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7. 나와 그녀와 그녀의 건전하지 못한 관계 (3)
* * *
"……."
올리비아는 입술을 다문 채 대답이 없었다.
샤를로트도 마찬가지, 내게 손목을 붙잡힌 상태로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시선을 회피한다.
"말해봐. 이게 뭐냐니까?"
"……."
입을 다물고 있는다고 내가 물러설 사람이 아니라는 건 올리비아도 알고 있을 것이다.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상황은 대충 짐작이 가니까.
"네가 조금 전에 말했지. 스페트로 가주님은 샤를로트를 지도할 때 이외에는 바깥에 나오지 않는다고."
나도 얻어 맞고, 바닥을 뒹구는데는 꽤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 세계에서 언제나 약자의 위치에 서 있는 인간이었고, 나와 부딪치는 이들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나보다 더 강한 이들이었다.
상처 하나 없이 얻어낸 승리가 드물 정도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 손으로, 때로는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상처를 수리해나가면서 오늘까지 버텨왔다.
올리비아가 일일이 짚어주지 않아도 대충 견적은 나온다.
이것은 창대에 얻어 맞은 상처였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샤를로트의 팔뚝은 그저 붕대를 감아두었을 뿐만이 아니다. 치료 술식에 의한 재생 흔적이 명확히 남아 있었고, 그 위에 덧대듯이 또 다른 상처가 새겨지는 식으로 무수한 흔적이 층층히 쌓여 있다.
한두 번 얻어맞고 쓸린다고 남을 수 있는 흔적이 아니다.
바위가 흐르는 물에 조금씩 깎여 나가서 형태를 잡는 것처럼, 수십 번씩 까지고 다시 아물기를 반복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흔적이다.
"……그런데 이게 뭐야, 네 눈에는 이게 지도대련으로 생기는 상처 같냐? 도대체 그 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그건……"
"넌 애가 이 꼴이 될 때까지 도대체 뭘 했어? 가신인 네 입장도 알겠는데, 네가 보기에도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
올리비아는 시선을 돌린 채, 내 얼굴을 제대로 마주보지도 못했다.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지만, 희미하게 올리비아의 어깨가 경련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
시선을 아래로 내린다. 세게 주먹을 쥔 오른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지나치게 힘을 준 나머지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어서 핏물이 뚝뚝 흐르고 있다.
그 꼴을 보고 나도 조금 진정이 되었다. 고작 일주일 남짓 알고 지낸 나와는 다르게, 올리비아는 아주 긴 세월 동안 샤를로트의 곁을 지켜왔다고 들었다.
나보다 속앓이를 더 했으면 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후, 하고 속에 남아있던 뜨거운 감정을 한숨 한 번과 함께 토해낸 후 나는 조심스럽게 샤를로트의 손목에서 손을 떼어냈다.
잘못 쥐면 부서질 것처럼 가느다란 손목이다. 그래서 나도 조금 흥분한 상태임에도 최대한 힘조절을 하고 있었나보다.
소매를 다시 내려준 후, 나는 상반신을 벤치에 기대면서 살짝 눈을 감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스페트로 가주님이 그 정도로 막 나가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았는데."
"말했다시피…… 네가 별장에서 나간 이후로 성격이 많이 이상해지셨다. 아가씨에게 살갑게 대하는 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가씨에게 그런 식으로 폭력적으로 대하는 사람도 아니셨어……."
그래서 올리비아는 스페트로 가문에 내려오는 광증을 의심하고 있는 건가.
사람의 성격이 하루아침이 바뀐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니까.
"나도 조금 도가 지나치다 싶어서 여러 번 말리려고 했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그분의 시선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그래, 마치 초식 동물이 맹수의 시선 앞에서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것처럼…… 시선이 마주친 순간 내 의지와는 관계 없이 몸이 굳어버리더군."
나는 그 말을 듣고 무심코 눈썹을 꿈틀대고 말았다.
