 얼마나 곤란한지 모르지……? 옷 제대로 맞춰 입기도 어렵고, 아래쪽에는 땀도 차고……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자꾸 흘끔거리는 것도 신경 쓰이고……. 은근히 불편해……."
흐으, 하고 루이스는 누운 채로 팔짱을 끼면서 가슴을 부드럽게 그러모았다.
"그…… 그래도 뭐…… 네가 그렇게 만지고 싶다면…… 특별히, 허가해줄 수도 있다고……."
고개를 옆으로 살짝 틀은 루이스가 새침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 꼴을 보고 나도 모르게 루이스의 뺨에 손이 갔다.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건드린 순간 몸이 또 다시 움찔 떨린다.
그 다음은 매끄러운 턱선을 타고 조심스럽게 손을 아래로 내린다. 간질간질, 손가락을 움직이니까 루이스가 "간지러워"하면서 살짝 웃었다.
목부터는 새까만 타이즈를 뒤집어 쓰고 있었기 때문에 손끝에 전해지는 느낌이 달랐다. 까끌까끌한 목, 어깨, 그리고 쇄골 순으로 차례로 쓰다듬으며 내려갔다.
조심스럽게 가슴을 문지른 순간 루이스는 헛숨을 삼켰다.
"……."
루이스는 타이즈 안에 그것과 같은 색의 속옷을 입고 있었다. 화려한 장식이나 무늬는 없지만 솔직히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그런 무늬가 있었어도 루이스의 피부보다 눈에 띄거나, 내 시선을 사로잡지는 못했을 테니까.
루이스와 비교하면 조금 경험은 있는 편이지만 연금술사의 가슴과 비교하면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크기 때문에 나도 어찌해야 할 지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신축성이 있는 속옷을 살짝 비껴내서 옆으로 치우고, 실오라기 하나 남지 않은, 루이스의 진짜 가슴을 눈으로 본다.
색소가 옅은 피부, 조금 큰 편인 유륜, 뜨거운 열기, 체취. 그 모든 것이 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행위 다운 행위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루이스의 새하얀 가슴 위에 찍힌 점처럼 박혀 있는 유두가 위를 향해 올라와 있었다. 가슴째 함께 살짝 움켜쥐자 매우 단단하게 느껴진다.
루이스의 가슴은 매우 크고 탄력이 있었다. 나는 키가 큰 만큼 손이나 발 같은 말단 부위도 상당히 커다란 편이었지만, 도저히 한 손으로 움켜쥘 엄두가 느껴지지 않았다.
구름처럼 부드럽게 손가락이 파고드는가 싶으면서도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오히려 강력한 탄력과 함께 내 손을 밀어내기 시작한다.
"……윽."
살짝 힘을 주어서 루이스의 가슴을 누른 상태 그대로 손가락만 움직이기 시작했다. 루이스보다 낫다 뿐이지 내 경험도 상당히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루이스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조금씩 시간을 들여서 탐구해나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너, 너……"
그때, 눈가에 눈물을 짓고 있던 루이스가 입꼬리를 비틀면서 입을 열었다.
"왜?"
"손바닥, 은근히 까끌까끌하네……. 굳은살이지? 전부……"
"그렇겠지. 네 손도 피차 마찬가지면서."
험한 일을 주로 맡는 특성상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그렇게 많지 않다. 굳은살 정도면 오히려 귀여운 편이지. 평생 지워지지 않는 흉터에 비하면.
"혹시 그거 때문에 아픈 거야?"
"그런 건……, 그런 건 아니야……."
갑자기 굳은살 얘기를 꺼내는 게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아픈 건 아니라고 한다.
그럼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뭐지. 그게 궁금했는데, 굳은살이 쓸릴 때마다 작게 신음 소리를 내는 걸 보면 아픈 게 아니라 그 반대 같다.
연금술사는 별 반응 없었는데 루이스만 이러는 걸 보면, 루이스는 이런 쪽에 약하다고 볼 수 있을까.
루이스의 가슴을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쓰다듬고, 쓸어넘기면서 조금씩 자극해나간다. 나는 천장을 보고 누워 있는 루이스의 위로 천천히 내 몸을 겹쳤다. 오른쪽 허벅지는 사타구니 사이에 가져다놓았다.
바지를 입은 상태인데도 느낄 수 있을 만큼 루이스의 허벅지 사이에 진한 습기가 끼어 있었다.
입술을 목으로 가져간다. 목을 덮고 있던 타이즈를 이로 물어서 살짝 내리고, 땀으로 젖어 있는 목덜미를 혀와 입술을 써서 공략했다.
루이스도 처음에는 간지러워하는 기색이었지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목소리에는 색기가 감돌고, 호흡에서는 여유가 사라졌다.
"하아…… 으? 으? 아?"
그리고 그 자극의 횟수가 어느 지점을 넘어섰을 때.
"윽……! 윽, 으……?!"
루이스는 내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를 냈다.
