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7. 나와 그녀와 그녀의 건전하지 못한 관계
* * *
면회 시간이 끝나기 전까지 보이드에게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확보했다.
템페스트가 쓰는 창술의 이름. 그 창술의 초식과 장단점. 향후 내가 그와 직접 부딪치게 되었을 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였다.
그리고 그때마다 놈은 항상 "이 정보는 20년 전의 것이다. 변동사항이 있을 가능성은 충분해"라며 덧붙였다. 그렇겠지, 나도 알고 있다. 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과는 별개로 다양한 방식으로 준비를 해 두어야 한다.
정보를 유용하게 쓴다는 건 그런 의미다.
물론, 보이드가 지금까지 털어놓은 모든 이야기가 거짓부렁일 가능성도 생각해야 하고.
나와 보이드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의 말을 완벽하게 신용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조언을 해줄까."
"뭐지?"
면회 시간이 다 되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나를 보이드가 멈춰세웠다.
"템페스트도 검왕검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정작 검왕검의 형태나 발산하는 마력의 파장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니까, 검왕검에 대해서는 최대한 숨겨두는 게 좋을 거야."
"……."
"그리고 아마 지금의 너희와 템페스트의 실력은 거의 백중세겠지. 템페스트를 이기고 싶다면 최대한 준비를 해서 찾아가는 편이 좋을 거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검을 뽑았다.
보이드가 움찔했다.
"이야기는 대충 알아 들었어. 들을 만한 건 다 들었으니까 이제 다시 당신의 심령을 제압할 생각인데, 빼먹은 부분은 없겠지?"
"……자네가 내 심령을 제압하려고 드는 이유는 아마 내가 입을 함부로 놀릴 가능성 때문이겠지만, 나도 검왕검에 대해서 함부로 떠들어댈 생각은 없다. 이제 간신히 자유를 찾았는데 좀 봐주면 안 되겠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언제부터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였다고."
딱 잘라 거절하는 내 대답을 듣고 보이드가 입술을 구겼다.
"……재수 없는 새끼."
"그러니까 사람 골라가면서 일을 벌렸어야지. 네가 내 사람들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씹어서 갈아마셔도 분이 풀리지 않아."
난 쪼잔한 데다가 원한도 쉽게 잊지 않는 성격이다.
망설임 없이 집행에 들어갔다.
* * *
큰 소득 없는 나날이 한동안 이어졌다.
보이드에게서 습득한 템페스트의 정보를 토대로 수행을 시작하고, 모의 전투도 수십 번씩 해 나가면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눈에 띄는 결과물이 없으니까 조금 기운이 쳐진다.
아니, 겨우 일주일 정도로 뭔가 결과물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도 좀 양심 없는 생각인가.
하지만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것도 좀 답답하단 말이지.
"……."
나는 스페트로 별장의 근처에 있는 높은 나무에서 별장을 감시하고 있었다. 언뜻 보았을 때, 저 별장은 평소와 크게 달라진 점이 없어 보인다. 분위기도 평화롭다.
하지만 아니다.
필설로는 표현할 수 없는 껄끄러운 느낌이 묘하게 등을 타고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손이 근질근질 하지만 조금만 참자.
내일부터 '회동'의 일정이 시작된다. 그때가 되면 두문불출하고 있는 스페트로 가주도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재수가 좋으면 템페스트의 모습도 볼 수 있겠지.
샤를로트 그 아이는 무사히 잘 있을까.
자타공인 쓰레기인 보이드조차 '미친 놈'이라고 표현한 인간을, 올리비아는 무사히 제어하고 있을까.
나는 잠시 별장 쪽을 바라본 뒤, 조용히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사람이 왜 이렇게 많냐. 이거."
모험가 길드에 다시 복귀했더니, 어째 사람들이 와글와글하다. 내일부터 '회동'이 시작된다는 걸 감안하면 어디의 특급 모험가라도 찾아온 걸까.
"여, 백신현. 안에 안 들어가고 뭐 하고 있어?"
길드 입구에서 서성거리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내 등을 살짝 밀면서 말을 걸었다. 오른쪽으로 틀어 올려서 묶은 금발. 루이스였다.
"아니, 누가 왔길래 사람들이 이렇게 바글바글한가 싶어서."
"뭐, 누구라도 오지 않았겠어?"
본인부터가 특급 모험가이기 때문인지 루이스는 눈앞의 상황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기색이다.
루이스의 말을 듣고 생각한다. 회동의 시작은 내일이고, 아직 이 도시에 도착하지 않은 특급 모험가는 총 세 명이다. 1위와 2위, 그리고 5위.