올리비아가 경험한 일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반대. 올리비아가 경험했던 그 단편적인 현상과 비슷한 것을 나도 알고 있기 때문에 나온 표정 변화였다.
『……검주, 어쩌면 그건.』
'그래, 네가 가르쳐준 '심령 제압술'과 비슷해. 수준 차이가 심하게 나는 상대에 한해서 쓸 수 있는 흔적이 남지 않는 제압술.'
그런 기술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내심 이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특급 모험가라지만 올리비아 정도쯤 되는 상대에게 스페트로 가주의 심령 제압이 먹힐까? 물론 실제로 붙으면 스페트로 가주의 백전백승이겠지만, 심령 제압은 그보다 훨씬 큰 차이가 있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스페트로 가주는 그 정도로 강력한 무인인가?
나는 높이 쳐도 루이스와 비슷하거나 살짝 쳐지는 수준이던 그의 기량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사실, 오늘 이렇게 외출을 해서 너를 찾아온 이유는…… 현재 별장의 상황을 네게 알려주고 싶기도 했거니와, 아가씨가 네 얼굴을 보고 기운을 좀 차리셨으면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날 본다고 기운이 날까? 해봐야 일주일 알고 지낸 사인데."
내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하자 올리비아는 쓰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물론 아가씨와 친밀한 정도만 따지면 내가 너보다 훨씬 낫겠지만, 너는 나와는 또 다른 형태로 아가씨의 마음에 든 것 같아서 말이다."
"정말이야?"
"응. 신현 씨는 무척 편한 분위기니까……"
솔직히 잘 이해가 안 돼서 질문했더니, 샤를로트는 조금 주저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 주관이지만 대충 나는 샤를로트에게 "잘 놀아주는 친절한 옆집 대학생 오빠" 정도로 보이지 않을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난 샤를로트와 꽤 잘 놀아준 편이라고 본다.
나는 앞머리를 집게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꺾었다.
"모처럼 날 만나러 왔는데 그냥 돌려 보내기도 좀 뭣하고, 그럼 잠시 같이 돌아다녀 볼까."
"……그래주면 좋을 거 같아. 일주일 만에 만났는데 우울한 얘기만 하면 재미 없으니까……."
샤를로트에겐 만족스런 대답이었는지, 녀석은 단숨에 화색을 보이면서 고개를 들었다.
아직도 통증은 느끼고 있을 텐데, 참 당찬 아이다.
"하지만 그 전에……, 잠시만……"
나는 허리에 비스듬히 차고 다니는 조그만 가방에서 얄팍한 천쪼가리를 뽑아냈다. 그리고 어리둥절한 눈으로 쳐다보는 샤를로트에게 보여준다.
"어, 이게 뭐야……?"
"습포. 내가 자주 쓰는 건데, 통증에 효과가 좋아."
예전에 연금술사한테 배워서 내가 만든 물건이다.
최근 들어서는 이 정도 물건으로 고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부상을 자주 입어서 연금술사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지만, 원래 나 혼자서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의 부상은 이걸 써서 치료하고 다녔었다.
회복 술식처럼 피대상자의 체력에 따라서 효과가 떨어지거나, 오히려 역으로 몸을 상하게 할 정도로 위험한 물건은 아니기 때문에 부작용은 없을 거다.
난 이 습포를 지금의 샤를로트와 한두 살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던 시절부터 쓰고 다녔었는데, 크게 몸이 아프고 그런 증상은 없었다.
샤를로트는 내가 건네준 습포 한 뭉치를 잠시 동안 물끄러미 바라본 뒤, 살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신현 씨. 잘 쓸게."
"그래."
보면 볼수록 참 예의도 바르고 성격도 제대로 박혀 있는 아이다.
나는 저 나이때 어땠더라…… 아니, 그만두자. 떠올리기만 해도 미칠듯한 오글거림에 이불을 걷어차고 싶어지는 그 시절의 나와 비교하면 샤를로트는 천사나 다름 없었다.