야하고, 음란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한 분홍색으로 점철된 목소리를.
* * *
모든 것이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타인에게 가슴을 허용하는 것도, 문질러지는 걸 관망하는 것도, 그리고 가슴을 통한 자극만으로 느끼는 것까지도.
지금까지 혼자서 가슴을 자극해본 적이 없는 건 아니다. 루이스도 알 만한 건 모두 아는 나이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행위를 몇 번씩 반복해도 그것을 기분 좋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백신현이 두손을 써서 저지른 행위는 루이스가 지금까지 해온 것과 기술적으로는 크게 차이가 없을 텐데.
손바닥이 쓸릴 때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섬짓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기분이 좋았다. 자신도 모르게 몸을 뒤척이기 시작했고, 등허리를 움찔거리는 빈도가 늘어났다.
"하……"
처음에는 그 한숨 소리가 자신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입에서 나온 소리인데도 자신의 것 같지가 않았다. 이렇게 달콤하고, 이렇게 뜨거운 목소리가 한숨처럼 나왔다.
"읍─, 으읍, 읍! 으읍!"
하지만 그때마다 루이스는 양손을 써서 스스로의 입을 틀어막으면서 소리를 참으려고 했다.
백신현이 가슴을 아래쪽에서 쓸어올리듯이 틀어잡고 유두를 이로 조심스럽게 깨문 순간 루이스는 허리를 위쪽으로 튕기며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질렀다.
"윽……! 으윽?! 윽! 윽──!!"
그 소리를 어떻게 참아본다고 참은 끝에 나온 소리가 이것이었다. 하지만 소리를 제외한 모든 것이 루이스의 현재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허리는 펄떡거리면서 휘어졌고, 침대 시트를 움켜쥔 손이 오그라들면서 바들바들 떨린다. 눈가에는 눈물이, 그리고 강하게 맞물린 치아 사이에서는 새하얀 거품이 부글부글 올라왔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소리를 참으려고 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루이스의 현재 상태는 명백했다. 허리를 한참 동안 비틀어대던 루이스의 몸이 침대 시트 위에 늘어진다. 침대 시트는 어느 세 축축했다.
루이스는 몸안의 모든 수분을 토해낸 듯 온몸이 땀으로 절어 있었다.
탈력한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백신현은 루이스의 눈가로 손을 뻗어서 눈물이라도 털어내려고 했지만, 루이스는 그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찰싹, 하고 소리를 내면서 백신현의 손을 튕겨낸다.
하지만 백신현은 그다지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익숙하다는 듯, 튕겨나간 손을 여러 번 쥐었다 펴면서 다시 루이스를 돌아본다.
"기, 기고만장하지 말라고……."
루이스는 입을 타고 흐른 침을 오른손등으로 닦아내면서 백신현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턱을 가슴쪽에 바짝 붙인 상태에서, 원수라도 보듯이 날카로운 시선을 향한다.
"미리 말해두지만, 하, 하나도 기분 좋지 않았거든……? 애초, 애초에, 백신현 주제에 날 상대로 리드하겠다는 것부터가, 잘못된 거라고……. 나보다 조금 먼저 첫 경험을 뗐다고…… 자, 잘난 척 하지 마……!"
얘는 도대체 왜 이럴까. 백신현은 생각했다.
하지만 루이스가 쓸데없는 일로 자존심 세우다가 엎어지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다. 적어도 백신현에겐 익숙했다.
특급 모험가 루이스 파르네제만 아는 사람에게는 조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백신현은 루이스가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겪어온 수많은 삽질을 하나도 빠짐 없이 알고 있다.
그녀는 틀림없는 천재지만 완벽하지도, 냉철하지도 않다.
특히, 루이스는 유독 백신현 앞에서 강한 척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루이스의 저항을 물리치고 손을 뻗는다. 기어이 큼지막한 눈망울에 걸린 눈물을 털어낸 뒤, 백신현은 오른손을 뒤로 물렸다.
이 정도면 충분할까. 백신현의 오른손이 루이스의 매끈한 배를 가볍게 살짝 누른 후, 그 아래로 내려가려고 했다.
루이스가 백신현의 손목을 틀어잡은 건 바로 그때였다.
악력은 별 것 없었지만 소리는 컸다. 눈물을 털어내고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루이스의 눈가에는 다시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왜 또?"
"……너만 내 몸을 가지고 노는 건 치사하잖아……."
루이스가 몸을 일으키려다가 그 자리에 다시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 간신히 위치를 옮긴다.
엎드린 자세로 고쳐 누운 루이스의 코끝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바지 속에서 맥동하는 남근이 있었다.
바지 위에서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부풀어있다.
"나도…… 네 몸을 가지고 놀아야 공평하다고……."
* * *
……어?
뭐……, 야……, 이거……?
내 팔뚝보다 굵……, 에……?
잠, 말도 안……
이런…… 게 들어갈 리……, 없…… 잖…………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