이 중에서 내가 그나마 말이라도 튼 건 2위 한 사람 뿐이다. 루이스가 특급 모험가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이 도시의 유일한 특급 모험가였던 남자.
"거기에 있는 건…… 루이스와 백신현인가?"
모험가 길드 안쪽에 바글바글하게 몰려 있던 인파가 좌우로 갈라졌다. 순식간에 넓어진 길드의 입구에서 나와 비슷한 키의 남자가 걸어나온다.
자기 키만한 대검을 등에 짊어진, 군데군데 헤져서 구멍이 뚫린 망토 차림의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내가 조금 전에 머릿속으로 떠올린 세 명의 특급 모험가 중에서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름은 마그누스.
보다시피 자신의 덩치만한 크기의 대검을 제몸처럼 휘둘러서 수많은 적을 숭덩숭덩 썰어내는 것이 특기이고, 파괴력과 방어력에 한해서는 제 1위조차도 뛰어넘는다고 알려진 남자다.
루이스가 그를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이에요. 대장."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비교해서 실력이 훨씬 늘었구나.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모양이군."
"그렇죠, 뭐."
루이스가 내민 손을 굳게 잡고 악수를 한 뒤, 이번에는 나를 돌아본다.
조금 전에 루이스가 그를 '대장'이라고 호칭한 것처럼 그는 이 도시에서 활동하는 거의 모든 모험가의 우상 같은 사람이다.
일감이 없을 때는 아카데미에서 근무하면서 수많은 견습 모험가를 지도하는 일을 맡고 있는데, 이 도시에서 그의 지도를 거치지 않은 모험가는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견습 시절에 그의 지도를 거친 것은 나도 마찬가지로, 그의 굳건한 정신과 날카로운 솜씨는 내 검술의 롤모델이나 다름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대장."
"그래. 오랜만에 봐서 반갑다. 백신현. 이전과 비교해서 훨씬 더 체격이 좋아졌군. 순수한 신체 능력만이라면 네가 나보다 더 높을지도 모르겠어."
그는 나와 가볍게 악수를 나누면서 내 신체 능력을 측정했는지 뜨뜻미지근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게 마력만 제대로 있었어도 큰 인물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응?"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던 마그누스의 시선이 갑자기 멈췄다. 그리고 갑자기 그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난 뒤, 오른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면서 여러 번에 걸쳐 내 전신을 훑는다.
두 번 보고, 세 번 보고, 그 다음에는 주먹을 쥐고 자신의 관자놀이를 한 번 세게 퍽 후려치면서 지금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했다.
한참 동안 번민하던 그는 설마 하는 목소리로 내게 질문했다.
"백신현, 신현아. 내 느낌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지금 네게서 마력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설마, 진짜로 네 체질을 극복한 거냐?"
"네, 맞아요. 꽤 고생했지만."
그는 얼굴에 화색을 띄며 기뻐했다.
"그런가! 경사스런 일이로군! 넌 이 내가 인정할 정도로 놀라운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중요한 마력이 없어서 그 능력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고 있었지. 그런데…… 그 짧은 사이에 이 정도로 발전했을 줄이야……."
나를 바라보며 잠시 동안 웃고 있던 그는, 갑자기 웃음기를 싹 지우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네 마력을 살펴보던 와중에 이상한 게 눈에 좀 띄는군. 한 종류의 마력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마력이 조화롭게 섞여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요?"
"혹시 신현이 너……, 드디어 루이스와 좋은 관계가 된 거냐?"
"네?"
"그건 또 무슨."
루이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나도 모르게 뭔 개소리야, 라고 소리칠 뻔 했다.
하지만 마그누스는 이미 자식의 성장을 기뻐하는 아버지의 얼굴로 나와 루이스를 번갈아서 쳐다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 눈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내 눈은 못 속이지. 한 사람의 마력에 두 종류 이상의 성질이 섞여 있다는 건 한 쌍의 남녀가 서로의 몸을 겹치고 마력을 교환했다는 소리 아니냐."
아, 뭔 소린가 했더니 그 소리였나.
나는 그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잠시만요, 하고 입을 열었지만 마그누스는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나이 먹을대로 먹은 아저씨가 소년처럼 눈을 빛내고 있으니까 내가 다 부끄러워진다.
"너희 둘이서 사이 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저것들 언제쯤 사귀겠나, 하고 계속 전전긍긍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드디어."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 응?"