그러니까 더 흥분하게 되는 것 같다.
어째서 저렇게 착한 아이가 그저 조금 재수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저 꼴이 될 때까지 얻어맞아야 하는 거지.
팔뚝을 걷고 환부에 습포를 하나씩 붙여 나가는 샤를로트로부터 나는 전혀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차례로 겹쳐보고 있었다.
"……."
자기들도 팔과 다리가 찢겨 나가서 죽기 직전이었던 주제에 미안하다느니, 너는 꼭 살아 남으라느니, 어쩌니 하면서 죽어가던 노예 검투사들의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살짝 주먹을 쥐었다.
* * *
그리고 다음 날, 회동 당일.
평소에는 '회의'가 끝난 후 특급 모험가들의 비무가 시작되는 게 회동의 흐름이었지만 올해는 조금 순서가 조정되었다.
본격적인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흥을 띄우기 위해서, 특급 모험가의 12위와 13위가 벌이는 비무가 제일 앞으로 오게 되었다.
하지만 루이스는 오히려 그런 변화를 반기는 얼굴이다. 1년 전, 특급 모험가로서 처음으로 참가했던 회의에서 스페트로 가주에게 판정패를 당한 이후 그녀는 오직 이날만을 오매불망 기다려 왔으니까.
특급 모험가들의 대결에 맞춰 준비된 비무장은 커다란 돔 형태를 하고 있었다.
야구 경기장과 비교해서 훨씬 넓은 크기를 가진 이곳은 오직 특급 모험가들의 비무를 위해서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특급 모험가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국가적 재해와 맞서 싸워서, 지지 않을 정도의 강함이 필수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특급 모험가는 걸어다니는 자연 재해나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
이렇게 넓은 공간이 아니면 힘을 자유롭게 쓰지도 못할 만큼.
나는 비무장으로 이어지는 통로에 서 있었다.
권투 경기로 치면 세컨드 정도쯤 되는 위치로, 작년에도 나는 이 자리에서 루이스와 스페트로 가주의 비무를 직관했었다.
"잘 다녀와. 어차피 네가 이기겠지만."
나는 응원 아닌 응원을 하면서 걸어가는 루이스의 뒷모습을 배웅했다.
비록 작년에는 판정까지 가서 아슬아슬하게 패배했지만, 올해의 루이스는 작년의 루이스와 전혀 다른 사람이다.
스페트로 가주에게는 유감이지만 내가 근 며칠 동안 보아온 그의 실력으로는 승산이 없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비무장 반대쪽 출구에서 뭔가 이상한 게 보였다.
홀로 걸어나오는 실루엣. 저것은 틀림없이 스페트로 가주의 형태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그의 등뒤로부터 뭔가 거대한 것이 밀려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
심연 속의 실루엣을 목격한 바로 그 때, 나는 숨이 턱 하고 막혀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검다……. 아주 검고 찐득찐득한 액체가 스페트로 가주가 걸어 나오는 통로에서 뿜어져 나오는가 싶더니, 그것은 순식간에 돔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반대편 통로에 서 있던 우리들까지, 순식간에.
저항하려 해도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시꺼먼 액체는 순식간에 나와 루이스를 집어 삼킨 뒤,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어딘가로 밀어 보냈다.
"……."
하지만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내가 본 것은 그저 환상에 불과했다. 시꺼먼 액체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고, 나는 여전히 통로의 그 자리에 서 있는 상태였다.
"지금, 뭐야……?"
루이스도 나와 비슷한 것을 목격한 것일까. 당혹감이 스며든 목소리로 나를 돌아보며 중얼거린다. 하지만 나도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도대체 뭐지.
도대체 난, 뭘 보고 있었던 거지.
느낌이 이상했다.
그 기묘한 환상을 목격한 직후, 반대쪽 통로에서 걸어 나온 스페트로 가주의 모습이 지금까지와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시꺼먼 그림자를 전신에서 발산하고 있는 듯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