루이스가 차갑게 내뱉은 말에 마그누스의 목소리가 뚝 끊어졌다.
"그럼? 신현이의 마력에 느껴지는 또 다른 사람의 마력은 누가 봐도 성행위를 통해서 교환된 게 맞는 거 같은데……?"
"그러니까, 그 상대가 제가 아니라구요. 신현이 마력으로 섞여 있는 건 제가 아니라 연금술사 선생님의 마력이에요. 그렇다고 그 두 사람이 사귀는 사이인 건 아니지만요."
"연금술사? 그 미친 ㄴ……, 아니, 신현이 데리고 마구 굴려대는 그 여자?"
연금술사의 실제 성격을 아는 우리가 들으면 개소리지만, 그녀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보통 저런 식으로 평가를 내린다.
은근히 악명이 높은 사람이다.
"그 여자하고 신현이가 왜? ……신현이가 협박이라도 당한 건가?"
도대체 대외적으로 그 사람 이미지가 얼마나 개판이 되어 있는 거지?
나는 어이가 없어서 무심코 한숨을 토해내고 말았다. 그 후 황급히 덧붙였다.
"화간이에요. 화간."
"허……, 그거 참 요상한 일이구만. 마력이 섞여 있는 정도를 보면 한두 번 몸을 섞은 것도 아닌 거 같은데……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냐?"
나는 딱 잘라 말했다.
"노코멘트 할게요. 자랑스레 떠들고 다닐 만한 일도 아니고."
무슨 수치 플레이도 아니고, 내가 그걸 왜 말해줘야 해?
내 한 마디로 달궈진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고, 마그누스는 이제야 자기가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걸 눈치채고 흠, 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자기가 좀 흥분했었다는 걸 자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미안하다. 내가 좀 흥분을 했군. 너희들은 내가 가르친 애들 중에서도 특히 어린 애들이라서, 나도 모르게 관심을 좀 심하게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무게감을 좀 지키시죠. 특급 모험가가 주책스럽게."
나는 어느 정도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그를 닥달했다.
보면 알겠지만 실력에 비해서 성격이 상당히 경박한 데다가 무게감도 부족해서 영 믿음직스럽지 못한 인간이다. 하지만 실력은 확실하다. 실전에 들어가면 성격이 확 바뀌는 타입이라고 보면 된다.
"괜히 불편하게 해서 미안했다. 하지만 너희들이 좋은 사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진심이야. 내 자식들도 너희쯤 되는 나이거든. 그래서 더 관심이 가는 거지."
"자식이요."
"그래, 나는 결혼하고 애를 본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특급 모험가 자리에 올랐었으니까. 딱 너희들 정도쯤 되는 나이일 거다."
마그누스는 나와 루이스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인 후, 곧바로 그 자리에서 물러나서 다른 사람을 찾아갔다. "이봐, 오랜만이야!" 하면서 등짝을 후려치면서 말을 건다.
보면 알겠지만 나하고 루이스만 특별하게 취급하는 게 아니라, 그는 상당히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편이다.
루이스를 비롯해서 하나씩 성질머리에 하자가 있는 특급 모험가 중에서는 가장 정상적인 성격이라고 봐도 무방할 거다.
사람들은 그때마다 특급 모험가의 환상이 와장창 부서지는 모양이지만.
"꽤 친밀한 사이인 모양이군."
마그누스의 뒷모습을 보면서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고 있던 차에, 등 뒤에서 내가 아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지인 중에서 목소리가 특히 튀는 편이라 더 구분하기 쉽다.
중성적인, 허스키한 톤의 목소리.
올리비아다.
그렇게 생각하고 몸을 돌렸는데, 처음 보는 여자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청발은 청발인데…… 이목구비도 거의 똑같은데…… 분위기 자체가 뭔가 다르다.
내가 아는 올리비아가 목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맨 옷을 입고 다니는데 반해, 이쪽은 소매가 없는 와이셔츠 차림이고, 무엇보다도 올리비아에게는 없는 두 개의 융기한 덩어리가 안쪽에서 새하얀 옷감을 밀어 올리고 있다.
여……, 자……?
내가 알고 있는 사람과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닮지 않은 듯한 비주얼에 의문을 느낀다. 나는 눈을 가늘이며 질문했다.
"올리비아, 너야?"
"그래, 함부로 내 모습을 드러내는 건 위험하다 싶어서 좀 변장을 해 봤는데, 네가 보기엔 어떠냐?"
선글라스를 살짝 내린 올리비아가 씩 웃었다.
* * *
『역시 그렇지!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얘는 또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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